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연재] 삶 24 (소풍)/묵향

[묵 향]

삶 24 (소풍)

차가운 겨울바람이 귓불을 아리게 한다.

앙상한 가지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윙윙 거리며 울어댄다.

춘천댐을 끼고 도는 낚시터 주변이 가을과 겨울엔 별스런 그림을 그리며 계절을 바꾸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촌구석이라 농협이 운영하는 미니마트가 있지만 진작 사야할 물건이 없는 것이 아쉽다.

집에서 유산균을 배양하여 먹기에 우유가 늘 상비되어야 하는데, 마침 우유가 떨어져 버렸다.춘천 시내까지 가려면

수월치 않은 거리라 좀처럼 나가지를 않는다.

어쩌랴...

어쩔 수 없이 차를 몰아 시내로 향하는데 그만 입이 딱 벌어질 광경이 눈앞에 전개된다.

높은 산 북쪽에 강을 끼고도는 도로가 한겨울엔 하루 종일 응달이 되기 일쑤다.

오전 9시 30분경인데도 그늘이 진 강변엔 마치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나뭇가지가 세어있다.

마땅히 차를 세울 곳이 없지만 상황이 이런지라 도로변에 바짝 붙이곤 비상등을 켜놓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급급하다.

환상적인 상고현상이 펼쳐져 손끝이 아린 줄도 모르고 영상을 담기에 바쁘다.

물에선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뭇가지마다 피어있는 눈꽃의 아름다움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환상 그 자체다.

자연현상이 빗어내는 영화 같은 아름다움에 그저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리저리 돌아치다가 차를 몰고는 시내로 향한다.

되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다시 시선을 돌리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이미 천국과 같은

세계는 사라지고 초라한 나무들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부랴부랴 눈 길을 접어들어 집으로 차를 몰아 온 후 카메라에 담긴 상고대의 모습을

확인을 하곤 컴퓨터에 다운을 받아서 재확인에 들어간다.

부지런히 이 모습 저 모습을 담아왔지만 어찌 쓸 만한 것이 몇 컷 되지 않는다.

...............

추억은 늘 그리움으로 변하여 마음의 갈피에 접어둔 사진들을 끄집어내게 한다.

따뜻한 난로 옆 쇼파에 반쯤 드러눕고 반쯤 앉은 어정쩡한 상태로 창밖을 바라본다.

칼바람이 몰아치지만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포근하기만 하다.

왜 일까

갑자기 <소풍>이 떠오르는 것일까

엄니 얼굴이 떠오르더니만 초등학교 때 갔던 가을소풍이 눈앞을 스친다.

대형 스크린에 흘러가는 영화처럼 뇌리에는 어린 시절의 영상이 펼쳐진다.

초등학교 4학년경의 어느 가을날

찬이슬이 누렇게 물든 벼 잎에 조롱조롱 매달려 아침햇살에 영롱한 구슬과 같고

코스모스 꽃이 신작로 양변에 환영인파가 박수를 치듯 바람에 손뼉을 쳐대는 멋진 날이다

운동장에 줄지어 선 학생들을 내려다보시며 교장선생님의 일장 훈시가 계신다.

“에...학상 여러분!”

으로 시작을 해서

“자연공부와 함께 즐거운 소풍이 되기를 바란다. 각 선생님들은 안전에 유의 하도록...”

으로 끝은 맺으며 조바심을 내는 아이들의 귀에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자! 1학년부터 선두에 선다. 출발!”

학교를 출발해서 논두렁길을 가로지르고 산모퉁이를 휘돌아서 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줄을 늘이며

마치 구물구물 구렁이가 기어가듯 흘러가는 길 위의 아이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하나씩 허리에 차고 어깨에 메곤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들이 봄날의 노랑나비와 같다.

밝고 천진하며 해맑은 童心이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과 같이 신선하다.

강원도 깡 촌의 초등학교라 봐야 전교생이 기껏해야 250명 정도지만 당시엔 상당한 학생 수였다.

그런 아이들이 소풍을 간다.

부자 집 아이는 김밥에 오렌지 주스를 곁들이지만 가난한 아이의 도시락 안에는 어쩌다 보이는 쌀알이 섞인 보리밥에

고추장을 싸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러나 소풍이란 말만 들어도 들뜨고 즐거워하는 동심의 속내를 어른들은 모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통례대로 치러가는 봄가을의 행사거니 할뿐 자신의 자식들이 소풍을 간다고 하면 돈 들어가는 것에 마음을 둘뿐

동심의 세계가 어떻게 그려지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저 허리 아프게 짓는 농사를 풍년으로 일구고 풍족하게 살기 위하여 구슬땀을 흘려대는 일상의 연속이기에

가난에 몸서리를 치는 집에서는 소풍이 달가울 리가 없기도 하다

징징대는 아이에게 도시락을 싸주어야 하는데 마땅히 다른 아이들과 같이 구색을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늦은 옥수수를 삶아서 몇 퉁을 가지고 오기도 하기에 그 아이는 자신의 도시락에 초라함을 느끼고는

어느 풀숲에 몸을 가리고는 혼자서 점심을 때우는 모습에

선생님의 눈에 띄어 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먹지만 불편한 모습의 그 아이가 애처롭다.

