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갖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로 직장을 옮기는 경우가 많은 듯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곳에서 부근과 부대낌 없이 작더라도 딴엔 보람이나 긍지를 갖고 근무 하고픈 것이 대다수의 마음일리라.
때론 실력있는 프로 선수처럼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아, 딱히 특별 대우는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사람 정도로 인식되어 어느 한계까지 갈수 있다는 안정적인 위치확보는 단지 직장인의 희망사항 일 뿐일까?
몇 년전 환란과 이어진 구조조정의 한파속에서 지위고 능력이고 상관없이 거대한 용광로속에 다 던져지고, 마치 몇 개의 부속이 빠져도 소리 잘나는 라디오 처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치를 그렇게 중요치 않은 나사로 서글프게 인식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변변치 못한 나에게 직장에서 해외 연수를 갖다오라고 가끔 이야기 한다
말이 연수지 여행이다
나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 놓으면서 연수을 거절하곤 했다
그러다 이번 겨울엔 차마 거절 할 수 없는, 아니 내심 가고 싶은
부부동반 금강산 2 박3일 여행의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금강산도 관심대상 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간 단절되어 살아온 반쪽의 실상을 눈으로 그 실체을 확인하고 싶었다.
많은 곳을 다녔지만 북녘의 산하 나의 한창 시절에는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곳이었고,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미지의 땅이었던 것이다.
역마살이 있어 방랑하는 생활이 커다란 즐거움인 나,
반면 그것은 하잖은 일상일 뿐이며,
뭔가 남들처럼 여행내지는
생일이나, 기념일의 의미도 알고 남들처럼 해 주었으면 하는 마누라,
이런 교행 속에서 그래도 두딸 낳고,
남이하는것의 반쯤은 했노라고 시건벙을 떠는 나를두고,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독선, 독재자 라고
마누라는 혼자서 궁시렁 거리곤 했다.
하기사 이웃집 남편들이 너무 잘한다
빨래, 음식같이 만들기, 손잡고 시장보기, 각종 기념일 챙기기, 여행에 외식, 처가 돌보기등등,................
난 완전 빵점에다, 거의 이혼 청구 소송감에 해당하는 짓거리를 겁 없이 하고 있다는걸 잘알고 있다.
하지만 나도 기회는 왔다고 생각, 딴엔 여행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출발 1주일 남겨두고, 평소 소행과 답지 않게 금강산 여행 사실을,
나 역시 이웃 남편들 처럼 배배 꼬며, 이벤트 성 발표를 했더니, 마루라 왈 또 꽁사발이제, 누가 속을줄 알고?
그라고 보니 그간 악의 없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고, 순진하게 속아 넘어 가는 마루라의 진지한 모습을 한없이 감상 하는 짓거리를 자주 한 것이 나의 말에 자꾸 의구심을 가지게 한 것 같았다.
하기사 나의 고감도 꽁사발 앞에선 맥없이 속아 넘어가고,
결국 IQ 까지 의심받고 하다보니, 이런 경사스런 동반 여행소식을 반신반의 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더구나 평소의 짓거리와 너무 틀리고,
처음에 믿지 않다가, 몇일 지나니 사실여부를 자꾸 확인 하는 걸 보니, 딴에 관심이 있었던지 슬며시 등산복을 구입하는 모양새가 이제 사실로 믿는 듯 했다.
일러준 준비물은 챙겨, 12월 19일 새벽 1차 모임장소에서 버스를 타고서야 위대한 서방의 능력에 감격하다 못해 소풍가는 어린애처럼 설레는 모습이 그간 너무 무심하게 너무 나의 것만 고집하고 살아왔나 싶어 미안한 감도 들었지만, 모르는척 차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우리의 태생이 그러하듯 아기 자기한 멋 없이 그저 밥묵고,
아아들은 하다가 그냥 디비 자자 하던 나날이 이어지다, 오늘 이런
날들이 차창밖의 가을 단풍 책갈피에 동화처럼 현란하게 펼쳐진 것이다.
정말로 신나는 결혼후 첫 여행인데 날이 잔뜩 웅크려 뭔가를 저지러고 말듯한 검은 구름들이 세찬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심상찮더니만, 대관령을 넘자 슬슬 비가 내리고, 바람도 더 거세어 지는 듯, 차창밖의 나무들이 옆으로 드러눕듯이 몸부림을 친다.
어느듯 동해가 보이는 주문진 속초간 도로, 아직 지난 폭우의 흔적이 남아 있고, 일기예보 처럼 강풍이 하얀 파도를 백사장으로 멍석말이 처럼 굴러 내고, 이다금 포말들이 길가 까지 스치는 것이
바람 또한 만만찮은 듯,
먼 바다는 백파로 파도긑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직업적인 감각으로 오늘의 바다는 낭만이 아니라 멀미와 머리아픈 뱃길,
이른바 골 때리는 여행을 직감할수 있었다.
