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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부터 개강을 하여 아무래도 방학 때처럼 정기적으로 올리지는 못할 것 같네요. 그래도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이 있거나 하면 비정기적으로라도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악기를 소개할 때는 먼저 "풍류 악(樂)"자부터 소개 설명을 하여야 하는데... 좀 늦었지만 이곳에서는 악(樂)자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무릉박물관 안의 편종고악청(編鐘古樂廳)에 진열된 슬(瑟)의 모습입니다. 밑에 받침대인 악기틀이 있는데 나무 받침대였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뒤쪽으로는 편종도 일부 보이네요.
풍류 악(樂)자는 바로 나무로 된 악기틀 또는 받침대 위에 현악기를 설치해놓은 모습입니다. 이런 악기틀을 한자로는 거(簴)라고 합니다. 풍류 악(樂)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에 보이는 모습은 이 글자의 창의(創意)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슬 같은 현악기를 악기틀위에 얹어놓은 모습인데, 악기의 현이 "가는 실 멱(糸)"자가 생략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금문부터는 "흰 백(白)"자가 중간에 추가되었는데 엄지손가락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곧 현악기를 연주하는 손가락을 표현한 것이지요. 그러나 실재 슬(瑟)은 활을 가지고 연주합니다. 물론 손가락을 써서 현을 짚어 다른 다양한 음을 내기도 하지요. 樂자는 음이 세 개입니다. 음이 여러 개인 한자도 보면 모두 원래의 뜻과 상관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훈은 "풍류 악"이고 그 다음은 "즐길 락", 마지막으로 "좋아할 요"가 있습니다. 각 음훈에 대한 용례를 들자면 음악, 쾌락, 요산요수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음악을 연주하는 상황은 보통 모두 즐기게 되고, 사람들은 대개 이런 상황을 좋아한다는 것이지요. 한자가 음도 달라지고 뜻도 막 갈라지고 하지만 원래의 뜻에서 턱없이 벗어나는 용례는 많지 않습니다. 다음의 사진은 금(琴)입니다. 보통 우리는 금(琴)의 훈을 "거문고"라 라여 습관적으로 저 글자만 나오면 으레 거문고로 풀이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음악 관련 전문가들은 반드시 번역을 할 때도 "금"이라고 풀이를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금"과 "거문고"는 엄연히 다른 악기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더군요.
사진의 금을 보면 공명통인 나무와 기러기 발이라고 부르는 안족(雁足), 그리고 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문고 금(琴)자는 바로 이 세 부분을 간략화하여 표현한 한자입니다.
거문고 금(琴) 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에는 금(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글자가 조금 늦게 만들어졌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제사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맞지 못하였거나... 금문의 모습에는 현의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만 자형이 조금씩 변하여 소전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바뀌었습니다. 아래쪽에 보이는 어항을 엎어놓은 듯한 둥근 아치는 금의 몸통을 나타낸 것이고 王자 형태의 모양은 현을, 그리고 양쪽 현 사이 중앙에 있는 가로선은 바로 안족을 나타냅니다. 해서에서는 더 간략화하여 王자의 형태 둘 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금(今)자는 왜 붙었을까요? 바로 이 글자 음소입니다. 원래는 형성자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그 음가에 해당하는 음소를 덧붙인 것이지요. 금과 슬 같은 악기에는 재미 있는 얘기가 많습니다. 후한 때 채옹이 길을 가다가 민가에서 밥을 짓는 오동나무가 타는 소리를 듣고 좋은 나무임을 알아 그 나무로 금을 만들었는데 나무의 길이가 조금 짧아 끝이 탄 부분이 그대로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금을 꼬리가 "그을린 금"이라는 뜻의 "초미금(焦尾琴)"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사성어에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는 말이 있는데 안족을 갖풀로 고정시켜놓고 슬을 연주한다는 말로 고식적이고 꽉막혔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앞에서 이미 고(鼓)자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만 이 글자는 동사로 쓰이면 탄(彈)과 같은 뜻이 되어 연주한다는 뜻이 됩니다. 현악기니까 타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또 금과 슬은 협연을 하면 마치 사이가 좋은 부부를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이 좋은 부부를 금슬이 좋다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보기도 시원한 정자에서 과객이 퉁소를 불고 있습니다. 퉁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지요. 저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과객이 퉁소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리랑이랑 몇 곡을 되는 대로 연주를 하던데 조선시대 왕족으로 퉁소의 달인인 단산수의 옥퉁소 솜씨와 비교를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요즘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퉁소는 우리 악기이고 서양악기로는 플룻이 있습니다. 퉁소나 플롯처럼 옆으로 부는 악기 위에도 관악기에는 피리, 클라리넷, 섹소폰 등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케니 G입니다. 곧 내한 공연을 한다는데 그가 연주하는 섹소폰 소리를 들으면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래의 사진은 피리입니다. 길고 짧은 피리가 나란히 놓였네요. 섹소폰처럼 정면으로 부는 관악기입니다. 이런 긴 관악기 모양을 본든 글자가 바로 "말씀 언(言)"자입니다.
