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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86코스 역방향 제2부
원정5리 산돈원안들-원정4리 쌍용마을 입구-지구촌교회-포승어린이집-원정초등학교-포승삼부르네상스아파트-포승작은도서관-도곡초등학교-모아미래도아파트-평택항로268번길-공단농협사거리-삼성도장-포승공단로117번길-동우화인켐 평택공장-이촌교-현대모비스사거리-포승공단로-오수중계펌프장사거리-평택항로-이끌림클래식호텔-IBK기업은행-한국단자공업 평택공장-신당근린공원-평택홍보관-삼아알미늄 포승공장-유성TNS사거리-포승공단순환로-평택항만 동부두 제5정문-평택항만길-평택파출소-평택지방해양수산청-신라철강 평택공장-평택항만 동부두 제6정문-평택세관 보세구역-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평택항마린센터
20240522
1.코스 소개
두루누비에서는 서해랑길 86코스를, 평택과 화성의 경계를 짓는 남양호로 향하는 코스, 산업단지와 농촌마을, 방조제 주변을 걷는 코스라고 소개하며, 관광포인트는,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도량 '수도사', 체육시설이 있는 복합 체육공간 '신당근린공원', 간척지 개답과 농업용수확보를 위해 발안천 하구를 막아 축조된 '남양방조제'라고 안내한다. 그리고 수도사에서는 전통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시점은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 종점은 화성시 우정읍 이화리 이화리종점 버스정류소 맞은편이다. 주요 경로는 평택항 - 1.8Km - 신당근린공원 - 7.0Km - 수도사 - 1.3Km - 남양방조제 4.0Km - 이화리종점 버스정류소이며, 거리 14.1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난도 쉬움이라고 안내한다.
소개 내용 중 수도사는 원효대사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도량은 아니다. 또한 안내트레킹팀을 따라가는 회원들은 제한 시간 때문에 수도사 사찰음식체험관에서 전통 사찰음식을 체험할 여유가 없다. 소개 내용에 빠져 있지만 꼭 탐방해야 할 곳은, 평택홍보관 포승전망대와 수도사 대웅전 뒤의 둘레길인 것 같다. 탐방을 마친 뒤 이 두 곳을 미리 알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다. 포승전망대보다도 수도사 뒤 봉화재 능선길을 걷지 못한 것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혹 알았다고 하면 탐방날 이 두 곳을 탐방하였을까? 장담할 수 없다. 이 탐방객은 안내트레킹팀을 따르기에 제한 시간과 느린 속도 때문에 여러 제약을 받아 아마도 그냥 통과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만약 개별적으로 자유트레킹하는 도보여행자라면 서해랑길 86코스 탐방로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훨씬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서해랑길 86코스를 정방향으로 탐방하면, 평택시(平澤市) 포승읍(浦升邑) 만호리(晩湖里), 도곡리(道谷里), 원정리(遠井里)를 거쳐 남양방조제를 건너 화성시(華城市) 우정읍(雨汀邑) 이화리(梨花里)로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탐방하면, 경기도 평택 지역의 탐방을 마치는 성취감과 아쉬움, 새로운 도시 화성으로 들어가는 설렘과 탐구심을 함께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안내트레킹팀에서 87코스와 86코스 두 개 코스를 역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87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한 뒤 곧바로, 87코스 시작점인 화성시 우정읍 이화리에서 86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하여 남양방조제를 건너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로 넘어가, 원정리와 도곡리 지역을 거쳐 만호리 평택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앞에서 탐방을 마쳤다. 화성시 1개 里와 평택시 3개 里 지역 탐방과 시계(市界)를 통과하는 탐방을 거쳤다. 그렇지만 탐방을 마치는 도시와 탐방을 시작하는 도시의 경계를 넘는 설렘과 새로움의 물결이 고요했다. 아쉽지만 어쩌랴. 트레킹팀 주최측에서 진행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서해랑길 86코스 역방향 탐방을 2부로 나누어 기록한다.
2.평택의 심장, 포승산단지구와 평택항을 걷다
제2부 : 원정5리 산돈원안들 앞에서 서해랑길 86코스 역방향 남은 거리를 탐방한다. 서해랑길 86코스 역방향은 경기둘레길 46코스 역방향과 동행하여 평택항마린센터 앞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와 경기둘레길 46코스 스탬프함이 있는 곳에서 끝난다. 산돈원안들 논에서는 늦은 모내기를 준비하기 위해 트랙터로 써레질을 하고 있다. 산돈원안들 언덕의 아파트들이 솟아 있는 너머는 아산만 바다와 해군 제2함대 사령부, 경기원정지구 산업단지가 있을 것이다. 산돈원안들 농로를 따라 꼬부랑길을 돌아 언덕으로 오른다.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아한 자태로 솟아 있는 파란 지붕의 농가를 지나 오르면 원정4리 쌍용마을 입구이다. 남양만방조제 간척사업으로 1970년대 말 쌍용건설이 대청댐 수몰민들의 정착촌을 만들면서 쌍용(雙龍)마을이 유래되었고, 원정 5리 한일마을은 한일건설이 정착촌을 만들었기에 이런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포승원정길을 따라 원정5리 마을을 통과한다. 마을은 여러 빌라들과 개인주택들이 아담하게 자리한 평화로운 주택가이다. 주택 울타리에 장미꽃들이 붉은 정열을 뿜어내고 있으며, 정형화된 주택 모양을 한 단정한 문패에는 주인 부부 이름과 함께 감나무집 한밭댁, 대천댁 등이 적혀 있어 정감이 있다. 원정5리 버스정류소 옆에, "情 정에 정을 더한 마을, 원정리 경로잔치" 알림막이 펼쳐져 있다. 인정이 넘치는 원정리 마을의 경로잔치 알림막을 살피는 길손의 마음에도 정이 넘친다. 원정리 지명의 '정'은 뜻 情이 아니라 우물 井이다. 목장에서 먼 곳에 우물이 있어 ‘머물’이라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적어 ‘원정(遠井)’이 되었다고 한다. 머물은 현재 원정2리 지역으로 남양만 간척농지 지역이다.