속초항, 간단한 수속후 방파제를 나서자 파도는 선체를 가만두지 않고 롤링 피칭으로 요동치게 하고, 이다금 덩치큰 파도가 선수를 내려 칠 때면 선체는 달달 거리면서 몸부림을 치곤 하다,
이내 바다 깊숙한 곳으로 빠져 내려 가는 무중력의 허공을 느끼고, 하늘을 치솟을 땐 내장을 짓누느는 불쾌감과 대갈통 무게를 어께로 느끼는 일들이 반복 되다, 다들 점심때 메뉴를 멀미 구토로 시원스레 쏟아낸다.
금강산이고 지랄이고 사람 죽겠노라 아우성치는 모습,
머리를 쥐어짜듯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그들을 돌봐야 하는 나의 직업적인 의무감이나 처신을 다들 기대하겠지만, 뱃멀미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단지 빨리 육지에 도착하던지, 아니면 성질되로 바다로 뛰어 들어 가는것도 방법이 되겠지만, 후자는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굳이 방법이 있다면, 배가 치솟을 때 호흡을 들이키고, 내려갈 때 내쉬는 것이 효과가 있으나,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며,
누구나 뱃멀리를 한다는 사실이고, 더구나 배타는 것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선원들도 심한 풍랑속에선 멀미를 하곤 하는데, 나 역시 승선 실습시 일본근해 항해중 태풍속에서 3일을 멀미하다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른 경험도 있었는데, 그래도 인정 사정없이 몰아 치던 상급 사관들이 사람아닌, 개새끼들로 보일즈음 입맛이 돌아 오고, 정신을 차려 견디어 낸 후에는, 그곳이 나의 요람이었고, 한동안 뱃전밖 죽음의 파도를 베게삼아, 침대 좌우로 발 버티고 요동치는 그속에서 수년을 살았던 근간이 되었다.
난 뱃전에 서서 부근 멀미와는 상관없이 먼 바다를 쳐다보았다.
저 바다 거친 파도와 풍력계급 7정도의 새끼태풍이지만, 옛날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이미 저 검푸른 파도에 휩싸여 영원히 바다의 사나이가 된 동문들 과연 우린 그속에서 생명을 바쳐가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삶의 용기, 극기, 남이 보지 못한 세계를 잠시 보았다는 자부심, 다 웃기는 애기고, 돈벌이 된다니까, 성질 못참고 물불 안가리고
선택한 직업이었을 뿐,
하지만 빈손으로 영원히 바다를 떠난지가 어언 수년,
오늘 분노와 절망과 허탈을 준 바다지만, 미워하고, 저주해도 영원히 존재할 위대한 자연의 바다를 밞고 있는 이 순간은 예전의 그 바다가 아니라, 마누라와 같이 여행,
그것도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의 일부인 낭만의 바다인 것이다.
출항후 멀미속에서 여행시 주의 해야할 사항에 대한 교육이 있었지만, 대충 하지마, 하지마로 결론되는 이른바 하지마 관광교육이다.
체제가 다르고 오랫동안 단절된 북녘의 현실, 경제적 격차나 체제에 관련된 말씀은 삼가고, 행동에 조심하라는 내용의 교육이 긑나고, 멀미 하는 사람들이 지쳐 쓰려져 잠들 즈음, 출항 4시간후, 오후 4시경 장전항 입항, 산야는 나무 하나 없는 빡빡머리 산, 멀리 쭈삣하게 보이는 산들 아마 금강산 일만 이천봉중에 하나일리라, 항구 아니 전혀 인공 시설물들이 없는 회색빛의 비내리는 조용한 포구에, 하얀 집 금강산 해상 호텔이 부선식 바지위에 덩그런히 서 있고, 인기척 없는 부두 현대식 건물은 출입국 심사 건물동으로 우리가 간단히 수속 할 때만 잠간 분비는 듯, 태어나 민족의 반쪽을 처음으로
지척에서 보았건만 지극히 사무적이 손놀림만 이어 질 뿐, 눈길 한번
주거나, 그들이 말하는 반갑습네다도 없이 통과 줄줄이 배낭이나
가방끌고 현대 직원들 따라 겨울같이 추운 가을 금강산 언저리 해상 부선식 호텔에 방 배정 받고, 이내 저녁밥먹으러 버스거리 20분정도의 온정각까지 가면서 차창밖의 동포들이나 그들 삶 모습을 볼수 있을거라 생각 했는데, 사방이 칠흑 같이 어둡고, 더구나 비까지 뿌리는 날씨라, 사방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온정각에서 얼른 저녁 먹고, 다시 해상호텔로 돌아와서,
내일 구룡 폭포에 갈 예정이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 선상 호텔 후갑판 전망대에서 부슬비 내리는 장전항 건너편을 바라 보았다. 이곳에 첫밤을 가슴 설레며 달려온 사람들을 의식 하는지 어떠한지, 이슬비 속 회색 빛 마을은 여명에 미동도 않고 쟂빚에 눌러 정적에 싸여 있는 듯, 어제의 파도가 잔잔해진 내항 건너편 백사장과 이어진 송림이 긑나는 곳부터, 잠시 몇몇 건물들이 벽돌의
원색을 어둡게 드러내다 마을 뒤편부터는, 그 족보가 금강산의 시작
인듯 산세의 위용이 대단하고, 마치 거대한 알들이 서로 등을 기대고
엉켜 어울리면서 복잡한 함수곡선처럼 이어지다,
한곳에 힘을 모아 마치 가느다란 촞농의 긑단 처럼 봉우리를 이루는 것들이 너울너울 흘러가다, 먼곳 자태는 빗속, 안개속에 슬며시 녹아들어가 있는 듯 감추고 있었다.
