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전쟁 씬이 없으면서도
전쟁의 잔혹함이나 비극성이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더 처절하게
다가왔던 프랑스 영화 <금지된 장난>
2차 대전의 와중에 독일군의 공습을 피해
파리에서 더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행렬 속에
폴레트의 가족이 있었다.
갑자기 행렬을 향해 빗발치는 기관총 소리.
흑백영화라 그런지 마치 역사 기록 영상을
보는 듯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저런 상황이 내가 처한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일상의 평안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날마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게
기적 같은 축복이 아닌가.
겁에 질려 납작 엎드린 사람들 속에
폴레트는 사랑하는 강아지
족크를 품에 꼭 안고 있었는데
조그만 강아지, 족크가 그만 쇼크를 먹었는지
느닷없이 뛰쳐나가 맹렬하게 달리기 시작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벌어지는 전쟁의 광기에
희생되는 건 말 못 하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폴레트는 족크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 달리고
폴레트의 부모는 폴레트를 따라 뛰어가는
그 상황에 쏟아지던 총알이 이 가족을 덮친다.
순식간에 폴레트는 부모님과 강아지를 잃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엄마.
축 늘어진 족크.
혼자만 살아남은 폴레트는
무슨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 건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직 철부지에 불과한 다섯 살 남짓의
꼬꼬마 소녀였기 때문이다.
아직 죽음에 대한 관념이 없는 어린아이였다.
죽음이란 정말이지 차갑고, 두렵고,
아름답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
삶의 문턱을 넘어 죽음이라는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간 부모님과 족크의 부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폴레트는
전혀 움직임이 없는 족크를
꼭 끌어안고 여기저기를 헤매며
떠돌고 있었다.
꼼짝하지 않고 있는 강아지는
어떤 기법으로 촬영을 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설마 영화를 위해 무고한 강아지를
희생시킨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수면제라도 먹인 것인지...
인형 같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전 옛날이라도
영화 작업이라는 명분 아래
생명에 대해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
마차를 타고 가던 농부가 죽은 강아지를 안고
떠돌고 있는 폴레트를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에 마차에 태워주는데
농부의 아내는 못내 못마땅해하며
이미 죽은 강아지라고 말하면서
폴레트가 안고 있는 강아지를 빼앗아
냅다 강물에 던져버린다.
농부는 F성향, 그 아내는 T성향 아닐까.
T의 현실감각으로 보면 F의 감성은
쓰잘데기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죽음이란
삶만큼 일상적인 것일 테고
사람의 죽음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판에
한낱 작은 강아지의 주검쯤이야
너무나 하찮아 개미가 우리 발에 밟혀 죽는
꼴을 아무런 느낌 없이 대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이 감흥이 없겠지.
그때 근처에서 암소를 찾고 있던 소년
미셸이 폴레트를 발견하는데
오갈 데 없는 처지인 걸 알고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평범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농가였다.
이곳은 전쟁의 광기에 밟히지 않은 듯
평화로웠고 이 애처로운 소녀를 받아주었다.
물론 임시로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어린아이는
이별과 상실감에 익숙해질 것을 강요받는다.
이 집도 결코 폴레트의 안식처가
되지는 못할 것이었다.
미셸의 집에 머무는 동안
미셸은 폴레트의 진정한 가족이요,
보호자요, 전폭적인 지원자가 되어주었다.
둘은 강아지 족크를 묻어주기로 한다.
버려진 방앗간이 그들의 비밀 아지트였다.
이 곳은 그들만의 아지트가 아니었다.
미셸의 형과 옆집 누나가 비밀스럽게
만나고 있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버려진 방앗간은 소년과 소녀에게도
청년과 처녀에게도 어른들에게 들켜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금지된 장난의
구역이었던 것이다.
족크의 무덤을 만들고 십자가를 꽂아주며
폴레트는 죽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죽음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외로워할 족크를 위해 친구 무덤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그들은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십자가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은
십자가를 훔쳐오는 일이었다.
