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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靑陽] - 푸른 볕을 자랑하는 청양
동쪽은 공주시, 서쪽은 보령시, 남쪽은 부여군, 북쪽은 홍성군과 예산군에 접하고 있다. 1읍 9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청양군 청양읍 송방리 100번지이다. 군을 상징하는 꽃은 철쭉, 나무는 느티나무, 새는 원앙이다.
청양 문화관광 http://tour.cheongyang.go.kr/html/kr/index.html
영상포엠 한국 100경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98863
청양고추ㆍ구기자축제
청양 홍보영상
http://media.cheongyang.go.kr/kboard/movie/open_movie.html?code=movie_moa&num=27
칠갑산 자연휴양림
칠갑산천문대
고운식물원 청양읍 군량리
대표적인 수종으로는 단풍나무 300종과 비비추류 300종 장미 280종 무궁화 260종 작약 400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22개의 작은 테마별 식물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모덕사[慕德祠] 목면 송암리 171-1
송암리 장구(長久)마을에 최익현이 와서 살았는데,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06년 청양군내 유림들이 발의, 1913년에 공덕사(恭德祠)라는 명칭으로 건립되었다.
광복 후 사우를 중수하고 고종황제의 밀지 가운데 나라 일이 어지러움에 경(卿)의 높은 덕을 사모(慕)하노라(간우공극 모경숙덕 艱虞孔棘 慕卿宿德)의 문구 중에서 ‘慕’자와 ‘德’자를 따서 모덕사라 하였다.
조선시대 대학자이며 의병대장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항일투쟁과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 창건된 사당이다. 영정 및 위패(位牌)가 봉안되어 있으며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선생은 1906년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켜 민족혼을 일깨워준 분이다.
후에 그를 추모하는 사림들이 태인, 포천, 곡성 등 여러 지역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 모덕사는 성충사(영정이 보관되어 있는 영당), 고택(안채, 영모재(永慕齋 면암 선생 조상의 위폐를 모신 곳, 중화당(사랑채)으로 구성), 대의관(유물전시관), 춘추각(서책, 서간문 등을 보관하는 장서각, 제사용 집기 등을 보관하는 제기실 성격의 건물)이 있고, 대의관에는 9종 128정의 유물관이 전시되어 있으며 춘추각에는 서책 4023권과 서찰 1974점이 보관되어 있다.
사랑채는 구동정사 또는 중화당(中和堂)이라 하였는데 이곳에서 많은 애국지사를 모아 강의하고 독립운동을 논의하여 1906년 의병을 일으키게 된 산실이며 면암선생이 순국한 뒤에 후손이 살았던 집이다
"선생님 ,이것은 대한 배 입니다, 여기는 대한 땅 입니다 "1906 년 11 월 21 일 최익현의 영구가 대마도 이즈하라 항을 떠나 부산 초량 나루에 내려 상무사에 안치 하였을 때 제자 김영규와 권순도가 영구를 부여잡고 울며 부르짖은 소리다.
권순도는 양산 출신의 인물로서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다. 음직(蔭職)으로 주사(主事) 승승훈랑(陞承訓郞)에 올라 문묘(文廟)의 직원(直員)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과 더불어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홍류동 지역에 가홍정(駕虹亭)이란 정자를 지어 경전을 읽고 시를 읊으며 살았다.
상의사(尙義祠) 화성면 구재리 146번지
번암은 정조의 화성 성역공사에 다산을 지휘하며 화성축조의 총괄 감독을 맡은 사람. 정조의 배려로 제주 기생 김만덕이 국비로 금강산 여행 시에 그는 좌의정으로서 총 책임자였으며, 그의 저서 번암집에 만덕전을 실어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한 장본인이다.
조선에 2명의 임금이 있다면 세종과 정조라고 한다. 세종에게는 황희와 장영실이 있었으며, 정조에게는 번암과 다산이 있었기에 그들의 재위기간이 한결 돋보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들 한다. 호 번암(樊 울타리, 巖). 바위를 벗 삼아 독서나 하겠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靑陽 출신으로는 조선왕조 正祖 때 영의정을 지낸 蔡濟恭(채제공) 이후 처음으로 「宰相」(재상)이 된 셈이다. 상의사(尙衣司) 조선시대 임금의 어의(御衣)를 관장하던 관청.
장곡사[長谷寺]
현존 건물들은 근세에 이르러 거의 개축·재건되었는데, 그 아담한 건축양식은 아직도 자랑하기에 충분하다.
경내에는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 58), 장곡사 상대웅전(보물 162), 보물 제181호인 장곡사 하대웅전 등이 있다. 또 아직 비늘 모양이 또렷한 1m 가량의 목어(木魚)와 850년이나 묵은 괴목 등은 유명하다. 그리고 절에는 석탑이 없다
장곡사라는 이름은 긴[長] 계곡[谷]에 있는 절[寺]이라는 뜻이다. 예부터 이 곳 사람들이 장곡사가 있는 골짜기를 아흔아홉골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리 길어 보이진 않는다
장곡사 입구 아름다운 벚꽃 길(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鐵造藥師如來坐像附石造臺座] [국보 58]
불상 뒤 주형광배(舟形光背)는 원래 돌로 되었을 것이나 파손되어 조선시대에 나무광배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정혜사[定慧寺]
마곡사(麻谷寺)의 인명선사(寅明禪師)가 다시 재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또 불타 버렸다. 그후 송월선사(松月禪師)가 다시 삼창(三創)했으나, 1907년 의병대와 승병들이 함께 집결한 것을 본 왜병들이 전 사찰에 불을 질렀다. 1908년 월파(月波)가 지금의 대웅전을 건립하고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청양의 명물 나선형 도로(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 나선형도로가 시공된 이곳은 두 지점 사이에 깊은 계곡과 함께 표고차가 24m나 되는 지형 특성을 가진 곳으로서 일반저인 도로를 시공할 경우 기울기가 14%나 되어 겨울철 차량통행이 힘들고 자연경관도 크게 훼손되는 문제점을 않고 있었음.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나선형 공법을 도입하여 시공함
칠갑산[七甲山]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칠갑산 벚꽃길’이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이 어우러져 벚꽃이 휘날리는 4월 환상의 축제를 즐길 수 있다.<칠갑산 산꽃마을축제>
칠갑산 자연휴양림 http://www.chilgapsan.net/
칠갑산 장승문화축제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옛 전통문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조화를 이뤄 한국 최고의 장승문화 보존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칠갑산 주변의 장승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장승축제가 개최된다.