병풍처럼 장전항을 감싸고 있는 산들의 자태는 분명 심상찮은 절경을 감추고 있으리라 생각 하며, 간단한 아침 식사후 빗속 산행을 대비하여 우산과 우의, 여벌의 옷을 배낭에 챙겨, 물른 마루라 손을 꼭 잡는 것을 뿌리치고 그냥 따라 온나 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으레 이런 단체 여행에 출발은 예상치 못한 기다림으로 원성이 살짝 피어날쯤 헐레벌떡 뛰어오는 일행이 도착하면, 에이 하면서 출발하는 법, 이날도 한쌍을 기다리다 출발 예정시간 보다 늦게 출발 가슴 설레는 여행이 시작 되었다.
일단 이곳 여행지의 모든 출발지인 베이스 켐프 온정각으로 향했다.
어제는 밤에 그곳을 들러, 주변을 잘 볼수 없었는데, 이곳 관광객이 움직이는 길 주변은 철조망으로 구분되어, 간혹 갈림길이나 통행로가 교차하는 곳에는 앳된 병사들이 적당한 부동자세로 서있고, 그 부근으로 주민들이 자연스레 그들을 일상을 꾸려가고 있는 듯, 망태기를 지고 이른아침 어딘가를 당차게 걸어가고, 이다금 자전거도 타고 바삐 걸어가긴 하나, 제법 가까은 거리를 두고 관광차량 행열이 지나가도 별다른 반응없이 지나 치다가,이다금 손도 흔들고 하는 모습들이 나의 설레는 기대보다는, 그들에게는 이런것들이 일상의 일들로 받아 들여 지는 듯 했다.
온정각 가는 길목 눈에 익숙한 로고, 색상의 남녘 주유소와 똑같은
현대 주유소이나 명칭은 현대 연유소이다, 우유공급소?,
아니란다 주유소의 이곳 명칭이며, 인근에 숙소로 이용하는 콘테이너
하우스, 도로 안전 간판등이 전부 눈에 익은 우리의 그것이라 적어도
철조망안은 별반 관심대상이 밖이고, 자꾸 철조망 밖으로
눈길이 향했다.
온정리도 이번 여름 폭우 때문에 피해가 큰 듯 곳곳에 폭우의 흔적들이
역력 했다. 끊어진 작은 다리를 우회해서 온정각에 이러는 길목 부근 개울에 아침 강을 바지 걷고 건너는 어린이들, 한가히 방망이 빨래를
하는 아낙의 모습과 강뚝밑 탄광촌 연립 주택처럼 늘어선 집들에선,
세대수 만큼 세워진 굴뚝으로 한가롭게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해상호텔에서 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온정각과 원형 공연장이 이들의 삶과 일상 생활에 너무 대비되어, 과연 그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더구나 한가하게 관광이나 다니는 혈색좋은 소위 그들이 말하는 남녘 동포들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
그들의 일상생활과 통행에 불편을 주는 철조망 일 듯 싶고, 여러 가지로
행동제한이나 생활에 불편함이 있을 듯한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다.
온정각은 이미 메스컴에도 여러번 소개 됐지만, 이른바 금강산 관광 출발지로서 이곳에서 식사, 쇼핑, 온천욕 그리고 부근에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고 적어도 이곳과 철조망 내에서는 이른바 활동이 자유로운 보세구역처럼 느껴졌고, 철조망 밖과는 색조가 틀린 사람 버스 건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고, 휴게실과 쇼핑센타는 모두 중국동포들이 점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북녘의 동포들이 근무하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곳에서 잠간 행장을 다듬은후 아침 09:00 북녘의 안내원 차가 도착 선두에 서자 긴 차량의 행열이 서서히 금강계곡으로 움직이기 시작 했다.
지금 이길은 수천년을 뭇사람들이 드나들며 금강을 노래하고, 감탄의 글을 남기고 금강이란 이름을 부르며 오갔을 길 일 텐데.
지금 버스의 행열은 붕붕거리면서 금강의 입구에 들어서자 빽빽이 늘어선 이곳에선 미인송이라 부르는 연적색의 금송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고 왼쪽으론 마치 백담사 계곡처럼 널부러진 돌의 족보가 비슷한 바위와 돌들이 미인송과 얼음같이 맑은 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이곳 가을의 긑자락을 잡고 비속에 흐르고 있었다.
울창한 미인송림 이어진 길가에 사리탑이 몇 개 보이더니 이곳이 옛 신계사 절터였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있다고 하나,
별반 감정없이 지나쳐,
이제 버스에서 내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들 내렸다.
