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산악회에서 홍천군 내면의 다리골에서 1341.2봉을 넘어 비로봉과 회령봉을 거치고 감자밭등을 지나 을수골로 하산하는 입맛 당기는 오지산행계획을 올렸다.
그러나 막상 버스에 오르니 우려한 대로 답사산행한 결과 10시간이 넘게 걸려서 당일산행으로는 무리이기 때문에 코스를 좀 단축했다는 변명을 한다.
즉 을수골에서 소대산을 오르고 다리골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합류해서는 비로봉을 지나 회령봉에서 상원사로 하산한다고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않은 코스로 생각되었다.
56번 국도상의 을수골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검은 심연을 이루는 칡소폭포를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곧 비포장길로 변하고 굽이굽이 여울져 흘러내리는 수량많은 계곡이 이어진다.
다리를 두번 건너고 웬 산중에 커다랗게 세워지는 다리공사현장을 지나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펜션들과 민박집들 그리고 송림사이의 야영장들을 만난다.
1시간을 넘게 돌밭길을 걸어 마지막으로 다리를 한번 더 건너고는 산신각이 있는 곳에서 간이다리를 넘어 을수골을 버리고 소대산골로 꺽어져 들어간다.
펜션이라도 지으려는지 포크레인으로 마구 파헤쳐 놓은 황토 자갈길을 따라가다 계곡을 버리고 오른쪽 숲으로 올라가면 산악회 표지기 한개가 유일하게 길을 가리키고있다.
▲ 을수골
▲ 소대산골 입구의 간이다리
약초꾼들이나 다녔을 희미한 족적따라 더덕향이 그윽하게 풍겨오는 푹신한 낙엽길을 따라가면 하늘은 새파랗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니 그리 무더웠던 여름날은 가버리고 이제 절기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꾸준하게 이어지는 가파른 산길을 한동안 오르다 더덕과 약초를 캔다는 주민들을 만나고, 음습한 너덜지대를 지나서 미끄러운 진흙길을 나무들을 잡고 힘겹게 올라간다.
점점 열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며 능선에 합류하니 밑에서도 어느정도 족적있는 길이 올라오고 가야할 소대산쪽은 짙은 운무에 가려있다.
나무들이 울창한 좁은 능선을 따라가면 몇백년은 된 것같은 아름드리 거목들이 많이 나타나고 큼지막한 바위지대들을 연신 우회하며 뚜렸한 등로가 이어진다.
봉우리들을 몇개 넘고 두리뭉실한 소대산(1279.0m) 정상에 오르니 굵은 나무들만 서있고 아무런 표식도 없으며 조망 역시 꽉 막혀있어 답답하다.
▲ 소대산 정상
얼음물 한모금만 마시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죽길을 따라가면 가느다란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숲은 축축하게 젖어있으며 오른쪽으로 펼쳐질 비로봉도 두터운 구름에 휘싸여 전혀 보이지않는다.
울창한 숲을 따라 봉우리들을 넘고 빽빽한 관목들을 헤치며 소감자밭등에 오르니 헬기장처럼 평평한 곳이 나타나고 만발한 야생화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다리골에서 1341.2봉과 가칠봉을 거쳐 오는 길과 만나는 이 삼거리에서는 소대산과 비로봉쪽으로 조망이 아주 좋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운무에 가려 오리무중이다.
넝쿨과 덤불들을 헤치고 반대쪽인 1341.2봉 방향으로 들어가니 뚜렸한 길이 나타나고 산죽과 울창한 초지사이로 잠시 올라가면 가칠봉(1418m) 정상이 나오지만 역시 아무 표식도 없고 표지기 몇개만이 정상임을 확인해준다.
▲ 소감자밭등
▲ 가칠봉 정상
소감자밭등으로 돌아와 오대산 주능선이 있는 남동쪽으로 완만한 숲길을 따라가다 쉴곳이 없어 선채로 김밥 한줄을 먹고 우유 하나로 점심을 대신한다.
약초꾼들이 버린 펫트병과 쓰레기들이 간간이 보이는 희미한 능선길을 올라가면 참나물이 지천으로 깔려있고 아직도 쇄지않은 곰취들이 사방에 보여 한두장씩 뜯어 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급한 초지를 한동안 오르다 비에 젖은 관목과 덤불들을 헤치고 머리를 내미니 넓은 하늘이 열리며 주능선상의 헬기장이 나온다.
