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가 이 골목을 찾아 온 게 꼭 20년 만이다.
군에서 제대 하고 단숨에 달려왔던 동네.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에 씌여 있던 주소는 미아리 499번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봄 빨리 군대를 다녀와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취직을 하리라는 결심으로 군입대를 지원해 놓은 어정쩡한 시기였다. 어른이 되었다는 시건방진 생각과 지금 찜해놓아야 한다는 친구들의 부추김으로 동네에서 제일 예쁘다고 인정받고 있는 영선이를 꼬드겨 서울 나들이를 하고 왔다. 그 해 여름 영선이는 이상하게도 뜨거운 칼국수를 먹고 싶어 했다. 논산 훈련소에 들어가던 날도 둘이는 칼국수를 먹었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눈물까지 그렁거리며 말문을 열지 못하는 영선이에게 그는 자기를 보내는 마음이 애틋해서 이려니 하며 꼭 기다려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영선이네 여관의 빨래며 허드레 일을 하며 홀로 자기를 키우던 어머니는 첫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영선이가 꼭 자기를 닮은 여자아이를 낳았다며 집에서 쫓겨난 영선이와 아기를 데리고 고향을 떠난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동네에서 제일 큰 식당겸 여관을 운영하던 영선이 아버지는 후처로 들인 아내가 눈엣 가시로 여기던 전처소생 영선이를 그렇게 내치는데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짐짓 모르는 체 넘어갔다고 한다.
“어머니, 영선아, 이제부터는 고생 끝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부자로 살꺼야”
하며 시작한 서울생활은 참으로 고단했다. 어머니는 타고 난 근면성으로 먼동네로 일을 다니셨지만, 아이를 낳고, 집에서 내침을 받은 후, 영선이는 우두거니가 되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살림을 하는 일에도 아무런 의욕이 없이 다만 슬픈 듯한 표정으로 세 살이 지난 아이에게 빈젖을 물리고 앉아서 아이 아빠가 온 것도 아는지 모르는지 멍하게 바라 볼 뿐이다.
“영선아! 너 왜 이렇게 됐어?, 나야! 나 철진이라구!”
“............”
영선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아니면 말을 잊어 버린 듯 멍하게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영선이에게 달라붙어 있는 아이가 자식이라기 보다는 그저 어미 젖을 물고 있는 강아지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제 아버지만 보면 숨이 넘어갈 듯이 울어댔다. 아침 일찍 나갔다 늦게나 들어오는 할머니와, 아무런 말도 없는 엄마랑 살던 집에 어느 날 나타난 아버지의 존재는 아이에게는 더 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을 터였다.
아이는 제대로 키워지지 않고 있었다. 엄마 젖을 빨며 그 엄마의 입모양과 그 다정한 음성으로 속삭이는 말로 세상을 열고 말을 배워 가야 하는 시기에, 깊은 침묵과 우울한 한숨으로 채워진 세월은 아이조차도 그들이 살고 있는 납작한 문간방만큼이나 침침했다. 첫 딸을 한 번도 다정하게 안아보기도 전에 너무도 울어대는 어린 것에 정이 떨어졌다.
그런 철진이가 야속했던가, 영선이는 어느 비오는 밤 목을 매고 스물 두 해의 삶을 접었다.
그 때 영선이가 앓고 있던 병이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어린 여자가 준비 없이 맞이한 산후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철진이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무런 정도 미련도 없던 아이는 동사무소에 다니는 집주인 아저씨의 주선으로 보육원인가로 보내졌고 내 팔자의 끝은 어디냐며 혼절하기를 거듭하는 어머니는 고향의 먼 친적집에 모셨다.
그렇게 지옥처럼 기억되던 곳을 다시 찾아오게 된 것은 오늘 마지막으로 이 골목을 돌아보고 아무런 미련 없이 훌훌 이 나라를 떠나리라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20년 전 그 일은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들짝 혼미해지는 때도 있다. 배가 고픈가? 이런 어지러움에 익숙하지만 그럴 때면 꼭 칼국수를 먹어야 했다. 영선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던 칼국수를 먹어야 뱃속이 든든해지며 정신이 드는 것이다.
여기 어디쯤에 그 때 그 집주인이 살았던가?
둘러보지만 골목도 동네도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 있었다. 그 집을 찾은들 아이 이름조차 지어 부르지 못한 그 아이에 대하여 내가 무엇을 알아 볼 수 있단 말인가? 살아있기는 할까? 생각하며 눈 앞에 보이는 조그만 칼국수 집으로 들어간다.
손님이 들기에는 이른 시간인가? 아니 어쩌면 점심때가 훌쩍 지난 시간인가? 가게 안에는 주인 내외만 있다가 심드렁하게 손님을 맞는다.
