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1952 마사코’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은
송환선을 타고 현해탄으로 건너갔다
■ 이중섭의 뮤즈 마사코
이중섭은 천재화가로 평가 받는다. 이중섭은 한국 사회의 가장 비극적인 국면을 견뎌내며 짧은 생을 살다갔다. 천재들은 그런 시대에 보내져서 그 시대를 증언하도록 운명 지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1916년에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1956년생을 마감했다. 그러고 보니 이중섭이 생을 마감한 그 다음에 태어났다. 그의 예술은 전쟁과 가난, 가족과의 이별 등 극심한 고난 속에서 꽃을 피웠다. 이중섭은 예술적 천재성과 인간적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화가로 평가 받는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괴팍하다.
이중섭에게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과 가난, 가족과의 생이별이라는 극한의 환경은, 그의 그림을 위해 신이 마련해 놓은 장치였을 것이다. 천재들은 시대를 증언하기 위해 선택된 선지자이거나 예언자가 아닌가. 이중섭의 「소」는 한국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상징으로 노동의 소, 민족의 소, 고통받는 인간의 분신으로 표상된다. 또 그의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이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 뛰노는 아이들, 가족이 함께 있는 장면들은 가장으로서 지켜주지 못한 세계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중섭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6.25 전쟁 중 서귀포로 피난을 갔던 시절이라 한다. 제주 서귀포에도 이중섭미술관이 있따. 뭐라해도 그에게 가장 비극적인 기억은 1952년이다. 극심한 생활고와 아내 마사코 여사의 건강 악화, 그리고 마사코 아버지지의 죽음 등으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중섭의 절절한 '기다림'과 '그리움'이 담긴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일본의 아내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 속에도 마사코와 아이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아내 마사코는 이중섭의 뮤즈였다. 마사코가 없이는 화가 이중섭도 없다.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 여사가 2022년 8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마사코는 1921년생으로 이중섭과는 1936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의 미술부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중섭이 1943년에 귀국하고 마사코는 1944년 대한해협을 홀로 건너 한국으로 입국해 둘은 1945년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중섭은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의미로 이남덕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로지 이중섭만을 보고 한국으로 오는 마사코를 마중 나온 이중섭의 손에는 삶은 계란과 사과가 한 가득이었다 하는데, 마사코는 그때의 '꿀 같은 사과 맛'과 '따스한 품'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이중섭이 1954년 11월 아내에게 보낸 편지화에는 "나만의 아름답고 상냥한 천사여 더욱더 힘을 내서 건강하게 지내줘요. 화공 이중섭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씨를 행복한 천사로 하여 드높고 아름답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에 돋을 새김해 보이겠어요.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라고 쓰여 있다.
이중섭의 대표작의 하나인 「현해탄」(1954)도 가족을 만나는 희망을 담고 있는데, 두 팔을 벌리고 웃는 부부와 두 아들, 다섯 마리의 물고기 등이 그려져 있다. 이같은 바람을 뒤로 하고 이중섭은 2년 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영양실조와 간염 등으로 눈을 감음으로써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마사코는 이중섭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디카시 「이중섭 ‘1952 마사코’」는 어미 길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의자 위에서 품고 있는 장면을 날시로 포착한 것이다. 시적 대상이 겉
으로는 길고양이 가족인데, 이것을 사진기호로 찍고 썼다.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은
송환선을 타고 현해탄으로 건너갔다
위와 같이 언술함으로써 사진기호는 길고양이 가족이라는 지시적 의미를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기호로 생성된 것이다. 길고양이라는 현실 속의 대상과 디카시 작품 속의 사진기호는 언술에 의해서 전혀 다른 의미체가 됐다는 말이다. 이 디카시 창작은 객관론적 관점에서 이뤄졌다.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하나로 객관론은 가장 냉정하고도 가장 엄격한 태도를 요구한다. 이때 예술은 예술가의 마음속에서 유로하는 감정의 흔적이 아니고 대상을 재현한 것도 아니며 독자의 취향을 고려한 것도 아니다. 현실 대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과 구조로 이뤄진 새로운 대상으로 존재한다. 예술가와 와도 예술적 대상과도 절연된 스스로의 형식과 질서로 서 있는 자율적 존재이다. 객관론은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이 작품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을 논할 때, 시인의 감정보다 플롯의 구조를 먼저 보며 비극의 힘은 눈물의 진정성에 있지 않고, 사건이 어떻게 배열되고 긴장을 형성하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가를 주목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에서도 이미 대상을 질서 있게 재현하는 기술이라고 봤다.
근대에 이르러 객관론은 형식주의로 더욱 선명해진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과 영미의 뉴크리티시즘 비평가들은 작품을 오직 언어의 선택, 이미지의 대비, 리듬과 구조의 긴장 속에서 생성된다고 보았다. 이때 예술은 형식과 구조로 구축돼 스스로 분석되기를 요구하는 대상이 된다. 아도르노 관점에서 보면 예술의 객관성은 현실에 순응하지 않기 위한 대상과의 거리에서 나온다. 작품은 현실을 직접 고발하지 않지만, 현실과의 간극을 형식 속에 새김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비판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예술은 불편함을 주고 그 불편함이야말로 객관적 예술이 가진 힘이다.