편의점CU와 빨래방을 지나면 예쁘게 꾸며진 뜰을 지닌 아담한 포승어린이집이 있다. 담 너머로 살피지만 잠시 들어가 그곳에서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5월의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부부와 어린이들이 부모와 조부모와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가는 가정의 소중함이 포승어린이집에서 느껴진다. 포승어린이집에서 맞은편 골목길을 따라 원정초등학교로 내려간다. 원정초등학교 담에서는 쥐똥나무 꽃들이 피어나 후덥지근한 향기를 날리고 골목길에는 정석학원, 첼라음악학원이 있다. 활기가 넘친다. 어린이들이 뛰놀고 배우고 또 새로운 것을 더 배우는 학원이 있어 가슴이 달아오른다.
원정초등학교 정문 옆에는 괴태곶봉수공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아니, 괴태곶봉수대라니? 괴태곶봉수대는 이미 지나온 수도사 위쪽 봉화재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공원표석을 읽어 보니,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주기 위해, 이곳에 공원을 세우고 공원이름을 괴태곶봉수공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이 괴태곶봉수대가 있던 곳이 아니고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괴태곶봉수대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괴태곶봉수공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괴태곶(槐台串) 봉수 유적은, 초축 시기는 고려시대이며 조선시대 제5거 직봉노선의 연변 봉수라고 한다. 포승읍 원정리 해발 83m 봉화재 나지막한 구릉 정상에 그 유지가 잘 남아 있어 평택시 향토유적 제1호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쉬운 점은 봉화재 서쪽에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공식적인 허락 없이는 출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마을 주민이 제2함대가 어마어마한 땅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다. 국토방위를 위한 군사지역의 확장과 주민의 생활 주거지의 축소는 군과 주민들의 양보와 타협이 필요해 보인다.
원정초등학교에서 평택항로를 건너 원정11리 지역을 통과한다. 이곳에 다양한 임대 주거지가 있는데, 아마도 포승지구 산업단지에 근무하는 사원들 영향일 것이다. 원정11리 지역을 통과하여 해운대생갈비 제1주차장 옆 언덕의 계단을 내려오면 포승읍 도곡리 지역이다. 포승공단순환로가 동서 방향으로 달린다. 포승공단순환로 동쪽 불당산 아래에 도곡리 자연마을이 위치하고, 서쪽에는 포승지구 산업단지와 해군 제2함대가 자리하며, 그 안쪽 중앙에 도곡리 신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2000년 이후 도곡리는 큰 변화를 겪었다. 동진염전, 삼화염전이 있었던 마을 서쪽 바닷가에 포승국가공단이 입주하고, 공단 안에 대규모 택지가 개발되면서 도시가 확장됐다. 전통 자연마을과 신도시는 어색한 동거관계다. 서로 간의 교류도 거의 없고 문화적으로도 일체감을 갖기가 어렵다."(평택시史) 도곡리 지역을 탐방한 결과 이 지적이 현재 도곡리 지역의 실상임을 알게 되었다.
도곡리(道谷里)는 불당산(佛堂山)에 있는 사찰의 승려들이 도를 닦았던 마을로, 도곡4리 원도곡의 지명이 '되틀·도틀·뒷들'이며, 마을 규모는 60호로 도곡리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그 유래는 옛날 이곳에 수성 최씨 집안에 대지주가 많아 주변의 소작농들이 마을에 와서 타작을 하게 되면서 남은 곡식까지도 모두 털렸다는 의미에서 ‘도틀’, ‘되틀이’라고 하다가 한자로 ‘도곡(道谷)’이 됐다고 한다. 이 도곡리 동쪽 지역과 서해랑길이 지나는 도곡리 서쪽 중앙 지역은 농촌과 도시 지역으로 구분된다. 도곡리 서쪽의 여술공원을 가늠한다. 여술은 원정6리 지역으로, 몇 호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가 한국전쟁 뒤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에 대청댐 수몰민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도곡리의 상징처럼 솟은 포승삼부르네상스아파트 앞을 통과한다. 도곡리 중심지의 풍경을 살피니, 산업단지 배후에 고층빌딩과 주거지, 상가들이 자리하여 생활의 활력이 느껴진다. 서해랑길은 여술로43번길과 여술로44번길을 통과한다. '여술로'는 도곡초교사거리에서 '여술로43번길'과 '여술로44번길'을 동서 방향으로 가른다. 그런데 도곡리의 중심을 이루는 '여술로', '여술공원'의 '여술'이 무슨 뜻일까? 알아보니 여울목이라는 뜻이다.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 이르고, 목은 턱진 곳으로 언덕을 이르니, 여울목은 여울의 턱진 곳, 여울의 언덕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은 예전에 낮은 바닥에 물살이 세찬 곳으로 턱진 곳이었을 것이다. 이곳 도곡6리 여술에 신시가지가 들어서 포승읍에서 번화한 주택가를 형성하고 가장 우아한 생활문화가 조성된 것 같다.
아름다운 도곡근린공원, 그 입구에 자리한 작은도서관, 도곡리 신시가지의 문화적 풍경을 지난다. 도곡초교사거리에서 만난 어린이에게 건너편 건물의 용도를 물으니, '아라뜰' 빌라라고 하며 자신의 학교 도곡초등학교와 주변을 자랑스럽게 알려준다. 거리와 사람들이 활기차게 살아 있고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어린이들의 소리가 요란하고, 학원들이 있고, 공원이 있으며 주택단지들이 솟아 있다. 평택이 자랑스럽게 발전하는 현실과 생활상에 길손도 덩달아 가슴이 뛴다. 평택의 인구는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항아리 모양의 안정된 연령별 형태를 취한다고 한다. 평택 인구의 증가는 팽성읍 대추리 지역에 들어선 세계에서 가장 넓은 곳에 자리한 미군기지와 포승읍 원정리 아산만 해안에 자리한 해군 제2함대, 아산만국가산업단지 원정지구와 포승지구, 그리고 국제항으로 급성장한 평택항 덕분일 것이다. 환경 오염, 인구 증가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하지만 평택 지역에서 슬기롭게 대처하리라고 믿는다. 스쳐지나가는 길손이 얼핏 보기에 평택시 포승읍 도곡리는 아름답다.
