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olf Walter Richard Heß,
1894년 4월 26일 ~
1987년 8월 17일루돌프 발터 리하르트 헤스.
나치 독일의 부총통으로, 당시
총통의 대리인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부관이었다.
사각턱?나치당 초기부터 히틀러와 함께 한 인물이다. 히틀러가 나치당 호구 였던 시절부터 히틀러와 함께한 인물로, 히틀러의 출세에 힘입어 그 자신도 출세했다. 히틀러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은 어느 누구에도 뒤쳐지지 않았다. 알려진대로 대학은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지식인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뮌헨 폭동 때 참가했다가 체포, 감옥에서 히틀러의 저서 '
나의 투쟁'을 받아 적었으며
사도? 나치의 각종 정책과
인종 탄압에 열렬히 참여했다. 히틀러의 신임을 받으려 전쟁중에 영국으로 가서 강화협상을 벌이려다 체포되었다. 전쟁 초기에 체포된 탓에 전후 전범 재판에서도 다른 대부분의 고위 나치들과 달리 사형을 면했다. 덕분에 '최후의 나치' 취급을 받아
네오 나치들의 숭배대상이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회스(Rudolf Höss)와는 관계가 없다.1894년 알렉산드리아의 부유한 상인 아들로 태어났다. 재외 독일인이지만 아버지
[1]는 독실한 황제빠이며 게르만 민족주의자였다. 당시의 막상 독일 내에서는
빌헬름 2세가 경박함과 잦은 실수로 인해 별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면 좀 묘한 대목. 어머니는 그리스계 독일인이었다. 유년기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순종적이어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일에서 기숙학교를 다니다가 스위스에 상업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평범하게 가업을 물려받을 운명은 아니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아버지의 뜻을 처음으로 거스르고 자원입대했다. 대체로 열심히 용감하게 싸웠는지 1915년엔 하사로 진급하고 1917년엔 소위로 임관한다. 이때 잠시 서부전선에 배속할때 히틀러와 같은부대 상관으로 만난다. 1918년엔 당시 독일에서 엘리트급만 배속되는
육군 항공대로 전속되고 파일럿 훈련을 받았지만 이미 전쟁이 끝물이었던 때라 격추수는 없다.
[2]다른 독일인들처럼 패전으로
멘붕에 빠진데다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가업은 영국의 몰수크리까지 당한다. 때마침 바이마르 공화국은 심심하면 폭동이나 혁명크리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3] 꿈도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뮌헨의 "게르만 고대 연구회"라는
환빠스런 단체에 가입하는데 이 단체는 실은 '
툴레 협회'라는 극우 민족성향 반유대주의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4] 이때부터 독일을 재탄생하고 구원할 "총통" 사상에 물들었다. 그나마 안습이던 형편에 조금 숨통이 트여 제대군인 지원으로 아비투어(대입 자격시험)가 면제되고 뮌헨대학에 들어가 경제학과 역사학을 전공신청한다. 여기서 만난 스승이 독일민족의 '레벤스라움(생활공간)'드립의 선구자인 지정학자
카를 하우스호퍼 교수이다. 하우스호퍼 교수의 조교였던 루돌프 헤스는 물론, 히틀러 역시
나의 투쟁에서 동부 생활권 드립을 치는 등 하우스호퍼 교수의 영향을 상당 부분 받았다.
[5]1920년 어느 맥주집에 들렀다가 독일 노동당이라는 지역구 듣듣듣보르잡 군소정당의 '화가' 출신이라는 한 연사가 내뱉은 유대인 좌빨드립 선동질 연설에 감화된다. 급기야 그가 독일 민족의 구원자라고 여기게 된 헤스는 그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물론 그분 또는 이분은 히틀러다. 당시 히틀러는 당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굳히지 못한 유력 인사 수준이었지만, 헤스는
툴레 협회 시절의 인맥을 동원해서 히틀러가 당권을 잡는데 기여했다. 히틀러의 명령으로 돌격대 안에서 "대학생 100인회"도 결성한다. 1923년 맥주집 폭동후엔 체포돼서 란츠베르크 요새에서 히틀러와 수감되는데 다시 간수들의 배려로 히틀러의 바로 옆방을 쓴다. 이때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서 히틀러의 구술을 바탕으로
나의 투쟁이 저술된다.
이런게 가능했던 것은 재판과정 자체도 코메디였기 때문이다. 좌빨들의 폭동과 다른 애국심의 발로였다는 히틀러의 주장에 재판관은
아니 히틀러 선생처럼 애국자가 있다니 하면서 무제한의 변론권을 허용하고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서 듣듣듣보잡 에서 일약 전국구급 네임밸류 난동꾼으로 출세(?)한다. 히틀러의 형량도 6개월뒤에 석방이 가능한 5년금고(헤스는 18개월)이었고 노역도 없고 평상복을 입고 교도소내에서 돌아다니는것도 자유였다. 간수들도 깍듯하게 독립투사 대하듯하고 접견도 무제한. 히틀러의 후원자들이 충성심을 보이려고 매일 얼굴도장 찍으러 드나들었고 감방안에도 꽃이나 가구가 꾸며질 정도였다.
