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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7대절기
7대 절기 1 (출23:14-17)
이 시간에는 “7대 절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세워 놓고 하나님 앞에 7대 절기를 지켰습니다. 7대 절기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을 가리킵니다. 그 외에도 특별절기가 있는데 안식일 월삭 부림절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성도들의 교회생활의 분량입니다. 신약 성도들도 이 정도의 분량은 되어야 영적 생활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너는 -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방법론에서 구약처럼은 지키지 않지만 신령한 의미에서 이 절기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 절기의 사건이 영적으로 우리에게 재현되어야 합니다. 그럼 7대 절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신령한 의미를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 유월절의 의미입니다.
출12:26-27에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대속하심을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말씀합니다. 유월절에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로 하나는 어린양의 피공로이고, 다른 하나는 세속에서 탈출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유월절을 지키려면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죄악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원리상으로는 건짐 받았지만 아직도 마음이 세상에 빠져 있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의미에서 출애굽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중세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이 회심한지 얼마 안 지났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회심한 뒤로도 때때로 악한 천성을 지니고 살았을 때 사귀었던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곤 했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수개월 동안 알고 지냈던 여인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거스틴이 십자가의 능력에 의해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전까지 그를 죄의 노예 상태로 더욱 더 깊이 끌고 들어간 여인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단지 형식적인 목례만 하고 바삐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방탕한 여인은 그를 멈춰 세우고 놀리듯이 말했습니다. "어거스틴, 이젠 저를 모르시겠어요? 보세요, 저라구요." 어거스틴은 할 수 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어거스틴은 그녀의 사악한 매력도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붙들어 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단호히 "하지만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닙니다!"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유월절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럼 어떻게 세상에서 탈출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입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특별은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자세를 갖추십시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갑작스런 해방령에 급히 애굽을 나오려고 미처 발효되지 못한 무교병과 또 미처 우려내지 못한 쓴 나물을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이 우리 영혼에게 얼마나 고난과 고통인가를 깨닫고 항상 근신해야 합니다.
2. 무교절이 있습니다.
민28:16-17에 “정월 십사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며 또 그 달 십오일부터는 절일이니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하셨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어떻게 다른가? 날짜로 보면 유월절은 정월 14일 하루이지만 무교절은 그 다음 날인 15일부터 한 주간 동안입니다. 그러니까 무교절은 유월절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지킨 후 계속하여 무교절을 지키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믿어 구원 받았어도 계속적인 성결을 향한 발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일간 지킨 것은 7이 완전수라는 점에서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해야 할 것을 시사합니다.
구라파에 사는 흰 담비는 털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흰 담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사냥꾼들은 흰 담비의 이러한 습성을 이용해 흰 담비를 잡는다고 합니다. 즉 흰 담비가 사는 굴 입구에 숯검정을 칠해 놓고 숲 속에서 놀고 있는 흰 담비를 굴속으로 모는 것입니다. 자기의 굴 입구에 다다른 흰 담비는 자신의 흰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잡혀서 죽으면 죽었지 비록 자기 집이지만 검정 묻은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목숨 바쳐 거룩하기를 바라십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럼 온전히 거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교절 지키는 법에 그 원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레23:7-8에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 제 칠 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첫 날도 마지막 날도 성회로만 모이지 노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무교절 지키는 법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억지로 죄를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죄를 이기려고만 하지 않아도 죄는 절반을 이기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성령의 은혜로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할 일이 있습니다. 레23:8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기 화제는 성령으로 드려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제사입니다. 그런데 7일 동안이니 전심으로 늘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는 일이요, 이것이 죄를 이기는 성결입니다. 초대교인들이 거룩해짐도 율법이 아니라 늘 예배하다였습니다. 늘 예배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불타는 화제를 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교절 절기 동안에 누룩이 집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무교절이 오면 이스라엘에는 대청소의 날이 됩니다. 티끌 하나 존재하지 않게 청소를 하는 것은 누룩이 조금이라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누룩은 인간생각이나 이단이나 죄악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진리의 것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5:7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우리 속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사울처럼 내게 아까운 것은 놔두고 주변 것만 회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무교절에는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하나님을 풍성하게 섬기라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퇴보하지 않는 영적생활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최선의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는 말이 있듯이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함이 거룩한 생활의 비결입니다. 참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3. 초실절을 지켜야 합니다.