구룡 폭포 코스에는 중간과 코스 긑 부분인 구룡폭포 부근에 화장실이 있어, 출발전 사전 준비하느라 다들 부산을 떨고, 더구나 산행후는 절대 금연이라애연가들의 마지막 흡연이 꿀맛처럼 이어지는데 남녀 노소가 없는 듯, 마치결전을 앞둔 운명적 전사의 비장한 눈빛으로 품어내는 연기가 가을비속에 매캐하게 퍼져 잠시 조용했던 계곡이 소란스러운 듯 하더니, 빗속에 조별 출발이 시작되었다.
수리중인 목란관뒤를 지나 앙지대, 비는 그칠 듯 하다 거세어 지고 안개는 산허리를 감싸안고는 천길 암산의 위용을 보여 주질 않는다.
제법 빠르게 이어지던 산행은 삼록수란 작은 폭포형 셈터에 도착해서 다들 영약의 효험이 있다는 물들을 한 사발씩 들이키곤, 집채만한 바위가 폭우에 부대끼다, 얽히고 섥혀 사람들이 넉넉하게 지나갈수 있게 된 금강문을 지나 옥류동 계곡에 들어 섰다.
좌우로 깍아지른 절벽에 강한 생명력으로 버티고 선, 고고한 기상을 담은 소나무와 계곡에 펼쳐진 단풍은, 비오는 잿빛 하늘과 안개속에서도
한편의 장중한 동양화처럼 펼쳐지고, 수천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철옹성의 절벽에서 수억겁을 피고 졌을 단풍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온 저 소나무는 기름진 모습이 아니라, 뭔가 악 조건속에서 영양분 없이 생깡으로 버티어 온, 상당히 절제된 듯한 모습들이 거대한 암산에 적당히 뿌리박고 서있어, 의미없는 돌엔 바람 느끼는 생명을, 쉼없이 흐르는 물에는 그림자를 주어 화려한 금강을 만들고 있는 듯, 비속 금강계곡은 오가는 안개 형상 따라 수시로 변하곤 했다.
안내인을 따라 이어지던 행열은 차츰 개인 등산능력에 따라 대오도 흩어지고, 이내 개인별 산행으로 되어 버렸지만, 전반적인 등산로의 경사는 완만한 편 이었다. 옥류동을 지나 이어지는 계곡은 절경들로 이어지나, 땀과 비로 젖은 몰골들로 오르는 행열들이 마치 피난의 대오처럼
느껴진다.
분단의 현실, 이것으로 인해 한정된 관광 산행이고, 시간에 제약 받는 것들이 못내 아쉬움을 더하곤 했다.
대부분의 산들이 거대한 바위산으로, 바위의 균열에 뿌리를 박고 강한 생명력과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는 초목들이 마치 잘차려진 인공미 가미되지 아니한 거대한 분재이고, 이것들이 동양화가 되고, 시가 되고,
감탄의 실마리와 모든 심미의 근원이 이곳 계곡에서 비롯되는 듯, 깊은 계곡에 좌우 협곡을 내내 위아래를 보다 걷다보니, 어느듯 천길 낭떠러지에서 수원없이 흘러내리는 듯한 비봉폭포에 도착했다. 그 높이가 실로 대단하고 마치 수양버들이 흩 날리듯 계곡으로 넘쳐 내려, 마치 가을 짓누르는 듯 흘러 내린다.
이제 조금만 가면 구룡폭포, 구룡폭포로 이어지는 길은 비교적 부근이 완만한 암반위로 난 길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우측에는 섬섬옥수의 맑은 물들이 돌부리를 안고 흐르고, 좌측은 가파르게 솟아 산이 깊어짐을 느낄수 있었다.
가는길에 평평한 암반에 언제 어느 시기에 새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별난 우리민족들 갑남을녀의 성씨와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보니,
이런 명산 계곡에 다들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은 잠간의 욕심이겠으나, 오늘에 이러러는 그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추잡한 낙서로 여겨질뿐,
단지 오가는 이의 발길에 채이고 있을뿐이다.
이름을 남기고픈 인간의 헛된 욕심을 조롱하는 듯이 물소리가 점점 거세어 지다, 눈앞에 뿌연 포말이 비상하고 높은 바위산들이
사방으로 감싸안은 듯한 곳에 조그만 쉼터가 있고, 그곳에서 곧장 10분정도가면 구룡폭포, 좌측 작은 현수교를 건너면 상팔담으로 가는 길 인데, 이곳 갈림 길목 쉼터에, 북녘의 환경감시원, 아가씨 동무는 빨강 장화 아바이 동무는 감색장화를 싣고 쓰리, 관광온 남녘 젊은 이들과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처럼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략 물질적 풍요보다는 자존심과 명분을 갖고 아무런 정신적 걱정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식의 애기가 이어지는 듯, 대체로 남녁 관광객은 묻고, 북녘 동무들은 달변으로 답하는 듯, 무척 화기애애하게 애기가 이어지고, 아예 젊은 친구들에게 싸여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이곳 어는 공원에서 지나치다 만나서 친구들끼리 수다떠는 모습처럼 무척
정겹게 보였다.
