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스와 김대중>, <롯데 자이언츠 때문에 산다>, <야구의 추억> 등을 쓰고 미 프로야구(MLB)의 전설적인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의 과학>을 번역해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김은식 작가가 지난해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나 현재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이끌고 있는 김성근 감독과의 인터뷰를 <프레시안>에 보내왔습니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지난해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 대해 과감하게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김 감독과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김은식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 인터뷰 원문 전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깨끗한 야구'를 망친 것은 '그들'이었다.
지난 6월 12일, 고양 원더스의 홈구장이기도 한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 그 날 오후 1시부터 원더스와 송원대의 연습경기가 예정되어 있었고, 인터뷰가 시작된 것은 오전 10시30분경 부터였다. 점심식사 시간까지 감안하면, 많은 것을 묻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원더스에 관한 사안을 주로 묻기로 했다.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그리고 지난 해 엄청난 소동 끝에 SK와 결별한 '야신' 김성근이 자리 잡은 새 팀이라는 점 때문에 원더스에 집중되었던 엄청난 관심은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개막되며 한풀 꺾였다. 하지만 원더스는 꾸준히 전진했고, 시즌 전 연습경기 때와 완전히 다른 개막전을, 개막전과 완전히 다른 6차전을, 그리고 6차전과 완전히 다른 13차전을 연출하고 있었다. 고양 원더스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팀이었고, 그 배경에는 역시 김성근이라는 인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즌 전, 고양 원더스에 배정된 48번의 퓨처스리그 교류경기에서 김성근 감독은 20승을 넘겨보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던 그 날 까지 치러진 18경기에서 원더스는 6승 3무 9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됐던 목표치를, 조금 버겁긴 하지만 '가능'의 영역으로 옮겨놓고 있는 실적. 그것에 대해 '야신'은 어떤 희망과 절망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인터뷰는 의도하지 못한 방향으로 접어든 뒤 폭주했다. 김성근 감독은 다소 격앙되어 있었고,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어느 만큼은 그 며칠 전 TV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을 향해 있었다. 무려 9시간이나 그를 앉혀놓고 대담 형식으로 촬영해 2회에 걸쳐 내보냈던 어느 공중파 방송의 특집 프로그램에서 그가 'SK와의 결별 과정'에 대해 토로했던 내용들이 깔끔하게 가위질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 방송을 본 김 감독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의 면전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지면과 화면으로 '입장 곤란해질 이야기'를 올리기 주저하는 언론에 늘 느껴왔던 야속함이 그 방송을 계기로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필자가 그를 찾아간 날은 그 방송이 나온 이틀 뒤였고, 그가 홧술을 마신 다음 날이었다. 그래선지 그는 '너는 어디 들은 것들을 어떻게 쓰나 보자'라고 시험이라도 하듯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필자에게 폭탄을 던졌고, 그것을 삼켜 소화할 자신이 없는 필자는 그대로 세상을 향해 뱉어내기로 했다. 그래서 필자가 그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방식, 즉 김 감독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시나리오처럼 그대로 써내려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글이다. 물론 몇 번의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와 농담, 여담, 혹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것이 분명한 지엽말단의 구어(口語)를 조금씩 덜어냈긴 했다. 물론 또 다른 맥락에서는 의미가 없지 않을, 그 '못다 한 이야기'들 역시 다른 기회와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리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다음은 김 감독과 필자가 나눈 대화의 대강이다. 진한 글씨체가 필자의 질문, 가는 글씨체가 김 감독의 답변이다.
개막전이라든가, TV 중계가 있는 경기라든가, 이목이 많이 모이는 경기 때는 선수들이 조금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더군요. 실책도 많아지고.
음…긴장이라기보다는, 그게 실력이야. 긴장을 했으면 긴장을 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고, 에러(실책)를 했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에러를 하지 않을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것이 모자라니까 긴장을 하고 에러를 하는 거야.
지금도 코치들과 함께 식사를 안 하는 원칙은 계속 지키시는 건가요?
여기 와서는 코치하고 식사 한 두 번? (일본) 고치(高知) 캠프에서 한 번 하고…한국 들어와서 한 번도 없을 걸? 뭐 그러네, 지금은 한 적은 없네.
며칠 전에 두산의 정명원 코치를 만났는데, SK하고 붙어서 진 다음 날이었거든요. 붙은 느낌을 물으니까 농담 섞어서 'SK가 약해진 건 확실한데, 문제는 두산도 함께 약해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허허허…그게 정답이야. 선구자라고 하는 게 왜 선구자냐고. 선구자라는 말이 앞에서 뛰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 선구(先驅)라고 하는 말의 뜻이 말이야. 선구자가 있으면서 뒤에 후발주자가 가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선구자가 없다고, 올해 야구는. 그렇지? 그러니까 전혀 악센트(accent, 높낮이)가 없고. 야구 자체가 앞서 가는 것을 잡으려고 덤벼드는 건데, 지금은 잡을 게 없잖아. 가만있어도 내려오는데 구태여 힘들여서 올라갈 필요도 없고. 지금 (1위부터) 7위까지가 4게임, 5게임차로 가까이 있는 페넌트레이스(정규시즌)는 최악이지. 팬들의 야구 열정은 세계적인지 몰라도, 야구 수준은 낮아졌어.
요즘 프로야구를 보시면 어떤 안타까움 같은 것이 계실 듯합니다. 한국야구를 이끌어가던 패러다임이 극복되는 게 아니라 그냥 무너지고 소멸되는 것에 대한….
물론 있지. 긴장감이 없어. 쉽게 주고, 쉽게 뺏기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그게 연속이야.
