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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기황후가 여러 문제점들(역사왜곡)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충혜왕입니다. 기황후 시기에 고려왕은 분명히 충혜왕입니다.
이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충혜왕을 가상인물인 왕유로
이름을 바꾼다고해서 과연 역사왜곡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충혜왕과 왕유는 서로 다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려 27대왕 충숙왕은 공원왕후 홍씨에게서 2남을 얻었습니다.
두 아들은 모두 왕이 됩니다. 28대 충혜왕과 31대 공민왕이죠.
둘 다 정상은 아니었어요. 고려 제31대 공민왕의 형인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최악의 왕,,'충혜왕' 아버지의 후궁들과 장인의 후처를 강간,
신하들과 내시들의 부인들 수없이 강간,
욕정이 솟구치면 길을 가다가 백성들의 아녀자들을 강간,
제 아비(충숙왕)의 부인인 경화공주를 팔다리 묶고 강간하고,
자기 아버지의 또다른 부인인 수빈권씨를 강간하여서 자살하게 만듭니다.
내전에서 후궁들(100명이 넘는다고 한다)과 아주 더럽고 추잡한 난교 파티,
많은 사람들을 떨게 만들었습니다.
고려 백성들을 심하게 수탈하고 수많은 악행을 일삼은 일생동안 오직
'강간 여색 향락 쾌락과 악행'만을 일삼은 희대의 악인이자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강간마, 조선시대 최고의 폭군인 연산군도 충혜왕에 비하면 .....
그런데 기황후에서 왕유는 너무 멋진 고려의 폐위왕으로 나옵니다.
충숙왕은 건강이 좋지 않아 1315년에 왕위를 장남에게 물려줍니다.
이때 장남의 나이는 16세. 네, 혈기왕성한 나이였죠.
그때 충혜왕은 원나라에 있었습니다.
왕도 되고 했으니 왕비도 들여야죠.
원나라 황족의 딸과 결혼합니다. 덕령공주(德寧公主)라고 합니다.
원나라에서는 고려에 가서 왕을 하라고 합니다.
충혜왕은 잔소리 해댈 것 같은 아버지 충숙왕의 신하들을 모두 파직시켜버립니다.
호화찬란한 옷을 입고 설치니 충숙왕이 호되게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그랬더니 젊은 왕은 엉엉 울면서 물러났습니다. (충혜왕은 고려 개경으로 가고
충숙왕은 원나라 대도로 가다가 중간에서 만납니다.)
고려에온 충혜왕은 정사는 안중에 없고, 날마다 사냥, 수박희(무술 겨루기) 구경,
격구 구경, 거기에 물놀이 구경을 즐깁니다.
아부꾼들을 출세시키고 충신들의 말은 듣지 않죠.
나라의 국고는 텅 비었고, 채우려니 백성들을 탈탈 털어내게 됩니다.
원성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죠. 왕 노릇 참 잘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자 원나라에서는 저것이 왕 노릇할 재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충숙왕에게 다시 왕을 하라고 하고 충혜왕은 소환해버립니다.
이때 폐위왕이 된 겁니다.
원나라에 잡혀온 충혜왕은 당분간 납작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주겠습니까? 위구르 족 친구들과 질펀하게 놀며
위구르족 여인에게 푹 빠져서 두문불출하며 지내서 발피(撥皮)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발피는 건달이라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드디어 충숙왕이 죽습니다. 1339년 3월의 일입니다.
충혜왕은 이제 거리낄게 없어졌어요.
여자를 밝히다가 결국 큰 사고를 칩니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여자를 강간했는데...
이 여자는 경화공주. 원나라 귀족 출신이었던 거죠.
1330년에서 1332년 사이에 충숙왕에게 시집을 왔으니 이때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을 겁니다.
경화공주는 재상 조적(曹頔)을 불러서 정황을 고합니다.
사실 이때까지 충혜왕은 정식으로 고려왕이 된 게 아니었습니다.
아직 원나라의 승인이 안 떨어진 상태였지요.
재상 조적은 심양왕 왕고를 고려왕으로 삼고자 하는 심양파에 속했습니다.
조적은 충혜왕이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것을 알고 쾌재를 부릅니다.
이제 도덕적 우위를 점하였으니 충혜왕을 몰아내리라 마음먹었지요.
조적은 수하들을 거느리고 충혜왕에게 나아갔으나 충혜왕의 악소배들에게 막혀
궁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충혜왕은 가만 있을 수 없었지요.
기병 20여 명을 거느리고 조적을 역추격했죠.
조적은 궁궐문을 닫고 버텼습니다.
조적은 옥새를 옮겨놓고 일당들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원나라에서 충혜왕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은 헛소문이었으나 당황한 조적 일당은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조적은 다시 일천여 군사를 모아 한밤중에 궁궐을 습격했습니다.
하지만 충혜왕은 사냥으로 단련된 궁술의 달인.
심복 몇과 기병 두어 명을 데리고 나왔는데도 활을 쏘아 날리니 백발백중.
조적 일당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조적 일당도 달아나면서 활을 쏘아댔는데,
여기에 충혜왕도 한 팔을 맞고 맙니다.