한가지 분명한건 주로 그들과 태연하게, 쉽게 애기하는 층들이 아예 나이드신 분들이나, 아니면 아주 젊은이들이란 사실들이 뭔가를
시사 하는 듯, 나역시 그들의 화제속에 비집고 들어 가고 싶어도, 웬지 선듯 마음이 내키 않는 것은 혹시나 하는 우려와 아직도 경직된 틀속에서 알게 모르게 세뇌 교육된 세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격고 있는 나와 비슷한 세대의 공통된 마음 일리라.
애써 이들을 지나쳐 등산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30분 등산거리의 상팔담으로 향하고 일부는 구룡폭포로 향했으나, 대부분 사람들이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언제 올지도 모를 곳이라며 상팔담으로 향했다.
현수교를 건너자,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길로 이어진 등산로는 그 경사가
심해 거의 직벽이 대부분이라, 철제 계단 사다리로 이어져 있고, 등반에 익숙한 사람들도 쉼 없이 오르기에는 힘에 부치는 비탈길,
나역시 아내를 배낭끈에 메달리게 하고는 발만 땅에서 떼면 내가 앞에서 멍에 쓴 소처럼 끌고 철제 사다리 계단을 올랐는데,
그 형상이 최근 설악산 울산바위 오를 때 와 매우 흡사하고 높이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리가 뻐근함을 느낄즈음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볼멘소리, 이기 뭐꼬, 짙은 안개로 시계 제로, 가까운 거리의 인물사진도 찍을수없을 정도의 시계, 다들 궁시렁 거리는데, 상팔담을 굽어 내려다 볼 수 있는 바위에 다들서서, 헛 폼만 잡고서는 아래에서 시원하게 흘러 내려가는 구룡폭포와 흐르다 용연에 부닥쳐 소용돌이 치는 쏴하는 물소리 만 듣고 심봉사 하산하듯 내려 오다보니,
아담하게 비바람 피하기 적당한 양면 반듯한 바위벽과 적당히 하늘을 반가름한 온방한 방처럼 느껴지고, 그것을 증명하듯이 실내는 비교적 오늘내리는 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아늑한 공간이 상팔담 정상에서 약 5분거리에 있어 자연 발걸을 멈추고,
서서 중얼 거리듯, 잠간 들러서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고 싶다고
말하자, 뒤에 내려오던 일행중 한사람이 말하길, 바로 이곳이 선녀와
나무꾼이 첫밤을 보낸 곳이라고 말해줘서, 하마터면 아름다운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칠뻔 했다.
그러고 보니 흔히 산속에서 조난 당했을 때 아주 좋은 피난처로 손색이 없는 그런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반평 남짓한 곳에서, 첫밤을 보낸 선녀와 나무꾼이 그후 몇 번의 곡절 끝에 다시 만나 아들딸 낳고 잘먹고 잘살았다고 하니, 부근절경과 너무 잘어울리는 전설이 있어 한층 금강이 더 아름다운 것 일까.
온길을 다시 되돌아 하산 하여, 갈림길 쉼터로 내려와 이곳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오늘 산행의 마지막 지점인 구룡폭포로 향했다.
길옆 급 경사면에 이다금 흐르는 물들이 잠간 멈춰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아름다운 명주실 같은 자태로 속삭이 듯이 빙그러 돌며 내러 가는 용소가 군데 군데 보이더니만, 이내 거대한 물줄기가 사정없이 내리쳐 꼽히는 것이 구룡폭포, 그 수량과 물줄기가 대단하다.
어느 빛바랜 누런 단체 사진 뒷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던 바로
그 구룡폭포, 이곳에서 나무 작대기 짚고, 통큰 바지에 잘룩하게 동여멘 허리띠에 자랑스럽게 폼 잡고 찍던 옛 어른들 사진배경이, 여러 문인들의 책갈피에서 찾아볼수 있던 사진속 폭포의 실체가 지금 흐르고
있는 것이다.
구룡 폭포를 관망할수 있는 정자에서 행장을 풀고 하염없이 쳐다보니, 과연 저 거대한 물줄기를 품고 있는 수원이 더 깊은 곳이 있을 터이고, 언젠가는 그 곳까지 갈수 있으리라, 마치 폭포 우측 단애한 절벽에
오늘의 현실을 희망스럽게 각인한 글귀가 빗속에 흐르듯 수려하고 균형 잡힌 몸매로 길게 늘어져 씌여 있었다.
미.륵.불
언제 미륵불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 분단된 민족의 아픔과 한숨을
없애 줄까.
다들 미륵불의 염원 보다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곳 이라서인지
사진찍고,가져온 간식들로 정자안이 부산하다.
이곳이 오늘 산행의 마지막이고, 오늘 코스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곳, 이제 산행은 킅나고 하산길에 오를 채비를 하느데,
다들 비싼 화장실 사용료에 볼멘 소리들이다.