레23:9-10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초실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초실절은 무교절 속에 들어 있는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이 날 초실을 가지고 성막으로 가서 하나님께 번제와 소제를 드립니다. 이스라엘에서 맨 먼저 수확되는 것은 보리이므로 초실절에는 보리의 첫 것을 드립니다. 그런데 초실절에는 첫 열매만이 아니라 번제도 드려야 하고(레23:10-11), 소제도 드려야 하고, 전제도 드려야 합니다(레23:12). 이 열매를 드리기 전에는 자기 밭의 초실절에 드릴 곡식 외의 다른 곡식일지라도 결코 먼저 먹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구약 성도들의 신앙은 정성스러웠습니다. 우리도 그들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천안 호두과자 할머니 이야기 유명하지요? 62년 전 이 호두과자를 개발 천안의 명물로 만든 호두과자 할머니 심복순(82)씨가 “나는 다윗왕보다 행복합니다”는 책을 냈습니다. 책 제목을 이렇게 낸 이유를 물었더니 "다윗은 성전 짓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보잘 것 없는 제게 하나님의 성전을 일곱 군데나 세웠으니 다윗왕보다 행복한 게 아닙니까?" 하더랍니다. 책에는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써 있습니다. 신혼 초부터 계속된 남편의 바람기, 아들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한꺼번에 잃은 재산, 사랑하는 둘째의 죽음, 그는 이 가운데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호두과자를 구웠습니다. 그의 택호가 초실이랍니다. 대개 친정 동네 이름으로 호를 짓지만 그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성경에서 택호를 지어 초실댁입니다. 즉 처음 난 열매처럼 하나님을 정성스럽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일어나는 시간은 새벽 3시 새벽 첫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루의 첫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함입니다. 그 뿐 아니라 십일조 외에 하나님을 위해서 따로 정성을 모았습니다. 한때 천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로 꼽혔지만 하나님께서 그 물질을 쓰지 아니하시고 가난에서 출발한 정성어린 물질을 원하셨던지 빈털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호두과자 판돈을 하나님 몫으로 매일 저축했고 그 돈으로 하나씩 필요한 지역에 교회를 세웠는데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교회를 7개를 세웠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초실 할머니의 그 정성은 이스라엘의 초실절의 정성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의 부활의 모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도 첫 열매가 되신다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약1:18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만이 초실이요, 장차 모든 성도는 천국에서 온전히 무르익겠지만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에서 미리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그도 역시 초실로 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초실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우리가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4. 오순절입니다.
신16:9에 “칠 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그랬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에서 7주간 지난 안식 후 첫 날입니다. 그래서 칠칠은 49에 하나 더하니 50 그래서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하며 이 때는 이미 수확된 보리와 그리고 밀 수확이 끝나는 때이므로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출23:16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하신 말씀도 이 때를 가리킵니다. 역사적으로 더듬어 보면 이 때가 바로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산에 도착한 때입니다. 그래서 율법수여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오순절은 현실적으로 사랑을 베풀던 때이기도 합니다. 레23:22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오순절은 장차 성령강림절을 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행2:1-4에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실 때 성도들의 신앙이 익어 수확하게 되고, 성령이 임하실 때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수여되고, 성령이 임하실 때 현실적인 참 사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오순절의 역사가 재현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알곡 같은 신앙을 갖게 되고 하나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성령의 운동은 지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5. 나팔절입니다.
레23:23-25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이 말씀이 나팔절의 말씀입니다.
7월 1일이 나팔절입니다. 구약 성도들은 이 날을 안식일로 지키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 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또 다른 새해 정초이기도 합니다. 이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팔을 불었고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시89:15)고 외쳤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나팔을 불었던 때는 회중과 족장들을 회집할 때입니다(민10:3-4). 지파들이 행진할 때입니다(민10:5-6). 전쟁을 알릴 때입니다(민10:9). 기쁨의 제사의 때입니다(민10:10). 민10:10에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셨습니다. 이 날에 불었던 나팔은 속전으로 바친 은으로 만든 은나팔이었습니다(민3:40-41). 번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나팔을 분 것은 죄사함을 알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나팔절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번제와 속죄제와 소제를 드렸습니다. 지난해의 모든 죄를 씻고 새로운 갱신으로 나가겠다는 회개의 의미였습니다.
