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평생 갖고 싶어 했던 것을 갖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은 말 할 것도 없다.
이십 대에 마음은 있었지만 내게 너무 멀리 있어서 그냥 꿈만 꾸던 것 중 하나가 요트였다. 하얀 돛을 달고 대양을 바람따라 살같이 미끄러져 항해하는 요트의 모습, 그것은 환상처럼 다가와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요트를 하얀 머리가 되고만 이제야 구입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세월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 기쁨이 어린 아이와 다름이 없는 것을 보면 아직 마음은 청춘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여름 요트를 시작하기 위해 탄도를 찾은지 벌써 반 년이 넘어 흘렀다. 요즘은 겨울철이라 잠시 쉬고 있지만 그동안 열심히 요트를 배워 온 셈이었다. 그로부터 요트를 갖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서 이따금 요트얘기를 하노라면 주변의 모든 요트 선배들이 혹 요트를 사더라도 몇 년은 남의 요트를 타면서 충분히 배워 익힌 후 배를 사라는 충고를 했다. 요트는 타는 것 보다는 관리에 어려움이 많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요트를 제대로 알고 사야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쎄일링을 하며 그 재미를 느끼면서, 점점 요트를 갖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날 정도여서 틈틈이 인터넷을 통해 중고 요트를 알아 보게 되었다.
결국 Orion M42 라는 이름의 33피트의 순항용 요트를 발견 한 후 그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P씨라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통해 몇 마디를 하면서 상대를 파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는 매우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요트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 주었으나 나의 요트 경력을 듣고는 여타 사람처럼 좀 더 많은 경력을 쌓은 후 요트를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 후 Orion M42는 늘 나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 때만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리먼 부라더스라는 미국 금융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경제적 공황으로 세상은 뒤집혀지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 주식 시장 역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수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 했고 나 역시 많은 손실을 입어 어려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새해를 맞이 하면서 금년의 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요트를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트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변의 사정은 점점 어렵게만 되어 가고 있어서 답답한 일이었다.
일을 벌리는데 있어서 그 순서를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어려운 시절 일수록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우기 요즘 같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을 때, 그 순서를 요트를 사는 것과 같은 대책 없는 소비에 우선을 두는 것은 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요트란 뜬구름 잡던 그 시절 부터 포기 할 수 없는 꿈이 아니었던가.
날씨가 점차 풀리고 봄날처럼 남쪽에서는 훈풍이 불어 오는 따뜻한 날이 되면서 요트 생각이 다시 머리에 떠 올랐다. 이미 늘 인터넷을 보며 Orion M42에 마음을 굳히고 있던 터라 궁금해서 제주도의 P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Orion M42는 자신의 클럽에서 인수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사실에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그에게 Orion M42를 내게 팔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하게 되었다. 고심끝에 그는 그들의 클럽 회장에게 상의한 후 몇일 내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Orion M42에 대해서 내가 아는 정보는 인터넷에 오른 사진과 간략한 정보 뿐이었다. 그런데도 Orion M42를 선택하게 된 것은 사진으로 본 요트 주인의 정성이 돋 보이는 점도 있었지만, 나의 물음에 항상 진솔한 마음으로 대답 해주는 P씨에 대한 호감과 믿음이 내게 뒤 돌아 볼 여지가 없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하였다.
다행히 P씨에게 Orion M42를내게 팔수 있겠다는 예기를 듣고 비행기표를 예약한 후 나는 다음 날 아침 바로 제주를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P씨는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며 우선 요트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제의를 했다.
P씨와는 그렇게 만났다. 그는 나와는 20년이나 연배의 차이가 나는 예상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첫눈에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는 아이들을 구릅으로 지도하는 선생님이었다. 그 날도 십 여명의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바쁜 차에 겨우 시간을 내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매우 좋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꿈은 아이들을 데리고 넓은 세상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꿈을 키워주는 일을 하는게 희망이어서 장래에 돛이 두개 달린 켓취급의 요트를 장만해 아이들과 함께 대양을 누비며 넓은 바다를 통해 새로운 삶의 체험을 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요트를 타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대개의 꿈은 세계 일주를 한다던가, 아니면 나처럼 단초로이 요트를 타면서 바다와 바람과 태양을 즐기겠다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목표가 대부분이다. 그런 꿈들에 비하면 그의 꿈은 얼마나 멋지고 희생적이며 숭고한 꿈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Orion M42는 약 23년의 수령의 노후된 배였다. 오년 전엔가 부산에 정박해 있던 중 태풍 매미를 만나 좌초되어 몹쓸 지경에 이를 정도로 파손된 배였던 모양이다. 그 배를 P씨가 인수하여 직접 엔진도 교환하고 모든 것을 수리 한 후 지금껏 그가 타며 정들여 온 배였다.
그에겐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틈틈이 아들과 함께 Orion M42 타고 항해를 한다고 했다. 밤이면 별 자리를 찾아 별들의 이야기를 하고, 낮이면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들의 꿈을 키워 왔을 게다. 그러다 거센 파도를 맞이하면 살아 남고자 아버지와 아들은 바다와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을 것이다.
배를 살펴 본 후 우리는 까페에 앉아 Orion M42에 대한 매매 계약을 치루었다. P씨의 아쉬워 하는 모습을 역력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요트는 웃으며 사고 웃으며 팔게 된다.'는 그의 말이 씁쓸 해 보인다.
Orion M42는 그로부터 나의 것이 된 셈이다. 그것은 내게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을 가진 그날이기에 그렇고 어쩌면 나의 종착지가 될지도 모를 것을 위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는 날이기에 그렇다.
뜬구름 잡듯이 어려서부터 키워 온 꿈을 실천 할 수 있다는 것, 그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 도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내겐 감지덕지한 부분이다.
바다가 불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대 수백년을 이어 온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이 쓰나미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얼마 전 인도양에 해일이 덥쳐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불과 1-2 미터의 파도에도 멀미를 견디기 버거워 하는 나의 입장에서 바다란 한편 공포의 대상이기는 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뜬구름 같은 낭만적 꿈을 갖고 이에 도전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다에서 쎄일링이란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즐기는 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놀음을 위해 나도 이제 Orion M42라는 요트를 갖게 되고 이에 정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Orion M42는 그 이름을 바꿔 나를 주인으로 모셔야 할 터인데, 나는 그의 새로운 이름을 무엇으로 지어 줄 것인가.......... 개벽?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유선장님도 이제부터 고생문에 접어들었다는거 아십니까?....하하 조크였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 드립니다
축하 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꿈을 마음껏 펼치는 즐거운 요트생활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왠지 제가 기분이 좋아지면서 Orion M42가 빨리 보고싶어 지네요.
축하 해 주시는 모든분 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요트 인생의 시작일 터인데 선배님들의 많은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표선장님과 제주도에 가서 같이 세일링하기로했엇는데... 탄도로 온다니 반갑네요....선명이 별자리 이름이어서 기억에 남는 배였죠....유선장님 축하합니다...
인생 살아가면서 가장 큰 기쁨을 맞이하신 뜬구름님 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ㅊㅋㅊㅋㅊ
축하드립니다. 저도 작년말에 배를 구입했습니다. 현재 부산에 있습니다만, 유선장님은 어떻게 배를 언제 탄도로 가져오실 계획이신지요? 비슷한 상황에서 궁금합니다.
아..축하드립니다. 선주가 되신 걸. 마음은 굴뚝인데 역시 실행력이 문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