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변씨(密陽卞氏)
우리나라 변씨(卞氏)는 당나라에서 예부상서를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 2) 왕명을 받들어 8학사의 한 사람으로‘효경(孝經)’을 가지고 신라에 온 것이 시작이다.
그 뒤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시중으로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진 변정실(卞庭實)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초계(草溪)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시조 변정실의 아들 변광(卞光:장파), 변요(卞耀:중파), 변휘(卞輝:계파) 3형제를 기점으로 크게 3갈래로 갈라졌다. 그 후 시조의 둘째 아들인 변요의 손자 변고적(卞高迪)이 밀양에 살면서 밀양변씨로 분적했다.
밀양은 경남 밀양시의 지명이다. 밀양변씨는 고려 때 국자진사를 역임하고 밀양에서 대대로 살아온 변고적을 1세로 한다. 밀양변씨는 초계변씨와 대종회를 같이하고 있다.
밀양변씨의 대표적 인물은 변계량(卞季良)이다. 그는 조선 개국 후 예조판서, 참찬 등을 지내고, 태종 때 대제학에 올랐으며‘태조실록’을 편찬했다. 그의 아버지 변옥란(卞玉蘭)은 고려 말 각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조선 개국 초에 중추원검교판사가 되었다.
조선 전기 우부승지,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지낸 변중량(卞仲良), 성종 때 무신 변종인(卞宗仁), 숙종 때 화가 변상벽(卞相璧), 철종 때 시문으로 이름난 변종운(卞鍾運) 등도 유명하다.
밀양변씨는 조선시대에 모두 19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인구는 2000년 현재 16,911명이 있다. 한편 변씨(卞氏)는 총 20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78,685명이다. 이 가운데 초계변씨가 49,506명으로 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