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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나무 황금찬
5월의 나무
5월은 저 푸른색으로 찬란하게 단장을 하고
식장으로 나가는 신부처럼 6월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다.
누가 신록을 5월이라 했느냐.
한 마리 산새가 날아간 자리에
그만한 부피로 푸른 구름이 쌓이고
물소리가 흘러간 귓가에도
5월의 흔적이 수놓여 있다.
5월이 오면 자라가는 그 생명의 파도 속에서
어제를 잃고 서 있는 이 병든 나무를 바라볼 때
지금이 5월이기에 처량함이 이리도 큰 것일까?
약동하는 생명의 5월은 태양이러니
그러나 5월에도 잎이 없는 나무는
아! 차라리 10월보다 외롭구나.
본래 5월을 모르는 가련한 나무는 없었다.
세월이 마련한 고독이란 열매가
연륜과 함께 가지에 안개처럼 감겨 올 때
나무는 5월의 대열에서 추방되어
5월에 섰으면서도 5월을 저리도 멀리하고 있다.
5월은 영롱한 종소리를 울리며 오지만
병든 나무에겐 성모의 손끝 같은 구원도 없구나.
언제부터 나도 이 병든 나무의 대열 속에 섰는지 모른다.
하루 해가 질 무렵이면 가벼운 주머니로 주막을 찾아
한 잔의 탁수(水)로 목을 축이고
허청허청 돌아가는 대열 속에 나도 서 있다.
월의 나무, 한림출판사, 1969
가을의 시 황금찬
가을의 시&
지난 여름 동해가에 주워 온
조개껍질을 갈아
목걸이를 만든다.
포도 잎이 물드는
벽머리에 걸어두었다가
한밤중이면 목에다 걸어 본다.
싸늘하게 식은
조개껍질이
내 가슴에 닿는다.
계절을 잃은 바다가 운다.
불같이 타오르던 물새의 사랑이
저만치 밀려가고 있다.
새벽 바다의 물 향기가
가을 산가의 새 소리가 되어
아침 잠을 흔들고 있다.
창을 열면
물들어 가는 잎새 위에
그믐달이 진다.
한복을 입을 때, 종로서적, 1981
거룩한 밤에 황금찬
거룩한 밤에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그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어린 양의 무리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조용히 조용히 뒤척이고 있는
그 소리뿐이었다.
그때 홀연히
하늘 저쪽 끝에서
별이 하나 눈부시게 빛을 흘리며
이쪽으로 이쪽으로 떠오고 있었다.
누구도 그 빛나는 별을 못 보았고
오직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늙은 양치기가 홀로 그 이상한 별을
보고 있었다.
별은 늙은 양치기 머리 위에 와서
멈추고 가지 않는다.
그 환한 빛은 들판을 밝히고
점점 그 찬란한 빛의 파문이
누리를 덮어 가고 있었다.
늙은 양치기는 놀라 소리쳤다.
무슨 하늘의 뜻입니까.
밝혀 주시오.
광명 속에서 천사의 얼굴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으로 가라.
오늘 그곳에 인간 구원의 예수님이
오시었느니라.
하늘의 뭇별들이 눈을 뜨고
땅의 생명들이 영광을 얻어
저 바다 너머 그곳
땅의 끝까지 구원의 은혜 내리다.
예수여!
이 고요한 밤에 이름지어진 땅에
그리고 사람의 마음 마음에
몇 번이나 오셨습니까.
언제나 당신은 아기의 모습
그 하늘의 미소 바다 같은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진정 몇 번이나
오셨습니까.
영혼은 잠들지 않고, 영산출판사, 1983
겨울 유리창 황금찬
겨울 유리창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태양은 또 다시 뜨느니
이 성에 덮인 유리창 앞으로
날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 마리의 겨울 나비
유리창에 손을 대 본다.
촉감이 싸늘하다.
그러나 유리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빛은 따사롭기만 하다.
겨울 유리창 앞에
나는 춘란 몇 촉을 놓아두고
생명의 볕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밖엔 눈발이 휘날리고
수정 기둥 같은 고드름이
지금을 향수에 묻힌
고향집 처마끝같이
드리우고 있다.
한장 창호지로 문을 바르고
벽에선 흙 냄새
곰팡이 냄새가,
대자리 밑에서 솟는
형언하기 어려운
가지가지의 냄새들
그 문 앞에 노인처럼 앉아
그때 나는 무엇을 기다렸을까.
함박눈에 날려가고
창 앞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그림자 속에서
애원의 손짓을 보내고
모두 겨울 미닫이 앞에서
생기는 일들이었다.
지금은 창호지를 바른
우리들의 영혼이 숨어 있는
창문이 아니고
싸늘하게 식은
물체들의 주검 앞에
생명의 춘란이
서글프게 앉아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창호지를 바른 창은
살아서 호흡하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 유리창은
저 `씨저'의 무덤같이
말이 없이 잠들어 있다.
생명은 주검 같은 길은 통하여
숨어들고 빨아들이고
신비로움은 생명에 있다.
겨울 유리창이여
지금 네 앞에
몇 촉의 춘란이
꽃을 기르며
내일의 나비를 기다리고 있거니
생명의 길 되기를 인색하지 말라.
너는 비록 생명체가 아니라도
생명의 신비를 받아들이고
또한 전하여라.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고려 청자기 1 황금찬
고려 청자기 1
손끝으로
한국의 가을 하늘을
만지고 있다.
계절 없이 매화가 핀다.
조용히 맺히는
물방울
천 년의 입김
모란으로 새긴
손의 무늬
그것을 눈으로 본다.
춘향은
옥중에 있어
임 방울의 쑥대머리
문득 울리는
가야금 소리
신라 옥반에 꽃잎이 진다.
손으로 빚은
흙 한 점이
천 년 후에 하늘로 살아
외로운 오후에 맑게 핀다.
오후의 한강, 1973
고향으로 돌아가리 황금찬
고향으로 돌아가리
고향집 뒤엔
감나무가 몇 그루
앞에는 대추나무, 담 밖엔 배나무
아버님은 기침을 하시고
감이 익으면 하늘도 감빛이었다.
평생을 이웃과 같이 살아야
알게 되는 것이 고향인데
나는 구름같이 떠돌며 살았구나.
이제나마 속죄하듯 고향길을 가리다.
잃은 것이 참으로 많았다.
사랑도, 정 담았던 풍속
어머니의 가슴 같은
고향의 흙을 잊고 있었구나.
