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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십계명 연구 (설교모음)
* 십계명의 서문
◯ 십계명의 기원은 오직 하나님께!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1,2)
본절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십계명의 기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십계명을 주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1절)
여기서 이 모든 말씀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2-17절에 나오는 ‘열 마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4:13) /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신10:4)
이 말씀은 어디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까? 신명기 5장 6-21절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시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신5:6-21)
하나님은 십계명을 명하시기 전 당신을 누구로 분명히 선포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구속자 여호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절) /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신5:6)
어째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법적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친히 구원하셨기에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구속자(히, 고엘)이 되셨으니 응당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생을 경영해야 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십계명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삶의 표준을 따라 힘써 살아가고 있습니까? 또한 이 십계명이야말로 구원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지표임을 깨닫고 날마다 그것을 따라서 구원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 십계명의 정신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십계명은 내용상 크게 몇 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어떻게 구분될 수 있습니까? 먼저는, 대신(對神) 계명, 곧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1~4계명).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둘째는, 대인(對人) 계명, 곧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5~10계명).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9,40) /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13:9)
이 둘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0,21)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십계명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롬13:10 상)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거나 만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분의 망령되게 일컫거나 그분이 명하신 안식일(주일)을 범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간음이나 살인, 도둑질,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이웃의 것을 탐낼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하)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십계명은 내용상 하나님 사랑(1~4계명)과 이웃 사랑(5~10계명)으로 구분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또한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로써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응당 이웃을 사랑해야 함을 깨닫고 그리 살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 십계명은 5대 해석 원리에 따라 폭넓게 해석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핵심이자 본질로서 ‘너는 ~하라’ 혹은 ‘너는 ~하지 말라’식의 필연법적 문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5대 해석 원리를 따라 해석해야 합니다.
① 동기적 원리
즉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그 동기까지도 살펴야 합니다. 이를테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음욕과 같이 간음의 동기가 되는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며,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미워하고 욕하는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히브리인의 욕설)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그 동기까지도 면밀하게 살피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139:23,24)
② 대귀의 원리
‘~ 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한 금지만을 명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금지 차원을 넘어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하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마12:11,12)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단순히 소극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그 반대되는 것들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그 성호를 높여드려야 하고, 주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예배와 생명 살리는 일 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힘써 행해야 할 것입니다.
③ 포괄 대표의 원리
각 계명은 비슷한 범주에 속한 모든 것들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비단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남의 부모 및 여타 모든 스승이나 어른들까지 공경하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1,2)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각 계명은 비슷한 범주에 속한 모든 것들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깨닫고, 보다 폭넓고 해석하고 폭넓게 적용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즉 겨우 문자적인 내용만 지키기보다는 포괄적인 내용까지도 지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④ 연계성의 원리
전체 계명은 모든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유기적인 하나의 끈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어기면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11)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전체 계명이 긴밀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하나라도 소홀히 하거나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체로 받고 전체를 지켜나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⑤ 선후의 원리
제1계명은 나머지 모든 계명의 열쇠이며, 대신(對神) 계명은 대인(對人) 계명의 원인이 됩니다. 먼저, 제1계명은 나머지 모든 계명의 열쇠가 됩니다. 즉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을 지키면 자연스럽게 우상을 만들거나 그 이름을 더럽히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그분의 날을 범할 수 없고, 고요. 하나님께서 대리자로 보내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이웃을 대상으로 살인이나 간음, 도둑질, 거짓 증거, 탐심 등을 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대신계명(1-4계명)은 대인계명(5-10계명)의 원인이 됩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야만 이웃과의 관계도 정상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십계명을 따라 살아가되, 제1계명부터 지키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한 이웃과의 화평을 도모하되, 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회복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 외에는
◯ 오직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인정하고 섬겨야 합니다!“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십계명 중 그 첫 번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신5:7)
이는 무엇을 선포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유일신 신앙).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6:4)
이 계명은 어떤 것들을 단호히 배격합니까? ① 모든 다신교, 곧 여러 신들을 믿는 신앙(다신교, 多神敎)입니다. ② 범신론, 곧 자연 만물과 그 법칙을 신이라 하거나, 또는 그 자연만물 안에 하나의 신이 들어 있다는 신앙(범신론, 汎神論)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 하나로 폄하하거나, 자연 만물이나 자연법칙 따위로 격하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원컨대 이제라도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다른 신들이 없음을 깨닫고 이 유일신 신앙에 따라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 /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사45:5 상)
이 계명을 왜 맨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것이야말로 나머지 모든 계명을 푸는 핵심 열쇠이자, 모든 행동을 판단하는 궁극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에(제1계명), 우리는 우상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제2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여야 하며(제3계명),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켜야 하며(제4계명), 하나님의 대리자인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제5계명),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제6~10계명).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 유일신 신앙에 따라서 모든 다신교적 우상숭배와 범신론적 철학사상을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내가 주인 삼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본문의 ‘나 외에는’(히, 알 파나이)는 직역하면 무슨 뜻입니까? ‘나의 면전에’, 혹은 ‘나와 대립시켜’입니다. 즉 하나님의 면전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상(偶像)이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면전에 두는 어떤 것이나 하나님과 대립시켜 두는 어떤 것입니다.
