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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세속화 시대, 성직자 권위주의에 대한 유감
가톨릭 일꾼 신문/2024년 여름호
한상봉
“그분을 보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갔지만,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려와야 했다네!”
조화선 시인의 ‘삭캐오’라는 시다.
가톨릭 신자가 진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수도자와 성직자가 되려고 작심할 때는 늘 더 높은 곳을 향한 갈증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무들처럼 천상을 향해 손을 뻗치고 올라가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복음서가 영광스러운 변모 이야기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정작 그분의 정체를 발견하고서는 다시 산을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 마을에서 그분을 직접 만나야 한다.
그분은 구름 속에도, 천둥 번개 속에도 계시지 않는다. 성당의 높은 첨탑에 갇혀 계시지도 않고, 제대 위에만 앉아 계시지도 않는다. 그분은 미풍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도 계시고, 사람. 그분이 밥 짓는 냄새를 맡고, 그분이 떠주는 밥을 얻어먹어야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거친 이승’을 동반할 수 있다. 엠마오를 지나던 제자들처럼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그분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사제들은 양들의 냄새뿐 아니라 양들을 통해 드러나는 그분의 냄새도 알아차릴 준비를 해야 한다.
복음적 열정에 대한 무관심의 교회화
성직자들의 권위주의는 힘이 너무 오래되었지만 해결의 기미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 진부하고 지루한 주제다. 사제들의 권위주의는 갑작스레 나타난 것도 아니고, 가톨릭 교회의 콘스탄티누스 전환 이후 권력화된 교회 안에서 수시로 출몰하는 유령같은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은수 생활과 수도 전통이 발생하고, 아시시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탁발 수도회도 출현했다. 그렇지만 권위적인 교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제들 개인에게 권위주의 청산을 주문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 전체가 비상한 결단을 통해 구조를 뒤바꿈으로써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 괜스레 사제들에게 죄책감과 자책의 빌미를 던져 주는 것은 오히려 사제 생활을 위축시키고 불편하게 만들 위험조차 있다.
오히려 다른 주문을 사제들에게 하고 싶다. 실상 사제들의 권위주의는 복음적 열정의 상실에서 온다. 프란치스코 교정은 첫 방문지였던 이탈리아 남단 항구 람페두사에서 죽어가는 난민들을 바라보며, “누가 이들을 위해 울어줄 것인가?” 물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세계화를 한탄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복음적 열정에 대한 무관심의 교회화’를 한탄해야 한다. 복음은 사제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동료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다”고 말한 분을 전하고 있다. 그분은 공생활 벽두에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선포된 복음을 전했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각성을 자기 몫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주교와 사제들에게 ’신앙 없음‘과 맡겨진 백성들에 대한 ’직무유기‘를 물을 수 있다. 결국 성직자 권위주의 문제는 ‘복음에 대한 민감성’의 문제다. 복음에 대한 민감성이 부족한 사제들은 ’자기 중심적 태도‘에 머문다. 유아처럼 ’엄마‘이신 ’성모 마리아‘에게 중요한 결정에 대한 처분을 맡기면서 ’아이들처럼 ‘누릴 만한 권리’에 집착한다. 사목 직분이 이들에게는 ‘대장 놀이’를 행하는 일종의 놀이터가 된다. 아니면 기본 직무만 수행하고, 카메라와 오디오 앰프와 식도락과 자동차와 골프 등 취미 생활에 몰두한다. 이 문제를 적절히 깨우쳐 준 사람이 교종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사실상 교회 권위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람이 바닥의 마음으로 복음을 다시 일깨우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강론과 강연, 교황 권고를 통해 주교와 사제들에 대한 질타를 아끼지 않았지만, 수도자와 평신도들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자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성직자들이야말로 먼저 복음의 진실을 알아듣고 백성을 돌봐야 할 일차적 직무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부산교구 가톨릭 대학에서 나온 책자에는 사제를 ‘교회의 심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심장이 상하고서야 몸(교회)이 온전할 리 없다.