돌아가 조상 묘소에 잡초를 깎고
옛집 고쳐 살기 좋게 손 본 다음
부들장석에 돗자리 깔고 나면
잊고 살던 이웃들 찾아
정으로 이루는 마을 성가족(聖家族)
서 마지기 앞논 거두어
올벼 내고, 늦벼 심고
느릅골 언덕밭에 조․감자 묻고
옥수수는 밭머리의 파수병
소 기르고 양돈하고
닭은 놓아먹여도 좋다.
샘물이 흙에서 솟아나고
아침 연기는 산허리에 구름
마을끼리 서로 도와
개미같이 일벌처럼 살아가는
고향 사람들,
거기엔 시기도 질투도 없는―
사랑만이 있는―
영원한 마음의 나라.
한복을 입을 때, 종로서적, 1981
깊은 강 황금찬
깊은 강
이 강의 깊이를 누가 알까
하느님은 알고 있겠지.
이 마음의 슬픔을 누가 알까
하느님이 알고 있겠지.
살색이 검다고
미움받는 줄도
하느님은 알고 있겠지.
나는 `셋'의 후손이 아니라
`카인'의 후예일 게다.
검은 대륙은 에덴의 동쪽
이른바 `놋'이란 곳일 게고
그러면 `에녹'은 나의 조상일 게다.
세계의 하늘은 창조의 마음
흙․물․빛도
어느 땅의 나뭇잎도 풀잎 같은데
왜 인종의 색깔은 같지 않을까
우연일까, 하늘의 의도일까
일찌기 야훼께
예배 드리지 못한 죄가
이리도 크고 무섭더란 말이냐.
하느님은 알고 있겠지.
마음까지 검지 않은 형벌로
평생을 울고 있는
`놋'의 땅의 백성을
하느님은 알고 있겠지.
이 강을 건너야
낙원이라는데
강물이 너무 깊은 것도
하느님은 알고 있겠지.
기도의 마음 자리, 성서교리간행회, 1981
꿈에는 날개가 있다 황금찬
꿈에는 날개가 있다
물을 밟고 강을 건너도
발이 물에 젖지 않고
빛 속을 날아가도 어두운 것
인어가 머리를 풀어
몸을 덮고 헤엄치는 흙빛
그 지중해
지금도 꺼지지 않는 등대
나는 그 사랑의 등대
푸른 불을 보려고
이 밤에도 몇 번이나 그 잔잔하며
고요한 곳을 가고 왔을까.
꿈에는 두려움이 없고
언제나 시간과
공간 밖에서 활동한다.
언제부턴가, 내게는 중량이 없고
나비의 날개가
내 겨드랑이에 생겨났다.
비가 내리고 있는
공간을 날고 있었다.
젖지 않고 이상한 광채가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물을 곳이 없다.
계곡 맑은 물가에서
선녀를 만나
큰 소리로 내가 누구냐고 묻고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느냐고 했다.
선녀는 바람을 불렀고
바람은 수레가 되어
소리없는 은빛 바퀴를 돌리며
선녀 앞으로 나왔다.
은빛 바람 수레
가는 곳이 인생이 가는 곳이고
우리는 그 수레 위에 앉아 있는
허무의 정체인 것을
물을 곳이 어디에 있으며
대답한 실재는 또 어디에 있겠는가.
중량을 버리고 날개를 얻어
꿈속에서나마 자유를 누리라.
호숫가에서
죽음보다 긴 세월을 바람에 보내며
꿈을 부르는 것이다.
그 꿈은 날개고
자유다.
평화
사랑인 까닭이다.
꿈은 영혼이 된다.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나는 무슨 악기일까 황금찬
나는 무슨 악기일까
존재하는 것은
울고 있는 악기다.
바람에 노송이
울고 있다.
뻐꾹새가 여름을 타면
화답하는 산
학이 날면
공명하는 허공
에밀레종은
신라 아가의 천 년의 울음
흐르는 물
돌들의 노래도 물을 따라간다.
너의 울음소리는
불꽃이며 얼음이다.
내가 켜는 악기는
어떤 음색으로 울고 있을까,
그것을 알고 싶어
시를 쓰는 것이다.
언덕 위에 작은집, 서문당, 1984
나비의 위령제 황금찬
나비의 위령제
가던 길을 멈추고
산정을 바라본다.
수없이 날고 있던 나비의 떼들
그 나비들이 산 정상에는
한 마리도 날고 있지 않는다.
산 정상을 바라보고 날아오르던
나비들은 중도에서
날개를 접고 돌아갔다.
지혜로운 나비들이다.
고산자의 생애같이 한사코
산정으로
날아오르려던 나비들은
어느 산허리에서
날개를 쉬고 말았으며
외로운 영혼이
부서진 날개 위에 고독하게 앉아 있다.
나는 나비의 혼들을 부르기로 하고
바위에서 내려섰다.
이쯤에서 나비의 위령제를
드리기로 하는 것이다.
나비의 혼에는 날개가 없다.
그러나 생각이 이르는 곳에
혼은 언제나 같이 있었다.
거기엔 시간과 거리도 없다.
나는 허리에 꽂고 있던
고로쇠나무로 만든 창을 뽑아
삽주며 당귀, 산도라지, 더덕
그리고 산나리며 잔대를
캐기 시작하였다.
율곡 이이의 음성처럼
바위 밑으로 흐르는 손이 시린 샘에
깨끗하게 정상을 모았다.
파랗게 하늘에 물든
피나무 잎을 몇 장 땄다.
반석에 곱게도 깔아놓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세처럼
마련된 살이 찐 염소와 양을 쌓듯
나는 풀뿌리들을 괴었다.
물푸레 나무에 기어오른 쪽박을 따서
씨를 후비어내고
이름 있는 술이 없으니
그 대신 수통을 기울여
꿀물을 가득히 따르었다.
나비의 이름을 부르며
초혼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계룡산 기슭을 날던 흰나비
남 설악 계곡을 날던
큰제비나비
한라산으로 날아오르던 민남방나비
초혼된 나비의 혼은
그리하여 백 이십 위에 이르고
나는 나비제의 제문을 읽었다.
그대들은 갔으나
영혼은 여기에 남아 있고
이제 위령 제단 앞에
꺼질 수 없는 탑을 세우느니
고독한 나비의 혼이여
어제를 울지 말거라.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내게 날개가 있다면 황금찬
내게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리라.
요란하지 않게 날개를 펴
어느날 호수의 나비들이
하늘 구름 밖에 지연같이
날개 펴던 그곳으로 나도
날아가리라.