말씀 언(言) 갑골문-금문-소전-해서 바로 위의 언(言)자는 아랫 부분 口자의 형태만 빼면 "매울 신(辛)"자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형체소에 口자를 넣은 것은 아마 이 악기는 입으로 부는 악기라는 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악(樂)자에 손으로 연주한다는 뜻으로 "白" 모양의 형체소가 들어간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요. 이런 점을 보면 옛날(의 중국)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탁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악기는 옛날에 관청에서 백성들에게 포고를 할 때 썼다고 합니다. 믿을 신(信)자에 그 뜻이 잘 드러나는데, 관악기를 분 다음에 사람들에게 포고하는 것은 공신력이 있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요즘으로 치면 공인 인증이 되는 믿을 만한 선포라는 것이지요. 관악기 가운데는 위와 같이 옆으로 앞으로 부는 형태 말고 이런 관악기를 길이가 다르게 하여 하나로 엮어 다양한 소리를 내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옛날 그리스 신화에 보면 양을 치는 작은 괴물 같은 악동 이미지의 신인 상체는 인간 하체는 염소 형태를 한 판(Pan)이 늘 들고 다니며 연주를 하므로 이런 형태의 악기를 팬플룻이라고 합니다.
팬플룻을 연주하는 소년의 모습이 퍽이나 진지하면서도 귀엽습니다. 사진만 봐도 소년이 연주하는 팬플룻의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이 악기의 모습은 바로 다음 사진과 같이 생겼습니다. 신화에도 나올 정도이니 유래가 굉장히 오래되었을 것임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죠.
저런 팬플룻의 형태는 중국에도 옛날부터 존재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黃帝)가 악관인 영륜(泠綸)에게 해곡(解谷, 嶰谷)의 대나무를 취하여 관악기를 만들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길이가 각기 서로 다른 여러 개의 대나무를 잘라서 만든 악기의 모양을 표현한 것이 바로 "피리 약(龠)"자입니다. 지금은 형체소에 재료를 나타내는 부분을 덧붙어 "籥"이라고 합니다.
피리 약(龠) 갑골문-금문-소전-해서 악기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주하는 사람의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할 것입니다. 독주회도 그럴진대 합주회에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화음을 잘 맞추면 독주의 감동보다 몇 배는 배가되겠지만 그 반대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입니다. 실황 연주회에 가면 지휘자가 나오기 전에 각자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느라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데, 그야말로 그런 불협화음을 계속 들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래의 글자는 화할 화(和)자의 고자입니다. 왼쪽에 피리 약(龠)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이 글자의 소리를 나타내는 음소인 벼 화(禾)자가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갑골문에 보이는 문자는 상형문자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연구에 의하면 벌써 갑골문에도 20%는 형성자라고 합니다. 지금 한자의 80%가 형성자인 것과는 정반대의 수치네요.
화할 화(和)
한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형태의 간략화를 지향합니다. 쓰기 복잡한 형태를 간단하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령 용 룡(龍)자를 竜의 형태로 줄이고, 더 나아가 아예 16획에서 11획을 줄인 龙으로까지 줄이면요.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중국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관주도로 대량으로 한자를 간략화하여 창의를 알아볼 수 없게 한 것이 많다고 불만도 많지만 보급을 하는 데는 이것 만한 방법이 없겠죠. 그리고 이런 간화자가 벌써 옛날부터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화할 화(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화할 화(和)자는 형체소가 팍 줄어들어 口의 형태만 남고 음소인 화(禾)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팬플룻 같은 악기가 조화된 자형이 지나치게 간략화된 것이었습니다. 금문이 나올 시기에 생겨난 간체자인 셈입니다. 참고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Phil, Harmony 같은 단어의 뜻은 모두 조화(調和), 한 자로 줄이면 바로 화(和)자의 뜻입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늘 좋은 공부가 됩니다.
이미지로 읽는 한자 2도 곧 나오겠습니다.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