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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소금꽃
순명을 외면한 소돔둥지 롯의 아내
아쉬움에 뒤돌아본 망향의 소금기둥
미련의 소금꽃으로 피어난 이야기
녹지 않은 소금이 제 맛을 못 내듯이
전파되지 않은 신앙 내 안에 우상으로
맛 잃어 화석으로 핀 염천의 상고대
일상화된 기도로 마비된 믿음 속에
사랑과 평화와 나눔의 온기 잃고
동면에 꽁꽁 얼어붙은 허울 좋은 백설 신앙
67. 겟세마니 동산
믿음보다 앞섰던 사랑이 있었듯이
말보다 보속의 길 걷고 또 걸으시며
무죄인 속죄의 제물 당신을 닮으려던
노사제 홀연히 떠난 겟세마니 보속의 집
땀방울에 젖은 돌들 발부리에 짓밟히고
등 굽은 손수레마저 빈 하늘만 지키네
겟세마니 동산에 적막이 드리우니
님의 잔기침 소린가 잠을 설친 조각달아
소쩍새 설움에 겨워 이 한 밤을 지샌다
* 겟세마니 피정의집 : 한국 농촌 사목에 평생을 바친 조선희(Philip Crosbie, 1915. 11. 10~2005. 3. 24 ) 신부가 건립한 ‘보속을 위한 피정의 집’
68. 순례의 물길
막힌 벽도 미로도 그늘도 지지 않아
가없는 사랑인 듯
드넓기만 한 바닷길
당신이 마련해 주신 은혜로운 여정에서
매임 없이 흐른다는
불안과 초조감도
인간의 얄팍한 감정의 소용돌이도
외면한
철부지인 양
마냥 자유로워
화해의 만남으로
평화로운 저 수평선
맞닿은 하늘길로 들려오는 당신 말씀
“여러분,
행복하세요. 나도 행복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의 물결 위에
그의 삶과 영혼의 일치는
온누리의 등대
빛부신
희열의 바다
짠맛들인 순례의 길
* 2011. 5. 1.「교황 요한 바오로2세 시복식」지중해 마리너호의 선상에서
69. 당신의 뜻대로
물이 가른 수평선, 흙이 메운 지평선
지어준 이 몫대로, 허락하신 그 뜻대로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함께 하는 보금자리
허망타 몸부림친 바람은 태풍이요
강물이 끝을 보니 갈증 나는 사해로다
이 순간 보채지 말자 깨어 있는 은총을
70. 성모님의 미소
입가에 잔잔한 미소의 의미는
영화보다 아픈 핍박, 안락보다 거센 환란
성모님, 복되심보다 심한 고통 아닐까요?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신 아기 예수
저 낮은 말구유에 탄생시킨 동정녀
그 아들
모친 가슴에
대못 박은 십자가
하지만
태양도 모든 색을 버려야
순수의 백색으로 부시게 거듭나듯
가진 것
다 내주셨기에
천상 모후 되셨네.
71. 눈 뜬 장님
입맛대로 채색된 눈동냥의 초점이
굴절의 독선으로 유채색을 넘나들다
편견의
우를 범하는
색맹의 눈 뜬 장님
선입견의 가시를 뽑아버린 겸손이
사랑의 도수 높여 폼나게 갈아 끼고
실로암
기적의 샘을
찾아가는 걸음걸음
72. 위로의 별
6․25 동족상잔의 수라장 속에서
복음의 씨로 묻혀 죽음을 초월한
별 하나 그리스도의 나 하나의 사랑이
어둠의 땅을 짚고 위로의 별로 뜬
불면의 영혼들이 떠돌이 별무리로
아직도 하늘 자락에 미리내로 흐르네.