나팔절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자기 택하신 백성들을 사방에서 모으시는 것을 예표함입니다. 마24:31에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팔 소리는 장차 재림의 날에도 울리겠지만 지금도 예수 복음전도를 통하여 울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를 통하여 예수님을 통한 죄사함을 알리고 화평을 선포하며 이 복음의 나팔을 불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모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팔절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진정으로 오순절을 경험한 사람은 나팔절을 지킬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힘 얻어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6. 대 속죄일이 있습니다.
레16:29-30에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나팔절이 9일 지나면 7월 10일이 바로 대 속죄일입니다. 속죄일을 히브리어도 “욤 키프림”인데 이는 ‘화목제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날도 속죄제를 드려 속죄함을 받지만 이 날이 다른 날과 다른 것은 죄 씻음 받은 것을 선포했다는 점입니다.
이 날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사셀 염소입니다. 두 마리의 염소가 드려지는데 한 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번제단에 피의 제사로 드려지고, 다른 한 마리는 대제사장이 안수하여 백성들의 죄를 전가시킨 후에 광야에다 내어버렸습니다. 이 염소를 아사셀 염소라고 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지시고 비참하게 버림을 당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두 마리가 다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각각 다른 면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날은 백성은 물론 객까지도 모두 지켰습니다(레16:29).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사셀 염소를 되도록 멀리 버렸습니다. 이것은 우리 죄를 멀리 옮기신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스스로 괴롭게 했습니다. 즉 참회하고 통회 자복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우리가 영적으로 장성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을 기뻐하는 참 성도여야 합니다.
성경은 이 날을 큰 인식일이라고 부르는데(에16:31) 진정한 안식은 속죄함을 통해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추시고 겸비하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 주시는 영육 간의 큰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회개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오늘의 속죄일의 진정한 의미가 됩니다.
7. 초막절입니다.
레23:42-43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스라엘의 7월은 절기의 계절입니다. 7월 1일은 나팔절, 7월 10일은 속죄일, 7월 15일부터 한 주간은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 다음날 8일도 성회로 모였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을 짓고 살던 것을 회상하는 때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한 해 모든 농사를 끝내고 저장하는 때라고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에게 즐거운 최대의 감사절입니다. 레23:39-40에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했습니다. 초막절은 백성들이 공수로 나오지 않고 예물을 드렸고 이 기간에 제사장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속한 성도들의 구원의 완성을 기뻐하는 예표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그 때는 지난 날 지상에 살 때를 기념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어떤 역경이 와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기뻐하며 감사할 것을 교훈합니다.
1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 節期 (feasts : 공식적인 예배의 기회가 되는 유대교의 신성한 축제.) ① 유월절 혹은 무교절 : 율법이 주어지기 전 애굽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니산월 14일에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레 23 : 5-8).모든 유대인 성인들의 참석이 요구되었다(신 16 : 16). ② 오순절 혹은 칠칠절 : 유월절 이후 50일째에 기념되었다. 이 절기는 하루 동안이며, 새곡식으로 만든 빵 두 개를 하나님께 드리며 밀 추수가 끝난 것을 감사하였다(신 16 : 9-12 ; 레 23 : 15). ③ 나팔절 혹은 신월절(New Moon) : 7월(태양력으로 10월) 첫째날에 열리며, 이때 유대인들의 1년이 시작되었다(레 23 : 23). ④ 속죄일 : 나팔절 다음 열흘 후로, 국가적인 참회와 통곡의 날이며, 대제사장이 백성 전체의 죄를 고하고 지성소에서 피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백성의 죄를 속죄받는 날이었다(레 23 : 26-32). ⑤ 장막절 : 초막절, 수장절 율법에 기록된 마지막 절기였다. 속죄일 5일후에 시작하여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레 23 :34 ; 신 16 : 13). 광야에서 방랑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을 기념했다. ⑥ 등화제(Feast of Lights) 혹은 수전절(요 10 : 23) 마카베오의 지도 아래 성전을 청결케 한 것에서 유래했는데, 기슬래월(12월) 25일에 시작하여 8일 동안 계속되었다. ⑦ 부림절 : 하만의 간계로부터 에스더가 유대인들을 구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에 9 : 1-10). . |
2 기독교에서 지키는 절기
1. 대강절(待降節)
성탄절로부터 4주 전부터 지키는 절기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2.성탄절(聖誕節
12월 25일이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탄생하심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절기입니다.
