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구론산 / 박경대
“띠링” 약을 먹으라는 알람이 울린다.
아침상을 물릴 즈음이면 약간의 사이를 두고 폰이 두 번 울린다. 어디가 나빠서 먹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예방약이고 또 한 가지는 힘이 부쩍 나고 단박에 기분이 좋아지는 영양제이다. 시간 맞혀 먹기 시작한지가 벌써 서너 달 되었다.
어릴 때부터 감기약을 제외하곤 약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한 신체를 받아 태어나기도 했지만, 평소에 운동을 가까이 한 덕으로 여기고 있다. 웬만한 산행이나 늦도록 벗들과 술을 마셔도 다음날 아침이면 거뜬했다. 그토록 자신하던 몸이었는데 딸아이가 시집을 가던 해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처럼 변해가는 몸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식탁위에 처음 보는 약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내에게 무슨 약인가 물어보았더니 이제부터 몸을 챙겨야 한다며 전날 구입한 비타민제라고 하였다. 한 알씩 꾸준히 먹으면 좋다면서 나에게도 먹으라고 권하였다. 평소 밥이 보약이라고 생각하던 터라 아내의 권유에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어렸던 시절은 집집마다 먹을 것이 부족했다. 길에는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걸인이 부지기수였고 영양결핍으로 얼굴에 마른버짐이 피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 무렵 ‘원기소’라는 어린이 영양제가 나왔다. 노르스름하게 생긴 원기소는 맛이 구수하였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지 사먹던 집은 많지 않았다. 형편이 좋은 친구는 학교에 한 움큼씩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다. 맛이 좋다는 말에 먹고 싶었지만 숫기가 없어 한 번도 달라고 해보진 못했다.
그해 겨울, 감기에 걸려 입맛을 잃은 나에게 어머니가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아플 때는 항상 과일통조림을 찾던 내가 그날은 원기소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금세 약국을 다녀오셨고, 그때부터 구수한 원기소를 먹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먹던 원기소를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그만 먹게 되었다. 씹어 먹을 때 입안이 텁텁하여 지겹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마시는 영양제가 새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가격이 비싸 매일 먹진 못했으나 자주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구론산’이었다.
피곤해도 마시고 시험을 볼 때도 먹고, 운동회를 해도 그걸 마셨는데 새콤달콤하여 맛도 좋았다. 그것을 마시면 힘이 난다기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음료에 첨가된 카페인 탓이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여 딸아이가 태어날 무렵에는 너나없이 잘 먹어 영양결핍이라는 말은 없어졌다. 아이들에게 영양제라고 별도로 먹였던 기억도 없다. 오히려 너무 잘 먹여 비만이 될까 걱정을 하였다. 그때부터 영양제라는 단어는 잊고 지냈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많이 올라간 요즘 들어 다시 건강에 관심들이 많아진 것 같다.
방송에서 연일 건강에 관한 프로를 하고 의약품 광고를 할 수 있게 되자 TV만 켜면 약 선전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모든 내용이 내가 평소 느끼는 증상들이다. 광고대로라면 나는 영락없는 환자였다. 무심하게 듣던 광고였지만 자주 듣다보니 세뇌가 되어 하나쯤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막힌 약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 지하상가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오지 않아 근처의 휴대폰 가게를 구경하게 되었다. 상품들이 하나같이 좋아 보였다. 삼 년이 채 되지 않은 나의 휴대폰은 한참 구형이 되어 있었다. 가게에서 새 기종으로 바꾸어 준다 해도 새로운 사용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귀찮아 관심이 없던 터였다.
가게 안에는 중년부부가 휴대폰을 바꾸었는지 직원으로부터 사용법을 듣고 있었다. 한참 이리저리 만지던 직원이 부부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폰에서는 유치원생 또래의 아이가 “할아버지”하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부부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고 부러웠다.
통화를 마친 부부는 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나의 시선이 쑥스러웠던지 아이를 보니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하였다. 옆에 있던 직원이 스마트 폰은 요즘 할아버지 할머니의 필수품이라며 말을 거들었다. 다들 멀리 있는 손자들이 보고 싶어 구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나도 불현듯 외손자가 보고 싶어졌다.
다음날, 사용법을 다시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휴대폰을 바꾸었다. 저녁 내 씨름하며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딸애와 화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
화상통화를 할 때면 아내는 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렇지만 통화 때 느껴지는 엔도르핀을 생각하면 그게 대수인가. 다만 외손자가 자고 있을지 모르고 살림하는 형편을 헤아려 딸애가 편한 시간에 화상통화나 동영상을 보내오게 된 것이다.
조그마한 화면을 채우며 하품하는 모습도 예쁘고 신 것을 먹고 찡그리는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심지어 우는 모습을 봐도 미소가 지어지고 피로가 풀리며 즐겁다. 며칠 전까지 일어나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 외손자가 어제는 드디어 한 발을 떼어 놓았다. 오늘은 어떤 영상으로 나를 즐겁게 해 줄지 기대된다. 아홉 시 전후로 배달되는 외손자의 동영상이 내가 요사이 먹고 있는 영양제이다.
“띠링” 드디어 오늘 먹을 영양제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