도곡리 주택단지는 여술로44번길 남쪽 끝에서 끝나고 평택항로268번길이 동서 방향으로 지난다. 이곳에서부터 평택 산업의 심장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가 펼쳐진다. 서쪽으로 이어가던 서해랑길이 공단농협사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가다가 공업용수 폐수의 수로에 놓인 이촌교를 건너 현대모비스사거리에서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곳에서부터는 포승읍 만호리 지역이다. 서해랑길은 오수중계펌프장사거리에서 다시 남쪽 방향으로 틀어 신당근린공원 입구까지 이어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평택 경제의 발전을 이끄는 아산국가산업단지 포승지구의 기업체들을 눈이 휘둥그레지며 살폈다. 수많은 기업체들 중 눈에 뜬 기업들을 살피면, 전자재료, 압출코팅, 열전사필름 등 제품의 무역&관세 기업인 JPNC, 전기자재&부품 기업인 동우화인켐 평택공장, 글로벌 전문 소재산업으로 전자소재, 연포장, 필름 부문이 주요사업인 율촌화학 포승공장, 커넥터 제조, 자동차 전장, 광통신, 무선통신 부품 생산 기업인 한국단자공업 평택공장 등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고급호텔인 웨스턴베이 마리나 호텔, 이끌림클래식 호텔, 케이트리 호텔 등도 지나왔다.
숨가쁘게 걸어온 포승지구 산업단지에서 잠시 문화공간인 만호리 신당근린공원으로 들어간다. 공원에는 체육 시설과 휴식 공간이 있으며, '포승5지사 순절추모비'가 있다. '지사 순절추모비'라고 하여 일제시대에 항거한 지사(志士)인 줄 알았는데 추모비 뒷면을 읽어보니 6.26 전쟁 중 공산군에 의해 비극적으로 총살된 5분들의 추모비였다. 지사(志士)라는 말이 맞을까? 이런 분들이 모두 지사라고 한다면 지사 추모비는 얼마나 더 늘어날까? 민족의 비극이라는 입장에서 비문의 내용을 읽으며 평화의 세상을 그렸다. 추모비 뒤 미니축구장을 거쳐 신당공원 언덕으로 오르면 평택항홍보관이 있다. 입구에 마스코트인 돌고래 캐릭터 '아라리'가 보인다. '아라리'는 평택항과 자연환경의 어울림을 상징한다고 한다. 2004년에 지상 3층으로 건립된 평택항홍보관은 경기평택항만공사에서 운영하며, 전시관, 영상실, 홍보코너, 시네마홀, 전망대, 휴게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3층 포승전망대에 오르지 못하고 그냥 스쳐온 것이 몹시 아쉽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시간이 남아 있는데도 안내트레킹팀 대장이 전화를 하여 일찍 오라고 보채는 통에 그냥 통과하였다.
신당근린공원을 내려와 유성TNS사거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포승공단순환로를 따라간다. 물류와 철강 유통 기업인 (주)유성TNS 맞은편 숲 뒤가 만호(晩湖)5리 솔개바위마을일 것이며, 옛 평택항이었던 만호포구(솔개바위나루)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 서해랑길 85코스 탐방 뒤 평택항마린센터 14층 전망대에서 이곳을 조망하며 옛 평택항 지역을 어림하였다. 지난 시절 대진(大津)이라 불렸다고도 하는 솔개바위나루를 상상하며, 다음 번에 조금 더 자세히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냥 스쳐간다. 지금은 평택항이 개발되어 아산만의 국제항으로 발돋음하였지만, 만호포구는 통일신라시대 당나라를 오가는 뱃터라고 전해지며, 근대 전후에는 충청도 내포지역과 안중장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그곳을 지난다. 평택항만 동부두 제5정문 앞에서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꺾어 평택항만길 동쪽 보도를 따라 평택항마린센터 방향으로 이어간다. 평택파출소와 평택지방해양수산청을 지나 동쪽으로 넓은 평택세관 보세구역이 있다. 옛 만호포구, 옛 평택항 자리가 분명히 가늠된다. 바닷물이 저곳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아산만 앞쪽으로 평택항만이 축조되고 빛나는 동북아 무역물류의 중심 평택항이 최단기간 내에 세계적 규모의 항만으로 성장하였다.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옆 GS25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구입하여 야외식탁에서 길동무와 함께 캔맥주를 마셨다. 서해랑길 87코스와 86코스 2개 코스를 역탐방한 과정을 되돌아보며 감동했다. 두루누비에서는 2개 코스의 소요시간에 10시간 30분을 주었다. 그런데 안내트레킹팀에서는 1시간 30분을 줄여 9시간을 주었다. 그리고나서도 무엇이 성급한지 더 빨리 도착하라고 전화하여 보챈다. 트레킹의 참맛이 무엇일까? 87코스 화성방조제 제방을 버스로 이동한 사람들은 2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 화성방조제 제방길을 모두 걸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으며 길손은 그들 중 네 사람과 동행했다.
서해랑길 86코스 역방향 탐방을 끝내고 버스에 오르니 오후 5시 4분, 주어진 시각 5시 30분에서 26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평택항홍보관 포승전망대에 올라 전망하였어도 시간적 여유가 남는다. 주어진 제한 시간을 즐기는 방법은 각자가 다르다. 그러기에 제한 시간보다 모두가 빨리 들어오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제한 시간을 준수하는 것은 탐방객뿐만 아니라 트레킹팀 대장에게도 중요하다. 빨리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제한 시간에 맞추어 오는 탐방객이 문제일까? 체력이 좋아 무조건 앞으로 달려 제한 시간보다 엄청나게 빨리 도착한 탐방객이 문제일까? 탐방객 각자가 제한 시간 내에서 탐방을 마음껏 즐기는 게 우선이다. 제한 시간을 지키는데도 보채는 전화질을 받고 눈총 받는 일은 몹시 불쾌하고 짜증이 난다. 트레킹의 즐거움을 위하여 피해야 할 일이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4.69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36분
원정5리 산돈원안들이 펼쳐져 있다. 논에서는 트랙터가 모내기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써레질을 하고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 농로를 따라 왼쪽 언덕의 원정5리 건물들이 있는 곳 앞으로 이어간다.
포승원정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오른쪽 농가 옆에 느티나무가 솟아 있다.
