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수필문학상 · 금상 수상작》
에콰도르 미완성 교향곡
박 계 화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았네. 아주 작은 이 세상~~~”
그리움은 몸이 먼저 안다. 기타를 꺼내들고 가슴으로 현을 탄다. 아이들 마음속에도 내가 살아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노래하고 악기로 연주하는지 ‘작은 세상’ 곡이 종일토록 귀에 쟁쟁하다. 코로나 사태로 에콰도르 아이들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갑자기 귀국하게 된 허탈한 마음은 안데스 산맥을 떠돈다. 에콰도르 교향곡은 미완성으로 남고 말 것인가.
40여 년간 교단에서의 열정을 내려놓은 후 ‘봉사와 나눔’의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Koica) 해외봉사단의 문을 두드렸다. “합격입니다.” 서류, 면접, 건강검진의 3차 전형을 통과해 들은 기적 같은 소리였다. 기쁨은 잠시였다. 파견 전 국내연수를 받는 내내 젊은이들로부터 육십 후반 나이로는 세계의 열악한 곳에서 살아내기 어렵다는 우려의 소리를 들었다. 코이카는 왜 60세 이하였던 나이제한을 풀었을까. 팀장이 희망의 말을 건넸다.
“백세시대입니다. 에콰도르에서 선생님의 음악교육 경력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나를 필요로 한다. 아직은 나도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에콰도르의 파견 요청을 받아 든 순간 타는 목마름에 찬 물을 쭉 들이켠 듯 생기가 솟아났다.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의 나라 에콰도르(Ecuador). 지구 반대편의 남미 에콰도르로 30여 시간의 여정을 거쳐 해발 2,850m의 수도 키토(Quito)에 도착했다. 안데스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경이로운 풍광에 압도당했다. 숨쉬기가 쉽지 않았다. 고산증으로 가슴은 벌렁벌렁 뛰고 두통이 심했다. 적응이 빠른 젊은이와 비교하지 말자. 포기는 없다. ‘느려도 괜찮아.’
정규 음악교사로 1년 간 근무할 ‘호세 마리아 벨라스코 이바라(José María Velasco Ibarra)’공립학교에 들어섰다. 450여 명 학생들과 35명의 교사들이 내 존재만으로도 열렬한 환영을 해주었다. 젊은 단원들의 기우대로 에콰도르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한국말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낯선 땅에서 절대고독에 울부짖었다. 지진으로 불안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안전 불감증으로 여권과 현금을 복대로 차고 다녀야 했다. 학교에는 음악교육과정이 없었다. 2학년부터 7학년까지 14학급의 교육과정을 구안하고, 교수학습지도안을 작성하는 일은 못동을 만난 것처럼 버거웠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수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매주 저학년용, 고학년용 확대악보를 손수 그렸다. 정말 고통스러운 일은 부족한 스페인어로 음악수업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살아내야 했기에 치열하게 스페인어를 배웠다.
시나브로 내 스페인어 실력이 늘어감에 따라 아이들도 오선과 음계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계이름으로 흐름 결을 타던 아이들이 한국노래 ‘고향의 봄’을 알게 되었다며 감격해 했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가 때가 되어 깨어나려 애쓰는 그 순간, 밖에서 알을 쪼아주는 어미닭처럼 나는 음악의 끼를 타고난 아이들의 심미안을 건드렸을 뿐이 아닌가. 음악시간이 되면 서로 내 방으로 달려와 악기와 학습 자료를 들고 가는 아이들. 그 뒤를 따르는 내 얼굴에도 희망의 미소가 번져갔다.
어느덧 파견기간 1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돌아가려하니 해놓은 것이 없다는 자성이 일었다. 이제 음악의 꽃을 피우려는 아이들을 두고 이대로 떠나야하는가. 기간을 연장해서 제대로 마무리를 해야 하나. 갈등과 고뇌 중에 충격적인 비보에 접했다.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파라과이 남자단원이 심정지(心停止)로 급사했다는 소식이다. ‘연장은 없다’로 생각이 굳어졌다. 낌새를 눈치 챈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한 목소리로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무엇보다도 눈에 밟히는 건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다. 건강검진 결과 이상 없음을 확인한 코이카 본부도 연장을 원했다.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파견기간이 6개월 연장되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나야할까. 초심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리드믹을 타고난 것 같았다. 어디서든 음악만 나오면 리듬을 타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학교음악축제로 ‘에콰도르 교향곡’을 계획했다. 상상의 세계로 제 1악장은 잉카 후예인 에콰도르의 국민가요 ‘엘 콘도르 파사’ 중심으로, ‘고향의 봄’ 중심의 제 2악장은 대한민국 동요로, 제 3악장은 에콰도르와 한국이 함께하는 ‘작은 세상’으로 구상했다. 아이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음악의 끼를 펼쳐내고자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코이카의 지원비도 받았다. 젊은 코이카 단원도 3명이나 축제를 돕겠다고 나섰다. 신바람이 났다. 아이들 가슴에 에콰도르 국기와 태극기를 새긴 기념 핀을 달아주며 리허설 지휘봉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로 인해 휴교령이 내려지고 에콰도르 코이카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다. 작별인사도 못하고 국경이 봉쇄된 에콰도르를 어렵사리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음악축제를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 마음은 어떠할까. 가슴이 아렸다.
작은 세상이다. 에콰도르 교향곡 완성을 향한 마음으로 월드비전에 후원아동을 신청했다. 에콰도르에는 대상 아동이 없어 엘살바도르 여아 요셀린과 과테말라 남아 다를린을 소개 받았다. 사진 속 아이들 미소가 에콰도르의 멜라니와 루이스를 닮아있다. 어깨동무가 된 기쁜 마음을 담아 스페인어로 편지를 쓴다. 책에서 읽은 시구 하나가 떠오른다.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셀 수도 없으리.’ 코로나가 없어지는 날,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 그리고 에콰도르로 날아가서 이 아이들의 찬란한 태양과 마주하리라.
<수상소감>
아이들과 함께 꿈꾸었던 ‘에콰도르 교향곡.’ 코로나로 인해 미완성이 되어 마음의 빚이 컸다. ‘음악’을 가르치며 삶의 기쁨을 나누었던 에콰도르 아이들에게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도록 희망의 미소를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수상소식은 에콰도르 완성곡을 향한 희망을 다시 꿈꾸게 한다. 수상작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준 연금수필문학에 감사드린다.
<심사평>
필자는 음악 교사로 퇴직 후 코이카(Koica) 해외봉사 단체에 가입해 에콰도르에 파견되어 민간외교 사절단의 임무를 수행한다.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해 에콰도르 음악과 한국의 민요를 합작한 ‘에콰도르교향곡’을 연습하던 중 코로나19로 강제 귀국한 아쉬움을 그렸다. 필자의 성실한 노력과 과정을 꾸밈없이 기술한 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