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여사는 다른 사람에게 대통령을 지칭할 때
각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그냥 “대통령께서…”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남편을 각하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고 적합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육 여사는 대통령과 함께 행사에 참석할 때는 항상
두 발쯤 뒤에 떨어져서 걸어갔으며 손을 들어
대통령과 같이 흔드는 일이 없었다.
대신 허리를 약간 굽혀서 인사했다.
육 여사는 행사장에서나 차안에서도
등받이에 기대지를 않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보는 사람들이 여자가 거드름 피운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청와대 민정비서실에서는 육 여사 앞으로 온
민원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 할 때 ‘영부인’
결재란을 만들어 서류를 가져 왔었는데
육 여사는 그 서류를 다 보고 나서도
그 난에 결재를 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
결재권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민정비서실에서는 부속실 직원이
제멋대로 결과 보고토록 지시한 것이라는 오해가 생겼다.
부속실 민원처리를 맡았던 나로서는
육 여사에게 건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정비서실에서는 열심히 조사해서 보고를 했는데
사인을 안 하시니까 제가 중간에서
장난치고 있는 줄 알고 있으니 그저
보셨다는 뜻으로 사인을 해 주십시오”라고 요청을 했다.
그 후부터는 마지못해 하면서도 결재란에 사인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 부인은 공식 직함이 없다.
그래서 육 여사는 이 점에 대해서 매우 세심한 배려를 했다.
육 여사는 자신의 친서 말미에 항상
‘청와대 육영수’하고 쓰고 서명을 했다.
하기야 본인이 ‘대통령부인 육영수’
이렇게 쓸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육 여사는 자신을 직접 남에게 소개해야 할 경우란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고 한다면 그 분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일요일에 육 여사가 총리 부인과 통화를 하기 위해
총리공관으로 전화를 직접 걸었는데 남자 직원이 받았다고 한다.
내가 육 여사에게서 들은 그날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적어본다.
“여기 청와대예요. 총리 부인 계시면 좀 바꿔주세요.”
“누구십니까?”
“오늘이 일요일인데 가족 이외에 누가 있겠어요.”
“가족 누구신지요?” 한참을 머뭇거리다
“나 지만이 어머니예요.”
“지만이 어머니…? 아, 예, 알겠습니다.
바꿔드리지요.”
육 여사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 육영수예요,
또는 나 대통령 부인이에요”라고 할 수도 없고,
총리공관 직원이면 내가 청와대 가족이라고 했으면
누구인지 알아차릴 정도의 센스는 있어야지…
”하면서 웃는 것이었다.
[글. 옮김, 編: 定久]
첫댓글 옛날로돌아온것같아요~너무나 감사합나다
잘보고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