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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7) : 인생 목표!”
+ 본 문 : 히브리서 11장 13절 - 16절 (신약성경 365쪽)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멘!
네티즌들이 짤막한 글로 인생을 노래한 "브라보 마이 라이프"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보면, 3만 4천 12명의 네티즌들은 인생 여정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한살 - 자고 또 자고, 잠에 푹 빠져버린다.
두 살 - 기어가느냐? 걸어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살 - 떼를 쓰면 엄마가 들어줄 때도 있고, 야단칠 때도 있어 헷갈린다.
다섯 살 - 이제 투정부리면, 돌아오는 것은 분유가 아니라 회초리와 손찌검이다.
열두 살 - 방학숙제도 하루 만에 다 할 수 있다. 한달 일기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열네 살 - 더 이상 엄마가 사다주는 옷은 입기가 싫다. 내 옷은 내가 고르고 싶다.
열여덟 살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하지만 그 중요성은 한참 후에나 알게 된다.
열아홉 살 - 19살보다는 고 3으로 많이 불린다.
스물한 살 - 교복을 벗어버리니, 군복을 입혀주더라.
스물네 살 - 꿈을 꾸려면 잠을 자고, 꿈을 이루려면 잠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서른세 살 - 둘러보면 주위엔 노처녀들뿐이다. 있을 때 잡고 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흔 살 - 나이 물어보면 '만 나이'로 대답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 아직도 30대야!"
마흔다섯 살 - 자신의 말은 많아지고, 남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
마흔여섯 살 - 화장이 아니라, 변장을 하기 시작한다.
마흔일곱 살 - 젊어 보인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으로 들려진다.
쉰 살 - 요즘 애들의 추세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쉰세 살 - 부끄럽고 촌스럽기만 했던 화려한 꽃무늬가, 이젠 필수품이 되었다.
쉰여섯 살 - 동네 꼬마들이 할아버지라 불러야 할지 아저씨라 불러야 할지 고민한다.
예순한 살 - 드디어 말로만 듣던 '환갑잔치'를 했다.
예순세 살 -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예순여섯 살 - 지하철을 경노석에 앉아 무료로 타고 다닐 수 있고, 노인 혜택받는다.
예순일곱 살 - 어릴 때 할머니 보며 나한테도 저런 날이 올까했는데, 내가 이젠 그 나이다.
예순여덟 살 - 될 수 있으면 말을 짧게 해야 대접받는다.
일흔한 살 - 이젠 질병도 삶의 일부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일흔일곱 살 - 자신을 지탱해온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자랑스럽다.
여든한 살 - 70을 넘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80이 넘으니 오래살고 싶다.
아흔두 살 - 안 그런 척 하지만 죽음이 두렵다.
백 살 -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여러분! 실감나십니까? 아마 나이 드신 분들일수록 더 실감이 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인생입니다.
희랍 신화에 보면 스핑크스의 수수께기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가?” 물어서 "사람" 이라고 대답하면,
살려 보내고, 대답을 못하면 죽였다는 얘기입니다. “아침 안개 같은 인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 는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성경의 신앙 용사를 "나그네"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그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행자” 가 아닌 “천국순례자”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너희를 권한다.”
여기 “나그네와 행인” 이라는 말 역시 “천국순례자” 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천국순례자는 그냥 떠돌아다니는 유랑자나, 할 일 없이 떠도는 방랑자도 아닙니다.
목적이 분명한 여행자,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순례하는 여행자인 우리 성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성지순례를 하는 것처럼, 성도는 영원한 성지인 천국 순례자들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성도들은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거룩한 목표를 향해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 다음 꼭 읽어야 하는 베스트셀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이라는 책입니다.
존 번연은 설교가 기퍼드의 제자로, 기퍼드가 죽은 후, 비국교파의 설교자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국교회의 박해로 1660년 설교 금지 및 비밀집회 금지령 위반죄로 체포되어,
12년간 감옥생활을 합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존 번연은 '유익한 명상' '그리스도인의,
행동' '거룩한 성'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등, 정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유익한 많은 신앙서적들을 펴냅니다. 감옥생활 마지막 기간인 1667년부터,
1672년까지의 5년간의 감옥생활은 제 2의 성경인 천로역정을 쓰는데 바쳤습니다.
1678년 출판된 이 책은 여러 세대 동안 성경다음으로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천로역정의 원 제목은 “The pilgrim's progress - 순례자의 여정” 입니다.