화장실 사용료는 남자 4달러 여자 5달러, 현찰 박치기, 요금 차이는
남녀 사용방법차이에 따른 입석과 좌석의 차이란다.
아까우면 코스 중간지점 금강문 부근 1달러 화장실이 있는 곳 까지 참고
가든지, 아니면 야산방료하여 수백불의 벌금을 내던지 등등, 아울러 금강산 보호를 위해, 전량 인력에 의존 수거운반 처리하는 관계로 부득불 비싸다고 했으며, 출발전 나이드신 분들은 꼭 잔돈 달러 지참을 당부하던 안내인의 말이 실감났다.
이제 하산길 오후 2시까지 버스에 승차, 아직 시간여유가 있어,
천천히 계곡을 내려 가면서 또다른 시각에서 금강을 느끼면서 여유롭게 하산했다.
실로 오를 때 느끼지 못했던 느낌과 한편으로는 다시 이곳을 찿을
수있을까 하는 착찹하고, 우울한 생각으로 하산길을 재촉했다.
말이 금강산 관광이지, 실제로 금강산은 22개의 관광 코스가 있으며,
남측 관광객에게 개방된 것은 오늘의 구룡폭포 코스, 만물상코스와 삼일포등 3개코스 정도이고, 그중 한곳인 만물상 코스는 금년 폭우로 등산로가 당분간 폐쇄된 상태라고 했다.
설렘속에 왔으나 금강의 문턱에서 멤돌다 가는듯한 아쉬움이 있지만,
구룡폭포에 적힌 미륵불을 생각 하며, 언젠가는 산사랑하는 이들과
다시 찾을 날도 있으리라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수리중인 목란관 앞
철제 현수교를 비틀거리며 건너 버스에오르자, 미리 도착한 일행들은
다들 비에 젖어 따스한 히터속에 뽀얀 입김을 차장에 쏟아 내며 대부분 자고 있었다.
평소 산행을 하지 않는 분들인데, 금강산의 매력에 그들의 발걸음을
다소 무리해서라도 오르게 한 것이겠지만, 산행후 쏟아지는 피로감은
어쩔수 없는 듯, 버스가 움직여도 다들 조용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온정각와서 늦은 점심후 오후 4시부터 교예관람이 있었는데, 이미 그내용과 예술적 연기는 TV로 많이 소개 되었지만,
직접보니 그현란하고 신기에 가까운 연기 묘기는 묘한 슬픔으로 와
닿았다.
비슷한 스커스를 동구권에서 본적이 있는데,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런류의 공연 문화를 장려하고 있는 것은 웰까?
이른바 스커스를 예술적 연기로 승화 연출하여 예술의 경지로 이끌어 올린차원이 다른 공연이고, 화려한 원색의 유니폼과 앳된 청년, 아가씨의 상기된듯한 볼그레한 볼과 양미간을 찡그리듯 무대용 눈 웃음속에 아련히 피어나는 비애와 우울한 기쁨은 나만의 지나친 감상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향수어린 문화와 동떨어진 세상에서 지나친 상업적 놀이에 길들여진 문화적 배경에서 오는 오만일까,
좌우튼 공연히 끝나고 아쉽게 손흔들며 무대뒤로 멀어지던 모습들이 그저 아련하게 느껴지고, 그들 말처럼 잘있거라 다지 만나자 하면서 서로 힘차게 박수치면서, 실내 관람장을 빠져 나와, 온정각에서 조금 떨어진 온천으로 향했다.
내내 추운 날씨라 온천은 관광객으로
붐볐고,야영왔다는 남녘의 스카웃 학생들은 로비에서 전자오락에 여념이 없고, 나머지 녀석들은 할것 없어 심심한 듯, 로비안을 술래잡기라도 하듯이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폼이 철조망안 관광의 한계를 단적으로보여 주는 듯 했다.
온천은 수백명이 동시에 할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노천탕도 있어 비오는 밤하늘 아래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매일 점심과 저녁은 온정각에서 뷔폐 식이었으며,
북녘 동포들이 재배한 야채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전량 남측에서 수송 공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관광중 희망자에 한해서 1 인당 25달러의 식사대를 지불하면 금강산 호텔 부근 북녘 현지인들이 경영하는 금강원 식당에서 식사를 할수 있다하여 냉큼 집사람과 신청 해서, 온천후 희망자들은 버스 두대에 나누어 타고 깜깜한 밤길을 더덤듯이 올라가서 금강원 식당에 내렸는데, 혹시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부근이 너무 깜깜 하였으나, 안내인은 아무런 불편없이 현관으로 안내해서 들어갔더니, 현관로비를 촟불 두 개가 쑥써러운 듯이 밝히고 있어 순간 놀랍기도 했지만, 애써 감추고 내실로 들어 서니, 다행이 희미한 백열등이 실내를 밝히고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불편없이 생활하고 음식 내놓고 하는 것이 오히려
그간 우리들이 얼마나 밝은 불빛속에서 살아왔는지 역으로 느낄수
있었다.