무덤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미셸과 폴레트는
더욱 대담해지기 시작했고 금지된 장난의
위험 요소가 그만큼 많아졌다.
사고로 죽게 된 미셸 형의 장례식 십자가,
급기야 교회의 십자가까지 손을 댄 미셸은
양심에 걸려 괴로워 한다.
폴레트의 기쁨을 보기 위해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떠안고 끙끙 앓는 건
오로지 미셸이 감당할 몫이 되었다.
미셸은 신부를 찾아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낱낱이 고해성사한다.
십자가를 훔친 죄악으로 양심의
고통을 받는 어린 소년처럼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은 괴로워할까?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비극 속으로 몰아넣는 전쟁.
그것을 결정한 어른들은 양심이 호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 할까?
우리의 역사는 늘 그래왔듯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
참혹한 전쟁이야말로 금지되어야 마땅할
못된 장난이 아니겠는지.
아이들의 금지된 장난은 오래 갈 수 없었다.
비밀아지트도 더이상 그들의 천국이 되지 못했다.
없어진 십자가로 마을에서는
소란이 벌어진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웃을
도둑으로 의심하고
싸우는 혼란 속에서 신부는 고해성사 받은
내용을 다 밝혀버린다.
비밀을 지켜주지 못할 거였으면
비밀의 고백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러는 가운데 폴레트는
수녀원의 고아원으로
가는 것이 결정되고 경찰이 데리러 온다.
위기감을 느낀 미셸은 아버지와 딜을 한다.
십자가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대신
폴레트를 보내지 않기로...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십자가 있는 곳을 알아낸 다음
폴레트는 경찰에게 넘겨진다.
어린 아이와의 약속을
소중히 지켜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신부도 심지어 아버지도 말이다.
낯선 어른들을 따라
어디론가 가야 하는 폴레트.
많은 인파로 복잡한 대합실에서
폴레트는 아직도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때 저만치서 들려오는
낯익은 이름 하나.
누군가 "미셀!" 하며 외치는 소리에
비로서 폴레트는 깨어나듯이 소리를 낸다.
미셸.
미셸....
눈물이 맺힌 채로 미셀의 이름을
부르다가 엄마를 부르는 폴레트의 얼굴과
밀리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대합실의
풍경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인 건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폴레트의 천진난만함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화만큼 유명한 주제곡 로망스.
애절한 기타 연주와 스쳐지나가는 장면들.
여린 꽃잎이 마구 짓밟히는 것처럼
광기어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힘없이 휩쓸려 간 어린 소녀의 스토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른들의 눈에 아이들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초록색 나뭇잎을 들고 와서 사탕을 사려고 했던
꼬마에게 나뭇잎을 받고 사탕을 팔았다던
어느 구멍가게 사장님 같은 이야기를
현실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들다.
그런 어른들은 거의 없다.
어른들의 세계는 돈이나 권력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니까.
이것이 비정하지만 쓸쓸한 현실이다.
수많은 비극들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𝙍𝙤𝙢𝙖𝙣𝙘𝙚
𝘕𝘢𝘳𝘤𝘪𝘴𝘰 𝘠𝘦𝘱𝘦𝘴 기타 연주
카페 게시글
용띠들동행
이토록 아련한 영화-금지된 장난
무비
추천 4
조회 325
24.08.20 10:0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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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화 한편 잘 보고 노래도 오랜만에 들어 봅니다
영화와 음악이 참 좋아요
무비님
오랜만의 포스팅
추억 속을 더듬어 봅니다
건강은 괜찮아 졌을까요?!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았어요 ㅠ
프랑스 영화특유의 갬성,,,,
그렇죠
오랫만에 들어보는 로망스네요
아련하게 느껴지는 흑백의 반전영화 잘보고 갑니다 ^^
흑백 영화의 매력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비 오는 날 듣기에 잘 어울리는
영화와 음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