혹시 그런 걸 느끼신, 두드러지는 장면 같은 게 있었나요?
매순간 아니야? 매시간마다. 쉽게 가는 것 같아. 몰라, 내가 안에 안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쩌면 나도 안에 있을 때 그런 시합을 했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바깥에서 볼 때는 게임이 너무 쉽게 가. 역대 30년 프로야구에서 이렇게 에러가 많은 해는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거 가지고 스릴이 있어서 좋다고 할 거냐는 거지.
나는 프로라면 실수를 수치스러워해야 한다고 봐. 생각 없이 야구하려면 2군에 있어야지 왜 1군에 있냐고. 그게 8백만, 9백만 관중 시대라는 것에 도취되어 있구나. 그런 건 아니잖아. 관중이 한명이라도 프로는 프로다운 야구해야지. 프로라고 하는 것은 최고의 기술을 보이는 게 프로인데, 그래서 돈 받는데, 안 그래? 아마추어하고는 다른 거야. 아마추어는 에러를 하면 애교라고. 하지만 프로는 에러를 하면 실력이야. 운동장이 나쁘면 나쁜데서 그걸 처리하는 방법을 찾아야지. 운동장 나쁘니까 에러한다는 건, 그건 타협이야. 아마추어나 하는 생각이야.
그런데 그게 지금 야구라고. 그렇지? 에러났으니까 졌습니다. 운동장 땅이 나빠서 야구 못 하겠습니다. 이런 건 문제가 아니라고. 그라운드가 나쁘면 앞으로 뛰어나오면 될 거 아냐. 세 발, 두 발. 왜 발상을 안 바꾸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야구가 긴장감이 없다고. 매력이 없어진다고, 야구 자체가. 내가 볼 때 그런 점이 떨어졌다는 얘기야. 베이스 하나를 호시탐탐 노리지 않는 놈들은 프로가 아니라고.
최근 프로야구에서 찬스 때 대타를 기용했는데 그 타자를 고의사구로 내보내자 당황한다거나, 그 타석 이후의 수비 포메이션이나 다음 타석에서의 타순 같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 마무리투수가 등판하자마자 열댓 개씩 연속으로 볼을 던지는 데도 대응이 늦는 모습 같은 것도 말씀하신대로 긴장이 없는 일면이 아닐까 싶군요.
그런 게 팬들에게 보인다는 것 자체가 틀린 거야. 그거는 소위 말해서 뭐라고 할까. 지금은 당연한 걸 확실하게 못한단 말이야. 그렇지? 지금 당연한 걸 지적받는 거야. 팬들이나 옆에 주위 사람들한테. 그건 프로가 아니지. 그리고 사실 프로는 어려운 걸 당연하게 해야 하는 거야. 어려운 걸. 다이빙캐치를 하면 잘하는 줄 아는데, 다이빙캐치하기 전에 수비위치 잡으면 되는 거잖아. 그 위치를 잡고. 나는 다이빙 캐치하는 것을 잘한다고 하는 그 발상이 틀렸다고 봐. 프로라고 하면 저 볼은 여기 온다. 그래서 여기 서 있어야지, 하고 판단하는 것. 그게 프로지. 프로는 어려운 일을 쉽게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쉬운 걸 어렵게 한다니까. 쉬운 걸.
ⓒ박준수
실제로 올 해 들어 선두 SK를 비롯해서 모든 팀의 수비수들이 예전보다 조금 반응이 느려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외야 직선타구를 수비할 때도 한 발 앞으로 내딛다가 다시 뒤로 물러선다든가 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고요….
평론가들이 하는 말도 흘러가는 말이 많아요. 그렇지? 매스컴들도. 정확히 지적을 하지 못하고. 그리고 지금 보면 기자들이 평론을 하는데, 그 자체가 틀려먹은 거라고. 기자가 과연 전문가인가? 야구의 깊은 내용을 아는가? 그 기자들의 평을 독자들이 보고 야구를 판단하는데, 기자들이 캐치볼은 해봤는가? 캐처(포수)가 어떻게 판단하고 배합하고 사인하는지를 아는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평을 하고, 그런 사람이 텔레비전 나와서 뭐라고 그러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우리나라 자체가 자꾸 그렇게 흘러가는 거야. 그렇지?
이 피처(투수)하고 타자의 승부를 기자들이 아나? 그런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수비야구를 한다, 공격야구를 한다, 어쩌고 하는데, 공격야구의 에버리지(평균)를 뽑아보면 어떻게 돼있는지,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손해보고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지. 스트라이크와 볼에 각각 얼마나 손대고 있는지 따지고 들어가야지. 깊은 곳에 들어가서 공격야구라는 것의 플러스-마이너스를 따지고 들어가야지. 무조건 초구를 치면 공격야구인줄 알아. 그렇게 하면 상대 피처가 얼마나 쉬운데. 5회 갈 거 7회 8회까지 가는데. 이거 3연전 달릴 때 상대방 피처 소모를 줄여주는 건데. 그런 무모한 야구를 왜 하냐고. 대한민국 야구가 그렇게 컨트롤 있는 피처가 몇 명 있다고. 그렇잖아.
또 예를 들어 차우찬이 얻어맞는다고. 왜 깨지는지 지금 고치지 못하잖아, 몇 개월째. 그건 틀린 거 아니야? 선수 자신도 그렇고, 벤치도 그렇고. 다 문제가 있는 거야, 이거. 왜 그런 건지 원인을 찾지도 못하고 있는데? 김태균이 지금 4할 이상 치잖아. 왜 공략 못 하는지, 그거 아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냐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데, 무너뜨릴 수 있는데, 그거. 왜 못 무너뜨리느냐고. 프로가 아니지, 그건 프로가 아니지.