천 길 폭포가 병풍되고
자자하게 흩어지는
그 수신(水神)들의 합창
나는 귀 기울이고 들으며
작은 날개를 펴고 날아와선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이던
그 날의 기쁨으로
나는 날아가리라.
배를 바다 위에 뜨게 하고
찬란한 돛을 달아
바다는 돛에 안기우고
다시 돛은 바람을 안고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려가는
그것은 언제나 현실이었다.
현실은 언제나 현실
그것은 나의 내일은 아니다.
나는 날개를 얻고
날개로 날아 나비가 되어
끝없는 초원
양떼는 구름의 꽃밭
다프니스가 피리를 불고
클로에는 안개 위에서 춤을 추어
목신(牧神)도 시기하는 곳
도르콘은 잠들어 버린 그 초원
사향제비나비가 되어
날아가리라.
내게 날개가 있다면
도르콘이 없으니 내가 누구와
싸우리, 그저 초원을 날으는
나비가 되는 수밖에
클로에는 옷깃을 날리며
바람을 타고 있으리.
그곳엔 해적의 무리도 오지 않고
아침이 햇볕을 거느리고 오고
한낮은 용마루 위에서 졸아
이어 석양은 채색으로
임종을 수놓고 있으리.
나는 초원에서 쉬던 날개를 펴
저 복숭아 꽃이 흘러오는
그리고 악한 사람이 살지 않고
착하고 선한 사람의 마음으로
꽃이 피는 내 마음의 고향
그곳으로 날아가리라.
날아오는 눈나비, 노랑나비,
갈구리나비, 꼬리명주나비,
모시나비, 남색남방공작나비,
상제나비, 높은산노랑나비,
애석하게 간 나비의 혼을 불러
조용히 제사를 드리고
평화 사랑이 잠든 그 호수로
가지고 마음 다해 권유하고
나도 나비를 좇아
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
내게 날개가 있다면―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누가 울고 있다 황금찬
누가 울고 있다
낙엽끼리 잠든 위에
눈이 내린다.
그 길고도 먼 이야기들을
바람에 날리며
내리는 것이다.
정열이 꽃피었던 거리는
이제 싸늘히 식어
물 속으로 변했고
바람의 발자국도
들리지 않는다.
이 눈오는 밤에
누가 울고 있느냐.
어느 곳의 낙엽들이
이 밤에 울고 있느냐.
그들의 울음소리는
문풍지 소리를 따라
방안으로 스며들어선
얼음으로 굳어 가고 있다.
새벽 세 시
언젠가 잠이 깨어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별이 있는 밤, 양림사, 1983
단오 황금찬
단오
머리채 창포물에 감아 빗고
은빛 모시치마 구름으로 날리며
아가씨들은 그네를 탔다.
근심도 꽃이 되는 사장엔
황소를 눈가늠하는
씨름꾼들의 호흡이
불보다도 뜨거웠다.
대산의 신령을 장대 위에 모셔 놓고
젊은 무녀는 사랑의 춤을 추고
혼자 간 임을 그리며
여인은 남몰래
용왕님께 절을 했다.
오늘이 단오
송기 쑥으로 떡을 빚어
고개너머 마을까지
돌리던 풍속이
여 하루 새삼 그리웁구나.
구름과 바위, 선경도서, 1977
대인부 황금찬
대인부(待人賦)
기다리는 밤의 시간은
보내는 밤의 시간이 아니다.
촛불이 켜 있는 창 밖엔
먼지의 파도가 구름에 닿고
마른 나뭇가지들은 언제부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촛불
기다리기 위한 마음아
성자가 누웠던 돌 속에
새로운 태양으로 빛나던 너……
지금 이 발소리들은
모두 밤을 사랑하는 사람
촛불이 꺼지고 나면 그들은 이 밤의
침략자가 될 것이다.
촛불은 전체의 길이의 삼분의 이가 줄었다.
이제 남은 일, 그것이 다하면 그만
나의 일생도 끝나는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기다리던 사람이 가더라고, 이것은
촛불이 꺼진 다음에
남을 말이다.
월의 나무, 한림출판사, 1969
로우터리의 나비 황금찬
로우터리의 나비
꽃밭을 찾아
떠난 나비가
로우터리 위를 날고 있다.
도시의 꽃밭이
버림을 당해서
나비는 살 곳을 잃었다.
살생무기들이
무질서하게 나는 사이를
나비는 곡예사처럼 날고 있다.
지금은 장다리밭이나 그리며
이슬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이제는 비수에서
꽃을 발견하며
나비는 살아가야 한다.
아무도 가르쳐 준 일이 없지만
언제부턴가 나비는
살생무기들을 꽃으로 여기고
로우터리 위에서 살고 있다.
분수와 나비, 문원사, 1971
매화에 붙이는 편지 황금찬
매화에 붙이는 편지
함경남도 원산, 명석동 15번지
우수절이었는데
농무(濃霧) 속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 두 시 반이나, 세 시였을 것이다.
뜨락 매화 나무 옆에서
맏딸년을 안은 아내와 이별을 했다.
ꡒ당신이 가면 어떻게 살지요?ꡓ
ꡒ남편의 구실을 못해 미안하오.ꡓ
ꡒ비가 오는데 그만 들어가요, 몸이나 조심해야지.ꡓ
ꡒ큰 소리로 해선 안돼요, 그리고 제 근심은 마세요.ꡓ
ꡒ딸년이나 잘 기르오.ꡓ
아내는 통 말이 없다.
나는 몇 걸음 걷다 돌아섰다.
세 살 난 딸년은 매화 가지를 잡고 놓지 않았다.
어제 같은데 13년이다.
이제는 보고 싶지도 않다.
만나면 무섭기만 하리라.
매화나무는 그 뜰에 지금도 서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컸을까
열다섯 살 났을 내 딸년의
두 길은 컸겠지.
그리고 이 봄에도 꽃이 피는가.
당신은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왜 이리 무서워질까요.
고향이면서 천애의 땅
매화
외양간에서 잠자던 송아지는
어디로 끌려갔을까.
현장, 청강출판사, 1965
묘지 황금찬
묘지&
하얀 손가락 사이로
샛파란 속잎이
솟는다.
햇살이
조으름처럼 쏟아져
등이 간지럽다.
하늘과
바다가
눈에 든다.
호수는 한 마리
치장한
물새
나는 온종일
앉아 있었다.
현장, 청강출판사, 1965
무등산 황금찬
무등산&
아침 창을 열다.
무등은 단장한 물새
안개 속에서
날개를 편다.
한낮이면
산허리에 구름이 숨고
바람은 활엽수 끝에서
고비처럼 말린다.
