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2부 제3화 국민지난(國民之亂) 곪은 상처는 시간이 문제일 뿐, 반드시 터진다.
술시말(밤 9시경) 여의섬에 자리한 국민의방 총단은 적막에 잠겨있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석 달밖에 안 남은 천하대전을 준비하는 재야무림의 본산다운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글렀어.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방주가 가출하고 집안일을 돌보지 않다니….
이런 콩가루 집안이 뭐가 되겠어"
염소수염의 사내가 투덜거렸다. 그는 국민의방의 말단 무사다.
"그러게 말이야. 이래서야 어디 싸움 한 번 제대로 해보겠어?
저쪽의 재명공자는 날아다니고 있는데 말이야.
급기야 엊그제는 군세(群勢=지지율)가 뒤집어지기까지 했다는군.
자칫 잘못하면 재명공자에게 지존좌를 헌납하는 꼴을 눈 뜨고 지켜보게 생겼네, 그려."
동료 무사가 말을 받았다.
"다 그놈의 나찰수인지 나찰발인지 때문이야.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더니 원, 주객이 바뀌어도 유분수지.
엉뚱한 작자가 후보가 되는 바람에 이렇게 된거 아니야.
무림의 무자도 모르는 백면서생이 지휘봉을 잡았으니 방이 잘 굴러갈 턱이 있나."
그때 문을 발칵 열어젖히며 구중설자(口中舌子=입속의 혀) 장제원이 들어섰다.
그는 다짜고짜 수하들의 입을 때렸다.
고꾸라지는 수하들을 보며 구중설자는 씩씩거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뭐가 어째. 대전을 앞두고 싸워 이길 궁리는 않고 불평만 털어놓다니.
바로 너희 같은 자들 때문에 우리 방이 지금 이 꼴이 된 거야."
구중설자는 가슴이 타는 듯했다. 벌건 숯덩이를 통째로 삼킨 느낌이 이럴까.
위기다. 자칫하면 재명공자에게 대세를 빼앗기고 만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린가.
자유한국방, 미래통합방 시절의 패배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자며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아온(捲土重來) 여의섬 총단 아니던가.
그 총단의 수하들마저 이 꼴이라니.
재인군 치하 영욕의 5년, 다 죽어가던 방을 기사회생시킨 게 누군가.
나찰수 아니던가. 천신만고 끝에 승기를 잡았건만 그걸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국민공자 이준석이 괘씸했다.
#사람마다 곡절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당금 국민의방엔 안달 난 사내투성이다.
그중 처음은 구중설자 장제원이다. 구중설자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나는 진심이다. 나의 주군 나찰수 윤석열은 "내겐 형님 같고, 아버지 같으신 분"이다.
나를 일러 나찰수의 '문고리 3인방' 중 하나라 하나 참으로 억울한 얘기다.
나머지 두 사람을 나와 함께 묶는 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사람의 진심을 알려면 입이 아니라 발을 봐야 한다.
나의 발은 언제나 나찰수를 향한다.
오죽하면 귀제갈 김종인이나 국민동자 이준석이 내 탓을 했을 때,
나찰수에게 말도 없이 직을 던졌겠나.
백의종군 아니라 흑의종군, 마의종군이라도 좋다.
나는 주군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나는 나찰수의 아내 옥수날심 김건희에게도 진심이다.
그녀가 원하는 노래를 듣고 그녀가 원하는 그림을 보며 그녀가 원하는 말을 한다.
왜 그러겠나. 남들은 모르나 나는 안다.
나의 주모 옥수날심은 강호 최고의 여걸, 세상은 그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
주모가 한 번 일어나 떨치면 천하가 뒤집어 지리라.
나만큼 주군과 주모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도와 달라. 힘을 합쳐야 산다.
미친 듯이 뛰어보지만 되레 역효과만 날 뿐이다.
방내에는 우군보다 적들이 더 많은 듯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단 말인가.
아예 노골적으로 타도 나찰수를 외치는 무리들까지 등장하는 판이다.
