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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나라 스페인과 포루투칼을 다녀오다.
2015년 8월4일(화)~8월12일(수)-8박 9일. 먼저 다녀온 은경언니와 정남씨가 대한민국을 지키고
백교장님사모님 신민경님과 숙희씨 남편과 경복씨 예쁜 딸 선경이 참석하여 모두 11명이 다녀왔다.
1일 차 8월4일(화)
대한항공 12시40분발 비행기 시간에 맞춰 승용차로 리무진으로 속속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면세점 탐방 시작!
우리들은 오리 그려져 있는 력서리 예쁜 가방과, 1+1 이태리 선그라스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그 동안 점 찍어 두었던 이것 저것 사냥(?)을 하고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 넘게 가는 동안 치킨 덮밥과 비빔밥 등 두 끼의 식사를 하고 나서
한숨 자고 나면 또 건네는 음료수와 간식을 사양도 안하고 주는 대로 받아 먹으며
2편의 영화 감상! 스토쿠에 오목게임도 즐기며 지루한 비행을 마치고는
후끈한 공기가 감싸는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여
이름처럼 남자다운 씩씩함으로 맞이한 루시가이드! 이름은 최연석을 만났다.
깔끔하고 핸섬한 모습의 마르코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에 올라
CAMPANILE LAS ROZAS 호텔서 첫째 날 짐을 풀었다.
이 호텔 옆 10분 거리엔 우리에게 익숙한 까르푸가 눈에 띄여
큰 길 자동차 전용도로는 위험하여 호텔 담 옆 쪽문을 지나 작은 흙길로 가깝게 갈 수 있었다.
가게 문 닫는 시간이 가까워 진 것 같아서
우리들은 부지런히 카트에 주섬주섬 사고 싶은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2년 전 서유럽 여행 때 독일에서 마트 문 닫는 시간에 가서
사고 싶은 것을 유리 문 밖으로 지켜만 봤던 그 추억을 되새기면서…….
버스기사가 판매하는 1유로의 물 값을 아끼기 위해
4병에 1유로의 물을 36병이나 담고, 애플망고와 오렌지,
체리, 소시지, 맥주와, 건과류, 마카다미야도 푸짐히 사고
가장 맛있어 보이는 맥주도 당연히 빼 놓지 않았다.
무겁게 11명이 산 것 들을 나누어 열심히 들고 와서
이번 여행의 무사 귀환과 참석 못한 정남씨와 은경언니 생각을 하며
명옥 인숙언니 방에서 11시까지 잔을 기우리고 첫날 밤을 맞았지만
시차 덕에 트리플 방(운하 경희 명숙방)에 들어와서도
새벽 3시 30분까지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면서 들뜬 마음으로 날을 새웠다.
2일 차 8월5일(수)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로 가는 날이다.
깔끔이 기사에게 브에노스 디아스(좋은 아침)하고 차에 올라
45분정도 가을 분위기의 추수 끝난 밀밭과
꽃이 지고 까만 알갱이가 영글은 해바라기 밭과 푸른 옥수수 밭을 지나다 보니,
2000년 전의 유적 로마 때의 수도교가 하늘에 매달려 우릴 기다린다.
167개의 둥근 아치 모양에 매달린 돌들이
오랜 시간동안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120개의 견고한 기둥 위에 수로에 물은 흐르지 않지만
보존이 잘 되어 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고즈넉한 중세도시의 모습이 눈에 펼쳐지는 듯했다.
맥도날드에서 볼일(?)도 보고
(이곳은 화장실이 문제다. 가는 내내 루시가이드는 무료화장실 안내와
여권 챙기기와 소매치기 조심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설명했었다-하루 20번 이상) 알카사르 궁전으로 행했다.
백설공주가 지금이라도 성위에서 바라 볼 것 같은 환상의 예쁜 성이다.
세고비아 서쪽 시내를 끼고 흐르는 에레스마강과 클라모레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단다.
성 아래 초록빛 촉촉한 풀밭에서 기념 사진 누르고 월트디즈니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다음 코스로 출발~
스페인의 대학으로 유명한 중세도시 살라망카로 1시간정도 이동했다.
이동 중에는 콜롬버스 나오는 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지명이 살라망카가 많았다.
당시 이 살라망카에는 유명한 정치가 철학자 등
나라에 영향력을 주는 인물들이 모였던 곳이었던 것 같다.
1218년에 대학이 설립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말하면 고려시대 말 일것이다.
이곳에서는 마요르 광장이 있었다.
그 광장 주위엔 중앙 시청이 있었고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에 88개의 아치도 있었다.
행사를 치르는 스페인 광장도 있었는데
이곳 뿐이 아니라 다른 도시에도 같은 이름의 광장이 있었다.
이곳 지나자 벽에 조개 모양의 문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이 있었는데
이름이 조개의 집이다. 15세기 건물이라는데
400개 정도의 조개 문양을 볼 수 있고 예전엔 산티아고 기사단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도서관과 관광 안내소로 쓰이고 있단다.
웅장한 살라망가의 대성당도 보고 점심은 중국 음식점이다.