구름이 아까울수록
선향(仙鄕)일레,
풀잎마다 울리는
하늘의 악기.
무등, 절정에 서면
내 눈은 이미
천 개요 다시 만일레라.
맑은 물이 흘러간다.
소리는 가슴에 보석으로 남고
맛은 이제 걸린다.
산 밑
저만치
띳집을 짓고
거기에서
무등을 바라보며
내 앞으로
천년을 살고 싶다.
산새, 종로서적, 1975
물 마시는 사람 황금찬
물 마시는 사람
목이 갈한 삶은 물을 마신다.
냇가에서도 물을 마시고
강가에서도 물을 마신다.
마신 물은 강가에서
냇가에서 본래대로 반환하고 만다.
더러는 언덕 넘어서
어떤 사람은 산 저편에서
칠월이 웃도록
토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강가에 서는 것이다.
바위를 밀어 금을 내고
하늘의 은혜같이 솟아나는 샘물
그 샘물을 마시고 나면
눈을 뜨고 귀가 열리며
다시 부질없는 입은 닫히고
하늘의 말을 하고
토하기보다 마음속에 강을 이룬다.
샘물은 목이 갈한 사람이
마시는 물이 아니니라.
그것은 오직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진실을 찾아 멀리 나그네같이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혹은 불기둥으로 구름기둥
지혜의 지팡이로
마시는 돌 속의 물, 샘
샘물을 마시고 나면
나무를 능히 뱀이 되게 하고
독사를 물속의 붕어나 잉어로
다스리고
세상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의 바람이 불게 하는
그런 참신의 묘약이더라.
샘물을 마시지 않고
돌아가는 두 나그네는 길에서
생명의 샘물을 만났으나
그것이 생명의 샘물인 줄 모르고
연신 냇물을 찾으며
목이 갈해 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다시 목마르는 물은
마시지 말아야 하는 법
어느 곳에 가야
저 사마리아의 여인이 갖던
그런 생수를 찾을까
목마른 사람들을 위하여
흐르는 냇물이야
이 땅 어느 곳엔들 없을까
그러기 함부로 마시지 말라
강가에서 혹은 냇가에서
모두 토해내고 마는 것을
저 샘물가에 선 나무를 보라
시들지 않고 사시에 생기가
넘치고 부푸르며
항상 꽃이 피어 있다.
목이 갈하여도 샘을 마시고
때묻은 강물이나 냇물은
마시던 곳에서 다시 토하게 되리라
목마른 사람들이여 마시지 말거라.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미묘한 음파 황금찬
미묘한 음파
아기가 겨울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목청 고운 새가
새벽 어둠을 뚫고 날아와
병실 앞 맑은 냇물
파란 빙판에 앉아
옥색 부리로 얼음을 쪼았다.
팡, 팡, 팡,
얼음 쪼는 소리
구슬의 울림
아침 기원의 미묘한 음파
아기의 귀엔 하늘의 악기
아기가 눈을 뜨고
태양이 금빛 날개를 달고
병실을 찾아올 때
빙판엔 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새벽
아가의 방에 영영 불이 꺼지고
검은 휘장이 창을 덮던 날
얼음을 쪼던 하늘의 악기가 멎고
새가 앉았던 자리엔
눈나라의 꽃잎이 흩어져 있었다.
산새, 종로서적, 1975
바느질하는 손 황금찬
바느질하는 손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장난과 트집으로 때묻은 어린놈이
아내의 무릎 옆에서 잠자고 있다.
손마디가 굵은 아내의 손은
얼음처럼 차다.
한 평생 살면서 위로를 모르는 내가
오늘 따라 면경을 본다.
겹실을 꿴 긴 바늘이 아내의 손끝에선
사랑이 되고
때꾸러기의 뚫어진 바지구멍을
아내는 그 사랑으로 메우고 있다.
아내의 사랑으로 어린놈은 크고
어린놈이 자라면 아내는 늙는다.
내일도 날인데 그만 자지,
아내는 대답 대신
쓸쓸히 웃는다.
밤이 깊어 갈수록 촉광이 밝고
촉광이 밝을수록
아내의 눈가에 잔주름이
더 많아진다.
현장, 청강출판사, 1965
바다의 순종 황금찬
바다의 순종
다시 바다에 오는 이유는
나만이 알고 있다.
밤 바다는
웅장한 교향악
어둠이 바다의 깊이를 닮아 갈 때
바이얼린, 카덴사의 선율.
이 비열(悲悅)의 협주
나는 그것을 듣기 위해
바다로 오는 것이다.
추억의 지연을 날린다.
바람은 첼로의 음향으로
불어오고
일제히 수면으로 살아오는 요정의 춤.
모래 위에 물새 발자국
그것은 어느 소녀가 남긴
동요의 가락이네,
그러나 세월 저편에서 고독하다.
아우성이 잦아진 9월
비어 가는 감상실
혼자 듣는 드보르작의 현악 4중주(아메리카)
오묘한 조화의 바다.
젊은 예수가 손을 들면
바람이 멎고 잠드는 물결
그 장엄한 순종을 보기 위해
내가 바다로 오는 것이다.
산새, 종로서적, 1975
밤비 소리 황금찬
밤비 소리
밤비 소리에
잠이 깨인다.
고궁 빈 뜰이
흐느끼는 소리
내 부서진 생활
싸늘한 꽃밭 위에
밤비가 내린다.
누가 묻느냐,
내 국한된 생 길목에서
벌써 귀뚜라미가 운다.
평생을 살아 봐도
가난한 마음
고향은 떠나서 그리운 것이다.
내일 아침
이 비가 멎고 나면
먼 산엔
초겨울이 내리겠다.
한복을 입을 때, 종로서적, 1981
백운대를 보며 황금찬
백운대를 보며
퇴근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조호 시인을 더러 만난다.
다가와서 손을 잡고
성북구 가오리 작은 주점 앞에서
내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주머니는
언제나 비어 있어
한잔을 기울여도 그만큼 커지는 부담
그럴 땐 말 대신 웃는 것이다.
늙은 주모가 졸음에 겨워
하품이 잦을 때쯤
우리들은 밖으로 나온다.
산바람이 가슴에 찬다.
돈은 없어도 우리는 아직까지
비참하진 않다.
이런 밤에 소리를 질러 본다.
백운대를 향하여
산아! 산아! 산아!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달이
우리들을 따라 웃고 있다.
월의 나무, 한림출판사, 1969
분수 황금찬
분수(噴水)&
한낮의 분수가
물바람을 일으키며
솟아오른다.
