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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226 (월)
- 훈민정음 : 아름다운 우리말 (1) - 문화, 여행 (24)
“작은 설”이라는 “동지(冬至)”도 지났고 “성탄절(聖誕節)”도 지났습니다.
이제부터는 낮이 점점 길어지니 실질적으로 새해가 되었습니다.
원래 오늘은 “가로수 이야기” 중에서 “배롱나무”에 대하여 올리려고 했었는데,
연말연시 그리고 정치,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에서
한여름에 피는 꽃과 나무이야기를 하기가 좀 뭣해서 당초에는 내년에 올리려고 계획했던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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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 아름답다는 말을 새삼스럽게 하려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느낌이
더욱 들어서입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創製)하시기 전에는
비록 우리말이 있기는 했어도 그 소리를 글로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
진정으로 우리말의 소리를 글로도 나타낼 수 있었으니 너무도 고맙고 감격스럽습니다.
우리민족이 이 땅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우리만의 말은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단지 그 말을 글로 표현하는 문자가 없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 이두(吏讀), 구결(口訣), 향찰(鄕札), 서기체(誓記體) ] 등으로 한자를 빌어 표기해오다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頒布)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의 말을 글로도 제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우리 한글은 이제는 우리의 옛날과 같이 자신들의 문자를 가지고 있지
못한 멀리 인도네시아와 볼리비아의 일부 종족들이 자신들의 말을 우리의 한글로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으니 또한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한글은 우리민족과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풍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무엇이 이에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부에서는 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라도 다시 공휴일로 정하여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우수함을 뽐내고
우리 국민들이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일부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기 위하여 “식목일”도
종전처럼 공휴일로 정하여 성대한 행사를 하는 날로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두(吏讀)”, “구결(口訣)”, “향찰(鄕札)”, “서기체(誓記體)”등은 모두들 잘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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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올리려고 생각했을 때에는 “훈민정음”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바람”, “구름”, “비”등 우리 주위의 사물이나 현상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우리말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으나, 그 이전에 “훈민정음”과
“한글”에 대하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먼저 간략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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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Memory of the World) ]
2011. 12월 현재 우리나라는 “훈민정음”을 비롯하여 총 9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
가. 먼저 세계적 가치의 여부가 있다.
즉, 세계적 가치를 충족하려면 다음의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1) 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 (Time)
(2) 역사발전에 기여한 장소나 지역관련 정보 (Place)
(3) 역사에 기여한 개인의 업적 (People)
(4) 세계사의 주요 주제 (Subject / Theme)
(5) 형태나 스타일에 있어서의 표본 (Form and Style)
(6) 사회적, 정신적, 문화적 중요성 (Social / Spiritual / Community Significance)
나, 그 외의 기준에는 신빙성, 유일성과 영향력 등이 있다.
(1) 신빙성은 유물이 진품이며, 그 실체와 근원지가 정확한 자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유일성과 영향력은 등재될 유산이 유일하며, 대체 불가능해야 하며, 유물의 손실 또는
훼손이 인류 유산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일정기간 동안 세계의 특정 문화권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자료여야 한다는 것이다.
(3) 추가기준으로는 완성도 또는 완전성에 있어 탁월한 자료, 독특하거나 희귀한 자료 등이
있다.
2.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 : ()안은 등재년도
(1) 훈민정음(訓民正音 - 1997)
(2)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1997)
(3)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 2001)
* 여기서 “직지심체요절”의 정식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입니다.
(4)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2001)
(5) 팔만대장경판과 제 경판(八萬大藏經板 과 諸 經板 - 2007)
(6) 조선왕조의궤(朝鮮王朝儀軌 - 2007)
(7) 동의보감(東醫寶鑑 - 2009)
(8) 일성록(日省錄 - 2011)
(9)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2011)
등 총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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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민정음(訓民正音) ]
-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자”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국보 제70호”
이면서 제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기서 우선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중의 일부를
다시 살펴봅니다.