뷔페식으로 각자 가져다가 먹는 것이었는데
느끼하고 않고 향신료도 많이 쓰지 않았었고 다양한 것들이 많아 모두들 맛있게 잘 먹었다.
성모 발현지 포루투칼 파티마로 향했다.
인구 3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란다.
4시간 정도의 긴 이동거리여서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면서 갔다.
이곳 교통규칙에 운전기사들은 4시간 30분 이동에는 45분정도의 휴식을 꼭 해야 한단다.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인가 보다.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사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된 파티마 성지,
성모마리아의 발현으로 봉헌된 파티마 대성당이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은 후 성당 쪽으로 갔다.
가는 길에 성물가게에서 묵주 등 구입도 하고
우리 모두가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저녁 로사이오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11개의 향기 좋은 갈색의 봉헌 초를 샀다.
1시간정도의 미사 후에 초에 붙인 촛불을
나이,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연결하여 나누는 모습에
숙연함과 깊은 생각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모두에게 평화와 감사와 영광이 함께 하길 기원하면서
CRUZ ALTA 호텔로 들어와 비타민과 우루사와 홍삼으로
‘피곤아 사라져라’ 외치고 푹 쉬었다.
3일차 8월6일(목)
아침에 따끈한 우유와 짜지 않은 햄과 치즈를
구운 식빵에 듬뿍 넣어 맛있게 먹고
싱싱한 토마토 디저트 후 올라(안녕) 인사하고 버스는 출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2시간 정도 달렸다.
포루투칼은 113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배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었다고 가이드는 오늘의 수업을 시작했다.
1543년에 일본에 카톨릭을 전파했었고
이때 조총 만드는 기술과 카스테라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니
우리나라에 먼저 포루투칼의 문화가 상륙했더라면
임진왜란이란 화마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식민지의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익히 아는 뎀뿌라나 메리아스,
빵이란 말도 포루투칼 언어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박식한 루시가이드는 언변 좋은 솜씨로
우리에게 17세에 독일 유학을 시작으로
24년째 해외에 살게 되었노라고.
또, 스페인 남편을 만나 50:50으로 생활비 분담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기는 돈을 벌어야한다는 푸념도 늘어 놓았다.
그러면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해외여행 다니는
우리 엄마들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나!
우릴 몰라도 넘 몰랐지만 그냥 팔자 좋은 아줌마로 조용히 있기로 했다. 휴!
한참 지나다 유료 화장실에 명옥언니와 갔다.
1유로에 두명이라나~ 한명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로 쫓아 들어가서 변기를 싹싹 닦아 놓는다.
손 닦고 물 닦을 화장지까지 잘 준비해 놓았고.
강가로 걸어 내려가 보니테주강의 공주라 불렸던
1504년 건축되었다는 벨렘의 탑이 보여 앉아 폼 잡고 사진 한 장 누르고,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인 화려한 건물 제로니모스 수도원도 지나갔다.
이 수도원에서 제조법의 비법을 전수 받아 유명해졌다는
178년 전통 빵집에 들어가서
1/4조각을 먹느냐 1/2조각을 먹느냐 고민하다가
다행히 1개의 에그타르크를 맛볼 수 있었다.
난 5개도 혼자 다 먹을 수 있었는데…….아쉽다! 낄낄~
항해왕 엔리케 사후 500주년을 기념한 발견자의 기념비를 멀리 바라다보고
유럽의 최서단 땅 끝 마을 까보다로까로 1시간 정도 달려가
시원한 해안 절벽에 올라 새파란 대서양을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화장실이 없어 힘들었지만, 태산회답게 선인장 넘어 절벽쪽에 화장실을 개발했다나!)
점심은 바깔라우라는 소금에 절인 대구를
다시 물에 불려 요리한 것을 먹었다.
발사믹식초와 올리브오일 뿌려 야채 샐러드를 먹은 후
고소한 빵과 밥과 대구요리가 나오고, 다 먹고 나니 과일 칵테일을 후식으로 주었다.
이제 플라맹고의 본고장,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가 되었던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주도 세비야 로 5시간정도 이동이다.
긴 시간 이동하면서 포루투칼의 작업주 뽀로또와인과
캐나다의 아이스와인, 프랑스 보르도와인 이야기를 가이드는 해 주었다.
우린 스페인산 마르키스데리칼 2004를 사가기로 했었는데…….
우리가 아는 세비아를 가이드는 세비자라고 발음 하고
이것이 영어식으론 세빌리아라고 하면서
세비아에는 82개의 플라맹고 공연장이 있지만
가장 훌륭한 곳이고, 보고 나면 한명도 후회 안할 곳을 추천 해줘서
70유로 주고 들어갔다.
아주 넓은 무대에 엄청 많은 관중이 2층까지 들어왔다.
화려한 집시 의상에 춤과 노래, 작은 기타의 연주에 모두 열광했다.
여러 명의 남녀 무용수가 있었는데,
집시 특유의 표정과 한이 담긴 몸짓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긴 머리카락 흩날리던 남자 무용수 덕분에
운하는 가슴 두근거리며 몹시 맘에 들어했단다. ㅎㅎ
4성급호텔 EXE GRANDO로 돌아왔다.
