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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촬감은 현재 파업중!
김영철 촬영감독
2001.09.24 / 오동진, 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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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 스탭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김영철 촬영감독은 언제부턴가 조직운동과 투쟁의 논객이 돼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그의 증언을 통해 국내의 영화제작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확인하는 건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김감독은 그 일이, 후대를 위해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그 짐을 지겠다고 말했다. 두 시간 반
동안 그와 함께 나눈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노동운동사. 영화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오동진 기자(이하 오) 준비중인 작품은 뭔가?
김영철 촬영감독(이하 김) 강제규필름의 차기작 <오버 더 레인보우>다.
이지훈 기자(이하 이) 강제규필름과는 인연이 깊은 것 같다.
김 <단적비연수> 한 게 인연이 됐다. 사실 악연인데.... (웃음)
이 <단적비연수> 촬영과정에서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
김 사실 스탭들 근로조건 개선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가 <단적비연수>였다. 처음 계약할 당시 강제규필름측에선 2월에서부터
4월 말까지 40회 정도 촬영하고 여름방학 때 개봉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계약을 한 바로 다음주에 말을 바꿔 촬영 횟수가 60회 예정이라고 하더라. 그래도 그땐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막상 촬영 종료
시점으로 예정돼 있던 4월 말이 돼도 촬영 분량의 40퍼센트밖에 진행이 안 됐고 6월 말에는 겨우 50퍼센트밖에 진행이 안 됐다. 결과적으로는 만 9개월 동안 105회 촬영을 하게 됐다. 여러 가지 조건과 제작
진행상의 문제 때문에 촬영 기간, 제작비는 늘어나는데 스탭들의 인건비만 그대로란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계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산술적으로 따지자면 두 배 반을 더 요구해야
했지만 그냥 처음 계약했던 인건비 6천만 원의 50퍼센트인 3천만 원만 더 요구했다. 그런데 프로듀서는 촬영부 단일 파트만 인건비를 3천만 원이나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강제규 감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쉬리> 해외 배급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더라. 재계약 안 해준다고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고 해서 일단은 무조건 진행하기로 했다. 다른 파트에선 우리 촬영부 하는 것 보고 결과에 따라 입장을 정하겠다고 했다. 결국 강제규 감독 만나기까지 두 달 반이 걸렸다.
만나기 전에 A4 용지 두 장 분량으로 왜 재계약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정리했다. 강제규필름이 단일 제작사로는 돈이 가장 많은 곳이니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다. 나도 경력이 15년인데
옛날에 제작사가 자기 돈으로 영화 찍던 시절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안서에 핵심적인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그때의 문안이 지금 비둘기둥지에서 만들고 있는 제안서의 초안이 된 셈이다.
오 결국 강제규 감독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다.
김 그랬을 거다. 합의하자는 게 아니라 재계약할 건지 말 건지만 결정해달라고 했다. 아마 중간에서 프로듀서가 많이 곤욕을 치렀을 거다.
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규필름에서 새 작품을 하게 된 걸 보면 그때의 협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김 그렇다. 나는 지금도 그게 무리한 요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스탭들 정말 순박하다. 밥만 제때 주면 군소리 안 한다. 임금이 적은 것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하지만 나는 촬영부 막내들이
적어도 작업에 들어가 있는 기간만큼은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선 현장 막내 스탭들은 일이 있는 기간에도 생계 해결이 안 된다. 한 달이면 받은 돈 다 떨어진다. 촬영 없는 날은 굶기도 하고, 잔금 받아도 빚 갚아야 하고, 다음 작품 들어갈 때까진 아무 보장이 없다. 10년 넘는 퍼스트도 15일짜리, 30일짜리 공사판에
다녀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오 김감독도 그렇게 살아왔나?
김 그나마 나는 부모님을 잘 만나서 고생을 덜한 편이다. 그래도 세컨드 때부턴 부업했다. 충무로 개런티로는 카메라 필터 사고, 필요한 책
사면 끝난다. 저축이나 생활비 개념은 거의 없다. 부업으로 웨딩 비디오 찍고 앨범 찍고 그랬다. 그걸로 생계유지했다. 올해로 영화판 생활
16년째인데 영화에서 번 돈으로 제대로 세금 내기 시작한 게 불과 3년 전 <단적비연수> 때부터다. <강원도의 힘>으로 받은 돈이 1천3백,
<정사>가 1천6백, <질주>가 1천5백이다. 서른 넘어서도 연봉이 1천5백만 원이었다는 얘기다.