그 책의 내용은, 한 사람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다가 작은 동굴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거기서 잠을 자다 꿈을 꿉니다. 꿈속에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손에 책을 들고,
등에는 커다란 짐을 지고 책을 읽더니, 고통스럽게 흐느끼기 시작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어찌할꼬!" - 이렇게 「천로역정」 이라는 책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꿈을 꾼 사람은 존 번연 자신이고, 동굴은 그가 12년간 갇혀 있었던,
영국 벽촌 베드포드라는 강, 다리 위에 있는 습기 찬 다락 감옥을 말합니다.
남루한 옷이란? 인간들이 자랑하는 의를 말하며, 커다란 짐이란 죄악의 짐을 말합니다.
존 번연은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주인공 “크리스챤” 이 파멸의 도시인,
장망성을 떠나 온갖 역경과 고난, 그리고 온갖 유혹이 가득 찬 험난한 길을 걸어,
마침내 성도의 본향인 천성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크리스챤은 나와 너 -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외로운 순례자 “크리스챤” 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고,
허영의 시장거리를 지나 고난의 산을 넘어 마침내 죽음이라는 어두운 강을 건너,
우리 크리스챤들의 최종 목적지인 하나님의 나라인 천성에 마침내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어느 가수는 노래하길 인생은 하숙생이라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방랑시인 김 삿갓이라는 사람이,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저물었습니다.
마침 그 동리에 대궐처럼 큰 집이 있는지라,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하게 됩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합니다. "이 집은 여관방이 아니니, 저 건너 객주 집으로 가시오."
그때 김삿갓이 묻습니다. "이 큰 집에 몇 대나 살아오신 겁니까?" "16대를 살았수다."
"그 16대 선조들이 지금 다 생존해 계신가요?" "그야 다 세상을 떠났셨지요."
"그렇다면 당신도 살다 갈 나그네, 나도 나그네, 같은 처지의 인생 하룻밤 쉬어 갑시다."
그래서 그날 밤, 주인의 환대를 받고 그 집에서 푹 쉬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 지구는 여관방, 하나님은 여관방 주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된 우리 인생은, 끝내 모든 것 다 비워두고 떠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길어봐야 이 세상의 우리 인생 전세 기한도, 100년이면 끝나는 게 우리내 인생입니다.
외국에 나가 호텔에 묵게 되면 숙박계라는 것을 씁니다. ①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② 지금 무엇 하러 여기 왔습니까? 용무를 씁니다. ③ 내일 어디로 갈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서 왔습니까? 여러분의 영적 출생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지금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신앙이란?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여행길, 순례자의 길, 천로역정입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유프라데스강 유역에 아브라함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떨어집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지금 네가 살고 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바벨론으로 가라."
그래서 그는 그의 본토 친척 아버지 집 등,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곳을 떠나,
하나님의 땅으로 순례의 행진을 시작합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믿음은 천성을 향해서 행진하는, 천로역정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멸망의 도시임을 알았을 때,
우리가 가진 신앙은 그 곳을 곧 바로 떠나게 하고, 드디어 천로역정을 시작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 해 신앙생활 하다보면, 가정도 평안해지고 살림살이도 먹고 살만하고,
자식들도 클 만큼 큽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 사랑도, 구원의 감격도 잃어버리고,
적당하게 세상에 푹 빠져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도 네 자리가 아니니 떠나라!” -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이걸 아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더 좋은 자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더 나은 본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순례자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옛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세월만 보내고 있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무명 몇 필을 주며, 이걸 팔아 돈을 마련하고 장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무명 판 돈으로 참외를 한 짐 사서, 옆 마을에 가서 팔려고 지고 갑니다.
나무 밑에서 잠깐 쉬게 되었는데,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지라. 참외를 팔면 남을 만큼의,
이익을 계산하고, 그 남는 것만큼만 먹어도 본전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배가 불러 잠시 낮잠 자는 동안에, 불량배들이 참외를 모두 가져가 버렸습니다.
낮잠에서 깨어난 이 사람이 참외가 없어진 것을 보고,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을 합니다.
‘이익 남는 것은 내가 다 먹었으니, 그 참외 가져가 보았자 본전이라.’ 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는 것도 없는 걸 가져가는 바보 같은 놈들" 하면서 크게 웃더라는 겁니다.
이 바보 같은 사람의 모습이, 인생의 원금 다 잃고, 소중한 것 다 놓치고서도,
소중한 인생의 원금을 잃은 줄도 모르고 사는 저와 여러분의 어리석은 모습은 아닌지요.
우리 인생길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중요치 않은 것이 무엇인지 분간 못하고,
변변찮은 것 쫓아다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에게 정말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인생의 손익계산이나 하고 사십니까?