트리플 방은 복층 구조였는데 2층에 침대 두 개, 아래층에 침대 한 개가 있었는데
아래층에 화장실이 없어 삐걱거리면서 계단을 올라 이층을 올라가야 하는 재밌는 방이었다.
명옥언니와 우리는 맥주 한 캔씩으로 오늘의 피로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명옥언니가 나가는 것도 모르고 먼저 잠들어 언니께 쬐송!)
4일차 8월7일(금)
오늘은 7시기상 8시 아침식사 9시 출발이다.
아침 식사 후 호텔에서 라떼커피 생각이 나서
커피머신에 WHITE COFFEE 글씨가 있는 쪽을 눌렀지만 맛은 영 아니었다.
그냥 따끈한 맛으로 빵과 함께 푸짐한 아침을 먹고
황금의 탑을 보았는데 이것은 과달키베르 강변에 서 있는 정12각형의 탑으로
세비야의 방어를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라나?
페드로 1세가 정열을 기울인 궁전이자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 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알카사르 궁전을 본 후,
수많은 분수와 벤치 등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여기서는 타일로 장식된 것이 스페인 각 도시 지명도 적혀 있었는데
이곳에서 파로라마식으로 사진도 찍고
넓은 광장 가운데서 단체 뛰어가면서 사진 놀이에 빠졌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며 콜럼버스의 묘가 있는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했다.
1세기에 걸쳐 지은 고딕 양식 세비야 대성당답게
그 규모가 엄청났다.
세비야 대성당의 규모는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어 유럽 3위의 규모를 자랑한단다.
이 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에스파냐 중세기 왕들의 유해와
콜럼버스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콜럼버스 묘를 받치고 있던 4명의 왕도 보고,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과 황금장식들.
또, 스탠그라스의 영롱한 빛과 오렌지 나무의 분수 정원이 화려했었고~
이슬람 사원엔 항상 물을 지나는 물길 장식들을 만들었었는데
정복한 지배자들의 구미에 맞게 물을 메우고
오렌지 나무로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었다.
세비아가 한눈에 보이는 34층의 히랄다 탑도
경사로 따라 열심히 올라 위에서 세비아의 구시가지도 살펴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으로 갔다.
중국식 음식점이었는데 여기는 우리가 22명의 작은 그룹이어서
철판볶음으로 주문했단다.
작은 그룹이 되어 버스에서도 의자 두개에 한명씩 앉을 수 있는
편리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래 30명 예약되어 있어서 큰 버스로 준비했었는데
8명이 여행취소를 하는 바람에 그대로 진행된다더니
좋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대학교수가족 3명. 살라라 교사팀 2명과
울산 젊은 교사 2명, 교사 아빠와 아들팀 2명.
중학교사 자매팀 2명과 우리 11명이 이번 여행팀이었다.
역시 모두 교사들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고기와 가지 피망 등 야채와
버섯과 해물을 접시에 담아 요리사에게 주면 열심히 볶아서 주었다.
구워지는 동안 다른 요리들을 먹었는데
볶은 국수와 야채 등 푸짐한 요리였다.
맥주를 곁들여 자알 먹고 2시간 넘게 걸리는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공존하는 그라나다로 향해 출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 6시 예약이어서
호텔에 가서 먼저 짐을 풀기로 했다.
짐을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며,
우산 챙겨 알함브라로 향했다.
말이 6시이지 이곳은 9시가 되어야 저녁 느낌이 난다.
6시엔 해가 중천에 더 있을 시각이지만
오늘은 이곳에 흐리고 이슬비가 내린다.
누가 여름 스페인이 덥기만 하다고 했을까?
가끔 시원한 바람도 불고
이젠 나는 스페인 여행은 낮이 긴 여름에 가라고 권하고 싶다.
7월은 덥다니 8월이 좋을 듯 하다.
스페인어로 석류라는 뜻의 그라나다는 800여년간 이슬람 지배에 있던 도시란다.
붉은 성이란 뜻의 알함브라 답게 땅도 건축물도 붉은 색이 많았다.
'천국의 정원' 이라는 뜻의 왕의 여름 별장인
헤네랄리페 정원을 거닐면서 여왕도 되어보고,
잘 관리 된 싸이프러스 나무사이에서 여러 포즈도 취하고~
알함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아랍 세계의 군사 기술이 결집된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알카사바 성채도 올라가 보고
르네상스식 건물의 중정과 박물관이 있는 까를로스 5세 궁전은
화려함의 극치를 엿볼 수 있었는데
요즘엔 이곳에서 음악제가 열리는데 예전에 투우장으로 활용도 했었다 했다.
외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아라야네스의 안뜰과
뜰 중앙의 분수를 12마리의 사자가 지탱하고 있는
사자의 뜰에서 사자는 입에서 물을 뿜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것이 물시계의 역할을 했었다고 했다.
자매의 방, 왕족 개인공간도 있었고 이사벨왕 집무실도 보았다.
이곳에서는 콜럼버스 알현한 곳이라 했었나?