김태균의 4할도 김태균의 완성도가 올라갔다기보다는 투수들이…?
투수들이 '티미'(멍청하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한거지. 강정호 역시 마찬가지고. 잘치고 안치고 문제가 아니고, 그걸 어떻게 무너뜨릴까 하는 노력을 했느냐 하는 거야, 내 얘기는. 과거에 SK가, 내가 있을 때 플러스-마이너스 이십 몇씩 가고('패'보다 '승'이 이십 여개 이상 많은),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그러니까 전부 우리 잡으려고 그랬잖아. 이건 프로의 사람이야.
그러니까 승부세계는 잘난 놈 욕하는 거 필요 없다고. 오기 나면 잡으러 가면 되는 거야. 오기 나면 지지 말면 되는 거야. 그럼 그 방법이 뭐야. 연구하면 되는 거야. 아무리 욕해봤자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그런 거는 특히 스포츠에서 너무 결여돼있지 않나 싶어. 이 팀을 난 이렇게 만들어야지. 이 팀을 이겨야지. 이 팀을 어떻게 해야 끌어내릴 수 있게 되는지, 어디에 잡고 자꾸 가야되는지. 지니까 이긴 팀을 어디 초점 맞춰가야 하는지. 너무나 생각이 가난하지 않나 싶어. 밟힌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2010년 우승했을 때, 방송사, 신문사 들어가니까 전부 다 CEO(최고경영자)들이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 왜 김 감독만 그렇게, SK만 혼자 앞에 가냐고. 전부가 이구동성 그 말을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러면 사장님께서 경쟁하는 기업이 실적이 올라갔다고, 왜 앞서 가느냐고 원망합니까?" 했다고 그러면 "아니지" 한다고. "잡으려고 들어가죠? 추월하려고 하지요? 이게 경쟁 아닙니까?" 했다고. 그러면서 높은 수준으로 가지 않느냐 이거야. 경쟁. "비난해서 내려오라고 해가지고는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해요. 그거 모르세요?" 했다고. 그랬더니 아무 소리 못하더라고, 다들.
야구도 마찬가지라고. 김성근이라 하는 것, SK라 하는 것이 공공의 적이 되니까 전부 잡으러 들어왔어. 야, 이걸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그런데 지금은 그게 없다니까. 선구자가. 선두주자가. SK라고 해봤자 지금 어물어물 이렇게 하고 있거든. 뭐 묘한 것은 없거든. 그래도 7위 8위 안에 있는 거야. 6, 7위 안에. 그러니까 전부 안일하다고. 물론 열심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볼 때는 더 할 수 있지 않느냐…이런 대목이 더 많다고.
투수가 퀵모션(누상에 주자를 둔 상황에서 투수가 투구 동작을 재빠르게 하는 것을 일컫는 말. '퀵모션'은 일본식 야구 용어로 영어로는 '슬라이드 스텝'(slide step)이라고 한다) 빠르다. 하지만 퀵(모션) 빠르면 못 뛰느냐 이거야. 그 타이밍에서 뭐를 보고 뛰어야 되는지, 예를 들어서 어깨가지고 움직였다든지, 2루 보는 것 보고 스타트 했다거나. 그러면 다음에 다시 할 때는 어느 부분을 보면 폼이 달라지는지, 그걸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느냐는 거야. 모든 것이 안 되면 안 되는 걸로 끝나는가. 빨라졌다 어찌되었다. 이게 끝이구나. 그러니까 기술 안 늘지. 안 늘지. 이런 경쟁이 진정한 프로다. 그 경쟁이 없다고 지금.
전에 어느 방송에서 감독님이 이만수 포수 사인을 읽은 경험에 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전 OB 시절에 삼성하고 붙을 때 이만수 포수 팔뚝 근육의 움직임을 보고 사인을 읽었다고. 저도 예전에 태평양에서 뛰었던 김동기 포수를 만났는데, 선동열한테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었냐고 했더니 글러브 안에서 변화구하고 직구 그립 잡을 때 팔뚝 근육의 모양이 달라지는 걸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러니까 이런 거는 우리가 여기 이렇게 보잖아. (직접 그립을 잡으며 팔뚝 근육 모양의 변화를 보여주며) 1cm를 보느냐 이거야. 이, 이 차이라고, 이 점. 그렇지? 벤치에서 거리가 얼마냐고, 마운드까지가. 자세히 봐야지. 그러니까 내가 들락날락할 틈이 없다니까. 자세히 보고 뭔가 변화가 있는지 봐야 하니까. 투수 같으면, (공을 던질 때의 높고 낮은 팔의 각도를 보여주며) 예를 들어서 여기에서 던진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 아, 바꿀 타이밍이구나 싶은 거지. 지친 것 같구나 싶어. 그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벤치하고 '앗, 바꿔야 한다' 하는 벤치하고는 천지차이라고.
그러니까 뭐냐면 느낌이, 감성이 예민하지 않으면 안 돼. 특히, 프로야구 이 승부세계는 느낌이 강해야 되는 거야. 김동기가 그걸 봤다면, 그건 필요성이 있으니까 본거야. 보통 때는 안 된다는 거야. 선동열이 볼이 빨라. 볼 빠르면 대처해야 해. 이거 어떻게 하냐하는 것과, 볼 빨라서 우린 포기한다는 것, 이게 차이가 난다고. 승부라는 거 자체가 재미없다고. 모든 감동이라고 하는 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이기는 게 감동이야. 그게 팬들이 원하는 거고. 강자만 이기면 팬들이 야구장 안 온다고. 그렇지? 그 쾌감으로 오는 거야. 그게 팬들의 스트레스 해소야.