그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마음이다.

그렇게 각종 놀이가 끝나고 점심때가 오면 삼삼오오 둘러앉아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쳐 놓고는

입이 메어져라 먹어대는 아이들에게 이 날 만큼은 해방된 민족과 같이 기쁜 날이었다.

강이 흐르는 곳

그곳에 펼쳐진 넓은 백사장엔 그렇게 가을소풍을 나온 즐거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호랑이 같은 선생님을 비롯하여 화장(분) 냄새가 향기롭게 풍기는 여선생님에 이르기 까지

<소풍逍風>날엔 어린아이가 되어서 자연을 안고 도는 날이기도 하다.

뭐니 뭐니 해도 소풍의 꽃은 보물찾기가 아닌가.

  미리 숨겨놓은 상품권(쪽지)을 찾는 짜릿함이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다.

어떤 아이는 서 너 개를 찾는가하면 어떤 아이는 한 장도 찾지를 못하여 징징거리며 울고 있는 아이도 있기에

동행을 한 부모가 찾아내어 우는 아이에게 주기도 한다.

그 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랬듯이 시골학생들은 양철로 만든 필통에 연필을 넣고는

책보에 교과서와 노트 그리고 필통을 아울러 싸서는 여자아이는 허리에 차고 남자아이는 어깨에 메고는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필통에 있던 연필 촉이 부러지고 만다.

몽당연필을 침 발라서 쓰던 아이들은 소풍 가는 날 보물찾기에서 얻어지는 행운을 바라며 오매불망 소풍 가는 날만

기다리게 마련이다.

아버지가 풍족하게 사주지 못하는 학용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하여  모래사장 주위의 모든 돌들은 뒤집혀지고

고목나무에 뚫린 구멍도 찔레나무 넝쿨 아래도 아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날, 행여 보물을 찾지 못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연필 한 자루와 공책 한권씩을 골고루 나누어 주어서는 동심에 희망을 안기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그립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옆을 지나 메뚜기 푸득대는 논둑길을 건너서 피라미가 유영을 하는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물속으로 풍덩 빠진 어린동생의 울음을 달래려 등에 업고 오던 그 길이 이젠 신작로가 되어서 차들이 달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길은 소풍 길과 같지 않을까

교실 밖으로 꿈을 찾아 길 떠나는 아이들이 보물을 찾을 희망을 안고는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즐겁게 거니는 모습이

흡사 삶의 여정을 걷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이는 성공이란 깃발을 꽂고는 환희에 찬 기쁨을 누리고

어떤 이는 성공을 찾아 숨 가쁘게 뛰어야 하는 것이지만 많고 적음과 좋고 나쁨을

뒤섞어 가면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얻어서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는 삶이지 않은가.

소풍과 같은 삶...

소풍과 같은 인생살이...

풍요로운 가을들녘의 풍성함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마음엔 평화가 깃든다.

마음의 풍요...

그것은 가을들녘을 걷는 너그러움일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세월을 스치고 보내면서 물에 씻긴 몽돌처럼 동글동글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엔 덜렁 된장에 박아놓았던 무장아찌가 전부였지만

아버지가 슬쩍 가방에 넣어 주시던 노란 오렌지주스 덕분에 아이들의 선망이 되었고

어린 아들의 기를 살리기 위하여 안 씨 댁 가게에서 외상으로 사주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지금 이 시절 이 시대만 같았어도 아버지 어머니 손끝을 끌고는 소풍이라도 갔을 터인데...

이 곱고 아름다운 세상살이가 내겐 평화의 날들이지만 인생길 오후 녘이기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 곳이

아련하게 보일 것만 같다는 마음이다.

여름날의 오후 5시...

오후 8시 반이 되어야만 땅거미가 내려앉을 것이다

인생길을 걷는 여정엔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소풍 가는 날, 내가 꿈꾸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면 행복하리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 어느 날

世數를 늘리는 한해를 넘기며....묵향

*사진설명: 얼마 전 매섭게 몰아탁친 추위에 피어난 상고대의 모습이지요 ^^

  춘천호 부근의 고탄낚시터 주변의 모습이랍니 

[사비성]

몽당연필이란 단어...정겨웠습니다.
묵향님의 글에는 언제나 정겨움이 담겨있어서 읽고 또 읽게 됩니다.
함께 올려주신 사진도 귀하기만 하고...ㅎㅎ
그래요.오랜 세월 씻기고 깍이여 동글 동글 몽돌같은 삶을 살아보자구요.
뭐 바뿔것 있나요? 그져 그렇게 사는데 까지 사는 거지요.ㅎㅎㅎ

[묵 향]

사비성님 ^^
지난해에 주신 성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그 고마움의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새해가 이틀 남았습니디
건강 하시어 하시고자 하는 모든일을 이루시고
즐겁고 행복하여 다복함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