청양은 한국 장승의 본거지로써 자리 매김하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이 행사를 민속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은 물론 백제권개발 등과 연계한 칠갑산관광자원의 개발로 지역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여 지역특성을 살린 국제적 행사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칠갑산천문대 http://star.cheongyang.go.kr/
칠갑산 천장호
칠갑산 천장호 출렁다리 한편 국내 최장인 칠갑산 천장호 출렁다리는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긴 출렁다리로 길이가 207m에 달하고 있으며 폭 1.5m, 중심부는 30~50㎝까지 출렁임을 느낄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아찔한 스릴을 제공하고 있다. 출렁다리는 청양을 상징하는 고추모형의 주탑(높이 16m)을 통과한 후 천장호수를 가로지르며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이색명물이다. 또한 거대한 용과 호랑이 조형물이 설치된 다리 건너편에는 칠갑산 등산로(천장로)와 연결되어 칠갑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아슬아슬한 공포심과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천장호수에는 천년을 기다려 승천하려던 황룡(黃龍)이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승천을 포기하고 몸으로 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를 지켜본 호랑이는 영물이 되어 산을 수호한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천장호를 거쳐 산에 오르면 악(惡)을 다스리고 복을 얻으며 황룡 기운과 호랑이 영험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속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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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구곡
칠갑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은 어을하천, 작천, 지천, 금강천의 순서로 흐르는데 작천, 지천이 온직리, 구치리, 개곡리, 장곡리, 작천리, 지천리 등 협곡과 아름다운 산수경을 이루는데 흐르는 물굽이가 기묘하고 기암괴석이 아름다워 지천구곡이라 한다
청양고추ㆍ구기자축제 http://www.cygg.kr/
중앙종묘(주)의 홈페이지에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소과종이 대과종보다 가격이 높고 특히 국내 최대 주산지인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청송, 영양지역에서 소과종이 주로 재배되어 이 지역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하고자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육성목적에 비교적 근접한 품종을 육성하여 청송의 '청(靑)'과 영양의 '양(陽)'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여 품종 등록하였다”고 되어 있다.
청양 고추는 두 가지로 구분하여 말해야 한다. ‘청양에서 나는 고추’와 매운 맛이 나는 품종인 ‘청양고추’이다. 시장에서 ‘청양 고추’라 하면 거의가 품종으로서의 ‘청양고추’를 말한다. 풋고추로 주로 이용되는 그 작고 매운 고추이다. 지명과 품종명이 같아서 일어나는 혼돈이다
‘청양고추’는 고추 육종가인 유일웅씨가 제주산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잡종 교배하여 얻은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또 ‘청양고추’의 최대 생산지는 경남 밀양이다.
청양구기자[枸杞子] 1926년 고(故) 박관용 선생이 청양의 운곡면에 처음 재배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구기자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구기자는 청양을 대표하는 농작물로 성장했다.
구기자는 가시가 헛개나무(구: 枸)와 비슷하고 줄기는 버드나무(기: 杞)와 비슷하여 두글자를 합쳐서 枸杞(구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옛 노나라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 높은 관리가 민정을 살피던 중 나이 어린 소녀가 회초리를 들고서 이빨이 다 빠지고 흰 수염이 난 노인을 쫓아다니는 이상한 광경을 보고 소녀에게 호통을 치니 소녀는 자기가 300살이요, 그 노인은 나의 증손자라 하였다. 소녀는 구기자를 먹어서 그렇다 대답하고 구기자 먹는 법을 관리에게 일러주니 "구기자는 1월에 뿌리를 캐서 2월에 달여 먹고 3월에는 줄기를 잘라서 4월에 달여 먹고 5월에 잎을 따서 6월에 차로 끓여 마시고 7월에는 꽃을 따서 8월에 달여 먹으며 9월에 과실을 따서 10월에 먹는데, 이와같이 구기자는 1년 내내 먹을 수 있습니다."하였다. 관리가 집으로 돌아와 구기자를 먹어보니 정말로 들은 대로 효험이 있었다.
청양 구기자주[枸杞子酒] 2000년 9월 20일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청양의 하동정씨 종가에서 150여 년 동안 전래의 비법으로 빚어온 술로, 쌀과 구기자를 주원료로 하고 여기에 구기자의 뿌리와 잎·줄기, 두충 등을 첨가한다.
청양 줄무덤(다락골줄무덤) 화성면 농암리(農岩里) 다락골에 있는 천주교 순교자 묘지이다
다락골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자 묘지이다.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줄묘라고도 부른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천주교들을 탄압할 때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교도들이 매장되어 있다. 총 37기가 있으며, 주로 가족 단위로 매장되어 있다. 주위에 없어진 10개의 인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탄압 때 마을 전체가 화를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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