3. 사순절(四旬節)
부활주일에서 주일을 뺀 40일 전부터 지키는 절기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회상하고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4. 부활절(復活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절기입니다. 춘분 후 만월이 지난 첫 번째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킵니다.
5. 성령강림절(聖靈降臨節)
원래 이스라엘의 오순절로서 초대교회에 성령이 강림함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6. 맥추감사절(麥秋感謝節)
보리를 수확한 후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의 맥추절에 유래하고 있습니다.
7.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일년 동안의 수확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로서 근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초막절에 유래하고 있습니다. 주로 11월 셋째 주일에 지키지만 교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절기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7가지 절기를 지키고 있다. 이 절기는 그들의 농사와도 관련이 되어 있지만, 구속적 의미로 보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그리고 천년왕국과 병렬지어 볼 수 있다. 한번 유대 절기들의 의미를 짚어 본다. (모두 옮긴 내용이며, 회색 글자는 Daymond R. Duck의 계시록 주석서에서 따온 것임.)
1. 유월절(Passover, 레 23:5)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여러 절기 중 가장 큰 절기로 우리 달력으로는 3월 하순 또는 4월 초순에 해당합니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 받아 나온 역사적 사건과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으로 인하여 바로 왕은 마침내 대인들이 애굽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게 되는데 유월절은 이 재앙 중에 세워진 명절입니다. 이 절기는 그들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며 또 유대인들을 구원한 것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이 유월절의 주제는 신약성서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흠 없는 피는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 : 12)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인 출애굽 사건이 한 민족의 체험에 한정된 반면 예수님을 통한 출애굽은 이제 세계 모든 민족에게 적용됩니다. 누구든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것처럼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자가 될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이 십자가의 진리 속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2. 무교절(Feast of Unleavend Bread, 레 23:6-7) [예수께서는 무교절에 무덤 속에 계셨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일 동안 지켜지는 절기로서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진중에 일체 누룩을 가지고 있으면 안되었고 이 규례는 철저히 지켜야만 했습니다. 만일 무교병을 먹지 않고 누룩이 든 유교병을 먹게 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은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 이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졌으니 곧 완전 축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지니라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칠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출애굽기 12: 17~19)
이때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행하는 의식으로서 죄의 모형인 누룩을 제거하고 이 절기를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입니다.
무교절과 무교병에 관한 성경 말씀은 모두가 오직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는 자리에서 누룩 없는 떡을 자신의 몸이라고 부르셨고 포도주를 가리키면서 자신의 보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죄 없으신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말씀대로 행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맥추절(Feast of Firstfruit, 초곡절 레 23:9-14) [예수께서는 맥추절에 부활하셨다.]
맥추절(초곡절)은 무교절이 들어있는 그 주일의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입니다. 그 날 이스라엘의 농부들은 수확한 봄보리의 첫 이삭 한 단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며 제사장은 그 단을 여호와 앞에서 흔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 (레위기 23 ; 10~14)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이 무교절 첫 주일이었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대한 메시지로, 바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린도전서 15 : 22~23) 라고 풀이했습니다. 우리의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특권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4. 칠칠절(Pentecost, 오순절 레 23:15-22) [교회는 오순절에 시작되었다.]
오순절은 유대인의 3대 명절(유월절?오순절?초막절)중의 하나로 초곡절로부터 50일 후이며 우리의 달력으로는 5월 하순이나 6월 초순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 땅에서의 곡식 추수는 칠 주간 계속되었습니다. 즉 유월절동안의 보리 추수로 시작해서 오순절의 밀 추수로 끝났습니다. 그 곡식 단을 드리는 것은 안식일 다음날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 날을 첫 날로 계산하여 그 명절이 제 50일에 거행되었습니다. 이 명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로 묘사되었습니다(민수기 28:26). 왜냐하면 이 절기는 그 백성이 첫 열매와 끝마무리를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하는 때를 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절기에는 안식일처럼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쉬었으며 성회로 선포되었습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위기23 : 15, 16, 21)
신약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활하신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떠나실 때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분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뒤 오순절 절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신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 : 1~4)
이 성령 강림의 기적이 지닌 보다 더 깊은 의미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절기가 현실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성령은 아무 날에나 강림하신 것이 아니고 추수시기의 초기에 맞이하는 오순절에 오셨습니다. 이날은 현대 교회의 시작이며,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의 순간이었습니다.