이 촬영부 막내가 한 작품에서 얼마 정도를 받나?
김 <오버 더 레인보우>로 우리 팀이 받는 돈이 6천만 원이다. 이중에서 촬영부와 조명부 막내는 견습이라는 이름으로 2백, 서드는 3백이다. 촬영 쪽 인건비가 2천7백, 조명 쪽 인건비가 3천3백이다.
이 원래 조명이 더 많이 받나?
김 인원이 많으니까. 이번 영화는 DP 시스템(Director of
Photography: 촬영감독이 촬영부와 조명부를 모두 총괄하는 시스템.
그동안의 한국영화는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이 따로 있었다)으로 가니까 조명 쪽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
이 김감독이 <파이란>때 DP 시스템을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 국내에서 찍은 영화로는 크리스토퍼 도일이 <모텔선인장> 찍으면서 처음 도입했다. <아나키스트>도 상해 스튜디오에서 DP시스템으로
간 걸로 알고 있다. 거긴 워낙 스튜디오 자체가 그런 시스템으로 돼 있으니까. 일본도 그렇고 미국의 메이저도 다 그렇다. 하지만 <파이란>
때나 <오버 더 레인보우>의 DP 시스템이 미국이나 유럽의 DP 시스템과 같은 형태라는 건 아니다. 그냥 처음 도입했다 뿐이지 실질적으로
임금이 보장된다거나 촬영감독이 창조적으로 조명 디자인만 하면 기술적으로 맞춰주는 전문요원들이 있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다.
오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명필름, 강제규 필름, 싸이더스 등 메이저 제작사에서 의식 있는 프로듀서들이 많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로 조건 부분에선 변한 게 없다는 건가?
김 현재까진 없다.그러나 앞으로 서서히 변할 거라 본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엔 메이저도 블록버스터도 없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메이저에서 만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스탭 임금이 더 열악하다. 제작비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인건비는 줄어들거나 똑같다. 일반적인 멜로물에 비해 블록버스터는 촬영회수도 길어지고 난이도도 커짐에도
불구하고 인건비가 같다는 건 결과적으로는 더 열악하다는 거다. 미국은 메이저 영화의 경우 노조에 가입된 스탭을 쓰고 주말에 촬영할
때는 수당을 지급하고 8시간 촬영을 준수하는 등 모든 조건을 맞춰 준다. 그런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 비노조 스탭을 쓰는 게 바로 인디펜던트 영화다. 우리나라는 노조도 없고 그런 여건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도 블록버스터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명필름이건 강제규 필름이건 튜브 엔터테인먼트건 찍는 조건은 <노랑머리2>와 다를 게 없다.
오 요즘 제작자들 만나면 대부분 스탭들 근로조건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럼 다들 딴소리를 하고 있었단 건가?
김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주유소 습격사건>했던 최정우 촬영감독이 싸이더스에서 제작하는 한일합작 35억 짜리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다. 그래서 촬영파트 인건비로 7천만 원을 요구했는데 싸이더스 차승재 부사장은 3천만 원에 하자고 했다더라. 최감독이 나한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전화를 했길래 러닝 개런티를 요구해 보라고 했다.
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스탭들이 러닝 개런티로 계약한 적이 있었나?
김 거의 없었다. 김성복 촬영 감독하고 박희준 촬영 감독이 러닝 개런티를 받은 적이 있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그래서 최정우 감독이 러닝 개런티를 요구하니까 싸이더스에서
처음엔 거절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촬영감독 2천만 원,
조수 3천만 원에 서울 관객 30만이 넘으면 관객 한명당 100원씩 받기로 합의가 됐다. 계약할 때도 차승재 부사장이 직접 했다고 들었다. 또
비둘기 둥지 출신이자 촬영조수협의회 멤버인 친구가 차 부사장에게
촬영부 퍼스트부터 막내까지 받게 되는 돈을 다 밝혀주면서 생계 보장이 안 된다고 했더니 차 부사장이 5백만원을 더 올려줬다고 했다.