소찬에 정승껏 차린 저녁 우리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이 있었지만, 여행이란 또다른 문화 풍습을 접하고 경험하는 것이라면, 식사대를 떠나 그들이 말하는 따뜻한 동포애로 성의껏 차려 주는 음식을, 아니 그들의
따뜻한 정성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잠간 이었지만 매사 지불한 돈의 가치에 근거해서 그 손익을 가름하는
가치관에 젖어 잠시 실망했을 뿐, 식탁에서 이들이 얼마만큼 물자와
먹을거리에 곤란을 격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수 있었다.
식사후 현간에서 건네는 흑미 녹차란 것을 커다란 주전자에서
다소 강한 억양으로 권하며 따르는 아가씨, 말속에 한껏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이 베어 있는 듯 했으며, 이곳의 어두침침한 조명도 어느정도 익숙해져 마치 목로주점의 운치를 느낄수가 있었다.
현간 로비에서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작은 체구에 단단해 보이는 북측 안내인에게 인사를 건네자, 식사가 어떠했는지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다.
의레적인 인사가 오가고 이번 여름 폭우피해는 어떠했는지 서로 애기하다, 이곳 관광지 개방로에 철조망이 쳐져 주민생활에 불편이 많을 것 같고, 다들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곳을 한가히 관광 버스나 타고 놀러 다니는 남측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염려스럽고, 미안하기도 하다는것, 그리고 주민들에게 많은 불편이나 제약이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두손을 내저으며 특유의 화술로 전혀 그런 것 염려
하지 마시고 마음껏 관광 하고 가시라는 것과, 아울러 이곳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군사적 요충지이나, 최고 지도자가 내린 용단에 안내원
자신과 이곳 모두가 그이와 똑같은 심심을 갖고 있으니, 전혀 개의치
말고 즐겁게 노시다 가시라는 표정이 실로 진진하고, 이어 자신이 뭔가를 가지고 있다면 서로 나눠 주고 싶다면서 담배을 권할 자세라,
이내 담배는 피지 않는다고 고맙게 사양했다.
실로 그 자세와 말들이 너무 진지하고 진심을 느낄수 있었지만,
이어 뭔가 획일화되고, 일사불란하다는 짜여진 질서를 느낄수 있었다.
최근 남과북이 많은 의제로 때론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는데, 정점에는 결국 어느 한사람의 결정에 좌우된다는 것을 잠간 이었지만, 안내원과의 대화에서 스치듯이 느낄수가 있었다.
어두침침한 금강원 식당을 떠나 다시해상 호텔 밝은 불빛아래로 왔으나
웬지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았다.
이런 밝은 불빛아래서 기름진 음식에 다소 거만한 자세로 호텔 로비에 앉아 3년 계약으로 호텔로비에서 노래 한다는 필리핀 혼성 트리오의 깔깔한 음색의 팝과 서툰 억양의 뽕짝을 들으면서 마시는 맥주맛이 유독 쓴 것은 왜일까.
여행 마지막날 3일차, 오늘은 삼일포로 간다, 어제처럼 온정각에 들러 버스거리로 약 30분 거리인 삼일포로 향했으나,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진창에 오가는 주민들이 이다금 손을 흔들긴 하나, 궃은날 이른바 과업수행 하는 동포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곤 했다.
길 양옆로 좁다랗게 쳐진 철조망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군인들이
서있으나, 그 간격이 예전보다는 덤성 하다고는 하나, 자주 군인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차츰 북녘에서 남녘으로 향하니, 그들의 입장에선 전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철조망 너머 가을 들녘 아직 추수가 긑나지 않은 논에 키작은 잡초 비슷한 벼의 모양을 보고 다들 걱정스런 한마디 씩 한다.
정말 걱정 될 정도로 벼의 키가 작고 벼알 역시 있는둥 없는둥,
안내원은 비료가 없는 탓이라고 하나, 순수 자연산 무공해 쌀이 생산 되겠지만, 아직은 질보다는 양이 우선돼어야 하겠다는 현실이 곳곳에서
보였고, 그들 역시 생산성을 걱정하고 있을 것 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전방을 알리는 전투적인 구호가 곳곳에 보이더니, 주차장에 도착해서 다들 우산을 받쳐들고 들길을 따라 삼일포가 보이는 언덕빼기 전망대에
올라 호소내 한가히 떠있는 와우도와 건너편 송림들로 어우러진 언덕을 내려 호반을 따라 한가히 걷다가, 다시 송림을 따라 반대편 정자가
있는 언덕빼기에 올라 다들 호소를 내려다 보건만, 난 반대편 인적
드문 들판과 옹기종기 모여 집단 취락지를 이루고 있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과연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고 인정하고 다시 더불어 미래를 걱정하는 날이 언제쯤 올까.
이런 문제는 국가를 경영하고 소위 국민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의 몫일까, 이런 저런 생각의 결론은 결국 이곳을 떠나 속초항에 귀향해서 일상에 묻혀버리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오늘 이곳 북녘의 최전방에서 한동안 혼란스럽게 생각해 봄도 당연한 일 인듯싶었다.