5. 나팔절(Feast of Trumpets, 레 23:23-25) [교회는 나팔절에 휴거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나팔절은 7월 1일 우리 달력으로는 8월 하순이나 9월 초순에 해당합니다. 이 날은 유대인의 정규 달력에 첫 날 즉 New Year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레위기 23 : 23~25)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수양의 뿔로 만든 뿔나팔 소리를 닫고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순절 이후 약 3개월 후에 나팔절을 맞이하는데 그들은 예루살렘 순례의 준비합니다. 그 때 제사장은 성전에 위치한 언덕의 남서쪽 정상에 올라서서 나팔을 불어 절기에 참예하도록 백성을 불러모았습니다. 나팔절에 부는 나팔이 뜻하는 것은 모이는 것과 석방과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려 주는 신호인 것입니다. 또한 새날의 선포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6.(대)속죄절(Day of Atonement, 레 23:26-32) [주꼐서 재림하심으로 대환난이 끝나는 날이 속죄절일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속죄절은 나팔절이 지난 뒤 열흘만에 맞이하게 되는 절기로 7월 10일에 개최되는 유대교의 주요한 연례 금식일 입니다. 지난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관계가 계속 유지되기 위한 이 제사는 속죄 염소의 피를 뿌림으로 민족, 제사장 직, 성소를 죄로부터 정결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날은 속죄제가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새달에) 베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완전히 속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지켜졌습니다. 즉 일 년 동안에 걸쳐 드려지는 속죄제로는 모든 죄가 사해질 수 없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날(속죄일)을 정해서 모든 죄에 대한 속죄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큰 안식일'로 표현되었는데 (레 16 :23, 31, 32) 문자적으로는 ‘안식일 중의 안식일' 또는 어떠한 노동도 허용되지 않는 철저히 지켜져야 할 안식일을 뜻합니다.
성막에서 행해지는 속죄절 의식 전체에 걸쳐 대제사장이 중심 인물이었기에 때문에 그는 이 절기 전에 7일간을 성전에서 거주하였습니다. 목욕과(레 16 : 4) 아침에 번제를 바친 후 (민 29 :8~11) 그는 흰 세마포를 걸치고 (레 16 : 4)제사를 준비합니다. 이 제사들은 ①제사장들을 위한 속죄제 ②백성들을 위한 속죄제 ③속제 염소 제사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수송아지의 피(속죄제물)와 향불을 가지고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장들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 피를 뿌렸습니다.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은 두 마리 중 제비 뽑힌 한 마리의 염소였습니다. 이 염소는 죽여져서 그 피는 증거궤 위에 일곱 번 뿌려졌습니다. 첫 번째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산 염소는 '아사셀(내어놓음)을 위한 것'으로 지명되었는데(레위기 16:8, 10, 26) 대제사장은 이 염소에 안수하여 백성의 죄를 고백하였고 특별히 지명된 사람에게 맡겨 사람이 살지 않는 곳 광야로 내 보내어 졌습니다. 이 일을 끝낸 후 대제사장은 그 옷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잡은 수송아지와 염소의 기름을 불사르면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나머지는 장막 밖으로 끌어내어 태워 버렸습니다.
해마다 대 속죄일이 반복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궁극적인 속죄가 아직도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 한번으로 세상을 위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의 제물들은 단지 일시적이고 외적인 의식상의 정결을 가져온 것에 불과했지만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은 영혼과 양심을 내적으로 정결하게 한 것입니다.
7.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 장막절, 레 23:33-44) [천년왕국이 초막절에 시작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대 속죄일 5일후에 7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신명기 16 :13~15)
초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세 가지 역사적 큰 절기 중 하나인데 수장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절기는 가을철에 7일간 지켜졌으며 이 때 사람들은 집 밖 초막에 거하며 마음껏 즐기고 율법 낭독하는 것을 들었으며 수송아지, 수양, 어린양 등 다수의 제물을 날마다 드렸습니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 장막에 거하였음을 기억하고 초막에서 거합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