1. <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 중에서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우리나라 말은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故愚民 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고로, 어리석은 백성이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라.
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늘 씀에 편케 하고자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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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훈민정음 해례본 중 < 정인지 서문(鄭鱗趾 序文) = 정인지 후서(鄭麟趾 後書) >
중에서
이 서문의 내용을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고인(古人)이 만든 문자를 후세 사람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② 그러나 지리적 조건이 다르면 사람의 발음도 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도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고유문자가 없다고 한자를 빌려 쓰고 있으니
제대로 될 이치가 없다.
③ 우리나라의 문화수준이 중국과 견줄 만하나 중국과 언어가 달라 한자와 한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책을 공부하는 이는 그 뜻을 깨우치기 어려워하고 죄인을 다스리는
이는 한문으로 기록된 내용을 모른다.
④ 신라(新羅) 때부터 써온 이두(吏讀)가 불편하고, 실지 언어생활에서는 만분지일도
의사를 전달할 수 없다.
⑤ 그래서 계해년 겨울(癸亥冬 = 세종 25년 겨울)에 세종께서 정음28자를 만드시고
<훈민정음>이라고 이름을 붙이시었다.
⑥ 상형(象形)해서 글자를 만들었는데 중국의 고전(古篆) 문자와 비슷하다.
⑦ 불과 28자지만 얼마라도 응용이 가능하다.
⑧ 배우기 쉬워서 하루아침, 또는 열흘이면 익힐 수 있다.
⑨ 이 글자가 창제되어 한문책의 뜻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고,
죄인의 뜻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한자음도 분명해졌고, 음악도 음계가 고르게 되었으며, 바람소리, 닭울음소리도
다 적을 수 있게 되었다.
⑩ 이 책을 편찬한 사람은 “정인지(鄭鱗趾)”,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강희안(姜希顔)”, “이개(李塏)”, “이선로(李善老)”
등 8인이다.
⑪ 이 글자는 순전히 세종대왕의 독창적인 창안에 의해 창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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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훈민정음>의 창제(創製)와 반포(頒布)
(1) <훈민정음>은 세종 2년(1420) 음력 3월에 집현전(集賢殿)의 기구를 확장,
궁중에 설치하고 위에 나오는 학자들을 등용하여 만들었는데,
(2) 세종 25년(1443) 음력 12월에 창제하여 최만리(崔萬理) 등 유신들의 반대상소를
물리치고 더욱 갈고 닦아,
(3) 세종 28년(1446) 음력 9월 상순 (양력으로 10월 9일경 - 지금의 한글날)
반포하였습니다.
*** 한자(漢字)를 사용했던 민족 중에서 우리와 같이 자신들의 “표음문자(表音文字)”를 만든
나라들에는 “여진족의 나라인 금(金)”, “몽고족의 나라인 원(元)”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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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글”아라는 이름
- “훈민정음” 반포 이후 “언문(諺文)”, “언서(諺書)” 등 “속된 글”이라 하여 우리말을
낮추어 부르던 이름에 “한글”이라는 명칭을 붙인 사람은 잘 아시는, 우리말과 글을
정리하신 “주시경(周時經 : 1876~1914)” 선생님 이십니다.
- 선생님은 조선시대 중기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세우신
“주세붕(周世鵬 : 1495-1554)” 선생의 13세손으로, “국어연구회”등을 만들어 한글을
정리하고 보급하는데 힘쓰셨고, 또 “국어문법”등 한글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 선생님은 “호(號)”가 여러 개인데, 특히 주목하여 볼 것은 “태백산(太白山)”,
“백천(白泉)” 등 한자어로 된 “호(號)”도 있었지만, 순수 우리말로 된 “한힌샘”, “한흰메”
등의 호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 “한글”이란 말은 “한민족(韓民族) 의 글”, “한(韓)나라의 글”이란 뜻으로, 당초의 출발은
당시 우리나라의 이름이었던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라고 합니다.