설마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미움이 정권 교체, 차기 지존좌에 대한 열망보다 크단 말인가.
아무리 일심, 단편으로 소문나 구중설자라 불리는 나 장제원도 기운이 빠진다.
나의 주군 나찰수는 "나는 결코 구중설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그게 큰 위안이다. 하지만 국민동자까지 저렇게 나오면 위험하다.
이 한 몸 바쳐 주군을 구할 길이 없단 말인가.
하늘이여, 주군을 버리나이까. 국민의방을 버리나이까.
안달 난 사내 둘은 국민동자 이준석이다.
국민의방 방주인 그는 지금 고행길을 걷고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애초 나찰수를 끌어오는 게 아니었다.
조기 입방을 몰아붙이느라 무리수를 둔 게 화근이었다.
나찰수와의 힘겨루기는 버겁고 불편하다.
그의 나찰수는 애초 무림의 무공이 아니다. 관(官)의 무공이다.
본래 관과 무림의 관계는 우물과 바닷물과 같다.
짠물과 민물은 서로 섞이지 않는 게 가장 좋다.
그걸 억지로 섞어 놓으니 매사에 삐걱거릴밖에.
오죽하면 내가 방내 비무 땐 심술(心術)도사 홍준표가 이기길 바랐으랴.
그랬다면 만사여의, 지금처럼 내가 방내 입지를 놓고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하기야 어디 나찰수뿐이랴.
그의 아내 옥수날심과의 첫 단추도 잘못 끼워졌다.
첫 만남에서 "자유분방한 강호의 여걸보다는 요조숙녀를 좋아한다"는 말을 왜 했단 말인가.
말이 입 밖에 나간 뒤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를 쳐다보는 옥수날심의 눈매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때 그날 그 자리, 서초골 공공가(公共家=아파트)의 악몽은
되물릴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 물리고 싶은 심경이다.
그 바람에 아내의 말이라면 껌벅 넘어간다는 나찰수와의 관계가 더 껄끄러워지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풀 죽을 내가 아니다. 내 이름이 괜히 국민동자인가.
국민이 들어간 싸움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다.
게다가 방내 싸움이라면 전매 특허다. 자신있다.
나는 온갖 험난한 내부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남았다.
내 좌충우돌관종공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절대 고수일수록 더 상대하기 쉽다.
어차피 나는 잃을 것 없는 청년 무사, 이기면 대박 져도 본전 아닌가.
방내 싸움에서 질 리가 없다.
오죽하면 전 방파였던 바른미래맹의 맹주 손학규가
"국민동자 이준석이라면 치가 떨린다"고 했을까.
지금이 기회다. 내 몸값은 지금이 상한가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강호의 2030 선남선녀들을 끌어올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이미 방의 재정을 장악했다.
공보총괄호법은 400억냥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리다.
방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의 팔할이다.
아무리 무공 실력이 말하는 강호 무림이라 하나 황금공을 당해낼 무공은 없다.
차기 지존좌가 눈앞에 있는 지금, 내 몫을 확실히 약속받아놔야 한다.
최소한 내년에도, 국민의방 방주 자리는 내 몫이어야 한다.
승부수는 던져졌다.
나찰수 일당은 내 구명 초식을 취중작난(作亂)으로 몰아가려 하나 천만의 말씀,
이 한 수야말로 구중설자와 옥수날심을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 비장의 절초가 되리라.
나찰수는 나를 잃으면 모든 걸 잃지만, 나는 아니다.
안달난 사내 셋은 국민교수 김병준이다.
애초 국민동자 이준석에게 빌미를 주는 게 아니었다.
지난번 내방 때 귀제갈 김종인이 뭐랬던가.
그는 국민동자를 "저 꼬마는 깜량이 안 돼"라며 일축했다.
그때 귀제갈은 멀리 보고 있었다.
지존좌는 떼놓은 당상, 그 후가 중요하다고 했다.
