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
얼큰한 매운탕이 입맛을 돋운다.
어느 날 오후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문양 역에서 내렸다. 역 뒤로 병풍을 쳐 놓은 것처럼 야트막하게 산이 둘러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처음 삼십 분간은 오르막이라 힘이 들었으나 그 후는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산책하는 듯했다. 능선에서 바라보니 내가 중학교 3년 동안 낙동강을 넘나들며 오갔던 주변이다. 한 바퀴 둘러 오니 몸에 땀이 촉촉이 돋아났다.
내려와서 선배가 운영하는 매운탕 집으로 갔다. 선배는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내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분주했다. 등을 툭 치니 그제야 투박한 손을 내밀었다. 선배 아내는 고향의 뒷집에서 어릴 때 같이 자란 내 여동생의 친구다. 처음에는 논 메기 매운탕으로 출발했다고 했다. 집 앞에 논이 있었는데, 군청 직원이 와서 유기농법으로 논에 메기를 키우라고 했단다. 다음에 군청의 사람들이 왔을 때 논에 자란 메기로 매운탕을 끓여 대접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맛이 기가 차게 맛있었다고 했다. ‘매운탕을 끓여 장사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 일대에 논메기 매운탕의 원조가 되었고 매운탕 마을이 자연히 만들어졌다고 했다. 손님이 맛을 보고 아름 아름으로 알려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고교 시절에 친구와 함께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버스비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강창교가 놓이지 않아 배로 강을 건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강창교지만, 그 밑 나루터에 매운탕 집이 있었는데 여자 동기생 집이었다. 버스비를 빌리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갔다. 여자 친구를 만나 쑥스러워 선 듯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런 사이에 방으로 안내되었다. 한참을 있으니까 매운탕을 끓여 냄비 채 들고 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었으며 그때 매운탕을 처음 먹었다. 그 매운탕은 그녀의 아버지가 금호강에서 직접 잡아 매운탕을 끓였다고 했다. 그 집이 유명한 매운탕의 원조로 그 당시의 대통령께서도 대구에 오시면 가끔 찾아오곤 했단다. 매운탕을 먹은 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맙다는 말만 하고 대구까지 걸어온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동기회 모임에서 그 여자 친구를 만나 그때의 일이 기억나는지 물어보았다. 그때의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던 줄은 몰랐고 왜 말을 안 했는지 바보라고 놀림감만 받았다. 사춘기 시절이라 남자애보다 여자애가 말주변이 좋았고 부끄럼도 적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매운탕 맛이 지금의 어느 맛보다 뛰어난 것으로 기억된다. ‘모전여전’이라 그 여자 친구와 언니도 매운탕 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한번은 고향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다. 집에 들어가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히 퍼졌다. 냄새에 자극받아 갑자기 허기가 느껴져 뱃속이 ‘꼬르르’ 하고 소리가 났다. 드디어 음식상이 차려서 나왔다. 국이 나왔는데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친구가 직접 낚시하여 잡은 붕어로 탕을 끓여 내놓았다. 여기에 마늘다대기와 고추 양념을 듬뿍 넣고 먹었다. 다른 것은 눈에 띄지 않고 붕어 매운탕만 두 그릇 먹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렇게 많은 땀을 흘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붕어 매운탕을 하면 나를 부르곤 한다.
내가 매운탕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친구 K 군이 낚시로 잡아와서 가져가라고 부른다. 하던 일을 제쳐놓고 달려갔다. 월척 두 마리와 손바닥 크기의 몇 마리가 고무 다래 기에서 생동감 있게 퍼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먹을 줄만 알았지, 그냥 친구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친구가 칼을 잡고 붕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훑어 내고 비늘까지 말끔히 제거하여 물에 헹궈 비닐봉지에 넣어 끓이는 방법까지 알려 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곧장 왔다.
아내는 매운탕을 끓이려고 큼직한 솥에 준비한 육수를 넣고 불을 붙였다. 손놀림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무엇을 할지 몰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아내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저쪽으로 가란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향이 집안을 진동한다. 끓인 국을 몇 날 며칠을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붕어 매운탕을 끓이는 방법은 내장이나 비늘을 제거하여 물에 씻은 붕어를 물이 들어있는 솥에 넣고 끓인 후 뼈를 제거한다. 뚜껑이 있는 큰 용기에 육수(다시마, 무, 멸치)를 붓고 붕어를 넣은 후에 된장, 생강, 마늘, 대파, 고추장을 넣고 끓이면 된다. 비릿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소주를 약간 넣어 주는 것도 괜찮다. 붕어 매운탕은 입맛을 돋우고 몸의 기운을 끌어올리는데 좋단다.
이제까지 여가 시간을 주로 동적인 것에 치우쳐 활동했다. 이제는 친구를 따라 낚시도 하면서 붕어를 낚아 매운탕을 끓이면 더욱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고기보다 낚아 올리는 순간, 손에 느껴지는 짜릿한 맛을 못 잊어 낚시터로 간다고 했다. 낚시 바늘에 찔려 올라오는 붕어의 몸부림치는 모습이 일상을 사는 자기의 몸부림과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낚시는 붕어 낚시란다. 월척이란 말이 붕어 낚시에만 사용되는 말이란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묻혀 썩어 수많은 씨앗을 잉태하듯, 붕어나 메기가 자기를 녹여 우려낸 얼큰하고 매운 매운탕의 맛이 뭇 사람의 기운을 북돋운다. 세상 만물이 살아가고 죽어가면서 자신의 의미와 꿈을 이루는 것 같다. 자연의 이치가 이럴 진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얼큰한 매운탕은 나같이 열혈 팬이 있어 희생되어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나도 매운탕의 맵고 얼큰한 맛이 뭇사람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노폐물을 땀으로 빼내는 것처럼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