6월의 장미는
태양이다.
글라디올라스 꽃잎에
앉아 있던 나비가
분수가에 와 날고 있다.
날리는 물가루를
꽃가루로 안 나비는
춤을 추고 있다.
날개가 젖는다.
나비는 잠이 온다.
물 위에 꽃잎처럼
나비가 떠 있다.
분수와 나비, 문원사, 1971
빛의 사람들 황금찬
빛의 사람들
빛과 같이 있으면
영원히 살 것이요
어두움은 죽음이니
그것을 멀리하여라.
`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리라.'
빛이 오는 곳에서
생명이 오느니
내가 빛을 가지고 있는 동안
내게 생명이 있다.
생명이 끝나는 곳은
어두움이니
살아 있어도 내게 어둠이 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이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광명과 암흑의 차이니
죽어도 광명에 설 것이요
암흑에서 살지는 말 것이다.
영원한 세계는
광명이 있고
지옥엔 빛이 없느니
이제 영원한 광명을 가지면
지옥도 없느니라.
신앙은 광명을 갖는 길이요
빛을 볼 수 있는 길이요
빛이 되는 길이다.
기도의 마음 자리, 성서교리간행회, 1981
사랑의 날개 황금찬
사랑의 날개
사랑은 하늘도 땅도 변모시키고
물을 꿀로 변질시키고
미움을 용서로
죄를 희열로
참고 견디는 그 끈기는
모두 사랑의 꽃이거니
사랑이 있으면 용서 못할 것이 없다.
사랑이 있으면
바다를 육지로 다시 육지를 바다로
시름하는 아가의 옆에
조용히 앉아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사랑이어라.
그 마음 위에 백깁의 날개를 열고
구만 리 창공을 갈며
날아내리는 저 은색의 비단
신동의 날개도
사랑이었느니
사랑은 시작이며 다시 끝이다.
사랑이 있으면 홍수도 내리지 않으리.
이 땅의 흉년도 없고
이미 살찐 소를, 다시 살찐 곡식을
칼로 베어 사방에 던지며
저주의 주문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좋으리.
노을이 곱게 물드는
이 형언하기 어려운
생명들의 침실에서
살생의 계교는 줄지어 흐르고
칼끝에 사랑으로 도색한 흉기를
보석으로 날리며
꽃바구닌 양 무지개처럼
사랑이 날개를 펴는 날
평화는 꿈같이 오고
자유는 깃발처럼 나부끼며
전화가 타오르던
전설의 강가에서
나비는 사랑의 날개를 흔들며
다음의 세기를 호흡하고
댓그루같이 하늘로 솟은
녹슨 무기들도
은빛 날개에 침묵하리.
사랑의 날개가
감았던 눈을 뜨듯 열리고
천 년에 한 번씩 흔드는 손짓
저 북극과 남극에서 날던 새
가슴 속에 동이 트는
사랑의 광명을
좇아 내일을 가슴에 심어도
좋으련만.
내가 오늘 여기에 서서
가슴을 성문같이 열고
생명의 강물을 기다리는 것은
사랑으로 무장하려 함이다.
하늘을 덮어오라.
사랑의 날개, 나의 내일이여
그 속에 영원히 자유는 길을 밀고
비로소 우리들의 앞으로 오리라.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산새 황금찬
산새
창을 열어놓았더니
산새 두 마리 날아와
반 나절을 마루에 앉아
이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아갔다.
어느 산에서 날아왔을까.
구름 빛 색깔
백운대에서 날아온
새였으리라.
새가 남기고 간 목소리는
성자의 말처럼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곧 귀에 남아 있다.
새가 앉았던 실내에선
산냄새, 봄풀, 구름향기
맑은 물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산새같이 마음 맑은 사람은
이 세상에 정녕 없을까.
그가 남긴 음성은
성자의 말이 되어
이 땅에 길이 남을…….
오늘도 나는
창을 열어 놓고 있다.
산새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산새, 종로서적, 1975
삼십오년 황금찬
삼십오년
한 삼십오년쯤 만에
어릴 때의 친구를 만나면
그들도 나처럼 많이 변했다.
어떤 친구는 배가 불쑥 나와서
이야기할 때 땅만 보고 말하고
또 어떤 친구는 머리를 보고 말하고
또 어떤 친구는 머리를 뒤로 제치며
너털웃음을 웃는 재주를 배웠다.
그리고 어떤 친구는
코밑에 수염을 카이제르처럼 틀어올리고 말끝마다
`인생이라는 것은'을 찾는 인생론파가 되고
세상이 써서 할 말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릴 때 약하던 놈은 커서도 그렇고
어려서부터 남의 등을 잘 치던 놈은
크니까 부자나 권력자가 되었다.
삼십오년 만에 만나는 친구가 목발로 걸어온다.
6․25 때 다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할 말이 없다.
손을 잡고 흔들다가 놓으며
ꡒ생명이 살아 있어 다행일세.ꡓ
그들은 이렇게들 변했다.
나도 무척 변한 것이다.
못 마시던 술을 마시고 주정을 배웠으니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때나 이때나 약한 놈은 못산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구나.
월의 나무, 한림출판사, 1969
새벽에 황금찬
새벽에&
오늘밤
닭이 벌써 세 번을 울었는데
내게는 아직도 뉘우침이 없는 것이 슬프다.
이제는 잠을 깨어야 할 때다.
그리고 새벽의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
종소리는
호수에 물살이 돌아가듯
종소리는
차라리
새벽의 울리는 은은한
축도
천 년을 살기보다
그냥 앉아
가시던 그 길을 지키고 싶다.
구름꽃
꽃무늬
저녁 하늘가
만 길 돌 층계를 밟고 내리는
나는 여기 공손히
석탑을 세워야 하겠다.
기도의 마음 자리, 성서교리간행회, 1981
설화 황금찬
설화(雪花)&
밤에 눈이 내려
아침엔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운다.
산에선 솔씨 한 알
주울 수 없어
꿩의 수심이
숲보다 깊다.
변모하는 산
동화 속 공주의
발자국도 없어
마음이 시리다.
백운대, 인수봉이
눈에 덮였다.
멀어져 가는
석화의 꿈
어느날
인수봉에 부서진
꽃잎들의 체온이
식어가고 있다.
별이 있는 밤, 양림사, 1983
수목을 보며 황금찬
수목을 보며
정원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오월이 가져오는 살결 같은 색깔을 전신에 받으며
의사(義士)의 의지처럼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원정(園丁)들은 지혜로운 수목 속에 앉아서
나무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는지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천금으로도 손꼽을 수 없는
수목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거기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고
한가로운 오후에 구름이 잠시 가지 끝에
쉬었다 가는 것을 보고 싶어
원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과실을 먹고는 그 씨를 반드시
땅에 묻는 교훈을 남기었다.