가난한 그리스도, 가난한 교황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이 누구에게나 복음福音은 아니다. 때로 부자들에게는 불길하고 나쁜 소식(凶音)이 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교황 즉위로 인해 좌불안석할 만한 고위 성직자들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아니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던 사제들에게도 프란치스코 교정은 그 자체로 사죄 생활에 대한 도전이 된다. “좋은 저녁입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고서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10만명의 신자들에게 처음으로 한 발언이다. 교종은 자신의 교황명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로 정했으며,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그동안 세계인들에게 보여주었다.
2014년 8월에는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종교 지도자에 대한 신선한 감흥을 전해주고, 교회 개혁에 대한 의망을 안겨주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즉위하면서 자신의 문장에 ‘자비로이 부르시어’라고 적었는데. 그분이 뒤이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한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가장 기억한 말은, 브라질 상파울로 명예 주교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입을 맞추며 했던 한마디 말이다.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 교종은 가난한 자를 기억할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로 살기로 작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청빈한 삶은 그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세상에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 즉위 이후 맞이한 첫 목요일에는 로마 근교의 청소년 교정 시설인 ‘카살 델 마르모’ 소년원을 찾아가 세족례를 행했다. 교종은 이 자리에서 가련한 소년뿐 아니라 소녀와 무슬림에게도 세족례를 행했다. 과거 교황들은 도심의 대성당에서 남성들의 발을 씻어 주었으며 그 대부분이 사지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행보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아예 교황 관저에서 지내기를 거부하고 콘클라베 기간부터 묶고 있던 바티칸 ‘카사 산타 마리아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교종은 다른 사제들과 공동으로 지내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예수회라는 수도회 출신인 교종에게 사제들의 공동체 생활은 낯설지 않다. 이러한 교종의 모습은 기존 가톨릭 교회 고위 성직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교종이 이처럼 청빈을 선택하면, 지역 교회 주교나 고위 성직자들이 호사를 누리기는 매우 껄끄럽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주님으로 고백해 왔던 예수처럼 적빈赤貧으로 살기는 어렵다고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검소하고 단순한 삶이란 누구나 가능하지만, 그동안 주교와 고의 성직자들이 짐짓 회피해 왔던 성덕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죄의 전환 이후로 지난 2천년 동안 신앙은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 안에서 수식어에 지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Pope’를 우리 말로 교황이라고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실 예수의 제자 측은 어떤 이유에서도 황제 권력과 비등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황을 중국에서는 교종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법왕이라고 부르다가, 천황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의미로 지금은 교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교황이라 부른다. 교회 용어 사전에는 교종이란 호칭도 허용하고 있으나 상용되지 않는다. 교황은 봉건 군주제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교계 제도와 교회법에 비추어 보면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 이후에 교황직이 ‘권력’이기보다 ‘봉사 직무’로 해석되면서 분도 출판사에서 출간된 일부 서적에서 번역가 정한교 등이 1790년대부터 줄곧 교종이라는 표현을 일부러 써 왔다. 그러나 최근 20여 년간 다시 교황이란 호칭이 일반화되었다. 교회 직무가 권력이 될 때 그들의 눈앞에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가난한 이들은 증발해 버리기 쉽다. 교회 직무는 봉사이며 당연히 이 봉사의 대상으로 가난한 이들이 우선적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사실상 가난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대한 봉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복음 선포의 본질적 측면이다.