중앙 뒤 파란 지붕의 물류창고 건물 앞을 지나 왼쪽 아래 산돈원안들 농로를 따라오다가 포승원정길로 들어와 바로 아래 느티나무집 앞을 거쳐 언덕을 오르고 있다. 왼쪽 맨 뒤에 괴태산, 그 앞 왼쪽에 수도사가 있을 것이다.
왼쪽은 원정4리 쌍용마을 입구, 오른쪽에 원정5리 마을회관이 있는 것 같다. 서해랑길은 포승원정길을 따라 직진한다.
왼쪽 포승원정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왔다. 오른쪽 지역이 원정4리 쌍용(雙龍) 마을인데, 1970년대 말 쌍용건설이 대청댐 수몰민들의 정착촌을 만들면서 유래됐다고 한다.
포승원정길을 따라 원정5리 마을을 통과한다. 길 좌우로 여러 빌라들과 개인주택들이 자리한 주택가이다.
포승원정길 63호 명패가 아름답다. 감나무집 한밭댁, 대전에서 시집온 여인이어서 한밭댁이라 이르는 듯. 그런데 길을 가면서 살피니 이 동네 문패들은 거의 모두가 이런 문패를 달고 있다.
원정5리 버스정류소 옆에, "情 정에 정을 더한 마을, 원정리 경로잔치" 알림막이 펼쳐져 있다. 원정리(遠井里) 지명은 목장에서 먼 곳에 우물이 있어 ‘머물’, ‘원정遠井’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머물은 현재 원정2리 지역이다.
뒤에 지구촌교회가 있다. 지구천교회 뒤쪽으로 해군 제2함대 사령부와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원정지구가 있을 것이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포승원정길을 따라 계속 이어간다. 왼쪽은 포승원정5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포승원5길 갈림목에서 동북쪽 방향을 바라보면 남양호 남양만들 간척지가 아득하다. 중앙 맨 뒤 지역은 포승읍 원정리와 경계를 이루는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洪原里) 지역일 것이다.
오른쪽 셀프빨래방 뒤에 포승어린이집이 있으며 중앙 뒤의 해정갱 식당에서 골목으로 내려간다.
시립 포승어린이집 건물이 아름답다. 그 뜰도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포승원정길에서 해정개 식당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에 원정초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해정갱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원원정길로 이어진다. 왼쪽에 정석학원과 첼라음악학원이 있다.
원정초등학교 입구에 괴태곶봉수공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괴태곶 봉수는 평택시 포승면 원정리 봉화재(해발83미터)에 있었던 조선시대 군사통신시설이다. 이 봉수는 전남 여천의 돌산도에서 남쪽의 직산 망해산(현 팽성읍 신대리)봉수, 북쪽의 화성군 흥천산봉수를 거쳐 한양 목멱산(남산)까지 연결된 제5로의 직봉이며, 충남 면천 창택산에서 올라오는 간봉이 만나는 봉수였다. 봉수대는 남양만과 아산만 그리고 조선시대 홍원리와 원정리의 홍원목장 중심에 있어 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과 세곡운송 및 목장을 보호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서평택환경위원회는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주기 위해 평택시 및 한국토지공사 아산만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 공원을 세우고 명칭을 괴태곶 봉수공원이라 한다. 2002년 9월 13일 서평택환경
오른쪽에 원정초등학교 정문이 있고, 왼쪽 괴태곶봉수공원 입구에 괴태곶봉수공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제5로 직봉 - 평택 괴태곶 봉수 유적(第5路 直烽 - 平澤 塊台串 烽燧 遺蹟) : 2023년 11월 2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봉화재 일원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烽燧) 유적으로, 봉수는 변방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군사 통신 수단을 말한다. 한반도에서는 1149년(고려 의종 3)에 본격적으로 봉수제가 시작되었으며 1895년(고종 32)까지 운영되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1908년)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 중앙정부는 5개의 직봉(直烽, 변방과 서울을 연결하는 간선로의 주요 봉수) 노선과 23개의 간봉(間烽, 직봉 사이에 있는 보조 봉수) 노선을 운영하였고 전체 노선에는 총 622개의 봉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중 제5로 직봉 노선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도에서 서울 목멱산(남산)에 이르는 노선으로, 왜구의 침입을 감시·방어하고 침입 소식을 한양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직봉 노선이다. 제5로 직봉은 섬이 많은 남·서해안을 따라 연결되어 있으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수군(水軍)의 관장하에 요새처럼 운영되었다. 제5로 직봉 노선에는 61개의 봉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중 평택 괴태곶 봉수 유적은 44번째 봉수이다. 망해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홍천산 봉수로 신호를 전하는 역할을 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25)부터 《속수증보강도지(續修增補江都誌)》(1932)까지 각종 기록에 빠지지 않고 등재되어 있는 제5로 직봉 노선의 주요 봉수이다. 현재 봉화재 서쪽으로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공식적인 허락 없이는 출입이 어렵다.
평택 괴태곶 봉수 유적은 조선시대 제5로 직봉의 44번째 봉수로서 기록상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운영된 봉수이다. 평택 괴태곶 봉수 유적을 포함한 제5로 직봉의 봉수는 조선시대 통신체계를 이해하는데 가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되어 2023년 11월 2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괴태봉수대는 원정리 봉화재의 해발 83m인 나지막한 구릉 정상에 그 유지가 잘 남아 있다. 초축 시기는 고려시대이며 조선시대 제5거 직봉노선의 연변 봉수로 시대를 달리하며 괴태길봉수, 괴태곶봉수, 괴태길곶봉수, 괴태봉봉수 및 행정구역명에서 비롯된 원정리 봉수대(평택시 향토유적 제1호)로 불리고 있다. 입지상 남쪽으로 아산만과 북쪽으로 남양만을 조망하는 최일선 연변봉수로서 조선초기 남쪽의 면천 명해산봉수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화성시 우정면 화산리의 흥천산봉수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중기에는 간봉인 면천 창택곶 봉수와 직봉인 직산 망해산봉수가 이곳에서 합쳐져 다시 화성 흥천산봉수로 신호를 보내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어둠을 뚫고 솟구치는 장엄한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 소망을 가족과 함께 기원하는 해맞이 행사를 이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 두산백과
원정초등학교 담 옆의 원원정길을 따라 나들가게 옆으로 나와 원정초등학교 정문을 살폈다.