제작사나 투자사나 스탭 중 막내가 얼마 받는지는 관심도 없고 얘기하려 들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고 본다.
이 그 동안 그만큼 제작자들이 스탭들의 근로조건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인가?
김 제작자들은 그저 관례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지 그걸 가지고 골똘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주연배우들 개런티엔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면서 스탭들 몇 명이 얼마를 나눠갖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그 돈으론 생활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 말이다. 차승재 부사장을 만나서 얘기하려고 해도 사무실에서 번호표 받고 세 시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게 현실이다.(웃음) 명필름이 최근 CJ 엔터테인먼트하고 투자·배급 조인 하면서 전체 수익의
10-20%는 스탭 몫으로 빼겠다고 했다더라. 명필름이 <접속>이나 <공동경비구역 JSA> 수익 분배하는 과정에서, 자기들 입장에선 스탭들에게 많이 줬다고 생각하는데 받는 사람 입장에선 불만스러웠다. 원칙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다. 그래서 흥행 수익을 지분대로 나누겠다는 발상이 나온 것이다. 명필름 이은 씨는 작품에 따라 촬영감독, 음악감독, 조명감독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그 스탭에게 러닝 개런티를 줄 생각도 있다고 했다.
오 명필름이 그나마 선진적이라는 얘긴가.
김 다들 고민은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발표를 안 하는 거다. 차승재
부사장은 프로듀서나 감독들에겐 거의 러닝 개런티를 주는 걸로 알고
있다. 강제규 필름은 지금 스탭별 개별 계약을 회사 방침으로 하고 있다. 스탭이 50명이면 계약서를 50장 쓰는 거다. 촬영부는 한꺼번에 한
장 쓰고 이러는 게 아니라.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딜레마가 있다. 스탭들은 모두 피해자들이지만 그 안에서도 기득권 층이 있다는 거다.
스탭들을 거느리고 있는 촬영 감독등 헤드 스탭들은 제작사측으로부터는 피해자인 동시에 밑의 스탭들에 대해선 고용주가 된다. 따라서
일부 촬영 감독들은 여전히 일괄계약을 주장하고 있다.
오 일종의 노-노갈등이겠다. 그런 문제가 표면화되고 노골화된 경우는 없나?
김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비둘기 둥지가 모체가 돼스탭 분과별 모임을 만드는데 조명만 분과만 없다. 기존의 조명 기사들이 조명 스탭들한테 조명부 모임에 따로 참여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더라. 거기 가입하면 쫓아내겠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직접 만나보면 깨어있는 친구들이 많다. 직능별 단체 조직이 맞긴 맞지만 현실성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서 휩쓸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
오 개별계약과 팀 별 일괄 계약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보는가?
김 당연히 계별계약을 해야 한다. 개별계약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도제시스템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다. 도제시스템에선 팀
안에서 알아서 인건비를 지불하기 때문에 위계 질서도 확실하고 촬영
감독이 인사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니 촬영 감독 입장에서 볼 때 개별 계약을 하면 자기 말 안 듣고 회사 말 듣는 사람이 생길 거고, 촬영팀을 고정적으로 고용하고 촬영 감독만 수시로 바꾸는 제작사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개별 계약이 필요하다. 기존엔 팀으로 묶여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생겨도 책임을 물을 곳이 정확하지 않았고 정으로 덮어두고 넘어가는 적이 있었지만 개별계약을 하게 되면 포지션이
명확해지고 자기 일에 책임을 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도제 시스템의
폐단을 없앨 수 있다. 우리나라 도제 시스템은 일제 식민지 시절에 도입됐다. 즉 일본인이 식민지 한국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도제 시스템이 자리잡은 거다. 그러니 기술 가르쳐주는데 돈을 왜 주냐는 식이었다. 그게 지금까지 반복돼 온 거다. 그러나 산업적으로 봤을 때 스탭은 영화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노동자다. 노동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노동과 상품판매의 이익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한다.
이 상품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한 수익에 대한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인가?