자연 빛이 들어오게 하는 구멍이 뚫린 목욕탕도 있었는데
이런 모든 시설들에서 영감을 얻어
가장 위대한 건축물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이 생겼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고.
이 곳을 걸으면서는 계속 감미로운 기타반주의
알함브라의 추억 음악을 되새기면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하게 표현되었고
그라나다를 한눈으로 바라보는 구릉 위에 세워졌으며
13세기 전반, 그 이전부터 있던 성채를 확장하면서 착수하게 된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은
1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이 궁전은 에스파냐가 그리스도교도의 손으로 빼앗은 뒤에도
정중하게 보존되었고,
18세기 한때 황폐되기도 하였으나
19세기 이후에 복원하여 완전하게 보전되어
이슬람 생활문화의 매력을 오늘날까지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열심히 붉은 성에 매료된 후 호텔로 돌아와
복숭아와 사과를 통째로 푸짐히 준비한
BS CAPITULACIONES 호텔 저녁을 먹었다.
과일 실컷 먹어 기분 좋아하며
세비아서 쫓겨 난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의 동네,
석류의 뜻이라는 그라나다에서 오늘을 마무리 했다.
5일차 8월8일(토)
오늘은 그라나다에서 새로운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던 코르도바로 2시간 정도 달렸다.
코르도바는 물이 귀하고 건조한 곳이라고 했다.
철학과 신학이 유명한 코르도바 대학이 있는 곳이란다.
이곳으로 가는 동안 양 옆엔 사람 한명 구경할 수 없었고
끝이 없는 올리브 밭만 이어졌다.
가끔 흰 건물이 있었는데 이것도 농기구 창고로 쓰이는 건물이라고 했다.
11월쯤 되면 올리브 추수를 위해
동유럽이나 북 아프리카인들이 들어 온다나!
이곳도 농사 지을 젊은이들이 부족하긴 우리나라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꽃 코르도바는
711년 이슬람 세력이 점령하면서
5세기에 걸쳐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는데
코르도바는 유럽 속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불린다.
13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국토회복운동에 의해 대부분 사라졌지만,
한때 이곳에는 1000여 개의 이슬람 사원과
수많은 궁전들이 존재했었다.
우리가 간 이곳은 현재 구시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메스키타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란다.
메스키타 사원은 이슬람과 카톨릭이 과거에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던 곳!
흰색과 붉은 색의 아치형 벽이 잔뜩 있는 화려한 궁전이었다.
천장의 장식과 기하학적인 무늬도 인상 깊다.
메스키타는 이슬람교의 모스크였지만
카톨릭 시대엔 바실리카 성당이 되었단다.
원주의 숲이라는 850여개의 기둥,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하기 위한 방향을 잡아 주던 곳도 있었다.
바닥엔 무덤도 있고 금과 은빛 화려한 여러 가지 장식물들.
밖으로 나오면 역시 오렌지 나무 가득한 분수 정원이다.
정복자들의 손에 묻혀버렸지만
메스키타 속엔 다행히 이슬람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아찔한 절벽 위에 위치한 론다로 향했다.
2시간 가량 가서 점심을 먹고 론다의 누에보 다리로 갔다.
1700여년전에 만들었다는 누에보 다리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운치 있는 흰색 벽의 거리가 늘어선 구시가와
레스토랑과 상점 등이 즐비한 신시가로 나뉘는데
이곳 저곳 상점도 구경하고 다리를 위에서 올려다 보기위해서
우리들은 아래로 쭉 내려갔다.
꽤 먼 거리를 내려가다 보니 다리 아래로의 길도 보였지만
정해준 시간이 부족하여,
멀리 올려다 보이는 누에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바로 올라왔다.
우린 여기서 루시가이드가 이야기 했었던
론다의 하몽 이베리꼬를 찾아
하몽 중 제일 맛있다는 것을 살 수 있었다.
이 하몽 가게 주인은 출발 시간 늦어 동동 거리는
우리의 마음을 생각해 주지도 않고 이야기 할 것 다 하면서
아주 천천히 얇게 하몽을 져며 주어서 맘 졸이며 다른 팀 눈치보며 샀었다.
스페인 최고의 하몽을 100g에 10유로씩 2개 사고
빛을 담은 도시 하얀 마을 미하스로 1시간 30분 동안 또 달렸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회칠을 한 하얀 집들이 늘어선 미하스,
로마 시대부터 있어 온 오랜 역사의 도시 미하스.
하얀 집들이 이어지는 시가지는 '하얀 마을' 이라 불리우는 곳이란다.
화장실 옆 작은 공간엔 당나귀 동상이 있었는데
뜨거운 스페인 햇살에 달궈져 뜨거웠지만 올라가 포즈도 취해보고!
(진짜 당나귀는 너무 오줌 똥 냄새가 심해 타기 싫어요.ㅎㅎ)
광장 근처에 바위를 뚫고 지은 특이한 성당에서는
수호 성녀라는 긴 머리의 여성상이 모셔져 있고,
이곳의 전망대에서는 거리 모습과 아름답고 푸른 지중해를 마냥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작은 성당에 들어가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금빛 찬란한 장식도 보고
식당으로 이동하여 이른 저녁식사 간단히 한 후
말라가 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8시 10분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30분 이동 후
오래 아주 오래 오래 기다려 짐을 찾았다. 역시 공항도 우리나라가 좋아!