-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말의 “한”이라는 말에는 “크다”라는 뜻이 있는데,
즉 “한글”이란 말에는 “큰 글”이라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 다음은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를 소개합니다.
“자기네 말과 글을 아끼고 잘 써먹는 나라는 강한 나라가 되고, 자기네 말과 글을
하찮게 여기는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우리글이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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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글의 우수성
- 잘 아시다시피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표의문자(表意文字) - 중국의 한자(漢字)”와 “표음문자(表音文字)”로 구분됩니다.
- 이중 “표음문자(表音文字)”는 다시 “음절문자(音節文字) - 일본의 가나”와
“음소문자(音素文字) - 한글, 로마자”로 구분됩니다.
-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表音文字)” 중의 “음소문자(音素文字)”가
가장 편리하고 표현성이 우수하다고 합니다.
* 음소문자(音素文字)
“낱소리 글”이라고도 하는데, 개개의 글자가 단어의 음을 음소의 단위까지 분석하여
표기하는 성질을 가진 문자
* 음절문자(音節文字)
“소리마디 글”이라고도 하는데, 한 음절이 한 글자로 되어 그 이상 나눌 수 없게 된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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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훈민정음의 보급과 현대의 한글
사실 “훈민정음 반포”이후에 이를 널리 보급하려는 나라의 노력과 왕실여성들과
일반백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훈민정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최근의 “한글 캘리그라피
(Calligraphy)"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했는데,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다음으로 미루고
아마도 학교 다니실 때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유명한 <마지막 수업>으로 오늘의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 캘리그라피(Calligraphy)
“손글씨”, “서예(書藝)” 등으로 표현되는데, 글씨나 글자를 가지고 디자인을 하거나
어떤 예술적 표현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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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의 사진들은 다른 분의 것들을 빌려온 것입니다. ***
< 훈민정음 >
< 세종대왕 >
< 한글 캘리그라피(Calli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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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수업 ]
< 소개 >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1871)입니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 1840년 5월 13일 ~ 1897년 12월 16일)”는
프랑스의 소설가입니다.
<마지막 수업>은 1871~1873년 여러 신문에 기고했던 콩트와 이야기들을 모아 발표한
<월요 이야기(Contes du Lundi)〉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에밀 졸라”의 주도하에 몇몇 작가들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배경으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글들을 발표한 소설집
<메당의 밤(Les Soirées de Médan)〉에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특히 무거운 주제를 밝은 환상과 시정(詩情)이 넘쳐흐르는 문체로 다루어 독자들에게
은근한 감동을 줍니다.
<마지막 수업>은 철부지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모국어를 빼앗기게 된 피점령국의 슬픔과
* 이분의 다른 단편 <별>도 무척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 줄거리 >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매우 늦었다.
게다가 아멜 선생님께서 동사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아 야단맞지나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놀러 가고 싶은 맘을 꾹 참아 내고 숨차게 학교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교실 안은 마치 일요일 아침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열려진 창문 너머로 벌써 제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아멜 선생님은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막대기를 겨드랑이에 끼고 왔다 갔다 하고
계셨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 들어갔다.
매우 부끄럽고, 얼마나 두려웠는지!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혼내시지 않았고,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런데... 오늘이 나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라니! 이 지독한 베를린 놈들!
그런데 나는 매일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녔기에 아직 프랑스어를 제대로 쓸 줄도 모른다.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되는데... 나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후회한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수업을 끝내신 뒤 눈물을 흘리시며, 칠판에 프랑스 만세!를 쓰시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힘없이 우리에게 손짓 하며 말씀하셨다.
"이제 끝났다.... 돌아가거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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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아름다운 우리말” 중에서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
감사합니다.
첫댓글 어렸을 적 한문 배울 때, 천자문 끝나고 소학을 할 때 훈장님이 토(구결) 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잊었습니다만 나중에 보니 일본 카타카나와 비슷하였습니다. 지금은 토 달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 내용도 사람마다 달라 아쉽습니다. 그 토 다는 것이 일본 고대 서적을 연구하다 일본학자가 뿔이나 나무 꼬챙이로 난외에 써 놓은 형태를 발견하였다고 몇년 전 기사가 났었습니다. 학장님, 그야말로 만물창고 입니다. 열심히 배웁니다.
