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은 운무가 절경이다.
통신무선중계소가 노고단(1,507m)이다.
중앙이 반야봉(1,732m) 그너머가 천왕봉(1,915m)(지리산)이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처있으며, 파노라마 같이
해아릴 수 없는 봉들이 운무속에 노니는 모습이 천상같다.
산상의 곡성에서 구레를 지나 순천으로 가는 야간열자는 기적을 울리며 999 은하철도
처럼 지나갈때는 저절로 고향을 그리기도 했다.
날이 밝아오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해무(海霧)와 섬진강에서 올라오는 운무(雲霧)가
섞이어 비단결 같다.
그곳에 있고보면 신선처럼 몸이 가벼워 하늘에 구름타고 , 금방 고향의 부모를 벨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노고단 밑발끔치에 화업사, 천운사, 쌍계사가 자리잡아 범인이 범할 수 없는 곳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리산 3대 사찰하면 화엄사, 천은사, 쌍계사 다.
필자는 군 작전겸 3대 사찰을 공부했다.
한국 사찰은 명산 산자락에 터를 잡고 범인을 부처의 설법으로 중생을 개도한다.
사찰을 찾아가는 길(회랑)은 4~12km에 기암과 수림 그리고 실개천을 끼고있다.
천은사, 쌍계사를 끼고 반야봉으로 올으면 피아골을 지나게 된다.
피아골은 지리산 인민유격대(빨치산)의 활동 무대였다.
사찰에 닫으면 일주문(一 心, 오직 부처만, 생각하라는 상징 이면서
신성한 사찰 경내에 들어서기 전에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을 지나면
금강문을 만난다. (불법의 수호신을 모신곳)
다음은 천왕문(天王門)에 사천왕(四天王)이 있다.
칼을 찬 왕, 마귀를 쫓는 왕, 인상이 험악한 왕, 웃음이 가득한 얼굴에 비파를 타는 왕.
이들은 부처의 수호신이다.
그리고 나서 대웅전 부처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서양의 기독교, 아랍의 이슬람교, 인도의 회교 등은 도시 혹은 민촌지역에서 범인을 개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서정적 관문이 없다.
필자가 천은사에 갔을때, 비구니 승가였다.
사찰의 지형은 금성탕지(金城湯池) 였다.
수옥루 옆에 다소 넓은 뜰이 있었다.
그 곳에서 나의 병사들과 잠시 휴식을 하면서 중식을 했다
필자는 휴식 시간에 사찰을 내를 둘러봤다.
5 천여 평에 가까운 경내는 인적이 없어 고스넉하고 온기가 청량해 보였다.
넓은 경내는 부처의 살결처럼 티끝 하나 없지만 단지, 내 그림자 였을 것이다.
그 고요 속에 여우바람(風)에 풍경소리 그리고 간혹 멧새의 울부짓음 뿐이었다.
그리고 수목의 초록빛 사이 금 쪽같은 햇볕이 나뭇잎에 흔들림에 영롱한 옥구술처럼 아롱거렸다.
가람의 둘래는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쌓여 불가 사람아니고는 인지 하기가 힘들 것 같기도 했다.
승려 한 분이 대웅전에서 선불을 하다 인기적에 대면하게 됐다.
828년(흥덕왕3년) 인도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 했다.
승려가 보여준 금동불감 (나옹화상원불~보물)을 애중중지하듯 가슴에 앉고 보여 주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승려의 애톳하고 정갈한 그 모습, 네 뇌리를 스치고간다.
고려시대 만들어졌다.(높이 34.3cm, 폭 34.7cm, 너비 21cm)
금동으로된 불상인데 화려하면서도 찬란한 모습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특히 실개천위에는 아담하고 날렵한 수홍루가 제비처럼 멱감고 천상으로 날라 오를 것 같다.
그 진풍경은 ............ 머라 표현하기.
다음은 화엄사는 544년 (백제 성왕 22년)에 창건 했다
여기에는 국보및 보물이 많아 언급하기 그렇다
대웅전과 범종이 웅장한 모습은 불국사와 대조를 이루는 듯 했다.
저녁 노을 속에 예불을 알리는 범종, 법고(북), 목어, 운판이 지리산 기슭에 산허리와 골과 골 사이를 저녁노을 속에 울려퍼지는
소리는 장엄하면서도 웅장하고, 천상이 따로없어 여기가 천상이로구나 하고 물고기와 놀고 새처럼 날고 구름타고
세상을 본다는 의에서 법종이 울리고 법고가 우는구나 생각하니. 내가 한없이 작아 졌다.
법종; 지옥의 중생을 제도한다.
법고(북); 가축과 짐승을 개도.
목어;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
운판; 인간과 새의 허공을 떠도는 극락으로 인도,
화엄사는 우독히 대웅전보다 각황전이 웅장하면서 근엄하고 청아하고 세련미있어,
외양이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내부의 불상 역시 2층 누각의 천장과 맞다은 삼족불은 어마어마하게 큰 불상이라,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여 눈으로만 감상과 불심을 올릴 수 있었다.
여기는 군인의 힘도 무용지물.
불문(不聞)~ 산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잃지 않는다.
쌍계사는 경남 하동 화개면에 있다.
723년 삼번(三法) 스님이 창건했다
쌍계사의 대웅전및 부속건물은 목조건물이면서 400년이 나 된다.
그 찬란함과 화려한 단청이 아름답다
그리고 9층석탑의 세련미와 우아함은 감탄사가 연이어 나온다.
가람 배치도는 충남 수덕사처럼 산능선에 계단식 지형에 건물이 자리잡아 자연미가 극치를 이룬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 순천 14 연대의 반란을 일으켜 구레 경찰서를 점령하고,
피아골에서 유격전을 펼치다 토벌부대를 피해 뱀사골로 옮겼다.
피아골은 기암과 원시림으로 깊은 계곡은 유격활동에 적합지형이 였다.
필자는 하늘이 안 보이는 원시림과 청아한 개울 물소리와 멧새소리는 피아노 음반처럼 곱기도 했지만 한눈 팔 여유도 없다. 군사 지도와 나침반 하나로 반야봉 정상을 점령했다.
대략, 박헌영, 이승엽 지휘부는 월북 했다,
그 하급지휘자 김달삼(대정읍 출신, 일본 중앙대 중퇴)은 제주 4.3 토벌대에 밀려 피아골의 유격대와 합유했다.
노고단밑 그림이 일제시대 일본사람의 산장인데
지금은 건물잔해가 넗부러져있었다.
그밑은 2인용 개천막인데, 그당시는 공수부대 1개중대가 상주
경계및 적은거거부작전의 일환으로 주둔했는데,
1개월 단위로 교대했었다. ( 지금은 특전사)
불(火)은색은 싸리나무로 라면을 끓이는 모습이다.
산에서 먹는 다는게 진미중에 진미로 금상첨화 였다.
때로는 산 토끼를 은도끼로 토끼몰이로 토끼 고기 맛도 일품 이었다.
.+-그 밑은 양때들의 방목장인데, 운무속에 나타났다.
풀어놓았다 하는 모습이 진풍경 이었다.
노고단에서
여름밤
은하수가 모래알처럼 흐터져있다
그렇지만 이웃 가족 같다
풀벌레 소리
산짐승소리
정적을 깨고
기적을 울리며 구레에서 순천으로 달리는 기차
은하철도처럼
차장에 얼비친 불빛에
고향을 그려봤다.
虎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