김동기 포수한테 제가 '그걸 캐치(포착)를 했는데, 동료타자들한테도 그걸 알려줬으면 좋지 않았겠느냐' 라고 했더니….
아니야. 그건 절대 가르쳐주면 안 돼.
한두 명한테 가르쳐 주었는데, 그 친구들은 그걸 잘 못 하기도 했고…또 그것도 자기 '영업비밀' 이라서, 널리 알려주다 보면 투수한테까지 소문이 날 수도 있고 해서 안 했다더군요.
그럼, 그건 당연하지. 원래 프로라고 하는 거는 인색한 것 같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한테 주는 게 아니야. 주는 거 아니라고 절대로. 동업자이면서도 라이벌인데. 9명 다 줘버리면 자기가 존재가치가 없는데, 당연하지 그거. 내가 요새 이런 말을 하지만, 떠났으니까 얘기지 있었으면 이런 얘기 안하지. 그러니까 프로라는 거는 남의 것을 보고 얼마나 배우고 하는가 하는 그 순수함이라고. 그런데 예를 들면 어느 팀 감독이 어느 코치를 김성근 사단이라서 안 쓴다고 했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바보 아닌가 싶어.
얘기가 나와서 말씀인데요, 감독님 SK에서 나오시고 김성근 사단이라 불리던 코치들, 계형철, 이광길…이렇게 '김성근 사단'으로 불리던 분들도 오라고 부르셨는데, 안 왔잖아요.
어디로?
여기 원더스로 말입니다. 왜 안 왔는지 혹시 얘기 들으셨나요?
어? 아니. 글쎄, 자기네들도 나한테 이제는 그동안 너무 신세졌다고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거겠지 뭐. 제일 중요한 거는 여긴 보수도 적고, 프로에 가면 대우가 좋으니까…좋은 데는 가야지. 나도 올 데 갈 데 없으면 여기 오라는 얘기였지. 신경식이나 김광수한테 갈 데 있냐고 하니까 없데. 그럼 와라. 갈 데 없으면 오라고.
얼마 전에 이광길 코치 만났거든요. 만나가지고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그 코치분들이 그 때 모여서 의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의논을 하고, 지금 시점에서 (원더스) 오면 감독님에 대해서 자기사람만 챙긴다는 편협한 이미지가 그려질 가능성, 우려가 많다….
걔네들 생각이 짧은 거야. 짧은 거야. 여기서 분명하게 해야 하는 건, '김성근 사단'이라고 하는 건 없어. 내가 데리고 있으면 그 역할을 하는 거 아냐? 이건 분명하게 해놓아야 돼. 내가 이 파트 저 파트 필요하니까 데리고 들어와서 써. 이광길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내가 써먹어야 하고 계형철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이용해야 돼. 그렇지? 그건 조직의 힘으로 내가 컨트롤 하는 거야. 수비, 이런 부분 필요하니까 이광길이 필요한 거야. 전체를 봐서 이광길이 필요하고 이런 건 아니라고. 그건 아니라고. 내가 광길이한테 이 말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몰라도, 지금이니까 필요하지 싶지, 또 다른 시점에서 이광길이 뭐가 필요해?
코치분들 입장에서는 자꾸 밖에서 감독님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에 대한….
그건 난센스야. 쓸데없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집안 살림은 집에 있는 사람이 잘 알아요. 바깥에선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도 우리 집 살림 모르고 있는데? 돈이 얼마 있고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고 있는데? 와이프가 다 알지.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집에 가서 왈가왈부 할 수도 없잖아. 다 어디로 쓰고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데. 그렇지? 그런데 바깥에 있는 사람이 김성근 집 뭐라 뭐라 비난을 해봐야 뭐하냐고. 알지도 못하는데. 내가 고양 원더스에서 코치를 쓴다고 할 때 왜 쓰고 어떻게 쓰는가를 아느냐 이거야. 모르잖아. 후쿠하라(미네오 수비코치)가 있다고 치면, 후쿠하라는 어떤 단계에서 써야 살 수 있는 거야. 후쿠하라가 필요 없는 단계가 되면 필요 없는 거고. 이 단계로 가면 후쿠하라 필요하고. 내가 그 생각을 안 하냐 이거야. 다 생각하지. 그러니까 사단이 아니라니까. 이거는. 응? 하나의 기업으로 볼 때 사람이 필요성이 있으니까 데리고 들어와 있는 거야. 필요 없을 때 다음으로 신진대사가 되어 가는 거지.
물론 창단할 때부터 했던 얘기긴 하지만, 얼마 전에 허민 구단주가 '프로팀에서 선수 필요하다고 하면 아무 조건 없이 바로 주겠다'고 했더라구요.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조금 다른 입장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주지. 오늘이라도 달라고 하면 주지. 나간다면 좋은 일 아니야? 우리 팀으로서는. 내보내고 나서 우린 다른 애 키우면 되잖아. 간단하잖아.
그럼 일단 어떤 선수가 프로로 갈 가능성이 있을까요? 투수 이희성, 이한별 같은 선수는 계투요원으로 쓸 만 한 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음…이희성은 될 것 같아. SK가 5회까지 노히트로 당했잖아. LG도 당했고. 그러면 쓸 수 있다는 얘기지. 거기다가 왼손이니까. 왼손이라고 하는 것이 희소가치가 있잖아.
