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봄 알렉산터 클레노프가 미하일 다비, 미하일 페르신, 그리고 알렉세이 볼로토프와 팀을 이루어 탈레이 사가르 북벽을 오르기로
했다.
등반 루트와 하산 루트 (하산 루트는 호주 팀의 아이스 걸리)
그에 앞서 일년 전, 클레노프가 이 곳에 왔다가 탈레이 사가르를 보고 너무나도 매료되어 이 벽이야 말로 그들이 올라야 할 곳이라고 그의
동료들을 믿게 만들었다. 원래 1998년 가을로 에정되었던 이 원정은, 러시아 경제 위기로 인해 연기될 수 밖에 없었다.
원정대는 델리에서 출발하여, Rishikesh와 Uttarkashi를 경유하여 강코트리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강고트리에서부터는 길이
좋았으나, 가끔씩 양쪽 산 사면에서 바위덩이가 굴러 내려 왔다. 이틀 후 이 팀은 1700 미터 지점에 이르렀다. 항시 이용되는 단단한
길이 모레인 지대를 통해 뻗어 있었고, 그 다음에는 왼쪽으로 빙하를 건넜고, 오른쪽으로 만년설 지대를 올라가서, 얼음 ‘베게’에 (ice
pillow, 눈덮인 산의 어깨에 해당하는 부분, 러시아 말로 Poshshka) 이르렀다.
베이스 캠프는 4700 m 고도의 케다르 탈 호수 가에 그리고 ABC는 고도 5400 m 의 얼음 ‘필로우’ (pillow) 위에
5월 17일세워졌다. ABC를 출발한 이 팀은 5월 17일부터 시작하여 11일 동안 등반했다. 하루 평균 200 m 씩 올라갔다.
자연적인 비박 렛지가 없어서 포털리지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이동할 수 있는 캠프로 포털리지를 씀으로서 어떤 바위 생김새 위에서든 빠르게
‘비박’할 수 있었다. 악천후 때문에 어떤 날에는 움직일 수 없었으며, 전체적으로 보면 극히 위험한 루트에서의 훌륭한 알파인 스타일의
등정이었다.
정상부근의 알렉세이 클레노프
베이스 캠프에서 이틀을 보낸 후, 이 대원들은 에너지에 넘쳐
있었다. 장비, 식량 및 연료를 ABC로 옮겨 놓았고 recced the area a bit 했다. MIchail Pershin만은
몸이 좀 안 좋아서 Vicctor Ostanin과 함께 회복을 위해 강고트리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이 고도 적응
트레킹을 막 시작 하려고 할 때 미카일의 상태가 좋아졌으며 대원들과 합류하고자 한다는 말을 무선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래서 그 두 명이
오기까지 그들의 전진을 늦추었다. 그 동안, 이 팀은 고도 적응을 위해 6300 m 까지 올라가서 이틀 밤을 거기서 자고 다시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 이틀 후 모든 대원이 ABC로 돌아왔다.
벽은
접근 불가로 보였다. 바로 시작 지점에서부터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수직 벽이 솟아 있었고, 정상 부근에는 부서질 듯 보이는 오버행
바위가 있었다. 날씨가 나빠졌고, 피치 몇 개에 고정 라인을 깔은 후, 이들은 비박을 해야만 했다. 눈사태가 쉴새없이 이들의 옆을
지나갔다. 끝없이 계속되는 눈과 강풍 속에 포탈리지를 설치해야만 했다. 아침이 되자, 폭풍의 힘도 다 빠진 것 같았다.
다음 구간은 급경사였는데, 다시 날씨가 나빠졌다. 포털리지에서 다시 또 하루밤을 보내면서, 눈과 맹렬한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예상대로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 나쁜 날씨 속에서라도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것은 끊없는 강풍과 잔혹한 추위 속으로의 등반을 의미했다. 크랙 마저 얼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하루 하루 철저하고 집중적인
등반을 통해 그 루트 상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해결했다. 사실상 선등자는 가능한 부분에서는, ‘프리’로 (free) 그 루트를
올라가면서, 다이렉트 에이드로 (direct aid) 각 피치를 등반했다. 후등자 세 명은 짐을 홀링해가며 주마로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오후가 되면 항시 다른 사람이 선등했다. 그러나, 이 팀에서 가장 강한 대원인 Alexander Klenov가 대부분
선등했다.
