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년 1월 11일 2번째 목요일이다.
매월 첫번째, 세번째 목요일에 송화 산행에 참가하는 기쁨을 누려 왔다.
몸도 마음도 좋아지는 인생의 향료와 같은 날이다.
시산제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새해를 새해 답게 맞이하고 싶어서 원단 아침에는 할리우드 산에 올라 솟아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무언가 중얼거려 보기도 했다.
그런데 새해 들어 첫번째 산행에 그만 빠지고 말았다.
남들 한다고 덩 달아 좇아 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반갑지도 않고 친하지도 않지만 찾아오는데 어찌 마다 만 할 수 있는가.
나야 나를 찾는 손을 박절하게 거절할 수 없지만 어찌 다른 귀한 분들께 함께 함이 옳겠는가
쉬자,
보고 싶지만 쉬자.
때가 때인 만큼 새해 첫 산행의 아쉬움이 크지만 어찌하겠는가
두번째 목요일에 패를 걸었다.
만패불청, 송화로 가자
주택가에서 만났다.
눈들이 초롱초롱하다.
발걸음이 가볍다.
웬걸, 두목님이 안보이네,
솔향기님도 안보이네.
남이 안보여 준다고 함께 안보여 주는 솔향기님도 바보구나.
작년에 보고 오늘은 못 보니 그리움이 더 하기만 하다.
내가 세어 보니 12명이 출발이다.
승지님은 세어보고 11명이 왔다 한다.
대감님 12명이라고 중얼 거린다.
승지님 세계관은 타인 우선주의, 우리는 나 우선주의
세차로 가지 않고 두 차만 가도 넉넉히 갈 수가 있다.
진사님의 기아 차가 새해 들어 더욱 환하다.
7명이 타고도 넉넉한 실내 공간이 좋다.
소리도 없다.
세월이 좋아서 일까, 한국이 좋아져서 일까.
세상에 이렇게 좋은 차 처음 타본다.
차가 좋아진 만큼 운전법도 많이 바뀌었다.
진사님 운전이 서투르시다.
차가 좋아서 일까, 진사님이 시들어 가는 걸까?
주변은 바뀌어도 내 할 일은 내가 한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콘솔박스를 열어 패스를 꺼내 대시보드 위에 올려 놓는다.
Eaton Saddle parking Lot.
이제는 낯이 익다.
바람이 분다.
차문을 열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세다.
승지님은 아신다.
10시까지 강풍이 불다 그후에 사그러진다는 사실을.
1시간만 가면 아무 걱정 없다며 계획대로 산행을 추진한다.
거친 바람 소리에 승지님의 목소리는 흩어져 무슨 소린지 알아챌 수도 없다.
간이 작은 소연님 의견을 내신다.
윌슨 산으로 가서 기념관을 관찰하는 것도 이런 때는 좋겠단다.
그리피스 산이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못 간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렇게 거친 바람에 대장님이 미지 언니만 이곳에 남겨 두고 올라 간다면 미지 언니는 너무 불쌍하겠단다.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미지 언니와 생사 고락을 함께하자는 강낭콩 보다도 더 푸른 정절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연경님 못 가면 혼자나 못 가지,
선희야 가지 말자, 여기 나하고 함께 있자.
애절하고 간절하게 매달린다.
아예 간이 없는 나로서는 차문을 열 힘도 없다.
그냥 차에서 뭉갠다.
집 사람 당차게 앞선 이들을 따라 나선다.
진사님이 큰 소리로 Sunny하고 외친다.
두번도 아니다. 단 한번
거센 바람 보다 더 위엄 있는 이 소리.
써니님 차에서 내린다.
연경아 가자, 들릴 듯 말듯 한 소리로 이끈다.
그때 바람도 잔잔해 지는 듯 하다.
대단하다.
진사님의 위엄
기장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선다.
나는 호랑이도 무섭지 않다.
혹이나 무서운 것이 있다면 호랑이 띠가 무섭다.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바람이 분다.
등으로 밀려 들어 오는가 하면 어느새 돌아서 앞을 막는다.
몽이 기우둥 거린다.
헛발질도 한다.
지난해 15번 Cajon Pass를 지날 때 강품지대라는 팻말을 보았는데 이내 그 앞에 커다란 트레일러가 자빠져 누워있던 모습이 떠 오른다.
그 커다란 트력도 속절 없이 넘어 뜰이는 강한 바람이 오늘 여기서 분다.
토네이도에 집이 통째로 날아가며 그 속에서 버둥거리는 암탉이 보인다.
시속 100마일은 족히 되는 강풍이다.
내가 날아가 저 아래 Eaton Cannyon으로 떨어지지 않으라는 법이 없다.
대감님 평소 무게 있는 분이다.
언행이 언제나 묵직하고 무게 있다.
오늘도 그 무게에는 변함이 없다.
