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듯이 지명도 세월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명의 변천은 고유어로 된 전래지명보다는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른 법정지명에서 더 현저하게 나타난다. 지명은 본래 보수성이 강하여 법정지명이 새로 생겨 이를 강요하더라도 전래지명만은 그 끈질긴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개칭되는 법정지명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기존의 마을들을 통폐합할 때 본래 지명의 한 글자씩을 떼어 이를 합성지명으로 만드는 일이다. 대개 기존 지명의 첫 글자를 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때로 새 지명의 어형 및 의미를 고려하여 두 번 째 자를 취할 수도 있다. 이처럼 병합으로 이루어진 합성지명(合成地名)은 대개 행정 편의에 의한 것으로 두 곳의 지명을 균등히 합침으로써 양쪽 주민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는 이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합성지명은 고유지명의 순수성을 외면하고 지명 본래의 특성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서두에서도 강조했듯이 지명 속에는 그 곳 지형의 특성과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문화가 배어 있기에 이를 외면한다면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무시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두, 세 지명을 합했을 때 처음 얼마 동안은 사람들이 이를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세월이 흘러 새 지명에 익숙해지다 보면 옛 지명 본래의 의미는 까맣게 잊어버릴 우려가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듯이 옛것을 잃어버림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지리지인 『삼국사기』 지리지가 나온 이래 오늘날까지 수차례의 크고 작은 지명 개칭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화성 및 수원지역의 지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일은 1914년 3월 13일에 공포되어(조선총독부령 제3호) 4월 1일부로 단행된 대대적인 지명 개편이 될 것이다. 일제는 경기도 소재 모든 면(面)의 명칭과 구역의 통폐합을 통한 일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수원 및 화성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명의 일원화란 명목으로 각 동리(洞里)의 명칭을 리(里)로 통일시켰다. 그 이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인 개칭이 없지 않았으나 현재의 화성 지명의 근간은 이 때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략적인 내용을 보면 당시 수원군은 20개 면(面)으로 통폐합되었고, 군내의 전체 마을은 170개의 리(里)로 고정되었다. 참고로 개편된 면(面) 이름만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수원면(水原面,6리), 일형면(日荊面,16리), 태장면(台章面,13리), 안룡면(安龍面,13리), 매송면(梅松面,9리), 봉담면(峰潭面,15리), 향남면(鄕南面,20리), 양감면(楊甘面,10리), 음덕면(陰德面,15리), 마도면(麻道面,10리), 송산면(松山面,14리), 서신면(西新面,13리), 비봉면(飛鳳面,9리), 팔탄면(八灘面,16리), 장안면(長安面,10리), 우정면(雨汀面,13리), 의왕면(儀旺面,9리), 정남면(正南面,19리), 성호면(城湖面,20리), 동탄면(東灘面,13리), 반월면(半月面,16리) 여기서 보면 지금의 그것과 다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현재는 수원, 의왕, 성호, 반월, 일형, 음덕 등의 면이 다른 지역으로 분리되고, 태장과 안용이 합한 태안면, 그리고 봉담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시청이 들어선 남양동이 독립하는 등의 변동이 그것이다. 원래 지명은 한자로 써야 제 맛이 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자로 표기되어야 그 의미도 분명해지고 또 다른 지명과의 변별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상기 기술에서 보듯 일제 때 개편된 면의 명칭을 한자로는 썼지만 지금 와서 보면 굳이 한자로 쓸 필요가 없을 듯이 보인다. 왜 그런가 하면 상기 면 명칭들이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합성지명으로 변질되어 지명 본래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 한자어 이름만으로는 그 지역 고유의 특성을 알기 어렵다는 얘기다.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기존의 어떤 지명이 합하여 오늘의 면 이름(面名)을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 동탄면(東灘面) : 동북(東北)과 어탄(漁灘)의 각 제1음절과 2음절의 합성 ○ 매송면(梅松面) : 매곡(梅谷)과 송동(松洞)의 각각 제1음절의 합성 ○ 봉담읍(峰譚邑) : 삼봉(三峰)과 갈담(葛譚)의 각각 제2음절의 합성 ○ 서신면(西新面) : 서여제(西如堤)와 신리(新里)의 각각 제1음절의 합성 ○ 양감면(楊甘面) : 양간(楊澗)과 감미(甘味)의 각각 제1음절의 합성 ○ 우정면(雨汀面) : 우정(雨井)과 압정(鴨汀)의 각 제1음절과 2음절의 합성 ○ 정남면(正南面) : 정림(正林)과 남곡(南谷)의 각각 제1음절의 합성 ○ 태안읍(台安邑) : 태장(台章)과 안룡(安龍)의 각각 제1음절의 합성 ○ 향남면(鄕南面) : 공향(貢鄕)과 남곡(南谷)의 각 제2음절과 1음절의 합성 ○ 장안면(長安面) : 초장(草長)과 장안(長安)의 각각 제2음절과 1음절의 합성 ○ 송산면(松山面) : 송산(松山)과 수산(水山)의 각 제1음절과 2음절의 합성
이렇게 보면 화성의 면 이름 중에서 남양(南陽), 마도(麻道), 비봉(飛峰), 팔탄(八灘) 또는 송산(松山), 장안(長安) 정도가 합성을 면하고 본래의 제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에서 남양(南陽)과 장안(長安)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지명으로 보이는데 특히 장안의 경우는 수원시의 장안구(長安區)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장안(長安)은 중국의 주(周)나라 이래의 진(秦), 전한(前漢), 수(隋), 당(唐) 등의 수도명으로 삼았던 이름이다. 정조가 화성의 북문 이름을 장안문(長安門)이라 이름 한 것도 그 옛날 중국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한(漢)·당(唐)의 수도 장안의 영화를 이 땅에서도 재현해보고자 했던 뜻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비봉면(飛峰面)은 비봉산의 이름에서 팔탄면(八灘面)은 자안천과 발안천이 흐르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면의 명칭들이 이처럼 합성지명으로서 지명 고유의 의미를 잃었다 하여 이를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이 이름에 대해 각 고을(面)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살리고 그 이름에 걸맞는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현지 주민들의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좋은 이름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고장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출처 화성시사(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