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축사
사찰에 가면 십우도라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인생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그림은 동자가 소를 찾아 수풀을 찾아 헤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산과 들을 정처 없이 헤매다 소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 뒤를 쫓습니다. 그러다 소꼬리를 보게 되고, 마침내 소를 만납니다. 소를 만났으니 얼마나 기쁠까요?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다음 장면은 그 야생의 소를 길들이기 위해 고삐를 당기고 푸는 힘겨운 씨름을 합니다. 그렇게 애쓴 끝에 야생의 소를 길들여 얌전해지고, 동자와 소는 따로 또 함께 풀밭에서 평화를 누립니다. 그 뒤의 그림들은 동자가 피리를 불며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 그리고 그렇게 애써 얻은 소마저 잊고 선정에 든 동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소도 동자도 모두 사라진 자리에 텅 빈 공만 남습니다.
가톨릭에도 많은 성인 성녀가 있어 인생 여정, 특별히 영적 여정에 관한 가르침을 남겨 주었지만, 저는 불교의 이 십우도를 통해 가끔 제가 삶의 어느 대목에 와 있는지를 돌아보곤 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 창을 통해 이 자리에 있는 신랑 신부를 봅니다. 이 신혼부부는 아마도 짝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다 소 발자국과 소꼬리를 보고, 마침내 그 소를 만난 것이 아닐까요? 소를 찾아 만난 그 기쁨을 새 부부와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하객 모두 충분히 누리고 즐기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뻐하고 축하하는 가운데 또한 우리는 이 새내기 부부가 지침 없이 힘차게 계속 길을 갈 수 있도록 응원하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저와 같은 천주교 신자만이 아니라 개신교, 불교 그리고 무교까지 다양한 분들이 함께 자리하지만, 이 새내기 부부를 축하하고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길을 잘 가도록 응원하는 마음만은 하나입니다. 이 새내기 부부를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심도의 외삼촌이지만 또 가톨릭 사제로서 저는 조카 부부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로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
새내기 부부, 심도와 보라에게 강복하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조카 김심도 마르코와 김보라의 결혼을 축하하며 축복합니다. 아멘.
2023-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