고바야시(료칸)도 프로팀 가고 싶다는 얘기를 했던데 …
가고 싶고 말고가 아니라, 고바야시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지. 고바야시도 가능성이 있어. 얼마 전 박경완이가 볼 한 번 받아보고 그러더라고. 고바야시가 카도쿠라보다 한 수 위라고. 직구도 힘이 있고, 변화구도 되니까. 문제는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지.
▲ 마운드에 모여 있는 고양 원더스 선수들. ⓒ박준수
그렇다면 선수를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신 건데, 뭐 다른 문제에서라도 허민 구단주하고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은 없으신가요?
음…의견충돌할 일이 없어. 허민 구단주라는 사람이 나를 알아. 나라는 사람을. 자극하지 않아. 내가 알아서 하고 그런 거지. 그리고 뭐 구단주라고 해서 권위 세우고 그런 사람이 아니야. 사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지론인데, (야구는) 사실 감독이고 사장이고 무시될 것이 하나도 없는 세계야. 오로지 결과로, 내용으로 이쪽, 저쪽 노력하고 나가는 거지. 내가 위라거나 아래라거나 하는 그 말 자체가 난센스라고. 가난한 생각이라고.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 나중에 공과를 가리기 위해 떼어내는 걸로 시작하는 거야. 공치사랑 책임소재 때문에. 지금 사장이라는 사람들은 자기위치를 가지고 싶어 해. 자기 스스로 매스컴에서 피알(PR)해야 모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이것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까 우리하고는 시작이 다르다고.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하고는 시작이 다르다고. 나는 SK에서도 김성근으로 유명해지고 그런 생각 하나도 없었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없어. 그냥 야구 하고 있으면 돼. 그걸로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평가한다 뿐이지 나를 PR할 마음 없어.
그런데 제 공을 부각시키고 책임을 피하려다 보니까 문제가 생겨. 김정준(현재 SBS ESPN 해설위원)이 쓴 책보면 그런 게 나오잖아. 윤길현 사건 때 구단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건, 그건 홍보가 무능했다는 이야기라고. 제대로 대응했으면 됐구나. 그런데 안 했구나. 신영철이….
윤길현 사건 때 말씀이시군요….(2008년 6월 15일 SK 와이번스 대 기아 타이거스 경기에서 SK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던 윤길현이 기아의 상대타자 최경환에게 빈볼성 투구를 한 뒤 삼진을 잡고 나서 욕설한 사건)
그 때 윤길현이 때. 야구장에서 생긴 그 정도 일로 왜 우리가 그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하느냔 말이야. 우리는 그것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하고 왔는데, SK는. 그런데도 그런 도에 넘치는 비난과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왜 이놈아들은 가만히 있었느냔 말이야, 사장이랑 단장이.
윤길현이 선배 김재현이 맞았어. 이진영도 맞았고, 또 그 시리즈에서만도 많이 맞았어. 그래서 윤길현이 최경환 몸 쪽으로 공을 던졌어. 왜? 엄연히 야구는 보호하게 돼 있는 거야. 이거는 자기 팀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다보면 그런 게임 할 수도 있는 거야. 그것 가지고 손해 보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
박재홍 사건 때(2009년 4월 23일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8회 초 SK의 채병용 투수가 롯데 조성환 선수의 왼쪽 관자놀이를 맞춘 뒤 8회 말 수비 때 롯데 김일엽 투수가 SK의 박재홍 선수 몸 쪽으로 공을 던진 사건) 그래. 공이 몸 쪽으로 자꾸 오니까 세 발 네 발 앞으로 걸어갔다고. 있을 수 있거든. 안 맞으려고. 옛날에 장훈 씨는 방망이를 일부러 던졌다고. 일부러 저 피처를 향해서 빵 던져버렸다니까. 그리고 '야, 이 젊은 ○○야. 이 ○○가…' 하고 욕했다니까. 내가 여기서 대통령 욕하면 나 잡혀 가나? 아니잖아. 야구장에서 생각나는 대로 욕 하는 거, 이게 그렇게 나쁘냐고. 그렇지? 그걸 자기네들이 다치지 않으려다 보니…SK(구단의) 홍보가 얼마나 무능했느냐 이거야. 이런 생각해본 적이 없잖아.
특히 그 날 채병용이랑 박재홍 사건 이후로 여러 모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영철 사장이 깨끗한 야구, 깨끗한 야구를 나한테 해달라고 했단 말이야. 음. 하지만 사실 깨끗한 야구를 하는 걸 뒤에서 지저분하다고 선동한 게 신영철 사장이고 구단 홍보팀이야. 천하에 나쁜 ○이야. 뭐라고 하냐면, '내가 지나간 자리는 풀도 안 난다'고. 그러면 선수를 보강해줘야 되는 거야. 우리가 어떤 선수들 데리고 야구를 했는지, 그걸 고마운 줄도 모르는구나 싶어. 그렇게 강해진 팀한테, 그런 팀한테 연습을 적게 해달라고. 맞는 이야기가 있냐 이거야. 음? 지금 이만수 연습하는 이야기 들어보니까, 내가 하던 연습으로 돌아가 있다고 하데. 지금. 1시, 2시에 나와서 한다고 하더라고.
안 한다더니 요즘 하더라고요.
물론. 그게 베스트였거든, 그 팀으로서는. 작년에 내가 그만두니까 신영철 사장이 시합당 2000만 원씩 메리트를 걸었다고. 이기라고. 그런데 시합 졌다고 이만수가 그 홍은동 ○○호텔에서 민경삼(단장)이랑 있는 데서 욕먹었다고. 이만수가.
