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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자의 말
예수님의 기도 - 연합, 하나됨을 위한 기도
연합의 울타리를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연합의 울타리를 허무는 작은 성향들과 그것을 막는 태도.
1. 단순한 오해와 온유한 대답
예) 르우벤, 시므온, 므낫세 반지파의 온유한 대답(수22:13-34)
[이스라엘의 두 지파 갓과 르우벤은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그들의 기업을 받았다. 유목민들에게 광활한 고원 지대와 길르앗과 바산의 풍부한 삼림이 그들의 양떼와 소떼를 위하여 가나안 본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대한 방목지를 제공해 주는 데 매력을 느껴 이곳에 정착하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지파와 반 지파는 그들의 몫에 해당한 군사를 보내어 다른 지파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가서 다른 지파 모두가 기업을 얻을 때까지 그들과 함께 싸울 것을 서약하였다. 그리고 그 의무를 충실히 감당해 냈다. 열 지파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수 4:12, 13) 사만명의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저희 동포들 곁에서 용감히 싸웠다. 이제 그들이 저희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시간이 이르렀다. 그들은 저희 동포들과 연합해서 싸웠으므로 노획물을 분배받아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여호수아 22장 참조) 돌아갔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가족과 가축과 함께 현재 남아 있었던 자들과 분배해야 했다.
이제 그들은 여호와의 성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되었으며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목격한 여호수아는 그들의 고독한 유랑 생활 중에 저희 변경에 사는 이방 족속들의 관습에 빠지게 될 유혹이 얼마나 강할 것인지를 알고 마음속 깊이 근심하였다.
여호수아와 다른 지도자들의 마음이 아직도 불길한 예감에 눌려 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이상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적적으로 강을 건넌 곳에서 멀지 않은 요단강변에 두 지파와 반 지파는 실로의 번제단과 비슷한 큰 제단을 쌓았다. 하나님의 율법은 성전 이외에 다른 예배하는 곳을 세우는 것을 금지하고 그렇게 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만일 이 제단의 목적이 그런 것이라면 그것을 그냥 둔다면 그것은 백성들을 참 신앙에서 돌아서게 할 것이다.
백성들의 대표자들이 실로에 모이고 그들의 흥분과 분노가 고조되어 곧바로 범죄자들을 대항해서 싸움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가장 신중히 생각하는 자들의 감화를 받아 먼저 대표자들을 보내어 두 지파와 반 지파에게서 그들의 행위에 대한 설명을 듣기로 하고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방백 열 명을 선택했다. 그 우두머리는 비느하스였는데 그는 브올의 사건에서 열성으로 이름을 떨쳤던 자였다.
두 지파와 반 지파가 그처럼 큰 의심을 받을 행위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공공연히 행한 것은 잘못이었다. 대사들은 저희 동포가 범죄한 것으로 생각하고 날카로운 책망으로 그들을 대하였다. 대사들은 그들이 여호와께 반역하였다고 비난하고 바알브올과 연합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떠한 형벌이 내렸는지를 기억하도록 명하였다. 비느하스는 온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여 갓과 르우벤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만일 희생 제단이 없는 땅에 거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건너편 너희 동포들의 소유지에서 분깃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대답으로 피고인들은, 그들의 제단은 희생 제물을 드리려 함이 아니요 다만 그들이 요단강에 의하여 분리되어 있을지라도 가나안에 있는 동포와 동일한 신앙을 가졌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들은 장차 그들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성막에서 제거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 때에는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의 모형을 따라 세운 이 제단이 그것을 세운 자들 역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대사들은 큰 기쁨으로 이 설명을 받아들이고 즉시 이 기별을 가지고 그들을 보낸 자들에게로 돌아갔다. 싸움을 하려던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백성들은 연합하여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그들의 제단에 그것을 세운 목적을 지적하는 이름을 붙여 “우리 사이에 이 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미래의 오해를 방지하고 유혹의 원인이 되는 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가장 가치 있는 동기에 의하여 행동하는 자들 중에서도 단순한 오해로 인하여 큰 어려움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정중하고 관대하게 다루지 않으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결과까지 따르게 되는가! 열 지파는 아간의 사건에서 하나님이 그들 중에 존재하는 죄악을 발견하기에 조심 없이 행한 일에 대하여 어떻게 견책하셨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신속하고 진지하게 행하기로 결심하였으나 먼젓번의 과오를 피하려는 노력 때문에 반대편의 극단에 치우치게 되었다. 그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하여 정중하게 문의하는 대신에 그들은 비난과 정죄로 저희 동포들을 대하였다. 만일 갓과 르우벤 사람들이 동일한 정신으로 반박하였더라면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죄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한편으로는 완만하게 행하는 것을 피하는 일이 중요한 반면에 가혹한 형벌과 근거 없는 의심을 피하는 일 또한 다 같이 중요하다.