73. 질그릇
굼벵이의 탈바꿈은
여름을 노래하고
누에고치 입에서는
비단실을 뽑아내며
봄날의 배추흰나비
허물 벗고 춤추는데
허튼 아집 굳어져
얼어붙은 내 허물도
봄볕이 잔설 녹여
초록 길을 틔워주듯
당신의 질그릇 속에
고이 담아주소서
74. 은총의 여정
하와의 나뭇잎 가리개만도 못한
잠자리 날개옷의 배곱티로 치장하고
죄락罪落의
올가미에서
네 탓 내 탓 탓만 말고
칠십여 년 한결같이
“너 어디 있느냐?” 고
흩어진 양羊 챙겨 모아
당신 사랑 베풀며
쟁여둔 은총의 여정
필疋로 펴게 하소서
* 춘천교구 설정 70 주년에
75. 빛에는 미로가 없다
어둠을 ‘쨍’하고 가르는 한줄기 빛
암흑에 눈부신 빛. 적막의 소스라침
빛에는
미로가 없어
눈감아도 환합니다.
그곳엔 지름길도 샛길도 없는 외길
감춤도 거짓도 없이 되 쏘인 반사가
삶 그린
빛의 성찬임을
믿고 따르렵니다.
76. 홍천성당
옹기골 산비알에 열린 생명의 오솔길
1923년 6월 21일 계해년 음력 5월 8일
너브내 중부 지역의 모태인 홍천성당
송정리에 뿌리내린 신앙의 겨자씨가
당신이 마련하신 희망리 마지기로 54
복음의 그 마중물로 길어 올린 사랑의 샘터
선악이 갈마드는 은총의 통로 지나
신심의 보습으로 일궈놓은 이랑마다
연연이 십자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며
성전을 고이고이 괴고 있는 솟을 종탑
성스러운 종소리는 말씀으로 생생하다
홍천의 등록 문화재 162호로 선택된 유산
* 홍천성당은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162호임
77. 석림石林의 군무群舞
-금강산 만물상-
각선미 자랑하는
빼어난 미인봉
눈부신 수정봉
고고한 독선암
저마다
속살 드러낸
일만 가지 포지션.
발뒤꿈치 곧추세운 우아한 발레리나
총총걸음 알레그로
뛸 듯 날 듯 솟은 석림石林
만물상
출렁거리고
갈채 소린
능선 넘고……
78. 백두산 천지의 몫
인간은 편 가르기 네 몫 내 몫 챙겼지만
자연은 합수라네 칼로도 못 베는 물
아기를 둘로 잘라 친어미를 찾겠다는
솔로몬의 슬기로운 오기를 예서 보라
성전같이 섬기는 백두산 천지가
신앙보다 푸르름 간직한 모습대로
온전히
들어낸 뜻은
묵시의 계시일터
79. 보길도 뱃길
보길도 뱃길 따라
역류의 세월 낚는
파도의 노랫가락
물결무늬 읊는 한 수
그 옛날
어부사시사
화답인가 메아린가
80. 하조대河趙臺는 말이 없다
돌고 도는 흥망성쇠 가라앉은 세대교체
해는 뜨고 달도 지나 바다는 그대로다
강물이 흘러들어도 늘지도 않는 바다
천하天河의 일심一心이 무한의 부메랑으로
시공의 덫에 걸려 그리움만 쌓인 바위
함묵의 수평선 위에 속울움 삼킨 너울
* 하조대河趙臺 : 조선 초 문신인 하륜(1347~1416)과 조준(1346~1405)이 숨어서 살았다는 곳으로 하씨와 조씨의 앞 글자를 딴 강원도 양양에 있는 정자
81. 이락사李落社*
충절의 푸르른 별자리의 이락포
출렁이는 파도도 숙연히 입 다물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샛별 하나 띄웠네.