그리고 그 사람들 허위가 너무 많아. 거짓이. 부산에서 박재홍 사건 났던 5월 5일(이날 롯데 선발투수 조정훈은 이날 5회초 박재홍에게 위협구를 던져 주심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그 날 부산에서 롯데한테 이겼다고. 그 때 롯데 팬이 구장에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박재홍이를 8회인가 7회에 빼버렸다고(박재홍은 이날 6회 김재현 선수와 교체됐다).
그런데 관중이 버스 앞으로 쫓아와서 드러눕고 난리가 났어. 그 때 신영철이 내 방에 왔는데, 그 때 내 방에 롯데 유니폼 입은 애들 둘이 들어와 있었어. 야…내가 가만히 보고 있다가 경비원 불러서 얘들 데려가라. 그렇게 내가 지시내리고 있었다니까. 신영철이 아무 말도 없었어. 그리고 선수 이거 어떻게 하냐고, 이거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이건 진짜 틀린 ○이야. 그러면서 깨끗한 야구를 해달라고 그러더라고. 이게 사장이냐 이 얘기지. 옛날 같으면 아…정말 욕 바가지로 했을 거야. 옛날 같으면. 그런데 가만히 참고 있었다고.
그러고 물었어. 우리 아이들 이런 꼴 당하고 있는데 사장 당신 뭐했어요? 문제 생기고 제일 처음으로 부산 원정 오는 건데 롯데에 경비 요청했어요? 안했대. 그럼 KBO에 요청했어요? 안했대. 이게 무슨 사장이냐 이 얘기야. 그렇지? 그 때 느꼈어. 아, 이 사람은 분노하지 않는구나. 롯데 팬들은 그럴 수 있어. 자기 팀 선수가 다쳤으니까. 하지만 SK 사장이면 그렇게 지나치고 위험한 상황에 우리 아이들이 놓이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걱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구나 싶었어. 오히려 그 사람은 그렇게 날 몰아간 거야. 나는 아이들 다칠까 걱정하고 있는데, 선수가 재산인데, 그걸 운영하는 사장이 그걸 걱정하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있을 자격이 없는 거라고. 그리고 곧 인터넷이랑, 신문에서 날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어. 날 몰아대기 시작했다고. 이건 난센스야. 그룹의 이미지를 나빠지게 한 건 그 사람들이라고.
나는 최태원 회장이라든지 SK그룹에는 유감이 없어. 오히려 나를 키워준 거 고맙게 생각해. SK가 나를 다시 불러줬다는 자체가 그래. 하지만 신영철이나 민경삼이나 구단 홍보팀이라든지, 밑에 한둘 … 이 사람들은 최악이라고.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이 사람들이 있는 한 SK는 크게 발전 못 해요. 절대 못 한다고.
▲ 지난 2008년 '빈볼 시비'로 파문을 빚었던 SK 윤길현이 그해 7월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와이번스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에 앞서 기아 덕아웃으로 찾아가 최경환에게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SK 와이번스 제공
제가 그룹 쪽 관계자에게서 따로 들은 바에 따르면 작년 6월 무렵인가요? 감독 재계약에 관한 상당히 구체적인 사인이 그룹 오너로부터 내려왔다고 하던데요. 알고 계셨나요?
음…최태원 회장께서 하셨다, 안하셨다. 글쎄…어쨌든 나는 어느 구단 가서도 오너는 참 좋은 분들 만났다고.
최태원 회장이랑 LG 계실 때 구본무 회장 말씀하시는 건가요? 또 지금 허민 대표랑 ….
음. 그렇지. 두산 때 박용곤 회장님도 그랬고. 참 좋은 분들이었다고. 소탈하고. 야구 좋아하시고. SK도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사장들이 문제다. 사장, 단장. 그들이 중간에서 장난한다고. 이거 문제야.
내가 윤길현이 사건 때 리베라호텔 방에서 사장한테 전화했다고. 그때까지 속수무책으로 3일 째가 되고, 윤길현이는 죽겠다, 죽겠다, 자살하고 싶은 지경이라고 그러고. 그래서 내가 사장한테 그랬어. 내가 한 경기 안 나가겠다고. 그런 말을 할 때는 '아닙니다, 김 감독. 우리가 할게요.' 이래야 되는 거야. 로이스터가 그랬다고. 이런 일에 왜 감독이 나서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사장이 해결 안 해주니까 내가 나섰다고. 그런데 신영철 사장이 바로 '아, 그러실래요?' 그러더라고. 그런 사장이랑은 두말할 게 없더라고. 그럴 때 윗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봤겠냐 싶어. 사장이 어떻게 조치하고 책임졌고, 이런 보고는 자기 위로는 안 했을 거 아냐? 이런 것도 다 몰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어.
나는 그때 광주까지 가려고 했었다고. 윤길현이 사건 해결하려고. 거기까지 생각했다고. 그래서 <스포츠서울>의 어느 기자하고 상의도 했다고. 네 생각은 어떠냐. (광주)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 가지고 혼자 곰곰이 생각하는데 어떻게도 해결이 안 되니 내가 운동장 떠나는 게 낫겠구나. 그러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되겠다 싶었어. 그 전에 구단에서 제스처를 해야 됐는데, 안 했어. 오히려 나한테 몰아가려고 자꾸 시끄럽게 하려고 했다고. 무서운 일이야. 악의가, 보통 악당이 아니구나 싶었어.
처음에는 구단하고…그런 분위기가 아니지 않았습니까?
