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인내 … 소리 없이 강한 국내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중앙 선데이 매거진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 제430호 | 20150607 입력
임지영(20)은 사실 ‘스타 명단’에 들어있던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니었다. 크고 작은 국제 콩쿠르에 입상해 이름을 알린 한국 바이올리니스트가 얼마나 많은가. 그는 그동안 별다른 콩쿠르에 참가하지 않았다. 지난해에야 시동을 걸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 참가해 3위에 입상했다.
연주 횟수가 많은 편도 아니었다. 실력에 대한 입소문이 날 일도 별로 없었다. 임지영은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술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해 현재 재학 중이다. 그야말로 국내 음악 학교에서 착실히 공부 중인 학생이었다.
지난달 30일 벨기에에서 전해온 우승 소식은 그래서 ‘깜짝 등장’에 가까웠다. 게다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였다.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대형 대회다. 그동안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명단이 화려하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37년), 레오니트 코간(1951년), 바딤 레핀(1989년) 등이다. 임지영은 세계적 톱 클래스의 연주자들과 같은 이력을 가지며 껑충 뛰어올랐다. 본인 또한 “말 그대로 ‘덜컥’ 우승을 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임지영을 6년째 가르치고 있는 김남윤 바이올리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1~2년 전부터 나는 예감했다. 지영이가 퀸 엘리자베스에서 우승할 거라는 걸.” 김남윤은 “나에게 처음 왔을 때 ‘기절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대신 그는 근성이 있었다. 뭐든지 과제를 내주면 끝까지 해왔다. 혹독하고 긴 연습 시간도 잘 버텼다. 음악적인 끼보다는 인내심ㆍ성실함으로 음악을 완성해냈다.
최근 들어 완성도는 더 높아졌다. 김남윤은 “어렸을 때 무대에서 자신감이 조금 부족했다. 칭찬을 거듭해주며 자신감을 북돋워주니 최근 1~2년새 대단한 연주자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스승이 말했듯 임지영은 톡톡 튀는 끼나 재주로 청중을 사로잡는 연주자는 아니다. 대신 근성과 무게감을 가지고 연주해낸다. 무대에서도 그 점이 보였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홈페이지에 참가자들의 연주 동영상을 제공한다. 결선에서 임지영은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으로 브람스 협주곡의 긴 호흡을 끌고나갔다. 전율이 일기보다는 안심이 되는 연주였다. 안정감과 무게감이 카리스마를 만들어냈다.
임지영 또한 “꿈에나 그리던 큰 무대였지만 마음을 비우고 음악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콩쿠르 출전 전에 왼팔 인대가 파열됐다. 무리한 연습 때문이었다. 두 달 동안 악기를 잡지 못하고 연습을 쉬었다. 그는 “오히려 콩쿠르 결과와는 상관없이 나와의 싸움을 해보자는 마음이 됐다. 편하게 연주하며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기악 부문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곡ㆍ성악 부문에서는 2008년부터 우승자가 나왔다. 하지만 이 콩쿠르는 본래 바이올린ㆍ피아노 대회로 1937년 시작했다. 작곡은 53년, 성악은 88년에 비교적 늦게 생겼다. 임지영의 우승이 더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게다가 국내에서만 공부해 일약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도 화제다. 임지영은 “내년 2월 학교를 졸업하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며 “국내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국 음악계는 지구력이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한 명을 확보했다. 음악 팬들은 꾸준히 지켜볼 연주자 한 명을 더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