말라가 공항에는 핸섬한 마르코 기사 대신
눈빛은 선하고 나이 든 노총각 같아 보이는 꼴초 기사가 우릴 맞았다.
깔끔한 차를 타고 다니던 우리는
이 후질근한 기사님의 담배 냄새에 꼴초로 부르기로 했다.
우리가 론다서 맘 졸이며 산 이 하몽은
스페인 사람들이 평상시에 즐겨 먹어서
스페인 가정의 어린 아이들도 하몽을 혼자서 썰어 먹을 줄 안다고 하는데,
하몽은 돼지 뒷다리, 앞다리를 소금에 서너 달 절여서,
1년~3년 건조 시켜서 얇게 썰어 먹는 고기란다.
옛날 냉장고가 없던 시절 고기를 장기 보관하기 위해 생겨난 음식인데
스페인 사람들은 지금까지 즐겨 먹는다고 했다. 꽃보다 할배에서는
이서진이 메론에 곁들여 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뒷다리가 더 비싸다고 했나? 먹어보니 육포 맛이다.
요 하몽과 어울리는 포도주도 두병 사서
호텔 앞 문 닫은 바(술집) 노천 탁자에 자리를 펴고 한잔씩 하고.
쥐 나올 것 같은 방이라고 투덜대면서
CAMPANILE BARBERA DE VALLES 호텔에서의 첫 번째 날 잠자리에 들었다.
6일차 8월9일(일)
아침 식사 후 바르셀로나 근교의
아찔한 절벽의 도시 몬세라트로 1시간정도 달렸다
검은 마리아 상과 소년합창단(오후 1시에 들을 수 있는 천상의 목소리 합창)으로 유명한
몬세라트 수도원과 가우디가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기암절벽이 우릴 맞았다.
기이한 형태를 한 회백색 바위산이 서 있는데
이 산이 바로 '톱으로 자른 산' 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몬세라트란다.
가우디의 성가족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는
고도 1235m 의 이 산에는 11세기부터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세워져
성모 마리아 신앙의 성지로서 카탈루냐 사람들의 종교적 터전이 되어 왔단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건물은 19세기-20세기에 재건한 것이라는데
우린 이곳을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왕복 30유로다.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의 자유시간동안
인숙언니와 운하와 경희는 미사 참여를 위해 성당으로 들어가
수사님들의 가슴 울리는 찬송가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은혜 충만한 시간을 가졌었고,
다른 사람들은 몬세라트의 모든 곳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 감동을 한 아름 간직 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월출산과 무등산의 서석대가 생각났었고~
까딸로니아어를 따로 사용하는 바르셀로니아 지방은
독립을 위해 국기도 다른 것을 게양하고 언어도 따로 사용하고.
이곳에서 유학을 하려면 스페인어와 까딸로니아를 모두 해야 한단다.
특히 수도 마드리드와는 천적 같은 관계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남북 대치 문제 만큼이나 골치 아픈 일 일것이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축구 경기는
우리의 한일전 만큼이나 피 튀기는 혈전이 되는 모양이다.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로 1시간정도 이동하여
바르셀로나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홍합과 새우가 들어가고 쌀밥에 샤프란이란 노란 향료를 넣고 볶은 밥인데
이름은 빠에야였고 우리 입맛에 맞아 맛있게 먹었다.
해변을 걷고 싶은 욕심에 얼른 먹고 일어나서 바닷가로 향했다.
해안에 반라의 많은 사람들이 우릴 반겼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아님 한 눈은 감고, 바닷가의 선남선녀들을 감상하다가
우리도 신발을 벗고 고운 모래사장에서 나 잡아 봐라도 하고
눈부신 지중해에 몸을 맡겼다.
눈부신 스페인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바닷물이 어울려 마냥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다음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인 가우디의 걸작 성가족 성당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만난 로컬 가이드 문 여사님.
아는 내용을 듣는 학생들 생각 안하고 너무 열심히 설명해주던 그 모습 속에서
나를 반성하게도 하고~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직접 설계하고
건축 감독을 맡았으며 1882년 공사를 시작해
1926년 죽을 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하였었고.
예수 탄생과 수난, 영광등을 주제로 총 12개의 탑이 세워지는데
이중 탄생부분의 4개의 탑과 지하 예배당만
공사 시작 100년만인 1982년 완공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은 계속 공사 중에 있어서 대형 클레인이 매달려 있었다.
각각의 옥수수처럼 생긴 탑은 12명의 사도를 상징하며
가우디 건축의 백미로 꼽힌단다.
세 파트 중 가우디가 지은 탄생부분 외에 수난부분과 영광의 부분은
수피라치라는 건축가가 지금 짓고 있다는데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안으로 들어가 스테인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의 색깔이
이렇게 아름답고 황홀할 수도 있는지
모두들을 환상의 세상으로 이끄는 묘한 분위기였다.