자신들의 행위에 관하여 자책하는 데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과오를 범했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을 매우 혹독하게 취급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일찍이 비난과 힐책으로 그릇된 태도를 교정 받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 바른길에서 아주 멀리 떠나가고 저희 마음이 굳어져서 죄를 뉘우치지 않는 자들이 많다. 친절한 정신과 겸손하고 관대한 태도가 과오를 범한 자를 구원할 수 있고 많은 허물을 가릴 수 있다.
르우벤 족속과 그 동료들이 나타낸 지혜는 본받을 가치가 있다. 참된 종교적인 사업을 추진시키고자 정직하게 노력하였으나 그들은 잘못 판단을 받고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울분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기 전에 저희 형제의 비난을 예의와 인내로 다 들은 후에 자신들의 동기를 충분히 설명하고 저희의 무죄함을 나타냈다. 그리하여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뻔한 어려운 사건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
거짓 비난 아래서라도 의로운 자들은 침착하고 사려 깊게 행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잘못 해석된 모든 것들을 잘 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사정을 안전하게 위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죄를 찾아내신 것처럼 분명히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의 사정을 옹호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행하는 자들은 오래 참고 온유하게 행하는 사랑을 소유할 것이다.]-부조
예) 하나님의 백성 사이는 연합과 우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바로 전에 드리신 그리스도의 기도는 당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께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하나가 되게 하여 세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 함이었다. 이러한 가장 감명적이고 놀라운 기도가 각 시대를 통하여 내려와 현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는 당신이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라고 말씀하신 까닭이었다. 우리는 진리의 한 원칙도 희생하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이같은 연합의 상태에 도달해야 함이 우리의 끊임없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말씀하셨다. 사도 베드로도 교회에게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 9)고 권고한다.
2. 질투심과 겸손하고 지혜로운 대답
예) 기드온의 지혜로운 대답(삿8:1-3)
[자기 민족의 원수를 추격하는 일에서 돌아온 기드온은 자기 동족으로부터 질책과 비난을 받았다. 기드온이 미디안인을 치려고 이스라엘 군사를 소집할 때에 에브라임 지파는 거기에 응하지 않았다.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들은 그 노력이 위험한 기도(企圖)인 것으로 판단하고 기드온이 그들에게 특별한 초청을 보내지 않은 것을 저희 동포들과 연합하지 않을 구실로 삼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들이 거기에 참가하지 못한 까닭에 질투하였다. 에브라임 군사들은 기드온의 명령을 따라 미디안의 오합지졸을 뒤쫓아 요단강 여울을 장악하여 탈주병들을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전략으로 많은 적군이 살해당했고 그 중에는 두 왕 오렙과 스엡이 있었다. 이와 같이 에브라임 군사들은 전투에 따라가 승리를 이루는 데 조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드온이 자신의 뜻과 판단대로 다했다고 질투하고 분노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승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을 구원하신 그분의 능력과 은혜를 감사하지 아니하였다. 바로 이런 사실이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 택함을 받을 가치가 없음을 나타내었다.