가난한 그리스도, 우리의 친구이며 연인이 된 하느님
그래서 한국 여자 수도회 장상 연합회가 한때 몇 차례의 총회를 거쳐 ‘신비와 예언의 통합’을 결의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의정부 교구에서 새로운 10년의 좌표를 제시했던 이기헌 주교가,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과 방안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복음의 기쁨을 사는 삶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그리고 하느님 나라 선포 등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셨다”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 백성은 이 세 가지 핵심을 삶의 방향으로 삼아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사실 신앙과 실천은 둘이 아니며, 참된 신앙은 실천을 낳기 마련이다. 믿지 않고서야 행할 수 없으며 행하지 않고서야 믿음일 수 없다. 그러나 이 믿음은 사적 개인 안에서만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며, 교회 안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확인되어야 한다.이 신앙이 근거를 찾기 위해서, 우리 먼저 예수그리스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굳이 ‘혁명가’라고 부를 필요도 없고, 시대 조류에 맞춰 ‘현자’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사실 그분은 ‘민중적 지혜를 통해 혁명으로 나간 사람’이다. 여기서 혁명이란 관습적 가치를 거슬러 세상과 다른 가치를 사회 구조와 일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맘몬(돈) 이라는 우상에 맞서는 영적 투쟁이겠다. 그분이 그저 단순히 현자로만 살았다면,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또한 그분을 혁명가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분에게서 어떤 권력을 향한 의지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가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였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대 종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사제는 본인의 의식과 상관없이 신분상 ‘권력’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간의 마음을 매만졌다. 그를 만난 사람은 그 눈길만으로도 치유되었음을 나는 ‘믿는다’. 양은 제 목자의 음성을 기억하는 법이라고 한 그분의 말씀이 옳다. 그분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들은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 기억이 훗날 그리스도교 신앙을 낳았다. 그러나 예수는 치유자의 머물지 않고 상처에 본질로 전진했으며, 그래서 그는 마지막 수난의 길로 예루살렘 성전을 향했으며, 거기서 무려함으로 무력한 자들을 섬기는 최고의 형식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사랑하는 ‘친구’ 평신도 여러분
프란체스코 교종은 2014년 8월 14일 방한 첫 날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강당 한국 주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6일 꽃동네 영성원에서 열린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는,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주교들을 ‘형제’라고 부른 이유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주교 직무를 수행하는 자임을 확인하려는 것이고, 이 주교 직무의 핵심은 복음서의 표현대로 “평신도)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임을 한국 주교들에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과연 주교들과 주교의 사목대리인인 사제들이, 신자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성직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목숨을 바쳐 자기 백성을 섬겨야 하는 자리이다. 결국 이런 형식으로 형제인 주교와 사제들은 유사類似 주님의 자리에서 백성들의 친구가 된다. 여기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영성은 주님에 대한 사랑일뿐 아니라 벗에 대한 사랑이다. 사실상 벗에 대한 사랑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영성이다. 예수는 가난한 백성들의 약점을 잡고 ‘주님’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분은 그저 서명하고 슬픈 눈동자를 가진 이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우리들의 친구로 죽었다. 여기서 우정이 발생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친구일뿐 아니라 연인이 있기를 자청하신다면, 그래서 연인의 눈높이에 자신을 비우고 낮추셨다면, 가장 남루한 모습으로 그처럼 남루한 인간에게 말을 건네고 아파하시고 상처를 매만져 주셨다면, 마침내 연인을 위해 목숨을 내주셨다면, 그 사랑의 깊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그 한가운데서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전달하시는 매체가 예수였음을 발견한다. 그러니 예수 안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을 볼 도리가 없다. 그런데 예수가 가난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했으니, 가난한 이들 속에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도 하느님을 만나 볼 도리가 없다.
첫댓글 가톨릭 일꾼 2024년 여름호에 게재된 이 글을 읽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사제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읽는 내내 수도승인 저도 같이 들으라는 소리로 들려 얼굴 뜨거워지는 부끄러움을 성찰합니다. 크게는 신부님들을 향한 쓴 소리지만 수도자와 평신도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보편 사제직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모두 주님의 주신 사명을 살아내야할 제자이며 그 길을 닦아야 할 수도자입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평신도 하느님의 백성이기기에. 긴 글이어서 3회로 나누어 올려서 읽는 부담을 덜어드리는 써비스를. 하느님과 교회 사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판 담은 우정의 좋은 글을 써주신 한상봉 이시도르 형제님께 감사와 박수로 응원을 전합니다. /** 상단: 전체파일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