오른쪽 뒤에 원정초등학교가 있고, 원정초등학교 정문 왼쪽에 괴태곶봉수공원이 있다. 왼쪽은 평택항로 서쪽 방향이며, 이 길 끝에 해군 제2함대 사령부와 아산만국가산업단지 경기원정지구가 있다.
원정초등학교 앞에서 평택항로 북쪽 보도를 따라가다가 앞쪽 횡단보도를 건너 남쪽 보도로 건너간다. 평택항로 동쪽 방향에는 남양호와 간척농지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평택항로 횡단보도를 건너 평택항로 남쪽 보도에서 왼쪽 우리문구 앞으로 이어간다.
맨 왼쪽 원정초등학교 앞에서 오른쪽 원정목양교회 앞을 거쳐 평택항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평택항로 남쪽 보도에서 우리문구 앞 평택항로 지선으로 들어오면 다양한 임대 주거지가 나온다. 원정11리 지역이다.
다양한 종류의 임대 주거지를 지나 평택항로 지선을 따라오면 해운대생갈비 주차장이 나온다. 중앙의 계단길로 내려간다.
해운대생갈비집 앞쪽에 나무계단길을 따라 내려오면 포승읍 도곡리 지역이며 포승공단로가 나온다. 앞쪽에 도곡리 여술공원이 있을 것이고 맨 끝에 포승읍 원정리 번제마을과 평택국제자동차부두가 있을 것이다. 서해랑길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번제는 머물(원정) 남쪽 해군제2함대사령부로 들어가는 입구 부근에 있는 마을이다. 해군제2함대사령부가 주둔하면서 마을의 삼분의 일이 잘려나갔다. 번제는 1914년 바닷물이 들어와 넓은 호수를 이룬다고 해서 번호(藩湖), 이곳에 제방을 쌓았다고 해서 번제로 불리다가 지명으로 굳어졌다. - 평택시史
포승공단로 북쪽 보도를 따라가다가 앞쪽 횡단보도를 건너 남쪽 보도로 넘어간다. 포승삼부르네상스아파트가 솟아 있다.
포승삼부르네상스2단지아파트 버스정류장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여술로43번길을 따라 도곡리 중심지를 통과한다.
여술로43번길 도곡근린공원 입구에포승건강생활지원센터와 포승작은도서관이 있다.
'여술로'가 여술로43번길과 여술로44번길을 나누며 동서 방향으로 달린다. 여술로43번길에서 도곡초교사거리를 건너 여술로44번길을 따라 도곡초등학교 앞으로 이어간다. 건너편에 있는 건물은 아라뜰 빌라이다.
여술로44번길을 따라 도곡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난다. 도곡초등학교는 2006년 9월 1일 개교한 공립학교로, 교육부 지정 다문화교육 정책연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여술로43번길에서 도곡초교사거리를 건너 여술로44번길을 따라 도곡초등학교와 모아미래도2차아파트 입구를 거쳐 왔다.
모아미래도2차아파트 담장 옆 여술로44번길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여술로44번길 끝의 횡단보도를 오른쪽으로 건넌다.
여술로44번길이 평택항로268번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여술로44번길 횡단보도를 건넌다. 평택항로268번길 건너편의 JPNC는 전자재료, 압출코팅, 열전사필름 등 제품의 무역&관세 기업이라고 한다.
여술로44번길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평택항로268번길 북쪽 보도를 따라간다.
여술로44번길 왼쪽의 횡단보도를 건너 평택항로 북쪽 보도를 따라오다가 뒤돌아본다. 도곡리 신시시가지 동쪽에 도곡리 옛 자연마을이 있다. 신시가지는 아산만 평택항과 포승지구 산업단지를 배경으로 시가지가 들어섰다.
도곡리道谷里는 조선시대 양성현 지역으로, 1914년 도곡·무수리·진목리·거산리·당두리를 통합해 진위군 포승면 도곡리라 했다. 도곡이라는 지명은 불당산佛堂山에 있는 사찰의 승려들이 도를 닦았던 마을로, ‘도틀’, ‘되틀이’라고 하다가 한자로 ‘도곡’이 됐다. 자연마을로는 거산(1리)·진목(2리)·당두(3리)·원도곡(4리)·무수동(5리)이 있다. 도곡1리 거산巨山은 거미라고도 부른다. 마을규모는 30여 호였지만 포승국가공단 건설 후 주택과 인구가 늘고 있다. 도곡2리 진목眞木은 자연지명이 참나무쟁이로 30호에 미치지 못했다. 3리 당두堂頭는 자연지명이 당머리다. 당두는 약 30호로 진주하씨가 대성大姓이다. 이 마을과 진목 사이에는 도곡리 당산堂山이 있다. 당산의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당머리라고 불렀다. 4리 원도곡元道谷은 자연지명이 되틀·도틀·뒷들이라고 부른다. 마을 규모는 60호로 도곡리에서 가장 크다. 원도곡이라는 지명은 되틀에서 비롯됐다. 옛날 되틀에 수성최씨 집안에 대지주가 많아 주변의 소작농들이 마을에 와서 타작을 하게 되면서 남은 곡식까지도 모두 털렸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5리는 무수동無愁洞이다. 무수동은 ‘근심걱정이 없는’이라는 뜻의 한자다. 한유지는 당머리 남쪽에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당머리와 붙어 있어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한유지는 노는 땅이라는 의미다. 옛날 놀고 있던 황무지에 마을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2000년 이후 도곡리는 큰 변화를 겪었다. 동진염전, 삼화염전이 있었던 마을 서쪽 바닷가에 포승국가공단이 입주하고, 공단 안에 대규모 택지가 개발되면서 도시가 확장됐다. 전통 자연마을과 신도시는 어색한 동거관계다. 서로 간의 교류도 거의 없고 문화적으로도 일체감을 갖기가 어렵다. - 평택시史
평택항로268번길 서쪽 끝에는 아산국가산업단지 경기포승지구와 기아자동차평택항 수출전용부두가 있다.
동서 횡단의 평택항로268번길과 남북 횡단의 포승공단로117번길이 교차하는 공단농협사거리에서 평택항로268번길이 서쪽 평택항부두로 이어진다. 공단농협사거리 건너편에 아산국가산업단지 포승지구 동우화인켐 평택공장이 있다.