캠프
2와 3 사이의 구간에서, 얼어 있는 크랙이 (the cracks in the ice) 갑자기 중단되었고, 거대한 수직 암괴를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 언급되어야 할 만 하다. Michail Pershin이 스카이 훅과 볼트를 쓰며 그 피치를 선등했다. 오후가 되자, 그는
30 미터의 로프를 고정한 다음, 포탈리지로 내려왔다. 그는 매우 지쳤으며 눈이 따갑다고 호소했다. 그의 망막이 손상되어 시력이
나빠졌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더 이상 그가 선등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는 짐을 홀링하는 일과 주마링을 도왔다. Mikahil
Davy가 대신 나섰다. 그들은 그 피치의 끝에서, 오른쪽으로 스윙하여, 좁은 폭의 얼음의 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작은 크랙 위에
이르렀다. 바위 구간, 얼음 구간, 코니스 구간 등이 교대로 나타나다간 다시 합쳐지곤 했다. 게다가 날씨까지 나빠서, 한 순간도 방실할
수 없었다. 이 팀은 6400 미터 지점의 아이스 클와르를 지났다. 거기서부터 지형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 클와르 위에서는, 바위가
불안정했고 경사가 심해졌다. 바위는 역시 밝은 적색이었다. 확보를 (belay) 할 수가 없어서, Alexander Klenov는
확보없이 상당히 긴 거리를 확보없이 나아갈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어려운 등반 이상의 것이었다.
캠프 4는 6630 미터에 세워졌다. 저녁 시간에 Klenov는 그가 해낼 수 있는 거리까지 올라갔다. 부서지기 쉬운 바위로 인해
언제라도 무너져내릴 듯이 위협하는 거대한 코니스들이 있었다.
5월 27일 이들 일행이 정상 시도에 착수했다. 포탈리지를 남겨두고, 등반 장비 만 갖고 나섰다. 로프 한 동 길이만큼 나아갈수록 점점
더 후퇴도 어려워지고 후퇴 거리도 멀어짐을 의미했다. 다행인 점은, 강풍과 가혹한 저온에도 불구하고, 일기는 청명했다는 것이다. 모든
위험을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Alexander가 300 미터를 선등한 후, 오후 2시경 이 팀이 정상에 이르렀다. 정말 좋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오직 하얀 반짝임만이 있을 뿐. 극도로 힘든 열 하루 동안의 수고 끝에, 극히 어려운 루트를 통해 탈레이 사가르 북벽을 오른
것이다.
사진 몇 장을 찍었으나, (베이스 캠프에 이르기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그들의 전통에 따라) 아직 서로 축하를 교환하지는 않았다. 대체로
오후가 되면 날씨가 나빠지곤 했으나, 저녁시간 까지는, 그들의 노란색 ‘찌르레기 집’(‘starling-house')에 지쳤기는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하산은 클와르까지는 올라온 루트를 그대로 따라서 했다. 클와르 다음에는 종전 원정대가 개척한 루트를 따라 내려갔다. ABC까지 가는데
이틀이 걸렸다. ABC에서 베이스 캠프까지 이르는데, 하루의 시간 그리고 그들의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가 소요되었다. 깊게 쌓인 부드러운
눈 위로 곤두박질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들의 짐을 끌고 가야 했다.
’러시아 직등루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이 루트는 ‘High Tension'이라고 명명되었다. 멋지고 어려운 등정이었고, 산악
등반사에 남을 업적이다.
케다르 탈 호수가, 베이스 캠프
베이스 캠프
출처: Anna Piunova @ http://www.alpclub.ur.ru
http://www.risk.ru
shlee 抄譯
제공:climbextr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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