각각의 방향과 시간에 따라 다른 느낌의 색으로 표현되는데
우리가 갔던 오후에는 서쪽 부분의 노란색과 주황색과 연두색이 섞여
환상의 빛으로 강하게 내려 비추어지고 있었다.
웅장한 기둥과 천장의 숲을 이루는 기하학적인 무늬들,
화려한 조각들과 장식품들은 이 공간이
신을 위한 공간이라고 느껴졌다. 탄성! 탄성!
우리 모두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던 벽에 써 있던 글씨!
세계 여러나라의 문자들 속에 빛나던 한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이 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덕에
위대한 이 성당에 우리나라의 글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했던 가우디의 여생이 오롯이 담긴,
아니 혼이 담긴 세계적인 작품임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가우디가 세상을 떠나던 날까지
이 성당 건축을 위한 작업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데
그 행색이 너무 초라하여 아무도 몰라 봐
행려환자 취급으로 치료와 장례가 늦어졌다니
그 또한 애절한 마음이 들었다.
성당 안에는 숲으로 사람을 끌어 들이는 느낌이 들었고
웅장한 형형색색의 자연광들은
사람들을 한없이 작게 만들고 경애감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성가족 성당을 떠나 가우디의 박물관이 있는 구엘 공원으로 향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보았던 곳에서 어김없이 사진도 누르고
도마뱀 분수와 파도 형상의 산책길,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장식이 있는 기다란 의자에도 몸 편히 앉아보고,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 모양을 본떠 지어진 집과 건물과
공원 전체의 건축 작품은 자연 모두를 친환경적으로 지어낸 걸작이었다.
구엘 공원에서 나와서 지중해 바다를 주제로 한 가우디 건물 까사바트요도 지나고
파도치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까사밀라도 차창 밖으로 보면서
가우디의 독특한 천재성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건축 세계를 구현하여
지금 사는 모든 건축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가우디,
그는 자연을 무척 사랑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분이었다. 감동! 또, 감동!
1888년 박람회 기념으로 세웠다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기념하는 콜럼버스의 탑도 보고
바르셀로나의 번화가 람브라스 거리로 나섰다.
작은 소품들과 재미있는 물건 판매상들이 많았는데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복잡한 람브라스 거리에선 쇼핑 한번 못하고
여자 셋이 있는 형상 아래서 내려오는 물만 마시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백교장님의 경호만 있었어도 갈 수 있었을텐데…….
백교장님은 눈빛 이상한 소매치기 의심자를
여러 명 보았다지요? 대단한 능력이십니다.
명옥 언니 배낭 손댄 여자도 있었구요~ 역시 스페인은 소매치기를 조심해야함을 느끼게 했다.
문 여사님의 도움 받아 우리가 고대했던 고딕지구 탐방을 했다.
건물 모두에서 중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건물 아래에는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도 볼 수 있어
도시 곳곳이 다 박물관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곳, 보물덩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오랜만에 한식이다.
가야금이란 식당인데 닭볶음과 얼큰한 김치찌게로
개운한 저녁을 마치고 50유로 야간투어 시작~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마라톤 선수 황영조의 영광이 살아있는 몬주익 언덕으로 갔다.
바르셀로나 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독일 학생들이 단체로 와 있어 좀 소란스러웠지만
황영조의 동상 앞에서 자랑스럽게 사진도 찍고
외국인들이 황영조 발도장에 자기 발을 대 보는 것을 보고
우리도 신 벗어 발을 대 보고 황영조의 발 크기는 250mm임을 확인하기도 했지요!
바르셀로나 광장 앞 분수에서는 분수 쇼가 열렸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다 모인 것처럼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분수 쇼려니 생각하고 갔었는데
크게 3단으로 되어있어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 될 정도로 규모가 정말 대단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분수쇼도 감상하고,
호텔로 귀가했다.
CAMPANILE BARBERA DE VALLES 호텔에서의 두 번째 날
오늘은 몬세라트의 장엄함과 천재건축가 가우디 속에 퐁당 퐁당 빠졌던 날이었다.
7일차 8월10일(월)
아침식사 후 우리를 기다리는 차로 가서 짐을 싣다가
기사의 머리가 차 트렁크 문 열어놓은 곳에 부딪쳐 피가 났다.
운하의 비상약품 속에서 연고와 메디폼으로 머리카락 없는 머리에 붙여주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엄청 고마워 할 일이지만
이곳은 다른 사람들이 신경 써 주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씁쓸한 이야기도 듣고~ 정없는 개인주의 나라다~
바르셀로나에서 옛 아라곤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던
사라고사로 4시간 정도 달려 고야의 작품이 전시된 필라르 성모 대성당으로 향했다.
박식한 루시 가이드는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이사벨 여왕과 그의 어머니 가족 이야기,
그의 자식들 이야기와 이사벨 여왕이 아버지로 모셨던
똘래도 대성당의 맨도사 추기경과의 관계,
맨도사 추기경의 많은 도움도 받고
1478년 카스타 왕국의 이사벨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와 결혼으로
스페인의 통일을 이루게 한 대단한 여왕,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콜럼버스를 지원함으로서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있게 한 기틀을 만든 대단한 인물 이야기를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도로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엄청 길이 밀렸다.