강도 7쯤의 강풍이라고 짐작해 주신다.
태양계 끝 쪽에 해왕성이 있다.
유독 이 행성만 지구와 마찬가지로 바람이 인다.
시속 1,000마일이란다.
대감은 능히 해왕성에 가서도 살 수 있는 범 우주적으로 적응된 인간이다.
Muller Tunnel을 지난다.
오른 쪽으로 커다란 물 탱크가 있다.
강풍 속에도 눈섶하나 날리지 않고 앉아 있다.
물 탱크 뿐이 아니다.
어떠한 산봉우리도 흔들리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전에 모습 그대로 앉아 있다.
참 이상 하다.
나만 흔들리다니.
Inspiration Point 를 지나 에코 마운틴으로 간다는 팻말이 보인다.
승지 연출, 촬영에 진사 금년 한 해의 꿈을 안고 나서는 송화의 배우들이 한껏 자신의 연기력을 뽑내는 시간이다.
기장은 꿈을 안고 산을 오른다고 기염을 토한다.
모두가 마음에 마음을 가다듬어 손을 흔들며 오른다.
바람 소리 여전히 매섭다.
내 생전 이렇게 심한 강풍은 처음이다.
죽지만 않는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추억을 언제 또 일부러 말들 수 있겠는가.
West Trail을 돌아설 무렵 바람은 조용히 그 자취를 감추려 한다.
몇시냐고 몰어 본다.
대감 10시 8분이라고 알려 준다.
승지님
바람소리 보다 크게 외친다.
바람이 무서워 못 가겠다고 한 사람 내려 가라고 일갈이다.
나를 째려 보신다.
나는 바람이 무서워 못 갈 것 같아 차 안에 남아 뭉개기는 했어도 못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째려 보시나.
어깨를 딱 펴고 승지님 뒤를 바짝 따라 올라간다.
승지님,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는지 그냥 앞서 가신다.
Mure Peak길로 접어 든다.
대감님이 안보인다.
아마 IdleHour Trail길로 잘 못 들었나,
그럴 리가.
뭐 볼일이 있겠지.
밤이 아니니 별 볼일이야 있겠느냐마는 헤경궁 몸이 달았다.
헤경궁의 안달에 내기가 붙었다.
대감이 큰 뜻을 품고 잠시 속세를 떠났다.
사건 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안심하라.
아니다.
큰 뜻을 품을 사람이 아니다.
이 거센 바람 속에서 무슨 변고가 난 것이 분명하단다.
불타는 저 사랑의 마음, 거센 바람 속에서 더욱 뜨겁다.
한참이나 혜경궁의 애간장을 다 태우고 서서히 대감의 모습이 드러났다.
자초지종을 들은 대감 내가 건편으로 답을 주겠다고 한다.
조건은 반반 나누쟎다.
나는 참 쫀쫀한 사람이다.
대감한테 반 주는 것이 아까워서 싫다고 거절했다.
독식할 생각에 확실한 반을 차지 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그렇게 대감의 행방불명 사건은 묻혀져 갔고 우리는 Mure Peak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는다.
올 것이 왔다.
대장님께서 탱고를 찾으신다.
무선기의 접속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도 딱 이 시간대, 점심 보자기를 풀 때 어김없이 대장님의 신호를 받는다.
원래 무선이라는 것이 똑바로 가는 성질이 있는가 하면 빙 둘러서 가는 성격도 있다.
산이나 건물이 많으면 전파진행에 방해를 받아서 아주 단거리 통신만 가능하다.
여기는 산이다.
그 점을 감안해도 오늘은 교신이 잘 안된다.
바람에도 영향을 받는다?
아마 그럴 것이다.
태양풍이 있다.
그 바람과 이 바람은 발음만 같지 성질은 다른 것이지만 그래도 바람이 심하게 불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점심을 끝내고 하산 하기 시작하면 Inspiration Point에서 대장님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그런데
아니벌써
몇 발작 내려가지 않아서 대장님과 만났다.
우리는 되돌아 Mure Peak에 다시 왔다.
구름 타고 오셨나?
지난해 Ice house canyon saddle back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1마일을 15분에 주파한다고 하신 말씀이.
그 말을 생각하면서 이 분이 그 때 치매끼가 좀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는 생각이 지금은 내가 치매끼가 있은 것으로 확 생각이 바뀐다.
오늘 처럼 바람부는 날 바람 타고 오셨겠지.
가장 확실한 이유는 건강이 그만큼 좋아지신 것이지.
정 태준님이 송화에 오신지도 벌써 해가 바뀌었다.
예에 따라 별호를 붙여 부르려 했는데 이름 이니셜을 그대로 따서 TJ라 불렀다.
CJ, PJ ,TJ. J가 너무 많아서 혼란이 올 것 같아 탱고라 하자고 했었다.
소연님께서 약간 반기를 드셨다.