남미 마약왕의 호화 수감생활의 원조사실 헤스는 히틀러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을 과시하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절 이후의 별다른 업적이나 공로랄 것은 없다. 히틀러가 그랬듯 헤스 역시 행정이나 사무에 대해선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재능이나 군사적 재능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젊은 시절의 공로로 인해 의전상 서열이 나치당 인사 중 2,3위였을 뿐이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뮌헨 당사의 '총통 대리인'으로 임명되지만 히틀러와 지리적으로 멀어지면서 권력은 한층 더 멀어졌다. 헤스를 대신하여 급부상한 인재가 본래 헤스의 비서였던
마르틴 보어만였다. 심지어는 히틀러 역시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후계자인 괴링에게 유고가 생길 시 그 권한은 헤스에게 계승될 거라고 선언했었지만, 실제로는 괴링을 따로 불러 괴링이 총통만 되면 헤스를 축출해버리라고 했다고 한다.
안습히틀러의 부관이자 다음다음 3순위 후계자이자
총통 대리인[6]으로 서열은 높았지만 보어만의 급부상으로 가뜩이나 없던 권력은 안습이 되간다. 다른 나치 고위 인사들은 물론 과거의 부하였던 보어만에게도 완전히 무시당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어졌다. 이에 한번 튀어보고자 전쟁초기에는 45살이나 드신
총통의 대리인께서 직접 전투기 몰고 참전한다고 히틀러에 졸라대어, 놀란 히틀러가 헤스를 1년간 비행금지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1941년 나치가 영국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원래 영국과의 동맹을 철썩같이 믿었던 헤스는 조급해진다.
[7] 프랑스 전역이 정리되고 영국에 평화제의가 씹히자 히틀러와의 상의도 없이 (스승 하우스호퍼를 통해) 포르투갈에서 영국 외교관과 접선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헤스가 미쳤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헤스를 엄중히 감시할걸 명령한다.
결국 메서슈미트기를 한대 훔친다음 개조해서 부관에게만 알리고(부관은 이일로 수용소행) 1941년 5월
영국으로 평화협정을 하러 간다고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영국군에게
스코틀랜드에서 잡혀서 억류당했다.
[8] 물론 아무도 안 시킨 짓이었다. 얼마나 황당했던지 나치 측에서도
그 놈은 원래 미친 놈이다라며 변명했을 정도. 독일 측에서는 그가 독일의 작전 계획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즉 독일의 작전계획이 영국에 어느 정도나 새어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의미에서 심각하게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히틀러는 혹시라도 영국에서 그를 돌려보낼 경우 수용소로 보내거나 즉각 총살시키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후에 밝혀진 설 중 일부는 이렇다. 루돌프 헤스가 갑작스럽게 영국으로 망명한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고위 인사 보좌관이었던
이언 플레밍(
007 시리즈의 저자)이 기획한 작전이었다. 그는 루돌프 헤스가 광적인 미신론자이며
점 보기를 좋아한다는 자료를 보고,
점술가[9]를 매수하여 '당장 영국으로 가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소련과의 전쟁에서 협력을 구하면 돌아와 영웅으로 추대받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게 했고, 루돌프는 그에 홀딱 넘어간 것이다.
영국이 성공한 최대의 스파이 작전 근데 진짜 영독 평화협정 체결했으면 흠좀무한 상황이 벌어질수도[10]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는
소련의 강력한 요구로 영국에서 옮겨져 피고로 출석하게 된다. 당시 헤스는 심각한
기억상실증 증상을 보였으나 가끔식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고 재판을 받아도 된다고 판단되어 결국 법정에 서게 된다. 거의 모든 전쟁 기간 내내 구금되어 있었으므로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로는 처벌이 불가능하여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전쟁 교사죄와 반평화적 범죄를 공모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한편 소련은 헤스도 사형에 처하고자 했으나 이 정도로는 사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다른 연합국 판사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1974년, 감옥 정원의 헤스. 80세.