이런 것은 꼭 나무, 돌, 쇠붙이, 흙 등으로 만들어진 것들만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고, 하나님보다 더 위하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재물이나 탐심 같은 것 말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들을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내가 주인 삼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면전에 두었고, 또 하나님과 대립시켜 두었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10:21,22)
한편, 본문의 ‘다른 신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표현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에게는 ‘헛된 신들’을 추구하는 죄악된 속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이 같은 죄성이 하나님보다 더 위하고 섬기는 온갖 유형, 무형의 존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38)
2. 우상을 만들지 말라!
◯ 자기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출20:4)
두 번째 계명은 어떤 계명입니까? 형상 숭배를 금지시킨 계명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4절)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까? 예술이나 기타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드는 형상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구복(求福, 신이나 조상 등에게 복을 달라고 청함)이나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형상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므로, “하나님은 영이시니...”(요4:24 상)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떤 형상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그분을 격하하거나 폄하하는 행위이며, 가령 어떻게 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자꾸만 형상에 집착합니까? 우리의 타락한 심령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꾸만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것들로 하나님을 만들어내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만들기만 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만드는 데서 만족하지 못하고 이것에게 복을 구합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32:1,4)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감히 하나님을 한낱 피조물의 형상으로 격하시키다니 말입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사46:5-7)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과 잘못된 종교적 심성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것이 곧 형상화된 우상이며, 제2계명은 이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형상으로 빚는 죄입니다. 즉 하나님을 하늘이나 땅, 물속에 있는 그 어떠한 것으로 빚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4절 하) /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신5:8)
◯ 우상을 섬기거나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
두 번째 계명은 우상을 만드는 것만을 금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아가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섬기는 것도 함께 금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5절 상)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신5:9 상)
어째서입니까? 우상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우상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도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배(禮拜)란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는 것인데,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이 예배를 감히 우상에게 할 수 없고 또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우상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섬기는 것(숭배, 崇拜)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즉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5:3 하)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누구로 소개하시면서 이것들을 금하고 있습니까? 질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5절 중) /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34:14)
어째서입니까?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하는 심각한 행위로써, 하나님께서 이를 엄히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질투하는’(히, 카나)은 ‘샘내는, 매우 열성적인’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녀에 대해 그만큼 매우 열성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를 미워하는 자’(5절)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우상숭배자, 곧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게 절하는 자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5절 중) 반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6절)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어떤 우상도 만들거나 섬기지 않는 자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6절 상)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곁에 두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상을 만들거나 절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의 태도임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한편, ‘죄를 갚되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고 은혜를 베푸시되 천 대까지 그리 하신다’는 구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문자 그대로 이해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거나 보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4) /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20)
그러므로 본절은 조상의 죄나 선행이 후손들에게 반드시 보응 혹은 보상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조상의 영향을 은연중에 받게 된다는 뜻 정도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한때 유행처럼 언급되었던 소위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는 이는 무엇을 의미하기도 합니까?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여 그 은혜가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삼사 대’와 ‘천 대’라는 표현입니다. 본 절의 방점(傍點)은 5절 하반절이 아니라 6절에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5,6절)
3.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세요
◯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마세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 것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20:7 상) 곧 무엇에 관한 계명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입니다. 즉 여호와의 성호를 장난이나 악의적으로 부르지 말고 오히려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신5:11)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하)
