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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디방 자포네]는 1892년, 파리 몽마르트르에 새로 문을 연 나이트클럽이다. 몽마르트르는 그 시절에 화려한 유흥가로 변모 중이었다. 쇼도 보고, 밥도 먹고, 그야말로 흐드러진 음주가무로 밤새 들썩이는 캬바레와 뮤직홀, 카페-콩세르가 하나 둘씩 들어섰다. [르 디방 자포네]는 ‘일본 의자’라는 이름 그대로 당시 파리를 휩쓸던 최신 트렌드에 발 맞추어 화선지를 바른 램프와 대나무 의자 등 이국적인 일본풍으로 실내를 단장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우키요에의 특징이 드러나는 대범한 화면 구성
 캬바레 주인 에두아르드 푸르니에는 화가 툴루즈-로트렉에게 파리의 거리 곳곳에 나붙게 될 선전 포스터를 주문했다. 단순하면서도 선명해서 멀리서도 단박에 눈길을 잡아 끌며, 꼭 한번 거기에 가 보고 싶도록 유혹하는 것이 광고의 사명이다. 툴루즈-로트렉은 일본 판화로부터 강렬한 이미지를 위한 표현 방식을 빌려왔다. 적절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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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전에 캬바레를 그렸던 드가나 쇠라 등이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무대를 보여주었다면, 툴루즈-로트렉은 연기자가 아니라 관람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늘씬한 몸매가 드러나도록 몸에 꼭 맞는 검은 코트를 입고 타조 털이 한들거리는 모자를 쓴 여인은 노란 색을 배경으로 눈에 확 띄는 우아한 곡선을 만들며 화면 한 가운데에 앉아있다. 그녀는 지팡이를 든 중년의 신사와 일행이다. 신사는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귓속말을 하고 있지만, 여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무대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무대 아래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휘두르는 지휘봉이 보이고, 더블 베이스가 마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튀어 올라와있다. 무대 위의 가수는 화면에 머리 부분이 잘려나가고 드레스만 보인다. 이처럼 대범한 화면 구성과 비대칭의 구도, 사선으로 내려다 보는 듯한 시각, 원색의 넓은 색면과 텅 빈 공간, 탄력적인 곡선으로 단순화한 형태 등이 바로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이 열광했던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최고의 댄서 잔 아브릴의 캉캉
 가녀린 곡선이 세련된 포스터 속의 여인은 당대 최고의 댄서 잔 아브릴(Jane Avril)이다. 동행한 신사 유명 평론가 에두아르드 뒤자르댕이고, 공연 중인 가수는 목이 긴 검은 장갑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몽마르트르의 전설,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다. 모두 툴루즈-로트렉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이자, 친구, 그리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타급 인사들이었던 것이다. 툴루즈-로트렉은 우키요에의 형식을 빌어 세련되고 고상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여 그야말로 ‘엣지있게’ 향락을 추구하는 기묘한 결합이 가능한 공간을 매혹적인 포스터 속에 만들어냈다.
새로운 나이트클럽에 이지적인 분위기를 더해준 데에는 잔 아브릴의 존재도 한 몫을 했다. 아브릴은 당시 최고의 쇼를 선사했던 몽마르트르의 핫-플레이스, 물랭 루즈(Mouline Rouge)가 자랑하는 댄서였으면서 유명한 문인이나 예술가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격조 높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던 것이다. 아브릴 이전까지 물랭 루즈의 얼굴은 ‘라 굴뤼’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댄서 루이즈 웨버였다. 거침없는 행실로 하루가 멀다하고 구설수에 올랐던 라 굴뤼에 비해 우아한 말투에 어딘가 우울한 그늘이 매력적이었던 아브릴은 곧 거액의 출연료를 받으며 라 굴뤼의 자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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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의 유명 클럽인 [자르댕 드 파리]에서뿐 아니라, 뉴욕과 런던으로 해외 공연을 할 정도로 그녀의 캉캉 댄스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상품이었다. 말년에는 비록 만인에게 잊혀진 채 궁핍 속에서 비참하게 죽었지만, 지난 2001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OST ‘레이디 마말라드’가 강렬했던 영화 [물랭 루즈]에서 니콜 키드먼의 모습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툴루즈-로트렉의 판화 속에서 아브릴은 비현실적인 곡선의 긴 실루엣으로 그려져 그 자체로 마치 추상적인 장식 무늬 같다. 굽이치는 듯 리듬감 있는 유연한 곡선은 그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감각의 상징이었다. 이는 패션에서부터 미술,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를 비롯하여 지금도 파리를 상징하는 지하철 ‘메트로폴리탄 Métropolitain’의 입구 장식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곧 아르 누보라고 불린다. 1895년, 독일 출신의 미술품 딜러인 지그프리트 빙이 파리에 ‘메종 드 아르누보’ 매장을 열면서 아르 누보는 그 시대의 감각을 대변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빙은 일본을 비롯하여 유럽 전 지역으로부터 들여온 도자기와 장식품을 팔았다. 특히 일본과의 활발한 교역을 통해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온 공예품과 미술품은 아르 누보의 미감과 적절하게 어울렸다. 이국적인 사치품으로 장식한 호사스런 실내, 화려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매혹적인 쇼와 거리 곳곳에 서있는 아름다운 건물들은 쾌락과 유희를 추구했던 당시 파리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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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랭 루즈 : 라 굴뤼] 1891년
석판화, 191cmx117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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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물랭 루즈의 연기자, 여자 어릿광대] 1895년
마분지에 유채, 64cmx48cm, 오르세 미술관 |
향략의 문화, 정신적 피로, 절망의 시대
 이 시대를 흔히 ‘라 벨르 에포크(La belle époque),’ 즉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부른다. 19세기의 마지막 10년이 시작되는 1890년부터,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예술과 음악, 문학이 찬란하게 피어났고, 도시민들의 삶은 갖가지 다양한 오락과 유희로 소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에 누렸던 극도의 사치와 향락은 바로 서구 문명의 종말을 예고하는 퇴폐와 쇠락의 불길한 전조이기도 했다.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흘러 넘치는 물질 속에서 오히려 불안과 절망, 피로감을 느꼈다.
정신분석학은 이 시기에 급속도로 발달했다. 파리의 정신과의사였던 장-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 1825-1893)에게는 전 유럽으로부터 환자들이 찾아왔다. 유명인들로 가득한 그의 환자 리스트에는 잔 아브릴도 들어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시대적인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 이상, 우울증에 시달렸고, 일부는 결국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했다. 툴루즈-로트렉은 알코올 중독자로 요절했고, 카미유 클로델은 여생을 정신병원에 수용된 채 마감했으며, 폴 고갱은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그의 친구 반 고흐는 자살에 성공했고, 에드바르트 뭉크는 음주와 신경증, 우울과 자살충동에 평생 시달렸다. 명단은 끝도 없이 길다. 화려한 도시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알 수 없는 긴장과 공포감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현실화했다. ‘아름다운 시절’은 1914년, 전쟁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이 파괴되면서 돌이킬 수 없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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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랭 루즈에서의 춤]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16cmx150cm,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 The Briedgman Art Library, Paris - GNC media, Seoul Briedgman Art Library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