평택항로268번길 횡단보도를 건너 포승공단로117번길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공단농협사거리에서 평택항로268번길 횡단보도를 건너 뒤돌아본다. 농협은행이 있다.
평택항로268번길 북쪽 보도를 따라와서 공단농협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남쪽 보도로 넘어왔다.
전기자재&부품 기업인 동우화인켐평택공장 동문이 포승공단로117번길 서쪽 보도에 있다.
동우화인켐평택공장이 포승공단로117번길 서쪽에 길게 이어져 있다.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도장(塗裝) 공사업체인 삼성도장이 삼성도장 버스정류장 왼쪽에 있다. 햇볕이 따가워 서쪽 보도로 건너간다.
포승공단로117번길 서쪽 보도를 따라오면 앞에 현대모비스사거리가 있다.
포승공단로117번길 이촌교를 건너 현대모비스사거리 앞으로 이어간다. 포승공단로 건너편은 포승공단로118번길이다. 이촌교는 포승읍 도곡리와 만호리의 경계를 이루는 다리이다.
이촌교 위에서 서쪽 방향으로 나가는 공업용수 수로를 살핀다. 오른쪽 건물은 동우화인켐평택공장이다.
포승공단로117번길 서쪽 동우화인켐평택공장 옆 보도를 따라와 이촌교를 건넜다. 건너편 위에 도장(塗裝) 공사업체인 삼성도장, 건너편에 도료&페인트제조 기업 (주)홍성이엔지 포승공장이 있다.
포승공단로 동쪽 방향을 바라보면 맨 끝에 포승읍 도곡4리 불당산이 보인다. 현대모비스사거리 왼쪽은 포승공단로117번길, 오른쪽은 포승공단로118번길이다.
포승읍 도곡리에서 만호리로 넘어왔다. 포승공단로 서쪽 방향 맨 끝에는 기아자동차 평택항 수출전용부두가 있다. 오른쪽 보도를 따라 포승공단로 오수중계펌프장사거리까지 이어간다.
만호리(晩湖里)는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 지역이다. 갑오개혁 뒤 수원군에 통합됐고, 1914년 만포晩浦·안외면 만호리 일부·원촌院村·유곡을 통합해 진위군 포승면 만호리라고 했다. 만호리라는 이름은 조선 초 수군첨사를 설치하면서 유래됐다. 당시 수군첨사를 도만호라고 불렀고 후에는 수군만호로 격하돼 세조 때까지 유지됐다. - 평택시史
포승공단로 서쪽 끝에 평택항동부두의 기아자동차 평택항 수출전용부두가 보인다. 남북 방향으로 평택항로가 달린다.
포승공단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평택항로가 남북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현대모비스사거리에서 포승공단로 북쪽 보도를 따라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며 걸어온 포승공단로 동쪽 방향을 바라본다.
포승공단로 횡단보도를 건너 평택항로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앞에 이끌림클래식호텔, 그 왼쪽에 케이트리호텔이 있다.
IBK기업은행 포승공단 앞을 통과한다.
평택항로 동쪽 보도 옆 GS칼텍스 주유소를 지나 평택항로156번길 횡단보도를 건너 한국단자공업평택공장 앞으로 간다. 건너편 에 율촌화학포승공장이 있다. 율촌화학은 글로벌 전문 소재산업으로 전자소재, 연포장, 필름 부문이 주요사업이며, 서울 신대방동에 본사, 안산과 평택에 공장이 있다고 한다.
한국단자공업은 커넥터 제조, 자동차 전장, 광통신, 무선통신 부품 생산 기업으로 본사는 인천 송도동에 있으며 중앙연구소 외에 국내 6개 사업장과 물류센터, 국외에도 중국을 비롯한 여러 사업장이 있다고 한다.
한국단자공업평택공장을 지나면 평택포승지구 전력공급을 위한 공사가 신당근린공원 입구에서 진행 중이다. 공사 구간은 만호변전소(신당근린공원) ~ 유성 티엔에스 사거리, 공사 기간은 2021.8.16. ~ 2024.6.28.이라고 한다.
신당근린공원 입구에 신당근린공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야구장, 미니축구장, 테니스장 등이 있으며, 공원의 미니축구장과 숲을 거쳐 언덕의 평택홍보관으로 올라간다.
'지사 순절추모비'라고 하여 일제시대에 항거한 지사(志士)인 줄 알았는데 추모비 뒷면을 읽어보니 6.26 전쟁 중 공산군에 의해 비극적으로 총살된 5분들의 추모비였다. 지사(志士)라는 말이 맞을까? 민족의 비극이라는 입장에서 비문의 내용을 옮긴다.
"누가 너를 죽였느냐!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 어서 말좀 해 보라고 몸부림치던... 비통하고 애절한 모정의 눈물과 이 핏덩이를 버리고 먼저 가면 어떡하라고! 통곡하던 당시 꽃다운 미망인들의 오열이 풍상 53년의 시공을 초월한 단장의 메아리가 되어 우리 모두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살아 남아 있는 자들의 불민함을 속죄하면서 삼가 님들의 영령 앞에 늦게나마 머리숙여 명복을 빕니다.
님들께서는 1950년 이 땅에 동족상잔이라는 역사의 비극 앞에 우리 포승의 미래를 위하여 살신성인하신 지사들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면민의 이름으로 추모합니다. 적치 3개월 동안 공산당의 모함으로 공들께서는 반동분자라는 억울한 누명으로 포승 내무소에 수감되어 우리 고장의 고초를 대신 몸으로 감내하시다 1950년 음력 8월16일 자정 퇴각하는 공산당의 쇠사슬에 묶여 현 안중읍 대반리 밤바위 고개 38국도변 잔솔밭에서 붉은 흉탄에 비명 횡사되셨으니 영령과 유족 앞에 무엇이라 필설로 형언할 수 있으리오!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현장에는 53년의 풍상을 헤쳐온 소나무 몇 그루만이 아름드리 거목으로 성장하여 살아있는 비목으로 말없이 님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있을 뿐 국양 창천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생명의 궤를 반복하기 그 몇 겁이던가? 찰라의 여정을 가고 있는 인간의 가슴 속에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추모의 정을 더욱 간절하게 할 뿐입니다. 늦게나마 우리 모두는 옷깃을 여미고 포승 면민의 이름으로 이곳에 모여 님들의 굵고도 짧은 불꽃 같은 삶을 조명하여 추모하고 역사의 희생양이 되신 님들의 얼을 지키고자 비문에 새기고 비를 세워 후세 사람들의 이정표로 삼고저 합니다. 님들께서는 포승의 큰 불행을 살신성인하심으로 막아 주셨으며 오늘 이 고장이 풍요롭게 발전하고 있는 것도 님들의 유덕으로 사료 되는 바 그 고귀하신 정신은 만세토록 추앙 받으실 것입니다. 나라 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치고 영리 앞에 의를 잊지말라고 하신(見危而授命 是利而不忘義) 옛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가신 영령 앞에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님들의 고귀하신 정신을 받들어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없는 환상 아닌 진정한 평화를 자유와 민주의 터전 위에 이룩할 것을! 삼가 명복을 빕니다.