제법 비가 내리는 주능선에서 빗물이 고여있는 돌밭길을 잠시 따라가다 비로봉(1563.4m) 정상에 오르면 역시 비구름으로 아무것도 볼 수없고 등산객들 몇분만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다.
▲ 비로봉 정상
목책을 타고 들어가 잡초들이 무성한 숲길을 올라가면 삼각점(연곡24/1990재설)이 보이는데 아마도 비로봉의 실제적인 정상쯤이 될 것이다.
빽빽한 잡목들을 헤치며 나무에 걸려있는 표지기들을 바라보니 몇년전 여러 산우들과 한강기맥를 종주하며 이곳을 지났던 생각이 나고, 거침없이 눈밭을 뚫으며 호기있게 능선을 달리던 일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상념에 잠겨 능선을 돌아가다 놀랍게도 평소 자주 보던 "산이나뱅뱅"님을 만났는데 큰대산골에서 감자밭등을 거쳐서 호령봉으로 올라왔으며 비로봉을 지나 적멸보궁쪽으로 하산한다고 하신다.
기념으로 사진 한장 찍고 헤어져, 넓은 헬기장을 지나 이정표가 서있는 상원사 갈림길을 만나서 또 다른 작은 헬기장을 넘는다.
넓은 헬기장에 비구름만 가득한 호령봉(1561m)에 오르니 붉은 꽃을 맻고있는 당귀 한그루만이 바람에 떨며 산객을 맞아주고 시야가 트일 동피골쪽으로는 온통 검은 비구름이 덮고있다.
▲ 호령봉 정상
산악회의 일정은 갈림길로 돌아가 상원사로 내려가는 것이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감자밭등을 다녀오려 흰 비닐이 매어있는 북서쪽 능선으로 들어간다.
흐릿하게 이어지는 잡목숲을 내려가 고사목 한그루를 지나고 길이 보이지않아 능선만 가늠하며 잡목과 산죽사이를 내려간다.
잘 생긴 주목을 지나고 멧돼지들이 마구 파헤친 산죽숲을 한동안 내려가면 감자밭등으로 생각되는 너른 평지가 나타나고 야생화들이 만발해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두리번거리다 비는 점점 굵어지는데 짙은 운무는 숲을 덮어오고 산악회에서 고지한 시간도 다가와 그냥 감자밭등으로 생각하고 확인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선다.
내려올 때는 못 보았던 흐릿한 족적을 찾아 호령봉으로 돌아오니 인적은 끊어졌고 사나운 바람만이 몰아치며 발 느린 산객을 다구친다.
▲ 감자밭등(?)
바삐 상원사갈림길로 돌아와 미끄러운 능선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전에는 못 보았던 철조망들이 나오고 다음 봉우리를 올라서니 직진쪽 길은 나무로 막혀있고 왼쪽으로 길이 갈라진다.
발자국들을 확인하며 뚜렸하게 이어지던 길을 따라가면 한순간 길은 없어지고 다시 올라와 나무로 막혀있던 곳으로 들어가도 작은 헬기장이 나오며 더 이상 길은 보이지않는다.
하는 수 없이 왼쪽 길로 다시 내려가 길을 찾다보니 날은 서서이 어두어지고 시간은 마냥 흘러 급한 마음에 그냥 사면을 치고 내려가기로 한다.
낙엽에 빠지며 밀림같은 어두운 숲을 헤치고 내려가다 험한 암릉을 간신히 우회하면 이제는 빽빽한 까시덤불들이 앞을 막는다.
한발 한발 즈려밟으며 어렵게 덤불지대를 통과하고 왼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암자로 내려가니 전에 갔었던 서대사이니까 아마 상원사로 내려가는 왼쪽 갈림길을 놓쳤던 모양이다.
수행중인 암자를 조용히 빠져나와 한강발원지인 우통수를 지나서 고즈넉하게 이어지는 산길을 한동안 내려가니 상원사 큰 도로가 나오고 주차장에는 반가운 산악회버스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