그렇게 전쟁 후엔
베를린 슈판다우 감옥에서 살게 되었다. 그가 쓰는 모든 글과 편지들은 검열당했으며 가족들의 면회는 한달에 삼십분밖에 허락되지 않았다가 나중엔 한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정작 헤스는 1969년까지 가족 면회도 거부했다. 1970년대엔 이미 죽을 때가 다 됐고 더 이상의 형벌 집행 의미가 없는 그를 풀어줘 가족에게 돌려보내자는 의견이 영국과 미국에서 나왔지만 소련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다른 두 인물인
에리히 레더와
발터 풍크는 50년대에 모두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석방 당시에 중병을 앓고 있어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수년 뒤 둘 다 죽었으므로 굳이 수감생활을 무리하게 지속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죄질이 헤스에 비해서 낮았기 때문에 일찍 풀어준 것이다. 그러나 헤스는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도 93세까지 장수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으므로 건강 문제로 풀어주는 것도 불가능했다.
1985년, 감옥
침대의 헤스. 91세.
결국
1987년 고르바초프 때의
소련에서도 93세라는 헤스의 나이를 근거로 석방에 동의하게 되었으나 바로 그 해 헤스는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된다. 이로써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인물들 중 유일하게 형기를 채운 인물이 되었다. 공식 발표된 사인은 자살. 그의 유족들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헤스는 이미 워낙 나이가 많아 오늘내일 하던 상태였던데다 네오 나치들에게 숭배받는 것 외에는 이미 정치적 영향력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죽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정 죽여야 한다면 암살보다는 공식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려 죽이는 게 훨씬 깔끔했을 것이다. 그의 사망에 대해
실제 헤스는 영국으로 가던 중 폭격으로 사망했고 감옥에 갇힌 헤스는 그의 대리라는 등 별별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헤스의 가족들조차 감옥에 갇힌 헤스의 존재를 인정했음을 고려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
그래도 죽은 뒤에는 교도소를 나와 장례를 치른 다음 교회 묘지에 묻히게 되었는데, 그의 무덤엔 항상
네오 나치들과
스킨헤드로 붐볐다. 물론 정작 생존시 본인은 그들이 자기를 그렇게 숭배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멍청한 놈들"이라 중얼거렸다고 한다.
정당한 나치즘을 왜곡시키는 자들이라고 싫어했다고.
[11] 야이 멍청한 새끼들! 나의 나찌는 그렇지 않아!2005년 바이에른 주에서 단체 참배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으나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
2011년 7월 20일, 네오 나치의 참배를 막으려는 바이에른 주정부의 결정에 따라 헤스의 무덤은 철거되었으며 유해는 다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 화장되어 인근 호수에 뿌려졌다.
#헤스 본인은 상당히 여리고 섬세한 여성적인 사람이라서 친구도 많았고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헤르만 괴링과도 사이가 나빴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도 헤스를 가리켜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고 평했고 아들도 평생 그를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성격 때문에 나치의 인물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히틀러와
동성애 관계라는 추측이 있다. 실제로 히틀러는 헤스를 가리켜
나의 사랑스러운 엠마(여자 이름)라고 불렀고, 당시 여론도 헤스를 가리켜
헤스 부인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그런 소문 때문에 일제 프륄과의 결혼을 서둘렀지만, 결혼후에도 총통에 대한 충성심을 넘어선 해바라기는 여전했다고...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자관계에 대해선 깨끗을 떠나서 별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한편 아직 헤스와 히틀러 사이가 멀어지기전 헤스의 아들 볼프-뤼디거
[12]가 태어나자 히틀러가 대부(代父)가 되주었다.
나치당 간부중에 거의 유일하게 예의바르고 검소하고 청렴해서 국민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았다. 별 권력도 없던 헤스가 의전 서열상 3위에 해당했던 것은 이런 인기 탓도 있었을 듯..
한때 스승이던 하우스호퍼 교수의 아내가 유대인이라 박해를 막아줬고
장검의 밤때 자기 친한 친구가 살생부에 오르자 히틀러에 애걸해서 빼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옆방에서 울기도 했다고...
나치당 인사 중에서도 가장
오컬트에 심취했던 인물이라고도 한다. 점성술, 돌팔이 의학
[13] 프리메이슨-
예수회-국제유대인조직 음모론 떡밥을 철석같이 믿었다.
[14] 심지어 최근에 나온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대한
BBC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사실 약한 정신병이 있던 놈이 점점 악화돼서
최종병신이 되었다는 설을 차용했다. 하지만 재판중에는 시종일관 정신병 있는척하다가 마지막 변론때
나는 아무것도 잘못없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를 시전하면서 최후변론을 한걸봐선 약간 맛이 갔어도 완전히 병에 걸린 상태는 아닌걸로 판단된다.
[15]영국에 구금 된 이후
스스로 잡혀온 똘끼가 가상해서 연합군
정신과 의사들에게 진단을 수 차례 받았고 그 결과 약한 정신적 이상이 있으나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으며 영국과의 동맹 체결에 실패했다는 후유증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실제로 헤스가 잡혀있는 동안에도 발코니에서 투신해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다리만 부러진 일도 있었다.