왜 그리 명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곧 그분의 존재와 영광을 직접적으로 상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신12:5)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3) /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48:9) /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겔20:9) /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다.”(겔20:14) 생각해보십시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욕하면 이는 단순히 내 이름 자체만을 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욕한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하나님의 이름을 욕했다면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만을 욕한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욕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파괴적으로, 거짓되게, 무익하게’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로, ‘망령되이’(히, 라솨웨)는 ‘파괴적으로, 거짓되게, 무익하게’는 뜻을 지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농담 중에 성호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Oh my God’를 ‘맙소사’, ‘Jesus’를 ‘제기랄’의 의미로 사용해선 안 됩니다. ② 위기를 모면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③ 악의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같은 일은 하나님 앞에 중대범죄로써 하나님의 형벌을 도무지 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본문의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는 ‘형벌을 도무지 면할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하여 표현한 말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하)
◯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세요!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시135:1)
하나님께서 이 같은 제3계명을 통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않는 정도만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기를 힘쓰라는 것까지입니다.
일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십계명의 ‘~ 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한 금지만을 명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금지 차원을 넘어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하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귀의 원리).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않는 데서 만족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높여드리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부지런히 그분의 이름을 불러드려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이 같은 자들을 사랑하시고 또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②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즉 시편 기자의 말처럼,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고 또 그분에 이름에 감사함으로써 높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시135:1-3)
③ 착한 행실을 지녀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④ 하나님의 이름으로 열심해야 합니다. 즉 맡겨주신 일은 무슨 일이든지 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지런히 높여드리고 있습니까? 예배 때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주의 이름으로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4. 하나님의 날을 지켜요!
◯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20:8)
네 번째 계명은 무엇에 관한 계명입니까? 하나님의 날 성수에 관한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8절)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을 구별하여 지키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 이 날은 무슨 날로 일컬어졌습니까? 안식일(安息日)입니다.
왜 이 날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까? 두 가지 근거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고,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11절) /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이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1-3)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속해내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이 날은 누가 지켜야 합니까? 하나님께 지음 받고 또 구속함을 받은 모든 백성들입니다. 즉 구원 받은 백성들이 지켜야 할 거룩한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신약 시대로 넘어와서 무슨 날로 승화되었습니까? 주의 날, 곧 주일(主日)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의 구속 사역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언제 부활하셨습니까? 4복음서 기자들이 일관되게 증언한 바와 같이, 안식 후 첫날입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마28:1 상)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2)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샹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24:1)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둘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요20:1)
이처럼 사복음서 기자 모두가 아무런 이견 없이 예수님의 부활일을 ‘안식 후 첫날’로 증거 하고 있는데, ‘안식 후 첫날’은 언제입니까? ‘그 주간의 첫날’로 오늘날의 ‘주일’(Lord`s day)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주일’이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일까요? 초대교회 때부터입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10)라는 구절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다른 성경이나 초대 교부들의 문헌 역시 초대 교회가 ‘주의 날’이라는 날로 일컬어진 특정일에 모여 예배와 친교를 가졌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2)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에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
초대교회는 왜 이 ‘안식 후 첫날’을 ‘주의 날’이라 부르면서 이 날에 모여 예배와 친교를 가졌던 것일까요? 한 마디로,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최종적 완성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다가 로마인들이 태양의 날(Sun-day)로 인정했던 주간의 첫날이 AD 321년 콘스탄틴(274~337) 대제에 의해 공유일화 되면서 ‘공의로운 해’(말4:2)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굳어진 것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또한 구약시대의 안식일이 신약시대의 주일로 승화되되, 그 정신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가 동일하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까?