`우리들이 가고 없는 먼 훗날
이 땅의 권리를 이어받을
우리들의 후손들이
그 무성한 나무그늘 밑에서 땀을 쉬고
익은 열매를 마음껏 따먹게 하라.'
어머님은 갔다.
그러나 어머님이 심어놓고 간 나무들은
이 해에도 오월을 맞아
그 무성해 가는 잎을
우리들의 상징처럼
바람에 날리고 있다.
나무가 늙으면
다시 새로운 나무가 자라
이 땅에서 영원히 축복을 받으며
대를 이어 살아갈 우리들의 후손……
아, 나는 오늘 알 것 같다.
나무를 심고 기르는 원정들의
그 노고와 진심을
아침이 밝아 오듯이 알 것 같다.
구름과 바위, 선경도서, 1977
아직도 먼 길 황금찬
아직도 먼 길
이 길이 어디서 멎을까
그 끝을 나는 모르고 시작했고
또 모르는 채 끝날 것이다.
시작은 어디에서
끝은 어디로
이것은 내가 알 수 있는 이치가
아니고 다시 나 아닌 누구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갈 길을 살피지 말라
그것은 이미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지금 나는 이곳에 서 있다.
어제에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에 살 약속도 없는 것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에 내가 있을 뿐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지금 이름 모를 새가
바라보이는 나뭇가지에 앉아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다.
그 새는 어느 곳에서 날아왔는지
이제 어느 곳으로 날아가야 하는가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날아온 곳과
다시 날아갈 곳을 잊으려는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가.
새는 지금 해야 할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묻고
그 해답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인습에 젖게 하고
관습의 굴레를 강요하며
남들이 걸어간 길 외엔
다시 길이 없다고 날세운다.
만약 다른 길을 택하면
그것은 정도가 아니라
이도라고 웅변 이상의 웅변으로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늘의 망설임과 무능을
강요하고 있는가
저 새가 오늘의 행로를 자유롭게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저렇게 고민에 젖어 있음은
인습의 굴레에 사로잡혔고
그 올가미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할까,
어제가 진정으로 있었고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내일은 또한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조롱이 되고
새는 언제부턴가 그 조롱에
갇히어 있다.
그 조롱의 성벽은
새의 힘으로도 밀면 능히
허물어 버릴 수도 있다.
그저 새의 힘보다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오늘의 새는
이 조롱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조롱은 새의 원수가 아니고
보호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를 가두는 조롱이다.
잊어버려야 한다. 오늘 그외 것은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아침 황금찬
아침&
아침을 기다리며 산다.
지금은 밤이래서가 아니고
아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을 맞으면
또 그 다음의 아침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아침을
이미 맞았고 또 맞으리
하나 아침은 기다리는 것이다.
이미 맞은 아침은
아침이 아니었고
이제 맞을 아침이 아침일 것 같다.
아침을 기다리는 것은
그 아침에 날아올
새 한 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 작은집, 서문당, 1984
아침 기도 황금찬
아침 기도&
아침의 기도는
영혼을 일깨우는
그런 간곡한 마음으로 드린다.
동산 위에
석양처럼 꿇었던
그 고독했던 무릎
절대한 사랑을 생각한다.
당신의 섭리를 깨닫고
그 섭리 안에서
이 하루를 살게 하여 주시고
마음 속
어느 그늘에서
잠자고 있는
나의 선한 행실을
이루게 하시고
당신의 사랑을 배워
그 시간이 비록 짧을지라도
나의 이웃의
몸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내 머리 위에
저녁의 구름처럼
어두움이 내릴 때
나로 하여금 웃게 하시고
울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의 마음 자리, 성서교리간행회, 1981
어느 나무의 사연 황금찬
어느 나무의 사연
물오른 가지마다
터져나는
생명의 함성들
천 년이 내려앉은
낡은 기왓장도
이끼는 빛을 찾고 있다.
하늘가엔
이기고 돌아가는 깃발들이
저리도 휘날리는가.
빈 가지
해무리의 여운도 없고
새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는다.
약동의 행렬이
강이 되고
찬란한 하늘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오후의 한강, 1973
어느 초상화 황금찬
어느 초상화
저녁에 쓸어 놓은 뜰에
밤새 낙엽이 쌓여
아침에 발 놓을 곳이 없다.
나는 발 끝으로 낙엽을 밀며
아침 뜰을 거닐다가
문득 생각나는 말.
낙엽이 밟혀 부서지는 소리를
마음으로 들을 줄 알게 되면
그때 이마 위에 쏟아지는 햇살도
초지장 같으리라.
누구의 초상화인가.
지금도 펄펄 날려 내린다.
그것은 지전에 그린
율곡이나
세종대왕의 그림은 아니다.
역사 어느 구석에도
적혀 있지 않고
내 기억에만 남아 있는
얼굴과 얼굴들.
어쩌면 내일의
내 얼굴이다.
웃지 않는다.
낙엽에 그려진 나는
웃지 않는다.
세월도 나와 같이
가는 것일까
유리잔에 담아둔 물.
시간은 바위
초상화 조각들은
바위 얼굴에 흩어져내린다.
산새, 종로서적, 1975
연초밭 머리에 서면 황금찬
연초밭 머리에 서면
뜰 앞 하루갈이에
담배를 심었다.
담배잎은 시집 가기 전
내 누님이 쓰시던 키와 같다.
곰방대를 무시고
담배밭의 풀을 뽑으시는
할아버지는
약 오른 담배잎을 연신 쓸어 보신다.
담배밭에 비가 내린다.
빗소리는 흡사 한밤중
파초잎에 내리는 빗소리처럼
후둑거린다.
할머니는 담배를 `담바귀'라 불렀고
할아버지는 담배를 `망우초'라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담배를 `연초'라 하시네.
창문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보며
파고다 연기를 뿜어 보라.
이것은 큰형님의 말이다.
적진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며
눈 날리는 고지에 서서
화랑 담배의 연기를 날린다.
이것은 작은 형님의 말이다.
새벽잠이 오지 않을 때
담배 없으면 `우야노'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연초 밭머리에 서면
흘러간 음성들이 그립다.
구름과 바위, 선경도서, 1977
오늘에 앉아서 황금찬
오늘에 앉아서
그리우면 만나야지
만나도 외로우면
울어야 한다.
