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켤레의 추억
이 혜영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7 년 전, 기억도 아스라해진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대학 졸업을 한 달여 앞둔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우린 처음 만났다. 신년을 맞이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커피숍은 아직 한가로웠는데 그와 난 소위 맞선이라는 형식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의 첫인상은 TV에서 막 빠져 나온 형사 콜롬보 같았다. 남자치고 작고 하얀 얼굴, 날카로워 보이는 눈빛, 금테 안경 그리고 구부정한 어깨에 걸쳐진 큼지막한 바바리코트가 그러했다. 우린 둘 다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어른들에게 등이 떠밀려 나온 나이 든 철부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첫 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와는 달리 나는 이미 열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 만큼 선을 보았다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었다.
만남부터 결혼까지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너무 빨리 진행이 되어 서로를 충분히 알 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난 그저 오직 '이 사람이 좋다.' 라는 막연한 감정만을 안은 채 그렇게 3개월 후 약혼을 했고 또 3개월 후 여름의 초입에서 결혼을 했다.
서툰 신혼생활 중에서도 가장 어설펐던 것은 역시 요리였다. 결혼 전에 엄마가 요리하는 법을 배우라고 성화를 하였을 때 "시집가면 다 할 수 있어."라고 하며 미꾸라지처럼 요리 조리 도망 다니며 배짱을 부린 탓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퇴근에 맞춰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보겠다고 몇 시간을 허덕거려도 막상 식탁에 올라간 것은 제목 미상, 소속 미상, 국적 미상의 무슨 맛인지도 모를 요상한 것들뿐이었다. 그러니 아내의 그럴듯한 저녁을 기대하며 서둘러 돌아와 식탁에 앉은 불쌍한 그의 젓가락은 마땅히 둘 곳을 몰라 한참을 허공에서 맴돌곤 하였다. 더구나 시댁은 짭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음식, 예를 들면 양념한 갈비나 불고기, 생선도 조림을 좋아하는 반면에 우리 집은 양념을 하지 않은 생고기 로스나 생선도 그냥 담백하게 구운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친정 음식 맛에 길들여진 내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솜씨를 부린다고 해도 짭짤 달코무레한 것을 기대했던 그는 당황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부가 그렇듯이 우리에게도 그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아니 같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성격도, 사물을 보는 관점도,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까지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그저 '허허,'하며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데 그 땐 몇 날 며칠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하고 한 달이나 되었을까, 남편의 구두를 산다고 둘이서 명동으로 외출을 하였다. 모처럼 하는 남편과의 데이트로 마음이 설레었다. 더구나 아내라는 위치에서 남편의 것을 처음으로 골라본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기대는 남편이 제화 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깨지고 말았다. 문을 열자마자 미처 내가 구두를 쳐다 볼 사이도 없이 바로 앞에 진열해 놓은 구두를 가리키며 "저것 주세요." 해 버린 남편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입도 한 번 뻥긋 해보지 못한 채 제화점을 나서게 된 것이다. 골이 잔뜩 나서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온 나는 그 길로 돌아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내 뒤를 쫓아오며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말을 좀 해 보라며 당황해 하는 남편을 뒤로 하고 집에 들어서서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구두를 사지?' '도대체 매장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물건을 살 수가 있는 거야?' 하고 시작된 의문이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동안 머릿속을 온갖 생각으로 휘젓다가 그만 우리 결혼으로까지 비약이 되고 말았다. '혹시 나도 구두 고르듯이 한 것 아닌가!' '아무 여자나 그냥 처음 선 보는 여자랑 결혼하는 거 말이야.' '그럼 난 뭐야!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처음 선 본 여자에 불과한 거 아냐!'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서럽고 속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가뜩이나 중매로 만났다는 것이 콤플렉스가 되어 연애를 오래 한 사람들을 보거나, 어쩌다 죽을 만큼 사랑해서 집안의 반대를 이기고 결혼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했었는데 말이다. 마음 깊은 곳에는 ' 과연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기는 한 걸까, 결혼엔 사랑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혹시 그냥 결혼할 나이가 되고 집에서도 등을 떠미니 마지못해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들이 늘 오락가락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나는 가끔씩 아무 일도 아닌 일에 그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해 애 닳아 했다. 중매로 만난 우리가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 건지, 혹은 결혼이라는 게 부모 모시고 아이 낳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니겠어 하며 반은 체념으로 반은 습관으로 사는 게 아닌가 싶어 그를 힐끔 거리며 스스로 불러온 외로움에 빠져들곤 했다.