탱고 춤은 싫단다. 사교춤이 더 좋단다.
하기야 당겼다 놓았다 하는 사교춤이 더 좋지.
TJ도 탱고 춤은 잘 못 춘 단다.
그래서 예에 따라, 중지를 모아서 원님이라는 별호를 붙이기로 했다.
올랐던 Mt Lowe가 올려다 보인다.
그 뒤로 Gabriel 산이 보인다.
그 뒤편으로 Disappointment 봉이 보인다.
엔젤스 산맥을 측량하던 당시에 이 산을 제일 높은 산으로 관측 하고 막상 와 보니 가브리엘 산이 더 높은 것을 알았다.
너무나 실망해서 이름을 그리 붙였다는 전설 같은 실화를 전해 듣는다.
Mt Lowe의 내력도 듣는다.
1880년대에 세계적으로 Funicular를 설치하는 관광산업이 유행했다.
그 시절, 이태리 나포리 근처에 있는 Vesuvius산에 후니쿨라가 설치되고 그 유명한 노래 후니쿠니 후니쿨라가 지금까지도 세상을 휩쓸고 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Oak 산에도 Lowe 교수팀이 후니쿨라를 설치하고 Alpine Tavern이라는 호텔도 지어 관광객을 끌던 그런 좋은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Oak 산이 Mt Lowe로 바뀌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되겠다.
당시의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안내판이 Lowe 산 정상에 있는데 거기에 나와 있는 Lowe의 사진을 보니 흑인처럼 생겼다.
Lowe가 흑인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다.
저 아래를 내려 보면 LA 시내가 보인다.
그 시내 한 복판 3가와 4가 사이 그랜드 애브뉴에 가면 후니쿨라를 탈 수 있다.
1불을 주고 타 본 기억이 나다.
후니쿨라의 기억을 그곳에 옮겨놓고 지금은 Inspiration Point에 그 삭도 열차가 지나던 흔적만 확인해 보라고 렌즈 없는 망원경이 줄지어 서있다.
처음 Eaton saddle trail head에 왔을 때는 이런 이야기들을 담은 안내판이 있어서 사진도 찍어 둘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는데도 어느새 그들은 없어지고 머리 속에만 남아 있다.
대장님이나 승지님의 말을 통해서나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흘러간다.
대장님과 함께 다시 하산을 시작한다.
Inspiration Point
그 앞에 3,000 마일 넓이의 너른 뜰이 펼쳐져 있다.
지난 번 일기 불순한 어느 날 이곳에 수박을 짊어지고 왔다 죽어 내려간 일이 떠오른다.
대장님이 수박을 지고 오르기에는 이제 힘이 빠져 주차장에서 수박 자르는 세레모니를 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래서 그 수박을 대신 지고 정상에서 짤라 보리라 객기를 부려봤던 그곳이 바로 이곳 Inspiration Point다.
그때는 잔비가 내렸지.
오늘은 세찬 바람이 몰아쳤네.
바람, 봄 바람은 님의 바람일세
봄 바람이 불려 치면 어느 처녀 마음인들 싱숭생숭 해지지 않겠는가.
내마음을몰라주는임이라면
그 바람은 너무 차다
오늘 아침 그 바람이 불었나 보다.
바람, 여름 바람, 어머니 바람
등줄기 땀이나고 이마에 흘러 내릴 때
어머니 바람이 불어 온다.
영혼까지도 맑게 해 준다.
겹겹이 끼어 입었던 옷을 벗어 배랑에 넣는다.
눈앞 멀리에 카타리나 섬이 바다위에 떠있는 구름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왼쪽으로는 실비치가 보인다.
가운데쯤 LA 시가지도 확인 할 수 있다.
오른 쪽으로 산타모니카가 보인다.
세찬 바람은 멎었다.
시야는 맑고 멀다.
어머니 바람도 멎어 있는 고요한 순간을 즐기고 있다.
어서 오라는 집사람의 다구침이 들려 온다.
어어, 나만 남아서 무엇 하는거야.
서둘러 좇아간다.
눈을 들어 본다.
아니 벌써 저 멀리 East trail을 넘어 산 중턱에 대장님이 앞서 가시네
바람 타고 가시네.
수박 짊어지고 왔던 보람을 느낀다.
저분이 짊어진 배랑 속에 움직이는 수박도 보이네
첫댓글 ㅎㅎ
날리지 않고 용케도 버텼네
얶께 힘께나 줬겠다
버티면 Rocky님 도 못당한다니까 ㅋㅋ
오랫 만에 고대하든 글 잘 도 읽고 역시 그 머리 싸메는 기장님의 열 내린다고 미선님도 고생께나 하셨을 거라고 혼자서
얇은 미소 짓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또 다음의 글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 만이 아니겠죠
저도 기장님의 글이 그립습니다 함께 산행을 못한지 해를 넘겼지만 ~~
글로 만나니 더 ~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