내가 처음 계약할 때도, 원래 처음에는 2군 감독으로 와달라고 했어. 가려고 했어. 그 때 있던 (일본) 지바 롯데 구단에서도 그러면 가십시오, 했어. 그랬다고.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서 민경삼이 없던 일로 해달라고 전화를 했어. 그 때도 제일 먼저 시작한 게, 감독님 소문이 나쁘다 이거야.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민경삼이 아니라 사장이 직접 나한테 이야기해야 하는 건데, 그런 예의도 없었어.
그런 이야기, 거절이라든지, 지적이라든지,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자기가 직접 눈 보면서 하지 못하면 리더가 아니야. 리더라는 건 어려운 이야기를 똑바로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랬다, 저랬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돼야지. 그런데 안하더라고. 그래서 민경삼이한테 그럼 사장한테 고맙다고 그래라 했다고. 그러니까 그때 비로소 전화하더라고. 비로소. 그러고 보니 롯데한테는 이상하게 되었지. 그래서 그 문제 무산됐다고 그러니까, 그럼 다시 와달라고 하더라고.
그럼 처음 SK 가실 때도 중간에 그런 과정이 있었던 거군요. 한 번에 진행된 게 아니고요.
아니지. 2군 감독이 와달라고 했고, 다시 그 뒤로도 3번 정도 왔어. 그러고도 얘기 오락가락 했지. 이상한 ○들이야. 아주 예의가 없었어. 예컨대 김기태를 한신에 맡겼어. 그런데 필요해지니까 김기태를 또 시즌 중에 데려왔다고. 그러면 한신 구단에도 '죄송합니다. 우리 사정이 이러니까' 하고 설명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놓고 그 구단에 가서 다시 자매결연합시다, 자매 팀 합시다, 했다고. 이미 얘기가 되냐고. 응? 그래놓고 이번에는 다시 김기태를 자이언트에 보냈다고. 이건 있을 수가 없어. 한신에서 자이언트로 보낸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그런데 그거 모른다고.
그리고 일본 고치(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던 해부터 SK 와이번스가 해마다 동계훈련캠프를 차려온 곳. 시코쿠(四國)섬의 작은 도시이며, 주민들이 SK 와이번스의 후원회를 조직해 지원하며 주기적으로 방문해 응원을 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에는 원더스가 캠프를 차렸다)를 그렇게 가도 사장이 도지사실 한 번도 안 찾아갔다고. 5년 동안 10번을 가면서 한 번도. 그게 뭐가 사장이냐 이거야.
고치 사람들이 봄에나 가을이나 꼭 파티를 해줘요. 1인당 1만 엔씩 내 가지고. 유지들이 300명, 400명 모여서, 도지사가 후원회 회장인데, SK가 2010년도 우승했을 때 그 사람들이 우승파티 해줬다니까, 사장, 단장이 아니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사장이랑 단장은 와서 뭘 하느냐. 뭐 하루 이틀 자고 간다고. 하지만 뭐 하는 건 없어. 그저 빠찡꼬(パチンコ)나 하면서 놀다 가요.
그런데 애초에 SK랑 계약할 당시에도 조건이 좀 특이했잖아요. 2년이라는 기간도 그렇고, 수석코치 선임권도 구단에 일임했고. 왜 받아들이셨어요?
2년이 아니었어. 처음엔 3년이었어. 3년이었다고. 민경삼이랑 사장이랑 앉고, 나하고. 사장이 '몇 년 하실래요. 3년 하시죠' 했다고. 신영철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고. 단, 조건이 뭐냐면 이만수를 헤드(head)로 해달라고. 그래서 그럼, 그렇게 하시라고 했어. 그래, 하시죠, 그랬다고. 그런데 일주일도 안 되서 민경삼이가 '2년으로 하시죠' 그래. 그래서 내가 '이 자식아 3년이라고 했잖냐'고 하니까 2년 이래. 너희 사장이 분명히 나한테 3년 하시죠,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결국 그것도 틀려지고.
그런데 왜 받아들이셨어요?
음…그때는 이미 떠났잖아. 지바롯데에서 이미 떠난 거잖아. 이미 합의 보고 떠난다고 한 다음에 후쿠오카(福岡) 호텔서 통보받았다고. 그래, 잘 가시라고 그랬다고. 물론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어.
작년 8월 17일, 연말까지만 하고 물러나겠다고 하셨던 날, 기자들 만나기 전에 야구장 밖으로 여러 바퀴 걸으셨다는데,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야구장…이 아니라, 야구장에서 송도신도시까지 걸었다고. 걸으면서, 올해 연말까지만 한다고 하자, 그랬다고.
그렇게 걸으시면서 사퇴할 마음을 굳히는 한 편, 주저되는 것들도 있지 않으셨나요?
많았지. 선수, 코치들도 그렇고. 팬들에게 미안했고. 그래서 내려오더라도 올해는 다 채우고 내려와야지 싶었지.
그런데 왜….
음…그 전날에, 굉장히 사장이 언성 높이고 갔다고.
선수들도 보는 데서였나요?
아니, 감독실이지. 감독실에서. 하지만 복도에서, 밖에서 다 들리지.
뭐라고 하던가요.
휴…몰라. 언성 높이고 갔어. 그 ○○가…뭐라 하고 갔어. 내가 그거 가지고 야구할 사람도 아니고. 그만두어야지 싶었어.
(신영철 사장이 김 감독에게) 이만수 코치에게 감독직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한 그 발언보다도, 사실 그날 감독실에서….