승리의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온 에브라임 사람들은 분노하여 기드온을 책망하여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라고 말하였다.
기드온은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고 말하였다.
질투심은 투쟁과 유혈을 가져올 언쟁을 선동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의 겸손한 대답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분노를 진정시켰다. 그들은 평안히 집으로 돌아갔다. 원칙에 관하여서는 확고부동하고 타협하지 않으며 전쟁에 있어서는 “큰 용사”인 기드온은 또한 좀처럼 보기 드문 공손한 정신을 나타내었다.]-부조,
3. 조급함과 현명한 대답
예) 아비가일의 현명한 대답(삼상25:18-35)
[아비가일은 그의 남편과 상의하거나 그의 의도를 말하지 아니하고 다량의 식량을 준비하여 나귀에 싣고 종을 시켜 먼저 보내고 자신도 다윗의 무리를 만나려고 출발하였다. 여인은 산의 유벽한 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라고 하였다. 아비가일은 마치 왕관을 쓴 군주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존경하는 말로 다윗에게 말하였다. 나발은 경멸하는 말로 “다윗은 누구냐?”고 부르짖었으나 아비가일은 다윗을 “내 주여”(24절)라고 불렀다. 여인은 친절한 말로 다윗의 분노한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면서 자기 남편을 위하여 그에게 간청하였다. 아비가일은 허식이나 교만심이 없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충만하여 남편에 대한 그의 헌신의 깊이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그의 남편의 불친절한 행동은 결코 계획적인 인신 모욕이 아니요 다만 비참하고 이기적인 그의 본성이 폭발한 것이라고 다윗에게 설명하였다.
(26절)“내 주여 여호와께서 사시고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그의 성급한 의도에서 돌이키려는 이 설득으로 자신의 면목을 세우려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렸다. 그 후에 그는 다윗의 부하들에게 화목 제물로 풍부한 식량을 제공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 대장의 분노를 일으킨 장본인처럼 간청하였다.
아비가일은 말하기를 (28절)“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고 하였다. 아비가일은 은근히 다윗이 해야 할 일을 제시하였다. 다윗은 여호와의 싸움을 싸워야 하였다. 다윗은 비록 반역자처럼 박해를 받고 있을지라도 개인의 과오에 대하여 복수하려 하지 말아야 하였다. 아비가일은 다음과 같이 계속 말하였다. (29-31절)“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삼상 25:29~31).
이 말들은 하늘의 지혜를 받은 자의 입술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꽃향기와 같은 아비가일의 경건은 얼굴과 말과 행동에서 무의식적으로 모든 자들에게 풍겼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여인의 마음에 거하고 계셨다. 은혜가 깃들고 친절과 평화로 가득 찬 그의 말은 하늘의 감화를 끼쳤다. 다윗은 좋은 감정으로 돌아왔고 그는 그의 조급한 의도의 결과가 어떠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떨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이 이스라엘 여인처럼 분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급한 충동을 막고 조용한 말과 때에 적합한 지혜로 큰 악을 억누를 자들이 많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화된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항상 빛과 위로와 평화를 주고 있다. 이것은 순결, 기지, 단순, 유용성으로 분명히 식별된다. 이것은 감화를 신성하게 하는 무아적 사랑에 지배된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이것을 가진 자는 가는 곳마다 빛의 자취를 남긴다. 아비가일은 현명한 책망자요 권고자였다. 다윗의 격분은 여인의 감화와 설득의 능력으로 가라앉았다. 다윗은 그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취했고 자신의 마음의 자제력을 잃었음을 수긍하였다.
다윗은 겸손한 마음으로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긴”(시 141:5)다는 자신의 말과 같이 그 책망을 받아들였다. 다윗은 감사히 생각하고 축복하였으니 이는 그 여인이 그를 의롭게 충고한 까닭이었다.]-부조
마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히 12:14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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