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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3)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 / 당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고전1:30절은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과 구속이 되셨으니,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씀을 정말 좋아한다. 이 말씀의 묵상에 꼽히면 거의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새 창조물인 우리 믿는 이들의 존재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우리를 아담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기시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지혜가 되게 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는데, 그 지혜는 하나님의 구원 안에 있는 세 가지 중요한 것들이다. 첫째는 의(義), 의는 우리의 과거를 위한 것이다. 이 의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의롭게 되었는데, 이것은 우리가 영 안에서 거듭나 신성한 생명을 받기 위한 것이다(롬5:18).
둘째는 거룩하게 함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재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거룩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롬6:19, 22) 우리의 혼이 거룩하게 되어가고 있다. 곧 우리의 혼인 생각, 감정, 의지가 변화되고 있다. 셋째는 우리의 몸의 구속이다. 이것은 우리의 장래를 위한 것이다. 곧 우리의 몸의 구속이다(롬8:23).
몸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이 그분의 신성한 생명으로 변형되어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양을 갖게 될 것이다(빌3:21). 우리의 온 존재, 곧 영과 혼과 몸을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하나 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는 완전하고도 온전한 구원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그분 안에서 자랑하고 기뻐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힘을 들일 필요가 없이 우리 안에 한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 생명의 자연적인 표현이 선량함, 겸손과 인내이다.
우리는 이것들이 우리의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들이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한다. 시험이 몰아쳐 당신이 조급해질 때, 교만하게 될 때, 강퍅하게 될 때, 더럽힐 때, 바로 이 생명의 나타남이 인내요 겸손이요 거룩함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해 겸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겸손이다. 우리가 주님을 힘입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함이다. 그리스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고 우리는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전 존재, 곧 영과 혼과 몸을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하나 되게 하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함으로써 완전한 구원에 참여케 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그분 안에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요일3:2). 아멘
<당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고백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교가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막연히 그렇게 살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도록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정말 큰 문제이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 해답은 갈2:19-20절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는 이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죽을 수 없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더 이상 내가 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체험을 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할 두 가지 방면이 있다.
그 첫째 방면은 주님의 사역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도 그곳에 있었으며, 주님과 함께 못 박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롬6:6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한다. 이 말씀에서 “못 박혔다”는 시제는 과거형이다.
“옛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것은 갈2:20절의 “나”와 동일하다. “옛사람”은 “혼의 생명(혼생명)”, 곧 “나”, “자아”인데, 하나님은 이 혼 생명을 소망 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으셨다! 이전에 우리의 혼은 옛사람을 자신의 생명과 인격으로 삼아 독립된 인격체로서 행동했다.
그러나 이제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이제 우리의 혼은 그리스도의 한 기관으로서 행동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아 우리 영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또 다시 죽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일 내가 2천 년 후인 오늘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그때에 나도 함께 못 박혔다는 뜻이다. 곧 주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도 죽은 것이다. 나는 주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가실 때,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기 때문에, 나는 그와 함께 죽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다(고전1:30절).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다 담당시키셨다. 친히 육신(육체)으로 세상에 오셔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나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이 단순히 과거에 있어났던 일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그 사역은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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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우셨고, 주님은 그 무거운 나의 죄의 짐을 다 담당하여 주셨다. 마찬가지로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하나님은 또한 나를 그 안에 두셨다. 나의 죄 문제가 2천 년 전에 다 해결된 것같이, 나 자신의 문제도 2천 년 전에 다 해결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주 예수님께 담당시켰을 때, 나 자신도 예수님 안에 두신 것이다. 따라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나도 그곳에서 같이 죽었다. 그곳에서 나의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죄의 문제는 십자가 위에서 다 해결되었고, 같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도 죽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옛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그것은 간구나 소망이 아니다. 헬라어에서는 이 말씀이 아주 강조되고 있다. 이 과거형 동사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사실이 이미 이루어진 절대적이고 변함없는 사실임을 분명히 나타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고(고전1:3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나도 그와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성소 안에 있는 휘장에는 그룹들이 수 놓여져 있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 하나님께서 이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으셨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질 때, 거기 새겨진 천사들도 찢어졌을까?