“칼국수 되지요?”
“ 예, 앉으시지요” 하며 신문을 보던 나이 지긋한 아지씨가 물 컵을 놓는다.
그래, 여기서 영선이랑 함께 먹던 칼국수 한 그릇 먹고 이제는 다 잊고 살자고 생각하니
정갈하게 담아내오는 겉절이에 군침이 돈다.
“아저씨!”
왈칵 문이 열리며 서 너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 손을 잡고 젊은 새댁이 들어온다.
동사무소를 퇴직하고 개발된 옛 집터에 칼국수 집을 낸 것은 마누라의 손 맛이 아깝기도
했지만 늘그막에 소일삼아 사람들과의 소통이 아쉬워서 이기도 했다.
20여년전 문간방에 딸인지 며느리인지 갓 낳은 아이와 함께 들어 살던 군산댁은 마누라의 고향 사람이었다. 한 이년 남짓 병든 닭처럼 시들어 가던 아이 엄마가 떠나고 두 부부는 차마 내칠 수 없는 어린 것을 아이 없이 살던 이웃에게 맡겨 키우게 했다.
그 어린애가 코스모스처럼 하늘 하늘 자라더니 스무 살이 되던 해, 이웃의 노총각 품으로 둥지를 틀었다.
“그래, 수현아, 어서 와라!” 하며 딸을 반기듯 맞는다.
“칼국수 주세요, 아줌마!”
“그래야지, 근데 이번 아이도 칼국수만 먹고 싶어 하나보다”
“글쎄 말이예요. 수현이 가졌을 때에도 열 달 내내 칼국수만 먹었는데, 또 그러네요” 하며
아이와 나란히 자리를 잡는다. 그는 여자들은 입덧할 때 주로 칼국수를 먹나보다 생각하며 푸짐하게 나온 국수를 먹기 시작한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칼국수 가락을 후후 불며 먹이고 있다. 아이는 뭐가 불만인지 갑자기 칭얼대며 울기 시작한다. 주인 부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귀가 쨍하리만치 큰 소리로 울어도 그냥 바라 본다., 아무리 제 엄마가 달래도 아이는 아랑곳없이 떼를 쓰며 운다.
“지 엄마도 꼭 저렇게 울어 대더니...” 주인 내외는 이 울음은 끝이 길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달래도 지가 울고 싶은 만큼 울어야 끝이 난다는 것을. 이 울음소리는 너무 귀가 아플 정도다. 그는 이따금씩 이맛살을 찌푸리지만 옛날에 그렇게 울었던 아이가 생각나 참아본다. 아이는 십 분을 넘겨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이윽고 그는 주인 남자를 부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장님, 저 애를 밖으로 좀 데리고 나가서 달래서 들어오라 그러면 안될까요? 죄송합니다만 정말 이건 너무 심하군요"
“아! 네, 좀 그렇지요? 죄송합니다.” 읽고 있던 신문을 접어놓으며 주인 남자는 냉장고 쪽으로 가서 조그마한 야쿠르트 병을 들고 아기가 울고 있는 테이블로 간다.
“수현아, 할아버지가 이거 주려고 하는데, 자! 울지 말고 할아버지랑 야쿠르트 먹을까?”
아이는 이미 익숙한 과정인 것처럼 울음을 그치고 야쿠르트를 받아들었지만, 다시 제 엄마를 보며 칭얼댈 태세이다. “자, 수현아, 이제 엄마가 국수를 먹게 너는 할아버지랑 저쪽 시원한 데로 가서 이거 먹자.” 하며 아이를 번쩍 안고 오래된 구형 선풍기가 매달려 돌고 있는 자리로 간다. 아이를 안고 가자 아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후루룩 맛있게 칼국수를 먹으며 나에게도 친정 부모님이 계시면 이분들처럼 아이도 돌봐 주시고 밥도 편히 먹을 수 있게 해주셨을 텐데 생각한다. 그리고 저쪽 구석에서 식사를 마치고 넌지시 건네다 보는 남자를 돌아보며 미안한 듯 웃음을 보낸다.
그 웃음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그 여름 칼국수를 그렇게 맛있게 먹던 여자 생각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2013. 7. 3. 이경숙
첫댓글 아내 영선이가 죽었네요.불쌍한...여자. 칼국수집에서 여자 손님과 아이는 아내와 보육원에 보낸 자식이 상상되어 슬픈 칼국수 맛
너무 슬퍼요. 그리고 인생이란 고해라는 말이 생각나요.
쓰시느라 힘드셨지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지난 번에 글쓰기 안하신다고 투정을 하시더니...짧은 소설이지만 구성이 탄탄하게 잘 쓰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