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 초상화」, 최경(崔涇) , 1453년 작품, 견본채색, 167㎝ × 109.5㎝. 1977년 11월 15일자 보물 제613호로 지정. 작가가 최경으로 규명된 이상, 국보로의 승격이 필요하다. 고령신씨 문중 소장.
신숙주(申叔舟, 1417~1475) 변절의 대표적인 인물로 낙인 찍혔으나 유능한 학자, 정치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민족과 민중적 시각에서 그를 본다면 꼭 변절자라고만 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
ⓒ주니어김영사
해동제국기
1471년(성종 2)에 신숙주가 일본에 관한 사정을 정리하여 지도와 함께 묶어 편찬한 책. 조선시대에 대일본 외교상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으며, 지금도 조선전기 한일관계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인용되고 있다.
세종은 중국의 문장가 예겸(倪謙)이 우리나라에 오자, 신숙주와 성삼문을 보내 글을 겨루게 했다. 예겸은 신숙주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고 돌아가 신숙주를 중국의 유명한 문인인 굴원(屈原)에 비겨 칭찬해 마지않았다.
세종은 이렇듯 신숙주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뒤 세종은 그를 집현전 학사의 우두머리인 직제학으로 삼았다. 그의 나이 불과 33세였다. 세종이 “신숙주는 큰일을 맡길 만한 자이다”라고 말한 것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신숙주에게 미처 큰일을 맡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버렸다.
신숙주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