이 사장님, 아는 것의 분량이나 깊이에서 사장님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단지 저는 제가 관심있는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고 여러분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요. 저의 글을 읽고 즐거워 하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때 그때 스쳐가는 말이나 현상에 대하여 "어! 이게 뭐지?" 하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으면 알아보는 수준입니다. 고맙습니다.
새삼 한글이 세종께서도 이십육년리라는 세월과 많은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 한때 가림토라는 것이 한글의 전형이 아닐까 하는 관심이 있었는데, 우리와 같은 갈레리우스 북방 민족들이 표음 문자를 갖고 있는게 더욱 공감이 갑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다양한 분야와 깊이있는 내용으로 배웠으면 함다, 건강하세요!
사람들이 밥벌이에 필요한 전문지식은-사실은 별로 깊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도-그럭저럭 제대로 알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하여는 곁들이나 어깨너머로 아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아는체 하고 살고 있는데... 뭔가 관심있는 것에 대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알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장님"이나 "맹인"을 "봉사"라고도 말하는데, "봉사에게 안경 씌우 듯..."의 깜깜함과, 또는 "봉사가 코끼리 만지 듯..."의 아주 조그맣고 단편적인 지식으로 서로 자기주장을 하려다 보니 요즘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이거 제가 아는 척 합니다.
학장님!! 한글 항상 위대하다고 자부심도 갖고있지요. 잘 읽어 보았습니다. 알퐁스 "별" 거의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첫 구절이 아마...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치고 있을때 일입니다. 이렇게 시작 되면서. 중략 ,목동과 스테파네트(여주인공 주인집 따님) 순수하고 애듯한 순정? 그자체 때묻지 않은 사랑? 제가 좋아하는 단편소설 입니다. . 마지막 부분 새벽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별동별을 보고 저게무얼까? 물었더니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지요 라고.. 목동이 말하지요. 그런데 목동은 가슴에 아가씨 머리가 가슴에 안겨있는것을 느끼면서 ...
고 사장님은 서정성 있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어찌 등장인물들의 이름까지 기억하시는지??? "별"은 전개되는 내용이 우리나라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와도 느낌이 많이 비슷한데, "소나기"는 마지막이 좀 슬프지만 "별"은 가슴 따뜻하고 아련한 어떤 기억과 또 꿈을 꾸게 해 주어서 마음 설레게 합니다. "소공자", "소공녀", "알프스의 하이디", "빨간머리 앤" 등등 외국에도 비슷한 느낌의 글들이 많군요. 아름다운 이야기들 입니다.
참 많이 들었던 구절이군요. 학교에서 뿐만아니라.. 초동에서도.. 원래 수영님이 술 한잔 드시면 로맨틱해지시죠, 강한 기억력도 자랑하실겸.ㅎㅎ
참으로 잘 봤읍니다.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이정도 발전하고 여성들이 사회 주류로 등장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한글 덕택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근세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한글성경을 보급 가르침으로서 여성들이 개화되어 사회역동성을 높인 것은 세종대왕님과 초기 신부님과 미국 선교사님들의 업적에 힘 입은 것으로 생각되어 참으로 감사하게 여깁니다.
고맙습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왕실, 왕실 여성, 일반 백성들 그리고 겉으로는 한자만 쓰는 것으로 보였던 선비들의 한글 사랑과 사용으로 우리말은 온 나라에 깊숙이 들어앉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모습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문맹율에서 세계 최저인 것도 그 기본은 체계적이고 배우기 쉬운 우리 한글에서 비롯 되겠습니다. 그리고 한글로 된 성경은 우리말의 보급과 정착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고 또한 무척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최근에는 한글 팔만대장경도 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할 첫 번 째가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