◯ 모든 날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9,10)
한편, 우리는 주일(하나님의 날)을 어떻게 거룩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단순히 6일 동안은 내 마음대로 살고 주일 하루만 거룩하게 살면 됩니까?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 중 하루를 하나님의 날로 정하신 것은 그 날을 특별히 성별하여 바침으로써, 모든 날의 삶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모든 날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5:12)
즉 주일에는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6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신앙원리와 그 맥을 같이 합니까? 십일조(十一條) 원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열 개 중에서 한 개를 바치라고 하신 것은 한 개만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 아홉은 내 것이므로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의미에서가 아닙니다.
허면 무엇입니까? 열 개 전체가 모두 하나님의 것인데 그중의 하나를 구별하여 드림으로써,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나머지 아홉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처럼 사용하라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6일 동안 내 마음대로 살아오다가 겨우 주일 하루만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일주일 내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오다가 주일, 그것도 겨우 한 시간만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양하고 있지 않습니까? 원컨대 이제부터라도 주일을 온전히 지키고, 나머지 6일 동안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써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9절)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살아갑니까? 불신자는 놔두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주일성수 개념이 희박해집니다. 나머지 6일은 고사하고 주일조차도 제대로 안 지킵니다. 직장이나 학교, 학원, 가정의 일 등을 이유로 너무도 쉽게 빼먹기 때문입니다. 빼먹으면서 마음에 부담감이라도 가지면 좋으련만 어떤 분들은 부담감조차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그들처럼 하나님의 날을 빼먹지 않기를 바라고, 나머지 6일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네 번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다섯 번째부터는 무슨 관계에 관한 계명입니까?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즉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는 내용입니다.
이 같은 대인관계의 첫 계명은 무엇입니까? 부모공경에 관한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공경해야 합니까? 우리의 부모입니다. 이는 단순한 혈연관계로 맺은 부모만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함께 동거 중인 다른 가족들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나 고모부, 이모나 이모부, 사촌 등 말입니다.
예컨대 롯에게 삼촌 아브라함이 그리 했고,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든 모은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12:5) 에스더에게 사촌오빠인 모르드개가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에2:7) /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에2:20)
어디 그 뿐입니까? 우리의 영적 성장을 돕는 스승이나 어른들도 부모의 범주에 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선지자 엘리사에게 엘리야가 그리 했고,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왕하2:11,12)
디모데나 디도, 오네시모 등에게 바울이 그리 했던 것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딤전1:1,2) /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딤후1:2 상) /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딛1:4 상) /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몬1:10)
또 누가 부모의 범주에 들 수 있습니까? 나이가 있는 성도님들이나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딤전5:1,2) /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5:17)
왜 이 같이 부모의 범위가 확대될 수 있습니까? 십계명의 5대 해석원리 중 포괄 대표의 원리 때문입니다. 즉 각 계명은 비슷한 범주에 속한 모든 것들까지 포괄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비단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남의 부모 및 여타 모든 스승이나 어른들까지 공경하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각 계명은 비슷한 범주에 속한 모든 것들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깨닫고, 보다 폭넓게 해석하고 폭넓게 적용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위임을 받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양육하고 지도하고 있는 모든 이를 마땅히 존경하고 공경해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하)
◯ 주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공경해야 합니까? 부모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6:1 상)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골3:20 상)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옳은 일이며, “...이것이 옳으니라.”(엡6:1 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하)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순종입니까? 그분들의 권위를 존중하며 공경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순종’은 ‘아래서 경청하라’, ‘우러러보라’는 뜻으로, 곧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며 공경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하되, 부모로써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고, 또한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6:2 상) 여기서 ‘공경하다’(헬, 티마)는 ‘값을 치르다’는 뜻으로, 이는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섬겨야 할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부모를 공경하고 있습니까? 내 부모뿐만 아니라 남의 부모나 여타 모든 스승, 어른들까지 공경하고 있습니까? 또한 순종하되,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그리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순종해야 합니까? 모든 일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골3:20 상) 우리에게 하는 말이 ‘잔소리처럼’ 들려도, 우리에게 하는 행동이 ‘참견처럼’ 느껴져도 순복하기 바랍니다. 일단 순복하면 언젠가는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엇 안에서 그리 해야 합니까? ‘주 안에서’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6:1 상) 즉 신앙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잘 분별하면서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불신 부모나 가족이 하나님과 그 말씀에 반하는 것을 요구한다면 거절하되, 최대한 그분들이 기쁜 나빠하지 않는 선에서 지혜롭고 정중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편, 이런 자들에게는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잘 되고 장수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하) /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하) /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
이는 무슨 말입니까? 단순히 일백세, 이백세까지 산다는 말입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이 땅에서 복된 인생을 살며,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모든 일에 그리 하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복된 인생과 영원한 생명 등을 약속하셨음을 깨닫고 부모 공경하기를 계속 힘쓰고 있느냔 말입니까?
