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때 돌아가신 김오랑중령 참배
35년전 79년 12월 12일에 일어난 군사반란 사태속에서
돌아가신 김오랑중령과 정선엽 병장과 박윤관 상병 그리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에 대해 추모참배을 할 예정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은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모이는 장소: 동작구 현충원 정문
날짜 시간: 12월 12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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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 개요
♣ 12.12 사태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12.12 군사반란의 주체세력인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전신은 `五星會`라고 하는 데 이 조직은 육사 11기 생도시절인 1954년 봄경 `松竹會`(38선 이북출신 주류 모임)에 대응하기 위하여 결성된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영남 출신자들의 단순 사조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관 후 5.16을 맞은 五星會는 `七星會`로 탈바꿈을 하여 하나회의 모체가 되고 말았다고 역사학자들은 평하고 있다.
이 七星會의 리더인 전두환 대위는 5.16당시 육사 생도들에 의한 지지데모를 주도한 공로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격려(회식 및 `一心` 휘호등)를 받으므로서 군내에 친위세력성 사조직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당연히 박정희 정권의 비호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0.26으로 그의 중심 기반이던 박정권이 무너지고 곧 있은 11월 인사이동때
하 나회 맴버들의 제외와 합수부장의 보임을 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도가 지나친 월권행위로 말미암은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 육군 대장과의 잦은 마찰로 육군 수뇌부와 골이 깊은 불신감이 팽배해지자 정승화 총장이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전두환 소장의 보직 변경 문제를 건의 했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고 이에 하나회의 정치군인세력은 입지보존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급기야는 보다 강한 반항심으로 심화되면서 저항심으로 작용하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회 세력은 치밀한 계획끝에 12.12군사반란을 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1.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의 강제연행
실 질적 육군 정식계통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정총장의 체포를 위하여 반란군측은 사전에 이학봉 중령(육사 18기 `하나회` 합수부 수사 제1국장)이 수일간 정총장의 동정을 살핀 후 3가지의 안(총장실에서 체포,이동중 노상에서 체포, 총장공관에서 체포)을 심의 한 결과 3안을 채택하여 12.12일에 총장공관에 우경윤 대령,성환옥 대령, 허삼수 대령 등과 함께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3헌병대 1개중대병력을 불법으로 출동시켜 총장공관의 경비 헌병과 공관부 외곽 및 정문을 경비하는 해병경비대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이 과정에서 총기를 발사하면서 정총장을 강제연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반란군측 보안사 합수부측 김대균,한길성 소령과 박원철 원사등 3명은 총장부관실에 있는 이재천 총장수행부관과 김인선 총장경호장교 등에게 불법적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중상을 입히는 등 아군에게 총기를 사용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2.진압군 측 주요 지휘관의 격리작전
반란군의 전두환 소장은 반란에 장애가 되는 진압군 측 지휘관들을 예하 부대와 격리시키기
위 하여 거사 당일인 12.12 저녁 6시30분까지 수도권 주요 대전복부대 핵심 지휘관인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육군소장과 특전사령관인 정병주 육군소장, 김진기 육본 헌병감등을 전두환의 자택인 연희동으로 저녁식사 초대로 유인하였으나 식사도중 정총장의 납치사건이 전해지면서 격리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3.본문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이끄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적으로 강제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군 내부의 무력충돌.
12.12사태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건을 계기로 정승화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취임하면서
수 도권 지역의 주요 군 지휘관을 교체하는 등 내부개혁이 진행되면서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군 내부에서 부각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를 감행하여 불법적으로 군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12월 12일 저녁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합수부 소속의 허삼수·우경윤 대령에게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강제연행을 지시했다. 한국정치사에서 5·16이후 또 한 번의 군사쿠데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허삼수 대령은 합동수사본부 수사 제2국장 우경윤 등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저녁 6시 50분 경 무장한 제33헌병대 병력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하였다.