* 이락사李落社 :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
82. 금산*에 올라
사뿐히 활개치며 솟아오른 날개봉
이성계 참선에 감복한 장군봉
봉마다 신비의 징소리 천혜의 걸작품
보리암의 독경 소리 석탑 위에 쌓이고
탑돌이 행렬에 나침반*도 빙글빙글
승경에 묻힌 달빛이 쌍홍문에 머문다
* 금산 :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산
* 나침반 : 경남문화재 74호
83. 파르테논 신전
타임머신 타고 2500년 거슬러 올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오르니
다시 막 날아오르려는 순간의 자세다
거대한 돌기둥 마흔 여섯 개의 날갯짓
오차의 착지현상까지 동원한 안정감
세계의 문화유산 1호 신들린 몸매들
84. 운문사*의 반솔
가사 장삼 느리고 좌선하는 청송靑松보살
사백 성상 비바람에 쇠진도 하련마는
외면한 생명의 질서 도솔의 신비련가
혜안에 비친 세월 독경으로 낚으며
선정에 든 와불로 깨어 있는 이 순간
달관의 젖은 상념을 상량할 길 없구나
* 운문사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위치한 사찰
85. 수타사壽陀寺*
한 쌍의 청기왓장 용머리에 걸쳐 놓고
팔작지붕 추녀 아래 월인석보 품에 안고
가부좌
틀고 앉아서
참선하는 수타사
비발디 사계를 노래하던 계류도
굉소*에 다다르니 머무르듯 흐르고
스님의
독경 소리만
더더욱 생생하다
* 수타사壽陀寺 : 강원도 홍천군 동면에 있는 사찰
* 굉소 : 수타사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던 물이 낙차로 인해서 깊게 고여 흐르는 물웅덩이
86. 수상 마을
-톤레샵호*의 수상 가옥-
이웃마을 나들이 집 한 채로 다녀요
주춧돌에 얽매인 욕심을 버리고
평상심 유지하면서
마음마저 홀가분해
납의로 더덕더덕 겉치레도 못했으나
행복지수 잣대를 물 위에 띄워놓고
헨델의 수상음악에 취한
달팽이의 보금자리
* 톤레샵호 : 캄보디아에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
87. 징검다리 섬
제주 돌石을 건너뛰어
우도에 다다르니
검은 용암 씻고 씻겨 흰 모래살 넘실대는
산호사 쪽빛물결이 괴고 있는 섬 속의 성城
우도의 꼬리를 문
집 한 채로 채운 섬
해녀 집 처마 끝이 해안선에 맞닿으나
신새벽
뱃고동 소리
깃을 세운 비양도
* 비양도에는 해녀 집 한 채뿐임
88. 너브내에는
너브내 푸른 정기 서려 있는 예제서
세기의 무희 최승희의 태버린 곳이 남면 제곡리 244번지란 말 못 들어 보았우? 해방공간에서 백범 김구와 함께 남북협상의 주역이었던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선생의 본적이 화촌면 구성포리란 말은 들어 본적 있소? 석기 시대유물이 동창의 물걸리, 북방의 중화계리에서 파헤쳐지듯이 근세의 거목이 들먹이고 있음이니 그 누가 강원도를 감자바위라 암하노불巖下老佛이라 한단 말이오? 뱃재고개 박정열여사의 위령탑 앞에서 한 꺼풀 옷자락마저 벗어 딸자식 감싸주고 동사한 모정이 애처로워 구슬피 우는 산새소리 들리지 않소? 보리울 한서의 얼이 골골이 피어나고 기미년 팔렬사의 혼불이 민초로 연연이 새움트니
대대로
이어 나아갈
하늘의 뜻이라오
89. 지렛대
허리를 조른다고 심장이 멈출 손가
그 허리 끊어지면 동강 난 절반 일 뿐
차라리
옥죄인 사슬 풀고
정․동맥을 돌고 돌려
반백년 한을 풀어 지렛대로 받쳐놓고
남녘에서 발 구르면 북녘하늘 차고 올라
동서東西의
그 지렛대로
남과 북이 들썩 들썩
90. 향수 어린 와동리瓦東里
공작산 기슭에다 수타사를 짓던 신라 때
기와 굽던 곳, 와촌이라 불려왔던 와동리
오백여 년 전 춘천박씨가 새로 마련한
큰 새터, 작은 새터 온 동네가 팔촌 이내
두레로 바쁜 마실의 정겨웠던 일손들
씨족 마을 박씨 문의공文懿公
박항朴恒 중시조님의 23 세손이신
제濟자 중中자의 막내둥이 민화旻禾
울 밖이 과일나무로 둘러싸여
유년을 공유했던 옛 친구들은
과수원집 가시내라고
세월이 흐를수록 짙어지는
향수 어린 와동리
첫댓글 종교적인 향취와 여독 없는 여행에 괌한 시조에 취해 귀갓길을 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