6.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 미워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21)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라”(출20:13)입니다. 우리가 전혀 상관없는 계명처럼 여겨지며, 교도소에 복역 중인 사람들한테나 들려주워야 하는 말씀처럼 느껴집니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십계명 5대 해석 원리 중 동기적 원리 때문입니다. 이는 무엇입니까? 각 계명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그 동기까지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뿐만 아니라 그를 미워하고 욕하는 것까지도 다 포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살인(殺人)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동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화를 내거나 욕하는 것, 그리고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행위 등입니다. 요즘 들어 ‘인격 살인’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는데, 이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행위입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익명으로 자행되는 이런 일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그 동기까지도 면밀하게 살피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실제로 빼앗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에게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주는 행위도 절대로 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뿐만 아니라 그를 미워하고 욕하는 것까지도 다 포함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까?
◯ 미워하거나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이 같은 제 6계명은 우리의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습니까?
① 누군가에게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것 자체가 곧 그 사람을 살인한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 미움과 살인은 그 나타난 모양만 다를 뿐 내적 동기는 하나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행위에 앞서서 무엇부터 보십니까? 그 동기입니다. 외모를 보기에 앞서서 무엇부터 보시구요? 그 중심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그러므로 우리는 외적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의 숨은 동기까지도 면밀하게 살피면서 이를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고 있습니까? 이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자해하는 행위임을 깨닫고 멈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② 누군가에게 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죄로 심판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5:22 상) 왜 노를 발하는 것이 살인죄와 다를 바 없습니까? 분노는 누군가로 하여금 자살충동을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낸 분노 때문에 누군가는 심한 모멸감을 느낀 채 우울해하거나 심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노하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간혹 홧김에 분을 내었어도 빨리 사과하고 해결해버려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6,27)
③ 누군가를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욕하면 이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줄 뿐만 아니라 심하면 실제로 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간접살인)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하)
본문에 욕하는 내용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요? 아닙니다. 본문의 ‘라가’(히, 라카)가 히브리인의 욕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뜻을 지니고 있습니까? ‘공허하고 무가치한 멍청이, 바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누구에게도 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끊어야 합니다. 대신 축복의 말, 감사의 말, 격려의 말들만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깨끗한 마음으로 함께 하세요!
◯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간음하지 말라”(출20:14) 즉 강간이나 간통, 성매매 등 부적절한 성행위 일체를 금한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지니라.”(신5:18) /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7:25-27)
성경은 특히 간음(姦淫) 또는 음행(淫行)을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어째서입니까? 다른 것은 몸 밖에서 죄를 범하지만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며,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 자기의 영혼을 스스로 망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잠6:32) 즉 죄도 죄지만 그의 몸이나 영혼도 모두 망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간음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이 계명은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부적절한 성행위들만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마음의 동기 역시 음행죄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즉 음욕을 품고 이성을 보는 것 역시 음행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엄히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어째서입니까? 십계명 5대 해석 원리 중 동기적 원리 때문입니다. 즉 십계명의 각 계명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그 동기까지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욥31:1,2)
그러므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음행의 문제뿐만 아니라 무엇도 경계해야 합니까? 관음증, 곧 마음으로 짓는 음행입니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하면 어찌 됩니까? 단순히 마음으로 짓는 음행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육체적 음행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음행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음행도 경계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음욕을 품고 이성을 보는 것 역시 죄임을 깨닫고 빨리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호기심 따위로 자신의 인생을 망치지 말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젊음의 시기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깨끗한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한편, 이 일곱 번째 계명은 단순히 간음이나 음행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십계명 5대 해석원리 중 대귀의 원리를 따라 적극적으로 그 반대의 것을 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십계명의 ‘~ 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한 금지만을 명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금지 차원을 넘어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하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계명의 경우는 무엇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즉 청년의 정욕은 피하는 것과 동시에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행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① 우리는 야한 농담이나 음담패설(淫談悖說) 등을 좋아하는 이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 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누구를 가까이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이들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런 사람은 언제나 신앙의 선한 목표들을 추구하고 또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을 권면하거나 제시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② 우리는 야한 동영상이나 야한 사진을 보는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말초신경(末梢神經)만 자극할 뿐 인생을 계획하거나 건설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무엇을 보도록 힘써야 합니까? 인생의 목표나 푯대 등 우리를 신앙적, 인격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런 것들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사람은 저급하고 추한 것들을 보느라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③ 불건전한 성적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은 언제나 우리를 부도덕한 생활로 이끌 뿐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건전한 이성교제를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공동체 안에서 닥치는 대로 이성친구를 만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동성친구뿐만 아니라 이성친구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5:2 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청년의 정욕을 피하는 것만큼이나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온전히 깨끗한 마음으로 형제나 자매에게 대하듯 그리 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8.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남의 것을 빼앗지 말고 받은 것에 만족하세요!