서기 2003년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즈음하여... 글 友鄉 李啟殷, 浦升五志士 순절추모비 건립 추진위원회
신당근린공원 입구에서 관리사무소 앞을 거쳐 포승5지사 순절추모비 앞으로 왔다.
신당공원 미니축구장 위 숲을 통과하여 언덕의 평택항홍보관으로 올라간다.
신당공원 숲을 지나 언덕으로 오르면 오른쪽에 평택홍보관이 있다. 왼쪽으로 진행한다.
왼쪽으로 이어가며 평택항홍보관 입구를 살펴보니, 입구에 평택항홍보관의 마스코트인 돌고래 캐릭터 '아라리'가 보인다. '아라리'는 평택항과 자연환경의 어울림을 상징한다고 한다.
평택항홍보관은 경기평택항만공사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3층 포승전망대에 오르지 못하고 평택항홍보관을 스쳐간다.
평택시 포승읍에 위치한 평택항홍보관은 평택항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를 높여 평택항을 널리 알리고 활성화시키고자 건립된 홍보전시관으로, 지난 2004년에 세워졌다. 서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평택항홍보관은 지상 3층으로 건립되었으며 전시관, 영상실, 홍보코너, 시네마홀, 전망대, 휴게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 경기도 뉴스포털, 2019.3.29. 박시언 기자
평택항홍보관에서 평택항로 평택항홍보관 출입구로 내려간다. 앞에 천일국제물류 보세창고 건물이 보인다.
신당공원 평택항홍보관에서 평택항로로 내려와 동쪽 보도를 따라가면 삼아알미늄 포승공장 앞에 전력공사가 한창이다.
유성TNS사거리에서 평택항로 횡단보도를 건너 건너편으로 가서 다시 왼쪽 포승공단순환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평택항홍보관에서 내려와 평택항로 동쪽 보도를 따라와서 횡단보도를 건너 서쪽 보도로 넘어왔다. 평택항로 동쪽 보도 삼아알미늄 포승공장 앞의 평택지역 전기공급 전력공사 현장에 가림막이 펼쳐져 있다.
남북 방향으로 평택항로, 동서 방향으로 포승공단순환로가교차한다. 포승공단순환로 동쪽 끝에 포승읍 내기리 승배산이 보인다.
포승공단순환로 횡단보도를 건너며 포승공단순환로 서쪽을 바라보면 끝에 평택항 동부두가 보인다. 오른쪽에 (주)유성TNS의 평택항만 냉동 건물이 있다. (주)유성TNS는 물류와 철강 유통 기업이라고 한다. 이 왼쪽 숲 뒤가 옛 평택항(大津)이었던 만호포구(솔개바위나루)가 있었던 곳이라 어림한다. 왼쪽 숲 뒤쪽이 만호5리 솔개바위마을이며, 솔개바위는 오른쪽 뒤에 있었던 것 같다.
대진大津은 만호5리에 있던 나루로 솔개바위나루라고도 했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를 오가는 뱃터라고 전해지며, 근대 전후에는 충청도 내포지역과 안중장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 평택항이다. - 평택시史
포승공단순환로 남쪽 보도를 따라가며 북쪽에 자리한 (주)유성TNS의 평택항만 물류보세창고를 확인한다.
포승공단로 북쪽에 (주)세동에너탱크가 있다. 이 회사는 액체화물 저장용탱크 26기를 보유한 종합액체화물 터미널로 액체화물의하역, 입고, 보관, 출고 등 작업을 관리하는 기업이라고 한다. 이 뒤쪽에 솔개바위가 있었던 것 같다.
포승공단로 끝에는 평택항만 동부두 제5정문이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꺾어 평택항만길 동쪽 보도를 따라간다.
평택항만길 건너 서쪽에 평택항만 동부도 제5정문이 있다.
대진大津이 서해안 물산 유통에 중요한 항구로 부상하면서 나루터에는 선창이 조성됐다. 솔개바위 마을 앞에 있었던 선창은 일제가 쌓았고, 산 밑으로는 해방 후에 쌓았다. 새로 쌓은 선창에는 나룻배가 오가고 봄·가을 성어기면 생선을 가득 실은 고깃배들이 몰려들었다. 타지에서 몰려든 고깃배들은 연안에서 조업하는 중선中船이 많았다. 중선들은 칠산 앞바다와 연평도에서 조기잡이를 하거나 고군산열도에서 새우잡이를 했다. 소규모 어선으로 근해에서 조업했던 만호리 사람은 주로 아산만의 숭어·강다리·꽃게를 잡았다. 사람과 소의 운송은 나룻배의 몫이었다. 나룻배는 한선이라고 하는 밑이 넓적한 평저선이었다. 충청도 내포의 소장수들은 한선에 소 10마리씩 실어 건너왔다. 풍족했던 어족자원은 1970년대 아산만과 삽교천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씨가 말랐다. 고기들이 산란장소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바지락에 밟혀 걷기 힘들던 갯벌도, 썰물에 갯가에 나가면 몇 자루씩 해오던 굴양식도 먹이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황폐해져갔다.
