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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강릉으로 가는 중이다. 커피를 마시러 간다. 요즘 발길에 차이는 것이 카페들인데 굳이 강릉까지 커피를 마시러 가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다. 다시 설명해야겠다. 우리는 지금, 쪽빛 동해 바다 위로 떠오르는 찬란한 해를 바라보며 진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이다. 어떤가. 처음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지 않은가.
강릉은 지금 커피와 열애 중이다. 봄날이면 하늘을 가릴 듯 벚꽃 비가 쏟아져 내리는 도시이며 여름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북적이는 해변을 가진 도시, 최고의 고전 문학가들이 나고 자란 도시라는 설명 말고도 강릉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는 이야기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경포대에서 남쪽안목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크고 작은 커피집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진짜 커피를 내놓는, 질 좋은 원두를 들여와 깊고 훌륭한 향과 맛을 구현해 내는 집들이다. 직접 로스팅하고 블렌딩하는 전문점도 몇 집 된다.
인구 15만명의 작은 도시 강릉에 현재 커피전문점이 2백 개가 넘고, 그중 커피를 직접 볶아 판매하는 곳은 30군데에 이른단다. 인구가 너무 적어 백화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도시가 매일 아침 커피 볶는 향과 연기에 휩싸인다니 정말 희한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던 원인 제공자가 있으니, 강릉이 커피 도시가 된 것은 박이추 선생 때문이다.
강릉 연곡면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외진 산골 언덕에 그의 카페겸 로스팅 작업실인 보헤미안이 있다. 선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카페의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로스팅룸에서 커피를 볶고 있었다. 타닥타닥 기계 안에서 콩 튀는 소리를 배경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서 있던 그는 마치 요술쟁이 같았다.
“오늘은 주문이 많아 저걸 다 볶아야 해요. 한 50킬로그램쯤 되려나.”
작업실 바닥에 쌓여 있는 생두 자루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박선생이 권한 대로 로스팅 기계 옆 작은 탁자에 앉아 그의 작업을 바라보았다. 기계에 새 콩을 넣은 후 후다닥 나갔던 그의 손에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보헤미안 믹스다. 콩 볶는 소리를 음악 삼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꽤 진했지만 부드러웠다.
커피를 강하게 볶는 강배전의 대가다운 솜씨가 엿보인다. 세련되진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기품 있는 맛이다. 자신이 만든 커피를 진지한 얼굴로 맛보던 그가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나는 커피는 인생의 오아시스라고 생각해요. 또 에너지 충전소랄까.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지요.”
‘한국 커피의 전설’로 통하는 박이추 선생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청년 시절 일본 전역의 목장을 돌며 ‘공동체 목장’을 꿈꾸던 그가 커피에 꽂힌 건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생활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갑자기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커피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일본 친바시에 있는 커피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선생은 일본 전역에서 열리는 세미나와 커피 연구소를 찾아다니며 로스팅을 연구하고 연습했다. 왜 하필 강릉이냐고 다시 물었다. 1988년 서울 혜화동에 커피숍을 열었고 이후 고대 앞을 거쳐 오대산 진고개 휴게소와 경포대의 보헤미안을 지나 지금의 연곡면까지의 커피 로드를 그는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바람 잘 부는 언덕에 작은 집을 짓고 이곳에서 바다냄새와 나무, 흙냄새로 커피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단다. 자신은 그저 커피의 심부름꾼이고 전달자일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지만, ‘인생의 중심은 커피’라는 그의 진심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보헤미안의 모든 커피를 직접 드립한다. 직원이 두어 명 있었지만, 그들 역시 주문이 들어오면 너무나 당연한 듯 그의 보스를 거리낌없이 불러냈다. 그러니 이곳에 들른 손님들은 당연히 박이추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이 강릉에 커피나무를 심었다면 구정면 어단리의 테라로사는 커피나무에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를 한 곳이다.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작은 개울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가다 도착한 테라로사는 평일의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커피마니아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 옆 얌전히 들어앉은 프로방스 스타일의 이 건물은 매일 아침 커피 볶는 연기에 휩싸인다.
커피가 잘 자라는 비옥한 현무암, 보랏빛 희망의 땅을 의미하는 테라로사의 이름 앞에는 ‘커피 공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세계 수십 개국의 커피 농장에서 가장 질 좋은 스페셜티급의 커피콩을 직접 구입해 와 이곳에서 정성들여 블렌딩하고 로스팅을 하기에 카페 안에는 커피콩 자루가 그득하게 쌓여 있고 하루종일 콩 볶는 냄새가 가득하다. 그 향은 신기한 힘이 있어 마음을 기쁘게 하고 설레게 한다.
바에 앉아 커피 ‘테이스팅 코스’를 주문하니 바리스타가 추천한 세 개의 커피가 순서대로 작은 커피 잔에 담겨 나온다. 풍부한 커피향과 깔끔한 맛의 하우스 블렌드 커피와 레몬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맛의 에티오피아 시다모, 그리고 우유거품을 얹은 에스프레소 마키아토까지 확연히 다른 세 가지의 커피를 맛보았다.