“도둑질하지 말라.”(출20:15)
십계명의 여덟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도둑질하지 말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출20:15) /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신5:19) 즉 타인의 소유를 약탈이나 사기, 절도 등으로 빼앗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사람들은 왜 도둑질을 하게 됩니까? 가진 것에 감사하거나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눅3:14) 즉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을 방치하면 결국 남의 것을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둑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에 만족하고 감사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또한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필요한 양식으로 공급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17:16)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물론 지금 당장은 통장에 잔고가 적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내일이나 다음주,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하나님께서 지금 누구보다도 나의 필요와 형편을 잘 아시고 또 공급해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0-32)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9-31)
혹자는 이제까지 남의 것을 한 번도 훔친 적이 없다면서 제8계명은 교도소나 보호관찰소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들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와 봉헌물을 내지 않는 것도 도둑질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3:8) 즉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자체가 절도이자 강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것도 구별하여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레27:30,32)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의 것을 빼앗지 말고 이미 주신 것들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습니까?
◯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이 여덟 번째 계명은 단순히 도둑질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십계명 5대 해석원리 중 대귀의 원리를 따라 그 반대의 것을 적극적으로 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참고로, 십계명의 ‘~ 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순한 금지만을 명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금지 차원을 넘어 그것과 반대되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하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는 대신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남을 돕는 일입니다. 즉 나보다도 더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엡4:28 상)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남을 도우려면 내가 큰 부자가 되어야 하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통계상으로 보아도 부자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남을 돕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을 돕는 게 꼭 거액을 기부하는 것만을 의미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원, 오천 원, 만원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오병이어를 바쳤던 한 소년이 그리 했고,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6:9)
엘리사 시대에 한 사람이 드린 보리떡 20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가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왕하4:42-44)
이처럼 남을 도우려면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자기 손으로 부지런히 수고하는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 하) 어째서입니까? 부지런히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나 기회, 물질 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돈을 벌어야 그 돈으로 남을 도울 수 있고, 일을 해야 그 직업 자체로써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소방관이 소방관의 일로, 경찰관이 경찰업무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도 내 손으로 부지런히 수고하고 있습니까? 부지런히 자기 손으로 수고하되 선한 일을 위해 더욱 그리 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9.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출20:16)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거짓 증거 하지 말 것입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출20:16) 이는 곧 무엇에 대한 금지 규정입니까? 위증(僞證)입니다. 참고로, 위증은 법정에서 증인이 허위로 진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위증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잠19:5) 모세 율법의 경우는 만일 어떤 사람의 증언이 거짓으로 판명되면 그 위증인은 피고인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도록 규정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19:16-19)
왜 이를 엄히 금하십니까? 거짓 증언 때문에 무죄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왕상21:13) /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막14:56)
이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짓은 거짓의 아비 사탄에서 나오는데,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고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이를 도무지 용납하실 리 없기 때문입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시5:4,6)
법정에서의 위증만 금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일상에서의 거짓말 역시 금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는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그의 거짓말 때문에(삼상21:1-9) 85명의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이 몰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 오명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삼상22:18)
혹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싫어하신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멀리 하고 있습니까? 습관적인 거짓말을 물론이거니와 부득이한 상황에서의 거짓말도 가급적 피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거짓은 거짓의 아비 마귀로부터 나오는 행위임을 깨닫고 이를 경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4:25)
아홉 번째 계명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을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십계명 5대 해석원리 중 대귀의 원리를 따라 그 반대의 것을 적극적으로 행할 것 역시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대라 하면 여기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그치고 오히려 참되고 진실한 말들만 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엡4:25 상)