그밖에도 다른 점은 많았지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이들 교육에 대한 서로의 생각의 차이였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어느덧 나는 수줍던 새댁의 모습에서 한국의 전형적인 극성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의 점수에 목숨을 걸고, 남들한테 뒤질까 봐 아이들을 학원이며 과외로 뺑뺑이 돌리면서 숨 가쁘게 몰아쳐 댔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그만 좀 하지."하고 한숨을 내쉬며 저녁이면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리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들을 안쓰럽게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서 늘 "난 당신이 아이들보다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을 했는데 그 당시 그 말은 아이들 교육에 눈이 멀어있어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던 내게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몽땅 내게만 떠맡기려는 무책임한 말로만 들렸다.
그런 세월이 어느덧 27 년이 흘렀다. 무엇을 위해 또는 무엇이 되라고 그렇게 억척을 부렸는지 이제와 생각하면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이제 부모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다 큰 어른들이 되었다. 그 중 두 딸은 어느덧 남편을 만났던 그 시절의 내 나이가 되어 어디에 있을지 모를 자신의 반쪽을 찾으며 기다리고 있다. 물론 딸들은 나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답게 "어떻게 맞선을 보고 결혼할 수가 있느냐."고 펄쩍 뛰며 맞선이란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골동품쯤으로 여기고 "내 짝은 내 스스로 찾을 테니 엄마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하며 명쾌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분명히 오랜 기간 동안 남편과 내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는 사실은 아킬레스건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사소한 일로 부딪히게 될 때면 혼자 의심하고 혼자 대꾸해가며 많이 외로워하였으니까. 그러나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난 지금은 만남은 곧 인연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 사물, 심지어 스치며 지나게 되는 들꽃마저도 우연히 아니란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부부의 인연은 얼마나 소중한가! 설사 그들이 중매로 만나게 되었건 연애를 하였건 말이다. 불교에서는 오만번의 환생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이 부부라고 하지 않던가! 그 날 그 커피숍에서 안경 밑으로 맑은 눈빛을 반짝이던 그는 분명히 내게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젊은 시절 수도 없이 되 뇌이던 "그가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바보 같은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같이하며 야무지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나에게 묵묵히 앞자리를 내어주고 희생으로 뒤를 돌보아 준 것이 그의 큰 사랑 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이 그저 말간 호수의 수면을 핥고 지나가는 바람이었다면 그의 사랑은 바람과 그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마저도 얼싸안은 깊고 넓은 호수였던 것이다.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언제부턴가 그와 함께 구두를 사러 가면 제화 점 문을 열자마자 그보다 먼저 척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저 구두 좀 보여주세요." 하고 종업원을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고기를 먹게 되면 생고기보다 양념 맛이 진한 갈비나 불고기를 더 찾게 되었다. 이제는 그가 많은 사람 중에 섞여있어도 뒷모습만으로도 찾아낼 수 있고 대문 밖 얽히는 발자국 중에서도 그 소리만으로 알아채고 달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묻지 않는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아니 그가 설령 "사랑은 무슨" 하며 설레 발을 하여도 "에이 사랑하면서 "하고 넉넉히 웃고 되받아 치곤 한다. 처음 만났을 때의 약간은 꺼벙했던 콜롬보가 이젠 흰 머리 성성한 중년이 되었지만 내게는 눈빛이 초롬 하던 젊은 시절의 그 보다 오래 신어 뒤축이 닳아진 구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금의 그가 더욱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렇게 닳아버리게 만든 것이 모두 내 탓인 것 만 같아 "미안해요" 하는 말을 나지막이 혼자 소리로 해 보곤 한다.
오늘도 우리 집 현관엔 뒤축이 닳은 낡은 구두 한 켤레가 놓여져 있다. 요즘처럼 날씨가 쌀쌀한 겨울날 아침이면 나는 어미 닭이 되어 슬며시 그 낡은 구두를 품에 꼭 끌어안고 품어본다. 그래서 내 품에서 묻어나는 온기로 그가 세상의 풍파 한 자락 빗겨갈 수 있는 힘을 얻기를 소원해 본다.
첫댓글 글이 참 좋네요.
세월속에 팽게처진 추억의 보따리를 생각나게 해주는군요!. 모처럼 잊어버린것을 되찾는것 같은 좋은 글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