옆으로 빠질 곳이 없어 그대로 갇혀 있길 한참 후
차가 움직이는데 유리창이 박살나고 잔뜩 찌그러진 차가
도로 중간에 있었다.
교통 정체로 지루하게 차가 움직이길 기다리는 동안
가이드는 고야에 대한 작품 설명과 고야의 사랑이야기,
궁중화가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정이 없는 이동이 대부분 이였던 날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야의 유령과 피카소에 관한 영상도 보면서
밀리는 길의 지루함을 달랬다.
배고픔과 화장실을 참은지 오랜만에 휴게소에 들러 망고주스 1/2씩과
스페인 꼬깔콘과 감자스넥을 사서 시장끼를 달래고~
비슷한 바깥 풍경, 삭막한 들판과 올리브나무 옥수수밭 등을 끝없이 지나
사라고사 도착하여,
게살스프와 등갈비찜 쇠고기볶음과 밥을 고추장 묻혀 비벼 먹고
수박 한 조각으로 입가심하고 음식점 옆의 옷가게로 갔다.
이번 여행에 쇼핑을 전혀 안해서 가게만 있으면,
아니 시간만 나면 가게를 기웃거렸다.
옷가게에 세일 표시를 보고 스카프 고르기 삼매경에 빠지기도~
메이드 인 이태리 스카프도 고르고, 점버와 블라우스도 고르고 다시 이동,
고야의 천장화가 있던 필라르 대성당으로 갔다.
동전 넣고 입 맞추던 곳이 있었고 매우 장엄하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사라고사 역사지구의 중심인 필라르 광장에 위치한 필라르 대성당은
사라고사의 랜드 마크이며 옆으로는 '에브로 강'이 흐른단다.
더불어 최초의 성모마리아 발현지에 세워진 성당이라 더욱 유명하다.
신앙 전파를 위해 온 야곱에게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나무로 된 성모상과 옥기둥을 전했고
그 기둥을 이용해 이 성당을 지었다고 해서
열심히 그 기둥을 찾아 보았는데 결국 어려워 못 찾았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향하여 3시간 30분 또 달렸다.
오늘은 하루 종일 달렸다. 지루하던 차에 영화 카르멘을 상영!
영화를 보여 달랬더니 너무 야한 것 밖에 없다고 하던 그것이다.
그나마 한국어 판은 가위질 많이 해서 이 정도 라니
스페인 것 원본은 어떨까?
카르멘과 돈 호세 기병대 상병과 에스카미오의 사랑이야기,
카르멘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알았다.
저녁으로 한식당에서 제육볶음과 된장국을 먹고
지금까지 잤던 호텔과는 급이 다른 EXE GETAFE 호텔로 들어왔다.
숙희씨 남편이 산 두병의 와인과 치즈로
호텔 로비에서 조용조용 이야기 하며 오늘을 정답게 마무리했다.
왜냐하면 늦은 시각에 다른 여행객에게 혼날까봐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8일차 8월11일(화)
EXE GETAFE 력셔리 호텔에서 맛난 아침을 먹고 풍채 좋은 세 번째 기사를 만났는데,
약속 시간보다 20분쯤 늦게 나타나 우리의 루시가이드를 당황 시켰었다.
벌칙으로 점심 식사 때 커피를 쏜다나!
예의는 바른데 무거운 짐 가방을 실어주지 않는 괘씸함이 있었지!
스페인의 고도 똘레도로 1시간 달렸다.
엘 그레코가 말년을 보낸 멋진 도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되었다더니!
톨레도는 스페인의 수도였지만 협소해서 1591년에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겼단다.
톨레도는 1200년 전부터 칼이 유명한데
그 비법 중 한 가지가 물 섞인 올리브유에
하루 담가 놓아 칼을 잘 들게 하는 거라나!
집에서도 해 보라고 루시가이드는 말했었다.
오던 길에 상점에도 들렀다.
신민경 교장님은 올리브 오일을 사서 나누어 주셨고(황송하여라)
난 올리브 짱아치와 올리브 핸드크림과
모로코산 아르간 오일(39*3=110유로다)이란 것을 선경의 추천으로 사 보았다.
엘 그레코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산토토메 교회를 잠깐 들른 후
똘레도 대성당에서는 미소가 아름답게 웃는 마리아상 앞에서 사진도 찍어보고...
스페인 카톨릭의 총 본산답게 똘레도 대성당은 역시 웅장하고 경건해 보였었다.
돈키호테와 산쵸의 동상이 있는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과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있는 마요르 광장에서
사진도 열심히 찍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계란과 뻣뻣한 쇠고기와 감자 튀김과 와인이 나왔다.
이것을 먹고 나서 운전기사의 벌칙 커피 한잔도 했다.
물론 나는 카페라떼를 주문했는데 온 것은 진한 에스프레소였지만!
이 근처에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쎄무 가죽 예쁜 수제 가방 가게가 있어
직접 만들어 파는 장인에게 가방도 열심히 사고~
스페인 회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프라도 미술관로 향했다.