온길을 다시 돌아 내려 오는길 이곳에서 보기더문 울창한 대나무 숲이 인상적이었는데, 대나무의 생장 한계선이 대략 충청 이남인 것을 고려하면 이곳이 바닷가라서 기후가 타지에 비해 온화하여 대나무가 대를
이어 자라고 있는 듯 했다.
주차장 부근도 금년 폭우의 피해가 있었는 듯 깃발을 수십개 꽂아놓고, 부근에 작업흥을 돋구는 악대의 우렁찬 행진가 풍의 음악 그리고 이어지는 삽질들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주차장 인근 초소에는 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철조망 보수를 하고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산들 역시 민둥산들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 오는길 다들 눈길은 철조망 너머 차창 밖에 그들이 살아 가는 모습들에 관심이 가는 듯, 나역시 들녘에서 벼베는 아낙들의 모습들이며, 어딘가를 바삐가는 아바이, 소달구지, 군용 트럭에 빽빽이 타고선 담배꼬라 물고 의가양양하게 버스 행열을 향해 손 흔드는 군인들, 사람들이 손에 잡힐 듯이 철조망너머 지척에서 그들은 비로 질퍽한 길을 털털거리며 달리고, 걸어가고, 자전거 타고, 달구지 타고
가고, 우린 차타고 잘포장된 도로를 달리고, 철조망 안에서 서로 평형하게 달리면서 웃고 손흔들면서 마치 사파리 관광처럼 서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나, 그대들 역시 현재 운명이나 삶은 적어도, 지금의 삶과운명을 스스로 결정 짖고 자초 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냥 대충 살고 있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환경과운명이 결정되고, 사회제도라는 틀이 만들어지고, 부근이 조금 시끄럽더니, 오라 가라면서, 말 안들으면 터질 것
같아 싸우라면 싸우고, 욕질 하라하면 하면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처럼 극명한 결과를 갖고, 서로 철조망 사이로 한숨어린 격차를 안고, 서로 마주 보면서 평행선을 그리면서 달려가고 있지만, 이모든 것이
우리와 그대들의 탓만은 아닌 듯, 서로를 감싸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인해, 나는 철조망 안에서 관광버스 타고, 그대들은 철조망 밖에서 달구지 타고 가면서 이렇게 만났을 뿐일리라.
단지 관점에 따라 서로가 철조망 안팎일뿐 그밖이 또한 안일수도
있으리라,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총질을 했지만, 정녕 서로의 영혼을 향해 쏘지는
않았을거라 자위하면서, 언젠가는 이길을 서로 정담을 나누면서 달릴 날이 분명있을거라 믿으며, 늦은 오후 아직도 심술궂은 날씨는 부슬비를 내리는데 다들 설봉호에 승선 아쉽게 장전항을 출항했다.
검푸른 파도가 넘실되는 동해 4시간후면 다시화려한 불빛 아래로 도착 하겠지만, 내내 아쉬움과 뭔가 미래에 대한 확실한 희망을 아직 기대할수 없다는 것이 내내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다.
첫날 관광 대열과 마주친 부모의 당황해 하는 모습과는 상관없이, 낡은 우산속에서 부모보다는 잘차려진 옷 입고 달리는 관광버스 행열에 손 흔들던 온정리의 어린 소년,
추가비용을 내면서라도 부모와 같이 온 남녘의 수많은 어린이들 중, 장래의 희망이 하필 핸드볼 골키퍼였던 소년에게 우리의 미래를
기대하고, 또한 그들이 뭔가를 이루어 나가길 기대해야 할 것 같았다.
후기
한때 그들이 경애하는 민족 민중을 위해 투쟁 하던 사람들이
한줌도 않되는 착취자로 그들이 하늘처럼 받들던 민초에게 다시
칼긑을 겨누고 기아선상에서 헤메는 거지로 만들어 버린 것 인지도
모릅니다.
힘과 권력을 민초에서 나오지만, 이것을 위임받은 이들이 당신들의 하늘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내내 느낄수 있었답니다.
많은 손님에 한 개뿐인 주전자를 들고 이방저방 바삐 물따르던
처녀, 황선생 누군가가 주전자 몇 개사서 보내마 농담처럼 애기
했지만, 주전자 아니 정수기를 갖고 물마시는 우리들도
때론 살기 힘들다 싸우고, 불지르고 난리법석을 치곤 한다오.
이곳에선 개뿔도 아닌 나에게 그곳 최고의 식당에서
제일 좋은 듯한 큼직한 스텐레스 주전자로 아릿다운 그대가 따른
물맛이 최고 였다오.
마음 같아선 졸필이지만 빨리 정리해서,
다함께 여행담을
나누고 싶었지만, 관광내내 추운 날씨애 눈을 맞고
다닌게 화근인 듯, 내내 골골거리며 지냈답니다.
물른 직장에 메여 한가하게 내용을 정리 한다는게
싶지도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