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은 부활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12장은 은사장, 13장은 사랑장, 14장은 다시 은사장, 15장은 부활장, 이렇게 고린도전서 12~15장은 각 장마다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3~8절을 보겠습니다.
3 내가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7 그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태어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성경대로’ 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복음서는 이 서신보다 늦게 쓰여졌으니까 당연히 아니고 구약성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성서 기자들은 예수님을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구약성서와 연계해서 예언의 성취로 해석했다는 말씀은 복음서를 강해할 때 충분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의 기록과는 다른 내용이 많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맨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말하지만 복음서는 한 결 같이 여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신에게도 나타났다고 하지만 복음서에 바울이라는 이름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자신에게 나타났다는 것이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가운데 나타났다는 뜻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500명이 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기록은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언급한 다음에 바울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해 말합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고 자신의 선교도 헛되고 고린도 교우들의 믿음도 헛될 것이랍니다. 22~24절을 보겠습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24 그 다음에는 마지막이 올 것인데,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권위와 권력을 폐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언급했던 원죄론의 신학적 근거가 되는 논리를 바울이 여기서도 펼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이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조건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바울은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없고 앞 문장과의 연결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원죄론에 의하면, 아담의 죄는 개인에게 선택권이 없이 유전적으로 인류 전체에게 미쳤는데, 인류의 구원은 전체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만 한정적으로 미칩니다. 논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42~44절을 보겠습니다.
42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44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그리스의 도시인 고린도에서는 육체의 부활은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문화에서는 육은 저급한 것이고 영은 고차원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육은 죽으면 그냥 썩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스 철학에 능통한 바울도 이런 전제를 수용합니다. 그래서 부활하는 몸은 본래의 물질적인 몸이 아니라 spiritual body, 즉 신령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50~52절을 보겠습니다.
50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5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것인데,
52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우리가’ 즉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이 모두 변화할 것이랍니다. 먼저 죽은 교인들도 썩지 않는 몸으로 살아날 것이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세대에 예수께서 재림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이미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천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기록, 나팔소리가 울린다는 기록,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변화된다는 기록,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는 성서의 기록들이 미래의 어느 날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헛된 희망을 교인들에게 심어주는 교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진실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의심 없이 믿었겠지만, 이천 년 전의 세계관에서 살아온 어쩔 수 없는 그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서에 기록되었으니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면 그런 원시적인 신앙은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