하지만 충혜왕은 물러나지 않고 밀어붙였고 다시 일패도지한 조적은
영안궁으로 다시 달아납니다. 이미 틀린 것을 깨달은 조적은 포기했고
충혜왕 일행은 달려가 조적을 고슴도치로 만들어버리고
목을 잘라 다리에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경화공주는 연금시켜버렸습니다. 충혜왕은 조적의 난을 계기로
국내에 남아있던 심양파를 박멸했습니다. 그리고 시끄러운 경화공주도
유폐했으니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원나라에서 사신이 온 것입니다.
두린은 김지겸(金之謙)에게 권관국사(權管國事)의 자리를 담당하게 합니다.
말하자면 임시 국왕으로 앉힌 거죠.
그리고 충혜왕과 그 일당은 굴비두름으로 체포.
모조리 원나라로 압송합니다. 이것이 두번째 소환입니다.
전권은 경화공주 손에 들어갑니다. 경화공주는 김지경에게
권정동성(權征東省)의 지위를 내려 정동행성도 맡게 하지요.
한겨울에 원나라에 잡혀간 충혜왕은 해가 바뀌었을 때 옥살이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직하기로 소문난 이조년과 당시 원나라 재상인 톡토가 충혜왕을
옹호했기에 충혜왕은 다시 고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본래 충혜왕은 무술에도 재능이 있고, 머리도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재산 관리도 아주 철저히 했습니다. 원나라에서는 머리 좋은 놈이
나쁜 쪽으로만 머리를 쓴다고 할 정도였죠.
물건들을 신하들에게 내주고 원나라에 가서 팔아오라고도 하였답니다.
충혜왕은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 심복들도 거리낌없이 해치웠는데,
이번에는 최원(崔遠)이라는 친구가 걸렸습니다.
최원이 모처에 요염한 처녀가 있다고 이야기해서 찾아갔는데
노파가 나와서 자기 집에는 여자가 없다고 하네요?
성질이 난 충혜왕은 최원과 노파를 둘 다 죽여버렸습니다.
이때 원나라에서 사신이 옵니다.
고용보라는 인물이 왔습니다.
왕의 폭정에 시달리다가 원나라에 간 인간들이 왕을 폐위시켜달라고
끊임없이 졸랐다고 합니다.
고용보는 대사면령을 전달하는 자리에 왕이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소가 교외인지라 충혜왕은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용보는 이렇게 말하죠.
"황제 폐하께서 왕이 불경하다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황제 폐하의 명을
반포하는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그렇게 여길 것입니다."
이 말에 어쩔 수 없이 백관을 거느리고 교외로 나가게 됩니다.
고용보 일행은 불과 여덟 명. 뭔 일이 생기랴 했겠죠.
그러나 왕이 조서를 듣기 위해 다가오자 고용보 곁의 두 사람이 즉각
왕을 걷어차고 바로 제압해버립니다.
이미 말했지만 충혜왕도 한가락 하는 인물이었으나
이 기습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고용보는 이미 각오를 단단히 하고 무술의 고수들로 일행을 꾸몄던 것 같습니다.
국권은 기황후의 오라비인 기철 일당에게 넘어가고 충혜왕의 간신들도 잡아넣습니다.
10월 21일 신궁이 완성되고.
10월 22일 얼른 이사를 했고,
10월 25일 백관이 신궁 완성을 축하.
그런데... 아직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한
10월 30일 원 사신 고용보 도착. 고용보 접대 어쩌고 하다가...
11월 22일 체포되어 버렸습니다.
원나라에 끌려온 충혜왕에게 원나라 황제 순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임금이 되어 백성들을 극심하게 헐벗겼으니 네 피를 천하의 모든
개에게 먹여도 부족할 것이다. 허나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너를 게양현(揭陽縣)에 유배하니 나를 원망하지 말고 떠나도록 하라."
게양현은 지금의 광동성에 있는 곳입니다.
신하 중에 따라가겠다는 인간은 하나도 없고,
원자가 보낸 옷 한 벌만 가지고 충혜왕은 유배지로 떠났습니다.
충혜왕은 게양현으로 가던 중에 1344년 1월 15일
악양현(호남성)에서 죽고 맙니다.
충혜왕이 갑자기 죽을만한 이유가 없으니 독살당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귤을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충혜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고려에 전해지자 전국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제 갱생의 날이 왔다고 좋아했다죠.
이때 충혜왕의 원자는 불과 8살이었는데,
고용보가 안고 들어가 순제를 만나게 했습니다. 순제가 물었습니다.
"너는 아비를 닮겠느냐, 어미를 닮겠느냐?"
이런 때 대답을 잘해야 하죠. "어머니를 닮겠습니다."
이 대답으로 원자의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다음 고려왕인 충목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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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런 못된 인간이 우리 나라의 과거 왕 이었다니............
성경 말씀에 악인이 주권을 잡으면 백성들이 슬퍼하고 의인이 주권을 잡으면 백성이 춤을 춘다는 애기가 떠오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