물론이다. 휘장이 갈라졌을 때, 그 천사들도 찢어졌다. 히브리서는 이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킨다고 말해 준다(히10:20). 성경은 또 그 천사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을 나타낸다고 말해 주고 있다. 곧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예수님 안에 두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이 찢기셨을 때, 모든 피조물이 다 찢어진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옛 피조물은 다 사라졌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 보려고 그렇게도 오랫동안 애써 온 당신을, 놀랍게도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당신과 세상의 모든 옛 피조물들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우리 주님의 몸은 성소의 휘장같이 찢겨 나갔고, 세상의 모든 옛 피조물들도 함께 소멸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우리의 눈이 열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신 것을 알게 되었듯이, 또한 우리의 눈이 열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것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셨고, 우리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자꾸만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죄는 더 이상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십자가 위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도 더 이상 여기 있지 않고, 십자가 위에 있다. 죄책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만을 바라본다.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죄는 여기에 있지 않고, 십자가 위에 있다. 죄인 또한 십자가 위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며, 이미 다 완성된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고, 우리를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게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의 일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나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인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내가 왜 아직도 살아 있는가? 바로 여기서 우리의 신앙이 필요하다. 우리는 의지를 행사하여 하나님 편에 서야 할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신 자신이 매일 선해지고 선한 일을 하기를 기대한다면, 당신은 자신을 살아있는 자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아”는 살아날 것이다! 당신의 자아가 전에 살아 있지 않았다고 해도 당신의 자아가 살아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그 자아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 자아는 편안하게 죽을 수가 없다. 놀랍게도 교회와 많은 믿는 이들에게 이 십자가의 진리가 완전히 닫혀져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알아야만 한다!
그분은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약해지고, 약해지고, 약해져서 더 이상 약해질 수 없을 정도로 최대한 연약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극도로 연약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왜 로마서 7장이 성경에 있어야 했는가? 로마서 7장은 로마서 6장을 반박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로마서 6장에서 하나님은 우리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러나 7장에서는 우리 자신(옛사람, 혼 생명, 자아)이 선을 행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곧 한 편으로는 나(자아, 옛사람, 혼 생명)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나는 스스로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하지 않도록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선을 행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주님, 저는 악합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진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당신에게 인내력이 없어서 자주 형제들에게 분노함으로 실패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의 분노는 트라우마이며 무의식에 깊이 저장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당신을 당신의 기질이나 성격으로 바라본다. 그러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 자연히 당신은 인내하기를 원하고, 인내력을 기르려고 애쓰며, 인내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인내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아무리 인내하려고 애써도 잘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몇 번은 애써 참으면서 잘 넘겼지만, 어느 날 마침내 가까스로 참아온 큰 분노가 폭발하여 주위를 어렵고 놀랍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도 참을성 없는 당신 자신을 보면서 죄책감과 자괴감에 싸인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미 인내심 없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이 할 일은 ‘주님, 저는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인내할 수가 없습니다. 늘 인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으므로 이제 인내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나를 주님께 온전히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 주님, 저는 지금 주님이 필요합니다. 이런 저를 주님께 맡깁니다.’라고 기도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구원을 받는 길이다! 주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고, 당신은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주님께서 이미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는데, 당신 스스로 인내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는가? 주님께서 “너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하시는데, 당신은 ‘제가 인내하도록 능력을 주시옵소서. 제가 그리스도인답게 인내하도록 다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악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다소 지나친 예일지도 모르지만, 고양이와 개가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할 수 없듯이,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비천한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말이 참으로 불유쾌한 말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십자가에 못 박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선포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사람이 무엇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계속)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
이미 십자가에 2천년전에 예수님과 함께
우리 자아는 못박혔음을!!!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이 살아주시는 것임을♡♡♡
감사감동기쁨충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