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참으로 오~~~
오월 첫날은 근로자의 날,그리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어버이날, 선거날,
스승의날/성년의날, 5.18민주화의 날, 세계인의 날, 부부의날, 그리고 단오까지
참 많은 날들이 있다.
세월은 참 유수 같이 잘도 지나간다.
바쁜 세월에 그저 개울물에 부초 휩쓸려 가듯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많이 애쓰며 산다.
산과 들을 뛰놀다 더우면 저수지에 풍덩 들어가서 멱감고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뛰어가던 그런 시절이
엊그제 같이 선명한데 세월은 너무도 빨리 흘러가 버렸다.
거리에는 아이들도 없고, 나를 부르는 엄마도 없고, 함께 놀던 동무도
지금은 연락 안되는 친구들이 더 많고, 모두 바쁘게 살고 있단다.
연락 되는 친구들은 보고 싶다고 말들 한다.
보고 싶은 사람은 보며 살아야지 그럼 만나자 어디로 갈까 하고 말하면
이번에는 선약이 있어서 못만나니 다음에 꼭 만나자던가
특별한 일이 있으니 다음에 꼭 보자고 말들한다.
특히 몇 명이 한꺼번에 모이려면 더 힘들다.
이 사람이 시간되면 저 사람이 안되고 저 친구가 시간되면 이 친구가 안되고.
그래서 차라리 한 사람씩 찾아 다니며 만나야 그나마 얼굴 볼 수 있을것 같아서
짧은 한국 방문 일정에 틈틈이 친구와 지인들 만나러 다녔다.
일하러 지방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에도 만나고,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는
점심 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도 하고, 한 번은 공주 계룡산 근처에서
만나 저녁 먹고 밤중에 십자가 언덕을 오르내리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차를 안갖고 간걸 깜박 했다. 부랴 부랴 터미널에 가보니 서울 가는 막차까지
놓쳐서 대전까지 달려가 KTX 타고 자정 넘어서 집에 온적도 있다.
혼자 성내천을 거닐며 벗꽃도 보고 석촌호수에서 밤 하늘도 보며 자연이 주는
신비함 편안함 그리고 피로에 쌓인 내게 주는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친구도 만나고, 보고 싶었던 옛 동료들도 만나고 지인들도 만나고
그리고 팥죽, 녹두죽, 잣죽 등을 쒀서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께도 자주 가고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 보러 당진에도 다섯번이나 다녀왔다.
아버지는 집에서 쒀온 죽을, 나는 병원에서 나온 환자용 밥을 아버지와
겸상해서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와 밥을 함께 나누는데 진수성찬이 아닌 박주산채인들 어떠랴!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91세 시어머니께는 죽을 먹여 드리며
내가 누구인지 아세요? 며느리~ 며느리~하고 말하면 "메느리가?'
하고 아시는듯 말하고는 또 다시 물으면 "모른다 하신다.
한국에는 죽집도 많고 맛도 괜찮은데 바쁜 사람이 미련 맞게 죽을 왜 쑤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내 부모와 지인들에게는 내 손으로 직접
정성껏 만든 음식을 드리고 싶었다.
정말 한국에는 사철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런데 영양실조나 굶어서
죽는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가끔 들으면 참으로 이해가 안된다.
한국은 건강에 좋다는 것들이 너무도 많고 입을 옷도 많고 모든 생활 용품이
너무 넘쳐나는 것에 대해 감사보다는 걱정스러울 때가 많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혹시나 이렇게 넘쳐나는 물질에 뭍히고 뭍혀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 덮여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가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소중한 우리의 정신
그 정신을 혹여나 물질에 빼앗겨 머리가 흙탕물처럼 혼탁하고 분별력이 흐려질까
염려하며 정신 바짝 차리려고 발버둥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
눈에 보이지 않는 감사
눈에 보이지 않는 연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감
눈에 보이지 않는 우정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
그걸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며 살려고
사람을 만나고 자연과 가까이 하면서 그 속에서
주님을 만나려고 애쓰고 틈틈이 기도한다.