"내년에 나찰수가 지존좌에 앉으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여권 무림의회 180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집권하면 180석은 무너지게 돼 있다.
그걸 잘 처리해야 한다.
이리저리 갈라놓되 30석 정도는 국민의방으로 끌고 와야 한다.
그 일을 누가 맡을 것인가. 내가 아니면 그 큰 판을 주도할 사람이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귀제갈이 나찰수와 갈라진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귀제갈은 "지금 나찰수는 그 역할을 백발자 김한길에게 맡기겠다는 것 아닌가?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네"라며 단호히 끊었다.
내가 아니었다. 귀제갈의 심기를 상하게 한 건 백발자 김한길이었다.
귀제갈은 "세간에서 뭐라 하든 나 귀제갈은 김병준, 당신한테는 유감이 없다"라고도 했다.
그날 말미에 귀제갈은 국민동자의 몽니를 예견했다.
"저 꼬마가 내년에 그런 큰 판이 펼쳐질 때 방주 자리를 놓칠까 봐 저리 안달이야.
애 좀 먹을 것이네."
나찰수는 국민동자의 힘을 빼고 싶어한다.
내게 방법을 묻기도 했다.
귀제갈 대신 나를 택한 나찰수다.
뭐라도 힘이 돼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국민동자는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무림언론의 생리도 꿰고 있다.
언제 어떤 초식을 들고 나올지 모른다.
이번에도 취중작난초식을 들고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
잘되면 좋고 아니면 취중 실수로 넘어갈 요량이다.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한다. 국민동자를 품고 가야 한다.
당장 묘수가 없다면 외곽에서 포위하는 게 방법이다.
심술도사 홍준표, 직도(直刀)선생 유승민부터 끌어와야 한다.
무림엔 사석이 없다. 심술도사나 직도선생은 사석이 아니다.
귀제갈 김종인, 무림동자 이준석만 있는 무림을 만들면 안 된다.
손짓 하나, 전통(電通) 한 번이면 된다.
직도선생을 찾아가고 심술도사를 무릎 꿇고 청해야 한다.
절박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 절박감으로 운동장을 넓게 써야 한다.
그 운동장에 홍준표의 청년 공감, 유승민의 경제 재건,
원희룡의 국민 통합이 함께 뛰놀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귀제갈, 국민동자가 작아진다.
작아진 그들이 스스로 운동장을 찾게 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나. 나찰수는 관의 무공을 익힌 자.
좀체 무림의 생리에 적응하지 못한다.
절박감은커녕 자만감을 키우고 있다.
위기다. 이래선 곤란하다.
관의 무공을 벗고 강호의 무공으로 거듭나야 한다.
강할수록 굽히는 게 강호의 법칙이다.
이런 이치를 나찰수에게 어떻게 전하랴.
아무리 내 전공이라 하나 압축 강의에도 한계가 있다.
국민교수의 시름이 깊어졌다.
# 재명공자는 양산박을 꿈꾼다
국민의방이 자중지란에 빠진 그 시각, 재명공자는 재인군에게 밀통(密通)을 넣고 있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하나만 간청드리리다.
통진교주 이석기, 그를 풀어주십시오. 이번 성탄 특사로."
통진교주 이석기가 누군가. 북무림의 지존 마동(魔童) 정은의 호법을 자처하다
그네공주의 철퇴를 맞고 무림옥에 갇힌 자가 아닌가.
재명공자의 계산은 분명했다.
이석기를 풀어내면 첫째, 북무림이 움직일 것이다.
내가 보내는 굴신의 신호를 마동 정은은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정의당의 세력이 내게 올 것이다.
차기 지존좌 쟁투는 이미 패싸움으로 변질된 지 오래,
어설픈 남의 패를 끌어오기보다 내 패를 강화하는 게 첩경이라.
셋째, 민주련을 내 손아귀에 확실히 넣게 된다.
민주련의 재명공자가 아닌, 재명공자의 민주련.
명실상부, 재명공자의 양산박을 완성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