김 그렇다. 영화라는 상품은 개봉 이후에도 끊임없이 부가판권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당연히 그 작품의 생산에 기여한
스탭들도 같은 비율로 이익을 봐야 한다. 그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지금 상태에선 전혀 보장이 안 된다. 이런 식의 근본적인 모순이 너무나
많은 게 현실이다.
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몇몇 사람들이 해온 논의들을 구조화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식의 조직을 구상 중인가?
김 직능별 노조나 길드 개념이 돼야 할 것 같다. 실제 촬영 과정에 동원되는 스탭들과 촬영 전 혹은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입장이
다르다. 업체에 있는 사람들은 월급을 받으니까. 현재 비둘기 둥지가
모체가 되어 직능별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있고 촬영 파트가 가장 빨리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파트별로 입장과 내용이 너무 달라서 한꺼번에 연대하긴 어렵고 직능별로 쪼개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그런 과정에서 노-노 갈등은 어떤 식으로 해결할 생각인가?
김 아직은 요원하다. 얼마 전에 선배 촬영감독들을 만나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했더니 "넌 욕심쟁이다"라고들 하더라.
그렇게 돈이 좋으면 다른 데 가서 CF를 찍지 뭐 하러 영화판에 와서
인건비 올리려고 하냐는 거다. 물론 선배 촬영감독들이 그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과 작품에 대한 열의는 본받을 만하지만 임금
구조나 작업 기준에 대한 사고방식은 너무 다르다. 촬영감독협회 회원이 아닌 촬영기사는 영화를 찍으면 안 된다고 하는 선배도 있다. 아무나 촬영을 하면한국 영화 수준이 떨어진다는 한다. 하지만 촬영감독협회 회원이 찍은 영화들 중에 수준 이하의 작품도 적지 않다고들
한다. 한 번은, 참여 중인 작품이 없는 후배들의 생계는 보장해주지 못할망정 교육이라도 시키자고 강의를 마련한 적이 있다. 러시아 유학
갔다온 김윤이란 친구를 강사로 초빙하려고 했더니 협회 회원이 아니라고 선배들이 반대하더라. 수준 떨어진다고. 원로 분들과의 연대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금 추진하는 계약 조항 중에 보험 가입도 포함돼 있나?
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준비 중이다. 산재보험은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프리랜서지만 그 동안은 스탭들의 보험 문제로 일들이 많았다. 예전에 영화촬영하다 헬기 사고로 사망한 촬영
스탭의 경우도 보험료로 1억5천을 받았는데 그건 영화사에서 든 보험이 아니라 헬기에 적용된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산재보험이니 뭐니 그런 걸 모르고 있다가 <이재수의 난> 현장에서 조명 스탭이
사고로 죽고, 장현수 감독 작품 찍을 때 스탭 하나가 식물 인간 되고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제작사들 사이에 산재 보험을 들어야겠다는 의식이 확대됐다. <단적비연수>는 우리가 요구하지 않아도 워낙
위험한 촬영이 많으니까 알아서 가입한 거고 <리베라 메>도 마찬가지다. 그건 스탭들을 위해서 들은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사에서 위험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해 든 거였다. 하지만 여기도 허점이 있다. <텔미
썸딩>을 예로 들면, 촬영 중에 허리를 다친 스탭이 있었는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만 치료비를 대줘서 크랭크업 이후엔 자기 돈으로 치료받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 제안서에는 보험증서를 복사해주고, 치료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치료비를 지불해 줘야한다는 조항을 넣고 있다.
이 유동훈 이사장이 노조 만든다는 작업과 연계할 생각도 있나?
김 내일(11일) 만나기로 했지만 연계할 생각은 없다. 지금 당장 연계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촬영기사들의 요구사항은 다른 파트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먼저 보장돼야 할 것인지 내부적으로 합의가
돼야 한다. 제작자와 얘기한다거나 정부가 개입할 땐 연대해야겠지만
일단 세분화해서 각자 요구사항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 지금 하고 있는 조직 운동은 어디서 배웠나? 노조도 안 해봤을 텐데.