테라로사의 메뉴판에는 나라 이름과 농장 이름이 함께 붙어 있다. 그리고 테라로사에서 블렌딩하고 로스팅한 커피는 다시 세계 각국에 테라로사의 이름으로 팔려나간다. 강릉의 커피를 이야기할 땐 커피커퍼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산 커피 1호’의 커피 농장을 운영하는 곳이다. 안목해변에도 두 개의 커피커퍼 지점이 있지만 대관령 자락, 왕산면에 들어앉은 지점에도 가볼 만하다. 특히 이곳에는 주인장이 오랜 세월 수집해 온 커피 관련 자료로 만든 커피 박물관과 커피 농장이 있다.
지난해 봄 이곳 농장에서 30킬로그램의 커피를 첫 수확해 전문가와 일반인에게 시음행사를 펼쳤다. 물론, 비닐하우스에서 난방을 해 주며 재배한 커피가 본고장의 것보다 나을 리 없지만 한국산 커피를 처음 맛본 사람들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을 터였다.
커피 여행의 마지막은 강릉 커피의 ‘발상지’인 안목해변이다. 한때 수백 개의 커피 자판기가 해변을 따라 줄줄이 늘어섰던 안목해변에는 지금도 서른 개가 넘는 커피 자판기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 있다. 3백원 하는 밀크커피 한 잔을 뽑아 바닷가 벤치에 앉았다.
커피 한 스푼, 크림 두 스푼, 그리고 설탕 두 스푼의 황금비율이 가진 전형적인 다방커피의 맛이다.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밀려왔다 되돌아 나가는 안목해변의 파도를 바라보며 달콤하기 그지없는 자판기 커피를 홀짝인다. 어느 겨울의 남은 오후를 그렇게 담청색의 바다 앞에서 보냈다. 커피와 함께.
글·고선영 (여행작가) / 사진·김형호 (사진작가)
보헤미안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181
www.bohemian88.com ☎033-662-5365
테라로사 커피공장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 973-1
www.terarosa.com ☎033-648-2760
커피커퍼 커피농장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806-1
www.coffeecupper.kr ☎033-655-6644
찾아가는 길
강릉에 도착해 가까운 관광안내소에 들러 강릉 커피 여행 지도를 얻는다. 테라로사는 남강릉IC에서 빠져나오면 금방이다. 강릉시내에서는 101번, 105번 버스를 이용해 학산에서 하차하면 된다. 어단리의 커피공장 외에도 강릉 시내점(☎033-648-2710)과 경포대 해변점(☎033-648-2780)도 있다.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은 경포해변에서 북쪽 10분 거리의 연곡면에 있다. 경포해변 남쪽 10분 거리의 안목해변에 커피커퍼 안목해변점(☎033-653-0100)이 있고 힘차게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커퍼 왕산농장은 왕산면 성산삼거리에서 임계 방면으로 올라가다 오봉저수지를 지나 대기리 방면으로 5킬로미터 직진하면 닿을 수 있다. 문의 강릉시 종합관광안내소 ☎033-1330,033-640-4414, 4531
맛집
경포대에서 안목해변 가는 길의 송정해변막국수(☎033-652-2611)가 유명하다. 이가 시리도록 차갑고 시원한 막국수와 곁들여 먹는 메밀전도 맛있다. 겨울 아침이면 따끈따끈 김 오르는 두부가 생각난다. 경포호 인근 초당동에 대한민국 최고의 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초당동 고분옥 할머니 순두부집(☎033-652-1897)은 강릉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6·25 한국전쟁 무렵부터 두부를 만들어온 고분옥 할머니의 우직한 손맛을 매일 새벽부터 맛볼 수 있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묵은지와 버섯을 넣은 얼큰한 두부찌개가 최고의 인기메뉴다.
숙박
강릉 경포호수와 해수욕장 사이 강문동에 베니키아경포비치호텔(☎033-643-6699)은 깨끗한 객실에 한식당과 레스토랑을 갖춘 곳이다. 보헤미안의 왼쪽 언덕 너머에는 유럽 어느 작은 마을에 있음 직한 전형적인 B&B 스타일의 펜션 노벰버(☎033-662-6642)가 있다.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예쁜 정원을 갖췄다. 11만원부터.
관광정보
매년 10월 말경 강릉에서는 커피 축제를 연다. 강릉시청에서 커피 여행 관련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지도에는 로스터리 커피전문점의 위치와 연락처, 정보가 정리돼 있어 커피 여행에 도움을 준다. 문의 강릉시청 문화예술과 www.coffeefestival.net ☎033-640-5111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위클리공감(01.11일 발행, 142호)에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 바로가기>
첫댓글 빅 아일랜드 Kona 에 갔을때도 관광 코스 중 하나가 Kona Coffee Farm 이었는데. 강릉도 이제 그런 도시가 되었나 보지요? 커피는 이래 . 저래 뭐라케도 저는 French Roast 가 제일 좋더만요.
강능하면 강원도어디에잇는 적은어촌쯤 으로 기억돼는 곳인데
강릉이 커피 도시가 됏다아~~
거재밋네요
커피마시러 강능 까정(류의장식표현)간다? 그럴뜯 함니다
가서 박선생님도만나뵙고 보헤미안커피 를 한잔대접하고
축재를 마나님 모시고 보러나간다? 그럴뜯 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