어째서입니까?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4:25 하) 생각해보십시오. 한 몸에 붙여 있는 지체들끼리 서로 속고 속이면 되겠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이는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요 스스로를 자해(自害)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거짓말을 멈추고 대신 참된 말을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참된 말은 언제나 힘이 있으며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잠21:28 하) 서로를 세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또 참된 말을 해야 합니까? 한 입으로 거짓말과 찬송을 모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3:10,11)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술로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찬양한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밥 먹는 듯이 해야 되겠느냔 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정결하게 유지하기 바랍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14)
제단 숯불들로 우리의 부정한 입술을 정결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가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6:5-7)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참되신 것처럼 우리도 참된 것들만을 말하며, 하나님이 진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항상 진실하고 있습니까? 아홉 번째 계명에 담긴 의미처럼 언제 어디서든지 항상 참되고 진실하게 살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10.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20:17)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 것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20:17) 이는 곧 무엇에 대한 교훈입니까? 탐심(貪心), 곧 무엇인가를 탐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이 같은 탐심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죄의 근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어째서입니까? 모든 죄는 곧 이 욕심(탐심)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하와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까? 그것을 탐했기 때문이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창3:6 상) 또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탐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5)
또한 성경은 탐심을 무엇과 동일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어째서입니까? 이 같은 탐심이 곧 사람들로 하여금 각종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우상은 인간의 온갖 탐심(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세웠더라...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삿17:5,12,13)
열 번째 계명의 특징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행동으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인간의 생각까지도 그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20:17)
이 같은 탐심을 그대로 방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살인이나 도둑, 간음, 거짓말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웃의 집을 계속 탐하면 어찌 됩니까? 도둑질, 곧 빼앗게 됩니다. 이웃의 아내를 탐하면 어찌 됩니까? 간음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하면 어찌 됩니까? 그것을 가지기 위해 각종 거짓말을 일삼고 극단적인 경우는 이웃을 상하게 하거나 죽이게 됩니다.
이것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모든 종류의 탐심을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즉 욕심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또 적군을 물리치듯이 삼가 물리쳐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모든 죄는 욕심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죄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날마다 탐심을 제거하고 또 물리치고 있습니까?
◯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한편, 우리는 이 같은 탐심을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버린다고 완전히 버려지거나 내려놓는다고 해서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컵 속에 있는 공기를 (특별한 장치 없이는) 완전히 덜어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탐심을 차단할 수 있습니까? 첫째, 그것들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히13:5 상) 즉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써’ 탐심을 끊어낼 수 있으며,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5,16)
또 ‘하나님보다 덜 사랑함으로써’ 끊어낼 수 있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여기서 ‘미워하지’(헬, 미세이)는 ‘조금 사랑하다’는 뜻으로, 실제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른 것보다는 덜 귀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어디 이것들뿐이겠습니까? 세상의 물질이나 소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하나님보다 덜 사랑함으로써 탐심을 끊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김으로써 입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13:5 중) 즉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주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함으로써 탐심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는데 어찌 탐심이 우리 가운데 자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는데 어찌 남의 것이 탐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퐁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그러고 보니 성경은 틈만 나면 우리에게 만족하고 감사할 것을 종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시50:14 상)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어째서입니까? 감사는 ‘탐욕’이라는 질병을 예방하는 유일한 백신(vaccine)이자 치료하는 유일한 치료제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입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하)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데, 남의 소유를 탐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무엇을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며, 무엇을 더 가지지 못해서 아쉬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탐심을 물리치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것부터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 /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음을 깨닫고,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고 있습니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즉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확신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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