8000점 이상의 작품 중 1000점 정도 전시된다는 방대한 작품 앞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 주어져 아쉬웠지만
옷 입은 마야와 옷 벗은 마야, 그리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보스의 쾌락의 정원,
그리고 고야의 작품이 청력을 잃고 다친 후 악마적 화풍으로 변했다는 사실과
엘 그레또의 인물 표현이 길쭉길쭉 하다는 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 프라도 미술관은 당초 자연사 박물관을 목적으로 건축되었으나,
중간에 스페인 왕가의 미술품을 소장하는 왕실전용 화랑으로 변경되었으며,
나중에 국립 프라도 미술관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파리 루브르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쥐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하고.
오늘 여행 마지막날이어서 상점 한군데 더 들러 고급스런 가죽 옷 구경을 했는데
여기서 남편들 벨트도 열심히 사서 챙기고
시장으로 가서 각자 가지고 있던 마지막 남은 동전을 모두 모아 체리를 샀다.
이것을 식당으로 가져가니 한국 주인 아줌마께서 깨끗이 씻어
접시에 담아주시기까지 했다.
얼큰한 오징어볶음으로 밥을 먹고 체리로 입가심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KE914편 20:50 마드리드 출발 시각에 맞춰 짐 부친 후 공항 면세점을 돌았다.
유명하다는 스페인 와인도 사고 초콜릿도 사고.
다시 대한 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 중 언니들이 물 사주셔셔 잘 먹었구요.
또, 대야 농장서 무공해로 열심히 키운 고추를
반찬으로 디져트로 술안주로 버스 안 간식으로의
다양한 활용법을 알려준 경복씨!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풋고추 맛 보여줘 고마웠답니다.
우리 태산회의 특별회원 예쁜 선경씨덕에 태산회의
발자국이 더 진해질겁니다.
사진 찍는 모습은 더 아름다웠어요. 정말 고마워요.
또, 또,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을 임시 총무 운하는
회비 열심히 관리하고, 마지막 남은 동전에 자기 돈 20유로 더하여
음료수를 사서 돌리다니 우리 모두를 참 염치없게 만들었네요.
귀여운 거인 운하에게 우리 모두들은 너무 감사했고 고마웠고 수고했어요 란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인천 공항에---아주 오랫만에---
2015년 8월 12일(수), 16:05 우리나라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끝났구요. 그리고 앞으로 또, 시작될 겁니다^^
우리 태산회원들과 깍둑님들도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많이많이 즐거웠습니다.
또, 한자락의 추억을 쌓았지요? 우리는 태산회는 영원할 겁니다. 충성!
첫댓글 8박9일간 룸메이트 하면서 어리버리 총무 돈계산도 도와주고 여러모로 고마웠어요. 날짜별로 정리해줘서 다시한번 여행일정을 추억할 수있을것 같아요.
여행 내내 한 방을 쓰면서 정리하는 것도 못 봤는데 돋보기로 들여다 보듯 이렇게 자세히 글로 옮겨 놓았을까요? 존경하는 태산회 여행 후기 작가 안명숙님!
덕분에 복습하고 누군가에게 스페인 여행일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줘야겠어요.
벌써 멋진 글이 나왔네요.역시 훌륭한 작가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명숙언니! 선경이가 찍은 사진은용량이 커서 메일로 날짜별로보내드렸습니다. 확인하셔서 본인들 것 다운 받으시고 멋진 추억 남기세요~
어쩜~ 듣고 기억못하거나 깜박 조는 바람에 놓쳐버린 소소한 내용들까지 이렇게 다 기록으로 나올 수 있는지요. 역시 안명숙샘 그대는 천재^^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다시 되감기 하는 둣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 회원님들과 함께해주신 깍두기, 특히 이쁜 선경이 덕분에 추억을 건져올릴 수 있게 된것은 우리모두에게 큰 축복! 감사하고 총무역으로 고생하신 운하샘 덕분에 더 즐건 여행이 되었음을 인정합니다.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우리 민경씨도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단 말씀 꼭 전해달래요^~^
우아~~매번 느끼지만 똑같이 여행 했는데 명숙씨는 정말 대단해요.^^
메모를 한것 같지도 않았던것 같던데~~정말 놀랍군요. 생생한 현장을 다시 보는것 같아 감회가 새롭네요.
울 남편도 태산회 여러분 덕분에 좋은 추억과 아름다운 스페인을 경험 할 수 있어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행복해 하고 있답니다.
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자랑스런 태산회원님들 덕분에 엔돌핀 무한정 나와 10년은 젊어지는 느낌이예요. 임시총무 하시느라 너무 수고많은 운하씨 복많이 받으실거예요
그리고 이쁜딸 선경이가 있어서 더욱 행복하게 해주었네요. 어쩜 그렇게 사진을 멋지게 찍어 주었는지 감동이예요. 선경아 고마워! 정말 훌륭한 신랑감 만나도록 기도 열심히 할게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명숙씨의 맛있는 후기 정말 다시한번 기억을 새롭게 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