오늘이 여러분 인생의 천로역정의 종착역이라면, 그 종착역에서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 인생을 당장 마감해도 부끄러울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으십니까? 영생 얻으셨습니까? 구원 받으셨습니까?
우리 인생살이에 천로역정의 순례 길에 구원과 영생을 놓치고 무얼 위해 산단 말입니까?
이런 시 아십니까? “북은 울려 이내 목숨 재촉인데, 돌아다보니 해는 서산에 빗겼구나.
아, 황천길엔 주막하나 없다거늘, 오늘밤 이 나그네 뉘 집에 쉬어갈꼬.“
형장에서 읊은 성삼문의 시입니다. 억울한 죽음에도 용감한 사육신들이었지만,
죽은 후 돌아갈 곳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어 보여 읽는 이들의 마음을 서글프게 합니다.
공자께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죽은 이후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이 얼마나 공허하고 절망스러운 유교의 가르침입니까? 바로 타종교의 공허와 허무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의 말대로 유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완고해지고, 불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허무하고, 기독교는 깊어질수록 소망과 기쁨이 넘칩니다. 아멘입니까?
물은 바다로부터 왔기에 바다로 흐르고, 불은 태양으로부터 왔기에 하늘로 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됨을 잊지 마십시오.
이를 두고 사도 바울 말하기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의 삶은 나그네 인생, 본향길 가는 천로역정입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길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나그네가 지나가는 길에 너무 큰 미련을 둔다면, 그는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다리! 지혜로운 자는 다리를 건널 따름이지, 바보같이 그 위에 집을 짓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길에서 얻은 명예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예는,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만이,
나그네를 구원해 주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너무 많은 욕심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나그네가 짐이 많으면 그 여행이 괴롭습니다. 나그네는 본향을 향해 투자 할 뿐입니다.
나그네는 자주 길을 확인하고 물어야 합니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이 바른 길인가?
그래서 진리 앞에 겸손합니다. 나그네는 이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환영받기 원하는 이 세상이 결코 내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께서 열정을 쏟았으나 열매가 적었습니다.
오히려 두 아들이 아프리카 풍토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둘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두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선교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끝내 선교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오는 배에는 아프리카에서 사냥하고 돌아오는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항구에 도착되었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의 연주, 그리고 예포소리와 함께,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나와 환영행사를 합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리자 붉은 카펫이 깔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환영합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카펫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 홀로 내려왔습니다.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받는데,
아내와 두 아들을 잃고 선교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
깊은 고독감과 실패감을 느끼면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참으로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소리 정도가 아니라,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너의 두 아들과 아내,
그리고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카펫이 아니라 황금카펫 깔고 내가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내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그 길로 선교사는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는 인생여정을 실패하게 만드는 많은 유혹이 있다고 말합니다.
「천로역정」에 의하면, “가까운 사람들의 오해와 조롱, 그리고 핍박과 박해를 이기지,
못하는 크리스챤은 천성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잠시 절망의 늪, 수렁에 빠졌다고,
쉽게 낙심하고 도망가는 변덕쟁이도 천로역정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복음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상 현자의 거짓된 가르침에 넘어간 자도 순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불꽃을 꺼뜨리기 위해 얼음냉수를 끼얹는 마귀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는,
자도 천성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늘 사모하는,
크리스챤은 마귀의 바람이 강할수록 더 많은 기름을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 믿다가 교회를 떠난 배교자도 쭉정이처럼 멸망의 불에 던져집니다.
크리스챤이 좁은 산길을 지나가는데, 길 양 옆에 사자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던 크리스챤에게 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크리스챤, 놀라지 마라.
그 사자는 발 묶인 사자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바른 길을 가라."
그렇습니다. 세상이 두려워 비틀거리는 사람은, 천로역정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 허영에 눈이 끌려, 이것도 사고 저것도 움켜쥐려는 사람도 순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도 즐기고, 손해 볼 줄도 알고, 천성의 복이 좋아 세상 헛된,
안개에 메이지 않는 크리스챤을 하나님은 열두 진주 문 앞에서 두 팔 벌려 기다리십니다.
“어서 오라!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를 위한 영원한 나라가 준비되어 있노라!”
그리고 예비 된 천군천사들이 승리의 나팔을 불어주고, 승리의 노래를 불러 줍니다.
“행군 나팔 소리로 주의 호령 났으니, 십자가의 군기를 높이 들고 나가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성에서!”(찬송가 402장 1절)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388장 후렴)
다같이 일어나서 영감 있는 찬양인, 고형원 찬양선교사님의 찬양 중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하는 찬양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찬양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