일설에는
헤르만 괴링과
하인리히 히믈러가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그를 제거했다는 믿기 힘든 얘기가 있다.
[16] 어쨌거나 수감생활 중에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정말 심각한 정신병자가 맞았다면 아무리 전범이라지만 감옥에 가두고 계속 수감생활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전범 재판중 받은 웩슬러 테스트 기준
IQ는 120으로 낮지 않은 편에 속한다.
지옥의 특전대, 한국에서는
암호명 와일드 기스로 나온 소설의 속편 The Thin Blue Line은 바로 이 헤스 구출작전을 다루고 있다. 1편의 주인공인
대령의 형
[17]이 용병들을 이끌고 슈판다우를 급습해서 헤스를 구한다는 스토리. 물론 와일드 기스가 네오 나치인건 아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비밀을 밝히려는 영국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용병을 고용한 것이다. 막상 구출은 성공하지만 헤스는 비밀을 밝히지 않고 스스로 감옥으로 돌아간다. 이 작품 역시 80년대에 영화화되었다.
[18]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일찍 일어난 전쟁"에서는
[19] 독일의 공식적인 밀사로서 영국으로 파견된다. 안습의 실제 역사와 달리 영국 정부에서는 독일과의 전쟁에 대한 염증으로
[20] 헤스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얼마뒤
윈스턴 처칠이 어이없게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21](...) 독일과 강화하고 소련에 전쟁을 선포한다.
강철의 연금술사 극장판인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에서 오리지날 캐릭터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실제 역사대로 히틀러의 측근으로, 툴레의 계획을 위해 알폰스 하이드리히의 로켓연구를 지원해 주지만 중반부에 수틀리자 그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후반부에는 실제 역사대로 뮌헨 폭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된걸로 나온다. 여담이지만 실제 헤스와는 전체적인 굴곡만 가져왔을 뿐 그리 닮지는 않았다.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에서의 루돌프 헤스.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서는 독일의 정부 수반으로 등장한다. 능력치가 좋은 편인데 시간이 지나면 이벤트가 일어나서 영국으로 날아가 사라져버린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영국을 미리 점령하면 된다.
첫댓글 신비주의든 신통으로든 예언을 하게되면 그자의 운명은 최소 무간지옥이고, 혹여 뭔 미래에 태어나도 장애를 심하게 갖고 나게 됩니다. 우주이법인 인과법이지요!
지구의 전쟁은 대부분 영계의 귀신들과 천마 마구니들에 의해 인간을 이용하여 벌어지는 일이라고 아셔야 합니다. 결코 옳지 못한 일을 그들은 과거생들 악연에 의해 전쟁을 일으키도록 꼬시고 조종하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들과 조상님들의 큰전쟁들도 그런 악연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주이법인 인과법으로 그때 죽을 수 밖에 없는 분들은 그리 죽음을 맞아야 하고, 그들은 몸버리고 귀신 영가가 되어 또 다른 복수를 합니다. 이것을 끊어야는데 그 누가 함부로 그리 할 수 있나요?
제생각인데요 히틀러 아메리카대륙의 나치민족 선봉대이고 유럽독일은 제3국 나치독일이고,한반도는 제1국 나치독일이고,글쵸 조선이나 나치나 같은말같아요,히틀러는 유럽과아메리카대륙을 오가던 인물로 보여지고,
유럽독일의 실제지배자는 헬롬빌2세로 보이고,아메리카대륙나치독일 일명조선의 지배자는 히틀러 보여짐.
히틀러가 자살을 꾸미고 남미로 가서 어쨋다드라, 남극 지하기지로 들어가서 ...! 뭐 이런 얘기도 있지만 결국 그도 이젠 그 몸 버렸을 겁니다. 혹자들은 히틀러를 저 니비루의 왕실 아누의 손자로 뱀족의 피를 받은 말루둑의 화신이라고, 사탄이라고도 하더군요!
어쨋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게했던 자들은 극무간지옥행이랍니다. 다시 인간으로 들어오질 못하게 아주 빡센 극무간지옥에서 그 과보를 기약없이 받아야 합니다. 멀고먼 미래에 혹여 인간으로 오드라도 몸이 제대로되질 못하여 거의 아무것도 못하길 끝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불쌍한 지고....!
영취산님 하지만 히틀러의 애국가을 들어면 히틀러노래에서 나치국기는 민족식민지해방을 부르짓는 가사가 나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죠,그리고 미국백악관이 원래 나치왕궁이라는 사실도 요즘 공개되는듯 합니다,
그리고 미국 그랜드 캐년 텍사스을 사하라사막이라고 공개하는것도 나오고,
한반도가 2차대전이후 분단만 생각해도 2차대전도 조작이라서 영취산님의 나찌에 대한생각도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