이로부터 약 20분이 지난 7시 10분경 참모총장 공관으로 들어가서 총으로 위협하는 가운데
정 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여 강제로 끌고 나와 저녁 7시 30분경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하였다. 연행과정에서 참모총장 부관이 전화로 외부와의 연락을 시도하자 합수부측 보안사 수사관들이 권총을 발사해 양측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신군부는 큰 저항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함으로써 군사쿠데타에 성공했다.
같은 시간에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저녁 9시 30분경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 등과 함께 집단적으로 대통령을 찾아가 재차 정승화 총장의 체포 및 연행에 대한 재가를 강압적으로 요구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 대법원은 12월 13일 새벽 5시 10분경 신군부세력의 주장대로 재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승화 총장이 이미 체포되었고 또 신군부 세력이 군권을 장악한 이후 이루어진 것으로서 '사후승낙'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란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하고 있다.
12.12 사태 다음날 아침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해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관여했던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라는 짤막한 배경설명을 발표했지만 그 역시 신군부에 의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2.12사태를 통해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12월 13일 0시부터 새벽 6시 20분 사이에 육군본부·국방부·중앙청·경복궁 등 핵심 거점을 차례로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하에 두었다.
한편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하고 수도경비사령부에 모여있던
윤성민 참모차장과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문홍구 합동참모본부장 등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신군부 세력은 이듬해인 1980년 1월 20일자로 정승화 추종세력인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장태완 등을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 참모총장에게는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이 들과는 달리 12.12사태를 주도했던 신군부세력은 대부분 승승장구하여 권력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중장이 임명되었고 수도경비사령관에 노태우 소장, 특전사령관에 정호용 소장이 임명되었다. 그 외에도 황영시·김복동·유학성·유병현·박준병 등 신군부 세력은 군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함으로 긴 쿠데타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등장한 제5공화국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12.12사태의 진상은 그후 십여년간 밝혀지지 못한 채 권력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가 김영삼 정부 아래서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이 구속되어 사법적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12.12 군사쿠데타의 병력동원
12.12 군사쿠데타의 경우 당시 청와대 앞 경복궁에 주둔중이었던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30경비단에 전두환 장군과 그를 따르는 지휘관이 모두 모여 반란을 시작한 것입니다.
당 시 전두환 장군을 위시한 쿠데타군은 자기들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들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당시 동원된 병력은 특전사령부 예하 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 9사단 30연대와 1기갑 여단 그리고 30사단 90연대 등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1공수여단의 경우 육군본부 국방부 장악, 3공수여단은 특전사령부의 점령 및 사령관 체포, 9사단 30연대의 경우 중앙청 앞 장악(현 광화문 앞 일대), 30사단 90연대의 경우 고려대 진주 예비임무 수행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육군본부의 경우 동원병력이 마땅치 않았고 최후의 동원병력이던 9공수여단은 경인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들어오다가 다시 돌아가라는 철군명령으로 돌아가버려 병력 동원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 반란군 및 육군본부측 지휘관들의 계급, 직책, 출신학교 등등