그게 다 복선이지. 그 때도 그랬다고. 이만수를 왜 2군 보냈느냐고. 감독이 왜 코치를 움직이느냐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응? 기가 차잖아. 그래서 단장한테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고 그랬더니 '통보였잖아' 하고 또 고함을 질러. 그래서 코치인사권 이야기냐고 그러니까, '그건 구단 거잖아'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그래? 그럼 끝난 거지. SK에서 끝난 거 아니야?
ⓒ박준수
팬들이 작년에 감독 재계약 촉구 할 때 감독님께서 직접 중단해달라고 부탁하셨고, 그래서 자제가 됐잖아요. 그 뒤에 해임 당하신 뒤에 팬들이 구장 난입해서 말썽이 됐는데, 그런 것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일본에 가 계셨어도 분위기는 대충 아셨잖아요.
알았지. 하지만 내가 떠난 다음이니까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었지. 나서서 뭐 해달라고 하는 건 더 우스운 소리고.
언론 보도를 잘 보지 않으신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 많이 상처가 되셨죠?
아…정말…사실 (박)경완(당시 SK 주전포수)이는 몸 쪽 승부가 별로 없어요. 다른 포수들의 3분의 1쯤 될까? 게다가 윤길현이가 실제로 맞혔다면 또 몰라. 맞힌 것도 아닌데, 야구 지저분하다고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신문, ○○통신…김성근 야구 더럽다고….
2009년이죠?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는 (그해 어린이날 박재홍 빈볼 사건 이후) 대표가 직접 감독님을 비난하는 장문의 칼럼을 쓰기도 했었는데….
7월이었지. 그 매체 자체가 좀 이상해.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내가 비난받는 거는 그럴 수 있는데…내가 청탁 받은 적이 없다고. 뭐 해달라고 하는 거는 다 안 받았다고. 다들…여기도, 저기도…누구누구 어떻게 해달라고 청탁들 하고 받고 하는데, 난 안 받았다고. 그러니까 내가 비난의 대상이 되지. 그런 말 할 수도 없는 거고. 신영철, 민경삼, 홍보…또 다섯 여섯, 이 ○들한테는 화가 나지만, SK 자체는 나쁜 거 없다고. 야구 좋아서 야구했고, 그 야구 할 수 있게 해줬고.
마지막에 떠나실 때, 구단에서도 최대한 예우를 하겠다고 했었는데요.
그래, 얼마를 책정했어. 그리고 그거 위에서 내려온 거 아니고 구단에서 마련한 거라고 했어. 이 정도면 만족하겠지. 이거 거부 못 한다. 구단 내에서 그런 얘기 했다고 하더라고. '만족하겠지'라고. 사람을 어떻게 보나 싶었어. 코치들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처럼 버려졌는데, 그 코치들 두고 나만 돈 챙기고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지. 그래서 갖고 꺼지라고 했어. 그랬더니 민경삼이가 당황해가지고, 그만두시더라도 코치 다 데리고 가겠다고. 됐다. 이미 물이 엎질러졌다. 다시 만날 일도 없고. 야, 너 받아라. 이 ○○야. 더러우니까. 세상에 그런 돈을 받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런데 그거 모른다고. 그런 놈들이었다고. SK 이미지를 나쁘게 한 게 나인가? 걔네들이라고.
그리고 우승했는데, 첫 해는 괌에 갔다고. 두 번째는, 2008년에는 하와이에 갔고. 그런데 세 번째 우승했던 2010년에는 어디로 가느냐고 했더니, 동남아래. 그래서 동남아는 안 되지 않느냐. 거기다가 구단에서 가족은 없다, 선수만이다. 그래서 그건 안 된다. 가족 데려가야지, 당연한 거 아니냐. 그래서 또 옥신각신. 그 때도 신영철이가 나한테 와서 '나 골탕 먹이는 거야? 그러면 재미없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라고.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냐하면, 1인당 상품권200만 원짜리 한 장씩. 얼마나 서글프냐.
경기 시간이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독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김광수 수석코치가 '선발오더'를 정해달라고 왔었고, 김성근 감독의 옛 제자와 팬들이 용감하게 감독실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진지한 이야기가 더 이어지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나머지는 곧 다시 찾아뵙고 여쭙겠다'고 하고는 서둘러 짐을 챙겨 들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졌다.
아 참, 정대현이 롯데 가서 38번('38광땡'. 김성근 감독이 평생 고집해온 등번호다. SK 감독 시절에 이어 고양 원더스에서도 그는 38번을 달고 있다) 달더라고요. 아시죠?
어? 그래? 난 처음 들었는데?
그랬다더라구요.
허허. 그랬어?
인터뷰 중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웃는 표정이, 그 순간 그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허허, 그 녀석…' 민망한 구석이 있는 듯 눈과 입의 절반만 가지고 웃는 쑥스런 웃음이었지만, 혹시 내 아버지가 저런 웃음을 짓게 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일이라면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뒤로 하고 감독실을 나서며, 마음이 무거웠다.
김성근은 열두 번 '잘린' 감독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열두 번의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리지 않기 위해' 야구를 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에 겪었던 열두 번째 해고는 그에게 일종의 패배감을 안긴 듯하다. 그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용납하지 않는 일과, 누군가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 팽팽하게 무게를 겨루는 가운데서 완전히 깔끔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한 편에 대해 분노를, 다른 한 편에 대해 고마움과 미안함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담은 이 글은 연민과 용서, 혹은 거친 반론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는 아마 피해갈 마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칠순의 야구광이 야구장 밖에서마저 감당해야 할, 고된 싸움을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마음이 많이 무겁다.
첫댓글 사장님 나빠요~~
어~~블랑카 오랜만이야..., 밥은 먹고 다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