1990년대 평택항 확장공사가 본격화되고 1999년 해군제2함대 사령부가 옮겨오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어선이 드나들던 포구가 사라지고 어족자원이 고갈됐으며 주변지역이 개발되면서 고향을 떠나는 사람도 많아졌다. 봄·가을이면 어선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솔개바위도, 농업과 수산업으로 살아가던 느지도 영향 받기는 마찬가지다. 평택항이 건설되고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항만사업소에 취직도 했지만 오래 근무한 사람은 많지 않다. - 평택시史
평택항만길 동쪽 보도를 따라 평택해양경찰서 평택파출소 앞을 지나간다. 뒤쪽 중앙에 평택항마린센터 건물이 보인다.
평택파출소 뒤쪽에 만호5리 솔개바위마을이 있으며, 옛 평택항인 솔개바위나루(대진포大津浦)가 있었다고 어림한다.
평택항만길 동쪽 보도를 따라 평택지방해양수산청 앞을 지난다. 중앙 뒤에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공중을 지난다.
평택항만 동부두에 신라철강 평택공장이 있다. 본사는 대구에 있으며, 평택공장은 1997년 10월에 준공되었다고 한다.
신라철강(주)은 1946년 창립한 태창철강(주)을 비롯한 8개 관계사로 이루어진 철강 전문기업 TC의 일원이다. 1977년 2월 냉연코일의 가공 및 판매를 주 영업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8년 1월 (주)포스코의 냉연 지정판매점으로 지정되었다. 1989년 준공한 성서공장은 1997년 3월 매각 이전까지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1997년 10월에 준공된 평택공장에서 생산 가동하고 있다. 2010년 취득한 대구공장에서는 2012년 후물슬리터의 월생산 최대량 8,485톤을 경신하기도 했다. 한편, 1999년에는 연간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했고, 연간 생산량은 1998년에 10만 톤을 돌파한 이래 2015년 7월 (주)포스코 판매 누계 700만 톤을 달성한 바 있다. 2017년 11월 대구에서 개최된 국제 미래자동차 엑스포(2017 DIFA)에 참가해 미래 전기차의 소재로 꼽히는 기가스틸의 가공 기술을 선보였다. 2020년 주식회사 사유원을 설립했다. - 기업사전
평택항만 동부두 제6정문 왼쪽 뒤에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아산만 바다 위를 지나고 있다.
평택항만 야적전용 보세창고가 있는 평택세관 보세구역이다. 보세구역 뒤에 CJ대한통운과 수협냉동냉장창고가 있다. 왼쪽 뒤에는 만도사원아파트가 보인다.
평택세관 보세구역 오른쪽 뒤에 만호6리 만도사원아파트가 있고, 왼쪽 뒤 숲은 만호5리 솔개바위마을이 있는 곳이다. 저곳이 옛 평택항이며, 예전에는 솔개바위나루(晩湖浦), 대진포(大津浦)라고 불렸던 곳이라고 한다.
만호리晩湖里는 포구마을이다. 포구는 만호5리 솔개바위 마을에 있었다. 대동여지도 등 여러 고지도에는 대진大津·한진漢津·대진포大津浦라고 표기돼 있다. 1872년 조선방역지도에 대진은 삼국시대 백제의 수군창이 있었고, 통일신라 때에는 당나라와 신라의 사신과 상인들이 오가던 해로교통의 요지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대중국 교역항으로의 역할은 중단됐지만 서산·당진·태안 등 내포지역 사람과 물산을 교역하던 대표적인 포구였다.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대진大津은 수원부 서남쪽 1백 리이며 넓이가 10여 리인데 조세潮勢가 사납다…만조滿潮 때 배로 건너면 홍주洪州 면주沔州 등 여러 읍으로 통하는 첩로捷路’라 기록했다. - 평택시史
평택항만길 동쪽 보도를 따라 평택항마린센터 건물 앞으로 간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가 공중을 가른다.
평택항만 동부두에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이 있으며 서해대교가 아산만 바다 위를 가른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 평택항만길에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뒤에는 평택항마린센터가 솟아 있다.
이곳에서 86코스 역방향 탐방을 마치기 전 평택항우정상사 쇼핑몰 편의점으로 가서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마치기로 한다.
GS25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구입하여 야외식탁에서 길동무와 함께 캔맥주를 마시며 긴 트레킹의 갈증을 해소했다.
동북아 무역물류의 중심 평택항이 최단기간 내에 세계적 규모의 항만으로 성장한 이면에는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한 중국의 고도성장의 수혜를 지간접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은, 산둥방면으로 가는 화객선이 대부분이다. 산둥방면 외에는 장쑤성 롄윈강행 선편이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후에는 화객선의 여객영업을 일시 중지하고 화물만 운송하고 있으며, 알리익스프레스의 대한민국 구매 물량도 산둥 지역에서 오는 화객선에 적재하여 평택으로 입항한다. - 위키백과
캔맥주를 마신 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 평택항만길 보도에 설치되어 있는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 앞으로 간다.
평택항만길 보도 가로등에 서해랑길 86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고, 그 앞에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와 경기둘레길 46코스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전신주에 '소방관이병곤길' 표지판이 달려 있고, 그 뒤쪽 보도에 소방관 이병곤님의 희생적 삶을 안내하는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평택항만길 중 이곳에서 만호사거리까지는 '소방관이병곤' 명예도로이다.
이곳에서 정코스로 출발하여야 하는데 역방향으로 탐방한 뒤 시작점 표지판 앞으로 왔다.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와 함께 서해랑길 86코스 역방향 탐방 완주를 기념한다.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와 그 오른쪽에 경기둘레길 46코스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 뒤에 평택항마린센터 건물이 솟아 있다. 지난 2주 전 85코스 탐방을 마치고 평택항마린센터 14층 전망대에 올라가 멋진 풍경을 전망하였다. 평택항 마린센터는 '경기평택 항만공사'에서 운영하는 경기경제자유구역청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15층 건축 규모이다. 1층과 14층, 15층은 일반인 출입이 가능하며, 나머지 전 층은 경제자유구역청 사무실 및 해운·항만 관련 공공기관 및 협력 단체 등이 입주해 있다. 14층의 평택항마린센터 전망대는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이 길은 소방관 이병곤님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소방관이병곤길' 명예도로이다. 도로 건너편 끝에 소방관 이병곤님의 희생적 삶을 안내하는 설명안내판, 그 오른쪽에 서해랑길 86·87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도로 맨 끝에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