푹 꺼진 겨울 바다 위에
계절을 잃은 국화 한 송이가
병들어 있다.
아침마다 짖던 까치는
지금 어느 나뭇가지로
날아갔을까.
출근 길에 눈이 온다.
이 나이에 오는 눈은
추억의 등불이 되어
어제를 불켜고 있다.
누군가 부르는 듯한데
그 소리의 방향을
찾을 길이 없다.
무한한 과거와
영원한 미래의 그 중간
오늘에 앉아 있다.
그것이 한없는 고독이다.
오후의 한강, 1973
이십원짜리 세계 황금찬
이십원짜리 세계
팔을 디룽거리며
하오 6시 퇴근로에 선다.
24시간 중 이 시간에 저울추가
제일 무겁다.
지금 그의 주머니 안팎에
허락된 경제는 이십원
그 안에서 그는 군왕이다.
오원짜리 두 잔을 마시고 나면
그 사이 군왕의 키가 절반(折半)이 줄고
중량은 영토를 발 밑에서부터
확대시키고 있다.
이제 한 잔을 더하면 모든 것은 삼분의 일
고층건물 입구에 드리운 철문
소유를 잃은 사람은 그 앞에서 잠을 잔다.
나뭇잎은 달빛을 받아 떨고 있다.
전주(電柱)는 성자 같지만 욕망이 없어
머슴군이다.
그는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십원짜리 세계는 되는 셈이다.
소리를 지른다. 욕을 하고 싶어진다.
야! 여기 아무도 없구나, 나뿐이로구나.
뭣들 하고 있어 이놈들아
하늘과 땅 사이 남의 귀는 없다.
크게 웃는다, 가로등이 따라 웃고 있다.
사람은 확실히 살 멋이 있구나.
어제 죽은 놈만 불쌍하지.
이십원짜리 세계를 살아
다음 순간을 모르면
사람은 확실히 살 만하다.
현장, 청강출판사, 1965
출렁거리고 있다 황금찬
출렁거리고 있다
모두 출렁거리고 있구나
내 날개를 펴고 저 무명의 호수를
바라보며 그 위를 날고 있을 때
마음도 물결도 출렁거리고
찢어진 내의 같은 구름도
출렁거리고 있었다.
날개를 저 북극으로 돌렸으나
거기에도 출렁거리지 않는 것이 없고
다시 남극으로 날았으나
역시 거기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리하여 주검의 바다를 날고 있을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고요, 그 고요, 적막이
거기에 영원히 펴지 못하는 날개를
육중한 체중으로 깔고
잠들어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출렁거리는 것이여
일찌기 북명(北溟)이 있어
한 날개의 끝을 거기에 두고
또 한 날개의 중심을
남명(南溟)에 두었으니
그리하여 출렁거리기 시작하였다.
한 번의 날개를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일어
그것으로 생명을 얻고
생명은 행동을 거느리며
살아 있는 절대한 표현이 되고
출렁거리지 못하면
생명을 잃은 저 무덤 속의 가득한
어두움 바로 그것이로다.
침엽수 거기엔 그만한 광명이
활엽수 숲 속엔
또 그만한 생명의 밝은 표상이
일렁거리고 있느니
입은 생의 표상이요
생명의 증거가 되었다.
한 조각의 잎이
정지된 상태는 살아있는 눈으론
정녕 응시할 수 없는 것
신이 이 시각에도
우리들의 생각 안의 우주 속에
호흡하고 있음을 느끼기엔
출렁거리는 저 북명이나
다시 남명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 그 절대의 대상은
비로소 가슴 안에서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 모두에게도
출렁거림이 멎는 날이 오겠지
그러나 그것은 저 주검의 바다
육중한 체중으로 날개를 깔고
다시는 뒤척일 수 없을 때
그 시각은 바로 눈앞에 서는 것
아직 그런 생각은 이르고
먼 문 밖에 있는 것이다.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탈출자 4 황금찬
탈출자 4
오늘까지 팔일째 물을 찾고 있다.
비도 오지 않는다. 하늘엔 황색 먼지가 구름처럼 덮여 있다.
어제 마지막 낙타를 잡았다.
거기에도 물이 없었다. 몇 홉의 피가 있을 뿐이다.
지금 내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시들어 가고
타선(唾腺)이 말라 목이 탄다.
죽음의 땅에서 죽음을 거부하며
보장 없는 곳으로 굴러가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도 고향도 조국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생각나는 것은 혀를 적셔 줄 물이다.
그대로 빈사상태다. 내 생명의 최장시간이 십분으로 한정되었는데, 그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일분일초씩 꺼져가고 있다. 내 중량은 마른 나뭇잎과 같으리라. 걷는 기능은 상실된 지 오래다. 먼지와 같이 바람에 휩쓸려 가고 있다.
사흘 굶은 사람이 잠 속에서 밥내를 맡듯
물 냄새가 난다.
내가 물가에 와 있는 것을 의식한다.
물이 있다. 반석으로 된 웅덩이에
군데군데 물이 있다. 먹고 싶지 않다.
그러나 벌써 물가로 굴러내리고 있다.
해골들이 파쇠처럼 흩어져 있다.
놀랄 것도 없고 무섭지도 않다.
풀 한 포기 없는 물가에 해골들이 원한의 열을 올리고 있다.
표지판이 있다. 내 눈을 끌기에
족한 거리다.
이 물은 독수다.
여기 해골을 보라.
마시면 십분 후다.
지금 내게 십분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물을 마시면 십분은 살고
안 마시면 오분 안에 죽는다.
현장, 청강출판사, 1965
퇴근 길에서 황금찬
퇴근 길에서
퇴근 길에서 만난 사람은
바다를 건너온 바람 그런 바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이 없고
약간은 간간한 그런 소금기
바다 냄새가 가늘게 가늘게
풍겨오고 있었다.
잠시 쉴 자리를 권하고
그 빈 옆자리에 앉아
지금 막 산을 내려온
나뭇잎, 풀잎
천년 바위들의 대화를
전설의 표주박에 담아 본다.
기울어진 물통에서
쏟아지는 시간이
자정의 계곡을 향하여 흐르고
모든 날개들은
언제부터인가 마멸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때 내게는
날개가 솟아야 한다.
두 팔을 가볍게 들어올려
은빛 눈부신 비늘
그런 조각으로 생긴 날개
금속성이 아니라도 피곤하지 않아라.