중간 중간에 내 밥벌이인 유학 설명회도 다니고 대학도 방문했다.
목포 신항에 세월호가 인양되어 뭍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에 목포로 달려가
실종자를 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 올리고 돌아왔다.
친구 만나러 대구, 광주, 대전세종시, 성환 등등
차를 끌고 많이도 돌아다닌듯하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광화문에 가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에 위험물질을 들여 놓지 말라고 투쟁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막걸리 마시며 시국 토론도 하고...
정말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일들을 하고
싱가폴로 돌아오는 날 아침 아버니께 전화 드렸더니 아주머니가 받으셔서
'아버지가 식사를 전혀 못하신다고 걱정하신다.
지난주에 녹두죽을 잘 드시는걸 생각하며 급하게 죽을 쒔다
댜행이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아버지 입맛을 찾을 만한 음식이 뭘까
고민하며 이것 저것 사고 죽도 가지고 당진으로 달려 갔다.
입맛 없어도 억지로라도 드시라고 딸기 한 개 드리고, 사과 조금 베어
드렸더니 입맛이 좀 돌아왔다면서 가져온 죽 먹어보자고 하신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서 죽을 나눠 먹고 오후에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밤비행기로 싱가폴 돌아오니
새벽이다. 그 다음날 부터 몸에 물집이 생기고 가렵고 아프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끙끙 앓았는데 대상포진 증세란다
의사에게 보이고 연고와 약을 받아다 먹고 바르고 ....
약에 취했는지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며칠 동안 그렇게 지냈더니
이제 물집에 딱지가 앉고 가려운 것도 덜하다.
성환에서 배과수원하는 친구가 자기집 과수원 꽃이라며
대상포진은 다 나았는지? 꽃 감상하고 건강하게 잘지내라며 카톡이 왔다
아름다운 봄은 짧고
인생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성령은 영원하다.
5월은 사랑과 감사의 맘이 넘치는 달이 되도록
주님께 기도 올립니다
5월에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아낌 없이 표현하고 싶다.
꼭 나의 어머니를 닮은 듯한 소박한 미소의 석상이 한참 동안 내 발길을 머물게한다
시어머니의 머리에는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나봅니다
팥죽 한 그릇 금방 비우시고, 어릴적 일본에서 많이 드셨다는
다코야키도 맛 있게 드신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송함에
한국 있는 동안은 매일 찾아뵙고 말을 많이 해드렸다
해마다 4월만 되면 아파서 입원 하셨던 아버지
올해 4월도 사고로 입원하셨다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니 대학 방문이나 단체 유학 설명회도 틈틈이 했다
한국 가면 꼭 한 번이라도 세월호 유가족이 계신 광화문이나 안산과 팽목항을 다녀온다.
세월호를 인양해 목포신항 부두로 접안한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끌고 서울에서 목포로 달려갔다.
비가 내린다, 임시로 마련한 주차장에는 취재차량만 가득하다
내 눈앞에 거대한 세월호가 있다.
3년전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발 동동 구르며 안타깝게 눈물만 흘리며 바라봐야 했던
그 배가 지금 내 눈앞에 녹슬고 여기 저기 흠집난 모습으로 누워 있다
긴 옷을 입고 있지만 봄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바닷 바람은 피부속까지 파고들어 춥다
바닷물 속에 있던 희생자 들은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더군다나 깜깜한 곳에서 얼마나 공포 스럽고 고통스러웠을까? 빨리 실종자 아홉분을 가족 품에
안겨 드리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도록 사고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빈다.
평화 통일만이 한국이 살길이다, 평화와 행복은 사드나 전쟁으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 누구나 안다
우리가 든 촛불은 평화를 외치는 함성이다. 우리나라에 위험 물질을 들여오지 말라!
자정이 다 된 시간, 내가 타고 갈 비행기에 짐을 싣고 있다
화상을 입은듯 몸에 군데 군데 물집이 잡히고 온 몸이 아프다
과수원하는 친구가 꽃 사진 보내며 "대상포진은 다 나았니?"
예쁜꽃 감상하고 건강하게 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