1)쿠데타 반란 군부 세력
전두환- 육사 11기 소장 보안사령관(반란수괴, 대통령의 참모총장 연행 재가 서명 주도)
노태우-육사 11기 소장 9사단장(9사단 병력 불법동원)
유학성-정훈 1기 중장 국방부 군수차관보(대통령의 참모총장 연행 재가 서명 주도)
차규헌-육사 8기 중장 수도군단장(대통령의 참모총장 연행 재가 서명 주도)
황영시-육사 10기 중장 1군단장(대통령의 참모총장 연행 재가 서명 주도)
박준병-육사 12기 소장 20사단장(쿠데타 지휘부 통신연락 임무)
백운택-육사 11기 준장 71방위사단장(대통령의 참모총장 연행 재가 서명 주도)
박희도-육사 12기 준장 1공수여단장(1공수여단 불법 출동, 국방부, 육본 점령)
최세창-육사 13기 준장 3공수여단장(특전사 점령 및 특전사령관 체포지시)
장기오-육사 12기 준장 5공수여단장(반란 주요임무 종사)
이상규-육사 13기 준장 1기갑여단장(1기갑여단 불법출동)
박희모-갑종 소장 30사단장(1공수여단의 행주대교 통과 방조 및 90연대 병력 불법출동)
장세동-육사 16기 대령 수경사 30경비단장(쿠데타 지휘부 구성)
김진영-육사 17기 대령 수경사 33경비단장(쿠데타 지휘부 구성)
허화평-육사 17기 대령 보안사령관 비서실장(보안사에서 보안감찰 주도)
허삼수-육사 17기 대령 보안사 인사처장(육참총장 체포 주도)
권정달-육사 14기 대령 보안사 정보처장(보안사에서 보안감찰 주도)
정도영-육사 14기 대령 보안사 보안처장(보안사에서 보안감찰 주도)
이학봉-육사 18기 중령 보안사 수사1국장(육참총장 수사 주도)
우경윤-육사 13기 대령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육참총장 체포 주도)
조홍-육사 13기 대령 수경사 헌병단장(수도경비사령관 체포 지시)
신윤희-육사 18기 대령 수경사 헌병부단장(수도경비사령관 체포 주도 및 수경사 점령)
박종규-육사 24기 중령 3공수여단 15대대장(특전사령관 체포 및 비서실장 사살)
구창회-육사 17기 대령 9사단 참모장(9사단 30연대 병력 출동 지시)
2)육군본부 및 진압군 측
윤성민-육사 9기 중장 육참차장
장태완-육군종합학교 소장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육사 9기 소장 특전사령관
하소곤-육사 8기 소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천주원-육사 8기 소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안종훈-육사 9기 소장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김진기-육군종합학교 준장 육군본부 헌병감
윤흥기-갑종 준장 9공수여단장
유병현-육사 7기 대장 합동참모의장
문홍구-육사 8기 중장 함동참모본부장
이범진-육사 8기 소장 국방부 소속
김기택-갑종 준장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
함동환-감종 대령 수도경비사령부 야포단장
김오랑-육사 25기 소령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수택-육사 24기(?) 중령 수경사령관 비서실장
김광해-육사 24기(?) 중령 작전참모부장 비서실장
- 강제예편된 장교들
정승화-육사 5기 대장 육군참모총장
문홍구-육사 8기 중장 함동참모본부장
장태완-육군종합학교 소장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육사 9기 소장 특전사령관
김진기-갑종 준장 헌병감
윤흥기-갑종 준장 9공수여단장
하소곤-육사 8기 소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이후 96명의 장관급 장교 들이 대대적으로 전역하게 됩니다.
- 사망 및 부상자들
1)사망
김오랑-육사 25기 소령 특전사령관 비서실장(특전사령관 체포시 저항하다가 사살됨)
정선엽-병장 국방부 헌병대(1공수여단의 국방부 침탈시 벙커에서 방어 중 사살됨)
박윤관-일병 33헌병대(육참총장 체포 후 진압차 출동한 해병대 경비병력과 총격전 중 사살됨)
2)부상
정병주-육사 9기 소장 특전사령관(체포시에 왼팔에 관통상)
하소곤-육사 8기 소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수경사령관 체포작전 도중 저항하다 가슴 관통상)
김광해-육사 24기(?) 중령 작전참모부장 비서실장(수경사령관 체포작전 도중 저항하다 가슴 관통상)
이재천-육사 26기(?) 소령 육참총장 부관(참모총장 불법 체포시 총격 당함)
김인선-육사 29기(?) 대위 육참총장 경호대장(참모총장 불법 체포시 총격 당함)
우경윤-육사 13기 대령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참모총장 체포 과정에서 33헌병대 병력의 오인사격으로 허리 관통상)
이외에도 33헌병대 병력이 총장공관 해병대 경비병력과 총격전시와 1공수 여단의 국방부 점령 작전 도중 국방부 청사 옥상의 수경사 발칸포소대의 집중사격시에 수십명의 총상 부상자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