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이렇게 겹쳤더라면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 연휴가 시작된 가운데 10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의 추석 연휴는 토요일, 주일과 연결되어 닷새가 되어, 다른 해보다 깁니다.
중국의 올해 추석 연휴는 10월 1일부터 8일까지로, 우리나라보다 더 깁니다.
중국에서는 추석을 ‘종치우지에(仲秋節)’라고 하는데, 올해의 종치우지에는 ‘청궈칭지에(國慶節)’와 겹쳤기 때문입니다.
국경절은 잘 아시는 대로 중국 건국기념일인 10월 1일을 부르는 이름인데, 다른 해에도 이 때가 되면 며칠씩 휴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추석과 겹쳤기 때문에 다른 해보다 더 많이 쉬는 것이지요.
중국 국무원은 이미 작년 11월에 2020년은 10월의 첫 8일간을 공휴일로 한다고 공표했습니다.
21세기에 이렇게 중국의 국경절과 중추절이 겹치는 것은 네 번이라고 합니다. 2001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이고, 다음은 2031년이며, 마지막은 2077년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이 때 서울의 명동을 비롯해서 국내 여러 곳, 특히 중국어문선교회가 있는 제주도는 유커(遊客)들의 물결이 넘쳤을 것입니다.
중국은 최근에는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서 청궈칭지에와 종치우지에 국내 여행은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해외여행은 규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설이나 추석을 맞이할 때마다 제가 북방선교 방송기관에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 하나 생각납니다.
1970년대 말에 중국이 개방정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중국의 성도들로부터 성경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내면 대부분, '반송'이라는 도장이 찍혀서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우편법에 마약, 무기, 음란서적, 종교서적은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설명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춘절이나 중추절 무렵에 성경을 보내면 잘 받았다는 답장이 여러 통 오곤 했습니다.
그 때는 해외에서 우편으로 들어오는 선물들이 많고, 분위기도 들뜨기도 해서 검열이 좀 느슨해지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분석되었는데, 매번 그런 것을 보니까 그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과 추석은 그런 일의 ‘대목’이었습니다. 때로는 중국(당시는 ‘중공’)에 우편물 보내기가 여러모로 용이한 홍콩에 가서 발송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종치우지에와 청궈칭지에가 겹치는 때가 있었다면 그야말로 ‘큰 대목’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게 하는 이야기인데요, 그 때 그렇게 한 권의 성경이라도 더 들여보내기 위해 애쓰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 중국교회나 중국사역의 환경이 많이 개선된 것은 틀림이 없는 일입니다.
경교비의 추억
1960년대, 신학생 시절의 한국교회사 시간에 교수가 “우리나라 기독교의 기원을 신라시대로 잡아야 할지도 모릅니다.”하면서 경교가 신라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경교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중국에 경교가 중국에 전래된 내력을 새긴 비석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아니, 중국은 공맹(孔孟)의 나라인데, 그렇게 일찍?’ 하면서 말입니다.
그 뒤 중국사역의 한 모퉁이를 담당하게 되면서 경교와 경교비에 대해 더 많이 듣게 되었고, 경교비의 탁본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에 갔더니 선교관 1층 로비에 경교비 탁본이 걸려 있었는데 반쯤이 캐비닛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선교담당 목사님께 “아니 저게 얼마나 귀한 것인데 저렇게 푸대접을 해요?”, 조금 흥분된 어조로 항의를 했습니다.
<중국을 주께로>에 올해 1월 호부터 “경교비 해설”이 연재되고 있는데, 그것을 읽을 때마다 그때의 일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경교비는 바티칸 교황청 박물관을 비롯해서 세계 여러 곳에 복제품이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국내에도 경기도 안성에 복제비가 서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중국을 주께로>를 통해 알게 되었고, 화성시에도 하나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17년에 고든(E. A. Gordon)이라는 서양인에 의해 금강산의 장안사에도 경교비의 복제품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금강산의 사찰들은 6·25 전쟁 때 파괴되었는데, 한국 불교계는 여러 해 전에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했고, 지금은 장안사와 유점사를 복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장안사를 복원한다면 경교비 복제품도 함께 복원하면 좋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장안사(長安寺)라는 이름의 유래나 뜻은 잘 모르겠지만, 경교비가 세워지고, 지금 보존되어 있는 시안(西安)의 당나라 시절 이름이 장안(長安)이었으니 재미있는 일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고든은 그래서 다른 곳이 아니고 장안사에 복제비를 세운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경교비가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경교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경교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경교비는 연구가 아주 많이 행해지고 있는 비석으로 유명합니다.
조사를 해 보니까 우리나라에도 지금 <중국을 주께로> 연재되고 있는 것을 포함해서 아홉 편의 경교비 번역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혹 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경교비는 781년에 건립되었는데 당나라 무종이 종교를 박해할 때인 845경에 파괴를 피하기 위해 땅에 묻혔고, 800년 가까이 땅 속에서 잠을 자다가 1623년에 주택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경교비가 이렇게 발견된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지금 경교비는 중국의 귀중한 비석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비림(碑林) 박물관 제2전시실에 서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경교비를 아주 귀중하게 여겨서 관람과 탁본을 뜨는 일을 규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교비는 런던 대영박물관의 로제타 비석(Rosetta Stone),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메사 비석(Mesha Stone), 멕시코 박물관의 태양석(Piedra del Sol)과 함께 세계 4대 비석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경교비의 비문은 경교의 총주교(Metropolitan)인 경정(景淨, Adam)이 지었습니다. 경정은 유(儒)·불(佛)·도(道) 세 종교와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은 학승(學僧)이었다고 합니다.
경정은 한 글자, 한 문장 정성을 다하며 기독교 신앙의 대의(大義)를 적고, 경교가 당나라에 전래되어 환대를 받은 내력을 적고, 송사(頌詞)를 적고, 선교사들의 명단을 적었을 것입니다.
그의 노력에 의해 우리는 경교의 존재와 이모저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교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중국을 주께로>를 편집하고 발행하는 일도 경교비문을 쓰는 심정으로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후대에 중국사역의 충실한 증언이 되도록 말입니다.
지난 9월호 “발행인 통신”에서 저는 올해 원저우(溫州)를 가려고 했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까 경교비가 보존되어 있는 시안(西安)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네요.
시안을 소개하는 글에, ‘동양문화의 발상지’ ‘로마, 카이로, 아테네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의 하나’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을 보니까 그런 마음이 더 커집니다.
원저우도 방문하고, 시안도 찾아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코로나 사태가 빨리 끝나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9월은 장로교 총회의 달입니다.
그런데 지난 9월에 열렸던 장로교회 각 교단의 총회에서는 현안문제 처리에 급했지, 선교와 관련된 논의나 결의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코로나 사태 가운데 있다고는 하지만 좀 답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1912년 총회에서 중국선교를 결의하고, 이 결의에 따라 산둥(山東)으로 향한 세 선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기획 글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11월호에는 ‘온택트 중보기도로 중국선교의 벽을 함께 넘자’라는 특집을 마련하고, 12월호에는 ‘웹진<중주> 편집자문들이 들려주는 2021년 중국선교’라는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좋은 의견을 많이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