홍수에 떠다니던 노아의 배는
어느 산에 멎을까
그리고 누가 부는 피리에
방주의 문이 열릴꼬
살이 살아나는 풀이며
뼈가 살아나는 나무와
피를 다시 돌아가게 하는 물은
어디에 있는가
돌아가야 할 고향은
정오에 잠든 자연인가
문명의 강물인가?
석양 길에 섰다.
언덕 위에 작은집, 서문당, 1984
피리를 불면 황금찬
피리를 불면&
호숫가를 거닐다가
갈대 한 개를 꺾어 피리를 삼았다.
내가 그 갈대 피리를 불면
가을 호수 같은 하늘에
백학이 날아와 신기한 춤으로
허공을 메우고 있었다.
다시 그 갈대 피리를 불면
미움의 계곡이 사라지고
사랑의 나무에 열매가 열리고
아이들이 나비의 날개를 펴고
날아와선 사랑의 열매를 따고
내가 또 피리를 불면
바다에는 풍랑이 멎고
악신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가고
하늘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눈물의 무게로 기울어지는
이 지구의 중량을 덜어주고
암흑의 거리에 등이 밝아온다.
신라 하늘에
만파식적(萬波息笛)
평화의 피리여라.
질병이 물러가고 흉화가 사라지고
평화의 새들이 허공으로
줄을 지어 날고 있었다.
내가 피리를 불면
눈물 자국 얼룩진 고운 얼굴
해말갛게 떠올라 달이 되고
소년 소녀들의 귀는
구만 리 그 먼 길을 지척으로 달려와
입가에 여무는 오렌지
죽은 자의 머리 위에
별들이 내려와 앉는다.
각시멧 노랑나비가
계절의 바구니를 목에 걸고
꽃가루 뿌리며
날아오고 있다.
그 꽃가루는 다시 수천만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날아내리고 있다.
내가 피리를 불면
불운한 사람은 이 땅에서 사라진다.
나는 피리에게 물어 본다.
어디에서 온 평화의 악기냐고
선한 음성이 사라지고
어진 음성이 멎은 이 땅에
한 줄기의 광명으로 내려온
하늘의 마음이라고, 사랑의 심정
평화의 춤이라고
피리는 청청히 울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한 알의 밀 황금찬
한 알의 밀
한 알의
밀이
땅에서 죽다.
세월이 흘러간 뒤
백, 천 개의 밀을
그곳에서 다시 찾았다.
이 하늘의
이치를
알았더라면
내 이웃을 위해
사랑의 옷을
묻었으리라.
이제 내가 가고 나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여무는 두 방울의 이슬―.
기도의 마음 자리, 성서교리간행회, 1981
허공 황금찬
허공&
나비가 날아갔다.
빈 허공
나는 그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을 따라가는
꽃잎이
어느 여울을 흐르고 있을때
물기에 젖었던
아침 종소리가
수정 조각같이 빛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홀연
나비가 날아온다.
두 폭의 날개로 허공을 덮는
대왕팔랑나비
북방흰점팔랑나비
제주꼬마왕팔랑나비
왕자팔랑나비
은점박이꽃팔랑나비
두 폭 날개는
신비의 부채같이
비를 뿌리고
바람을 튀기며
사랑을 부르면서
눈에 가득하여라.
지금 허공을 가득히 채우며
날고 있는 것은
한 마리의 나비였느니
눈과 허공 사이
장벽으로 장벽으로
싸여가고 있는 것은
두 폭의 날개였고
소녀들의 상냥한 웃음소리
은방울이 일시에 울리는
천 개, 만 개의 울림
여기가 어느 광야에
불타는 제단인가
바라보아도 바라보아도
끝없는 날개
나는 청자로 이룩된
사각의 잔에다 꿀을 부어
차돌 반에 놓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고
수목을 사랑하였으며
저들의 기는 곤충이며
물 속의 작은 고기떼까지
사랑할 수 있으니
이제 내려앉아
이 향연으로 타오르는 소망을
이루게 하라.
기다리는 마음이
하늘에 다다르면
그러면 하늘도 변모하느니
다만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음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이다.
나비여
내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비
평화의 날개, 사랑의 언어를
날개 두 폭으로 하늘을 덮는
그 이상한 순간을 위하여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거니
다시 어느 날에 살아올
그 찬란한 광명을 생명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나비제(祭) 1, 백록출판사, 1983
현장 황금찬
현장&
이 순간 직전의 일체를 나는 모른다.
병실 사벽면이 살아서 나를 향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생각할 여유도 없다.
나는 병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거리의 고층건물들이 나를 향해 움직이며, 부서져내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방향을 모르며 달리고 있다.
그러다가 지금 직전을 잊은 순간 길가에 서 있다.
수천 수만의 쥐들이 내게 달려든다.
쥐들은 내 몸을 마음대로 할퀴고 물고 늘어진다.
나는 내 목덜미에서, 가슴에서, 머리에서, 손에서
쥐들을 떼어 동댕이치고 발로 차며 손을 흔들고
온몸에 불이 붙어 오듯 어쩔 수가 없다.
위대한 사람은 웃고 지나가고
아이놈들은……미친 놈이라고 돌을 던진다.
나는 돌과 쥐를 피해 어느 골목에 숨는다.
현장, 청강출판사, 1965
흙 황금찬
흙&
흙은
호수에 돌아가는 물살 같은
연륜을 지니고 있다.
숱한 나무와 풀들이 발을 붙이고
하늘을 받들며 꽃을 피우고
수많은 짐승들이 묻히고
또 대를 이어나고 한다.
해 잘 드는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살던
삼한이며 또 삼국이 가고 다시 삼국이 이어가고
한때는 구름처럼 피어오르던 고려
눈물과 극한으로 흘러간 이조, 흙으로 갔다.
역사의 실마리가 풀리기 비롯하던 전날부터
흙에서 샘이 솟고, 열매와 곡식이 익었다.
어느것 하나 흙의 땀과 기름의 결정이 아니리요.
수목이 흙 속에서 살듯
나도 흙을 받들며 흙 속에서 살겠다.
흙은 내 어머니의 나라, 영원한 어머니
나를 불러 내었고, 다시 나를 불러갈 곳
그리고 내 어머님이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갔다.
혹은 하늘이요, 별이요, 구름이요, 바람이요,
산이요, 들이요, 돌이요, 물이요, 보석이요, 생명이다.
나는 보았다.
긴 역사를 두고, 참으로 긴 역사를 두고
부질없이 흙을 패역하는 사람들과
옛 이야기처럼 훌러간 사연들을
그러나 해가 오고 해가 가는 속에서
흙은 한갓 침묵하고 있다.
별이 있는 밤, 양림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