디카시 「이중섭 ‘1952 마사코’」도 현실의 대상 길고양이 가족과 사진기호의 비동일성의 거리는 시적 불편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기호는 이중섭의 뮤즈 마사코와 새롭게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면서 현실의 길고양이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체로 거듭난다. 이
작품은 현실의 기호인 길고양이 가족이 예술적 기호로 어떻게 탈바꿈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이라는 시각 기호는 현실의 괴리를 드러낸다. 낡은 나무 의자 위에 몸을 웅크린 길고양이 가족은 객관적 현실 속에서는 내가 주는 먹이에 기대어 살아가는 그렇고 그런 길고양이다. 그저 길 위의 생명체일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포착된 날시로서의 그것은 길고양이의 실재를 증명하는 기호가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존재들의 메타포라는 강력한 시적 충동을 준다. 스마트폰 내장 디카로 찍힌 사진기호는 다시 문자기호와 결합하며 전혀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인(이남덕)"과 "현해탄"이라는 구체적인 시어는 사진기호 속 고양이들을 1952년 이중섭이 눈물로 떠나보낸 아내 마사코와 아이들의 환영으로 치환시킨다. 이때 사진기호 속의 낡은 의자는 이중섭의 빈자리가 되고, 그 부재 위에 남겨진 길고양이 어미나 새끼 두 마리는 이중섬지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화가가족의 형상이 된다. 낡은 의자와 길고양이, 그리고 1952의 현해탄의 이별의 서사가 맞물리며 형성된 이 유기적 상호텍스트성의 구조는 전쟁이라는 시대의 비극과 그 속에서 가족 이산과 생이별의 그리움을 동시에 환기한다. 이 작품에서는 이중섭라는 천재의 비극적 삶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기호학적으로 작용하지만 그것도 사진기호와 함께 새롭게 결합되면서 이중섭과 마사코라는 자연적 기호를 넘어 세계 내 던져진 존재로서의 실존적 정황이라는 강한 보편적 환유로 드러난다.
디카시 「이중섭 ‘1952 마사코’」는 어떻게 현실을 예술적 기호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디카시에서 현실 속의 길고양이 가족이라는 기호를 그대로 가져와서 길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말한다면 그것은 현실기호가 생경하게 예술로 승화되지 못한 포즈가 될 것이다. 길고양이 가족이 예술적 기호로 바뀌면서 갑자기 마사코와 연결되는 것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라고 의아해할 수도 물론 있다. 그러나 낡은 의자 위의 길고양이 어미와 새끼 두 마리를 마사코와 아이들과의 상호텍스트성으로 구축되는 것이 마냥 폭력적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객관론적 관점에서 디카시 창작은 사물을 낯설게 하는 것이고, 사진기호와 문자기호를 폭력적으로 결함시킴으로써 현실을 예술기호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 뜻밖의 소식
초등 국정 지도서 국어 6-1(주)미래엔 2025
초등 국정 보완 교재(CD) 국어 6-1 (주)미래엔 2025
며칠 전에 문학예술저작권협회에서 메일이 한 통 왔다. “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정을 받아 교과용도서보상금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귀하께서 권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작권물이 교과용도서에 수록되었습니다. 이에 교과용도서보상금을 지급하여 드리기 위하여 신청에 관한 안내를 드립니다.”라며 권리관계확인서 및 보상금분배신청서가 첨부 파일로 왔다. 첨부파일에는 저작물명이 「시 쓰는 순서」로 초등 국정 보완 교재(CD) 국어 6-1 (주)미래엔 2025, 초등 국정 지도서 국어 6-1(주)미래엔 2025, 두 곳에 수록됐다는 것이다. 「시 쓰는 순서」는 2010년 탑북스에서 출간한 『시창작입문』의 75쪽〜88쪽에 있는 내용으로 발췌 수록됐다. 위의 두 교재는 2019년 3월 1일 초판 발행됐고, 2025년 3월 1일 7쇄가 발행됐다. 이 교재는 올해까지만 사용되고 2026학년도에는 개편된다고 한다. 2019년에 발간된 것은 교재 사용 마지막 해에 알았다. 전번에도 몇 번 이런 메일을 받았던 것 같은데, 설마 하고 무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교과용으로 사용되는 저작물에는 저자 동의 없이도 우선 수록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서 내게 수록한다는 통보 의무는 없다.
초등 국어는 국정 교재라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모두 같은 국어교재로 공부한다.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초등학교 6학년은 적어도 시 쓰는 순서는 나의 시론을 바탕으로 학습한 것이다.
2002년에 삼영사에서 『시창작강의』를 처음 출간하고 몇 차례 증보를 거쳐 책 이름을 ‘시창작입문’이라고 바꿔 출간했다. 『시창작입문』도 2014년에 개정증보판을 냈다. 『시창작입문』은 시론교수로서 가르치고 시인으로 창작하며 공부하고 깨달았던 것을 집대성한 나름의 시창작 이론서이다. 이 저서를 기반으로 2017년에 『디카시창작입문』도 출간할 수 있었다. 지금 연재하고 있는 이상옥의 디카시창작론도 따지고 보면 『시창작입문』에 기댄 바가 클 것이다.
첫댓글 우와!!! 교수님 저서가 교과용 도서 초등 국어에 발췌 수록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