김 영화에서 배운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책은 거의 안 읽고 영화에서
모든 정보를 다 얻는다. 세계 명작 소설도 다 영화로 봤다.(웃음)
이 일부러 그런 영화만 골라본 건가?
김 그런 건 아니다. 영화 중에 워낙 그런 게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 나라사랑청년회에서 일했던 것도 기초가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하나가 와서 나한테 나사청에 가입을 하라고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난 데모하는 친구들보고 빨갱이라고 그랬었다. 근데 내 친구가
나사청엔 영화사랑방도 있고 사회, 문화 활동하는 단체라고 나를 꼬셨다. 날더러 영상 기술 교육도 좀 해달라면서. 그래서 갔더니 다 운동권 출신만 있는 거다.(웃음) 일주일에 한번은 연극 보고 토론하고, 한번은 영화 보고 토론하고 그랬다. 그러면서 서서히 의식화가 된 거다.
오 근로 조건 개선운동을 하면서 작품 선택이나 작품관에도 영향을
받나?
김 그건 전적으로 개인적 취향의 문제다. 그 동안 <단적비연수>만 빼고는 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였다. 난 스케줄 안 나는 배우는
증오한다. 특히 영화와 방송일 같이 하는 연기자들.
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김 내가 한 것 중엔 <강원도의 힘>하고 <파이란>이 좋다. 나는 재미있는 영화만을 골라보는 타입이 아니다. 오히려 무거운 영화를 좋아한다. 최고를 뽑으라면 <데미지>다. 평생 기억할 영화다. <파이란>이 좋은 건 강재가 영화 주인공이라고 과장돼 있지 않아서다. 나 스스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강원도의 힘> 역시 다 내 얘기 같았다. 영화
속의 여러 가지 상황들, 교수가 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막상
아내한텐 교수자리에 관심 없는 척 하는 모습들. 나는 중대 대학원 5번, 동대 대학원 2번 떨어지고서 용인대 갔는데 그 때 상황이 너무 절실하게 느껴지더라.
오 같이 일하기 제일 편한 감독은 누구인가?
김 홍상수 감독이다. 홍 감독은 콘티도 없고 촬영 들어가면 스탭들과
얘기도 안 한다. 믿고 가는 거다. 만나도 뜬금 없는 얘기만 하고. <강원도의 힘> 하기 위해 홍감독한테 내 포트폴리오 보여주고 결정하는
날 영상원으로 찾아갔더니, 갑자기 날더러 농구하냐고 물어봤다. 못
한다니까 자기 연출부들과 한 시간 동안 농구를 하더라. 끝나고 나서
같이 옥상에 올라갔다. 그러더니 자기 눈앞에 보여지는 풍경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길 수 있냐고 하더라. 할 수 있다고 그랬더니 오케이 하더라. 진짜 기인이다.
이 촬영일엔 어떻게 입문했나?
김 처음엔 연기로 시작했다. 아마 내가 출연한 영화 <빨간 여배우> <검은 휘파람> 등이 지금도 비디오 가게 어딘가에 꽂혀 있을 거다.(웃음) 막상 대학 들어와 배우를 해보니까 내가 비음이 많고 발음도 부정확하고, 광대뼈가 너무 튀어나와 있고, 등도 굽어 배우하기엔 문제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웃음) 그러다 스승인 김수용 감독 연출부 막내를
하면서 처음 현장을 봤다. 몇 달 뒤 김감독께서 날 불러다 놓고 "문학적인 소양과 배경이 없어서 넌 감독은 안 되겠다"고 하셨다. 그 분 말씀이 나는 열심히 하면 훌륭한 조감독은 될 수 있지만, 작가가 될 순
없다는 거였다. 연기도 안 되고 연출도 안 되고, 그래서 선택한 게 촬영이다. 촬영이 나한텐 최후의 보루였다.
이 지금 행복한가?
김 행복하다. 난 참 재미있게 살아왔다. 학교 다닐 때 반장은 한 번도
못해봤지만 12년 내내 응원단장과 오락부장은 놓치지 않았다. 낮에는
선도부하고 밤에는 양아치처럼 놀기도 했다. 힘든 적도 많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았다. 현재 비둘기 둥지도
잘 되고 스탭들에 대한 처우개선도 분명히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