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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출애굽기-041 피로 세우신 언약 (출애굽기 24장 1-8절)
성경말씀은 출애굽기 24장 1절부터 8절까지 봉독합니다.
[출애굽기 24장]
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 이 지파대로 열 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맺게 될 때 그 언약의 의미와 목적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그 언약을 맺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과 그리고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 모세까지 하면 네 사람이고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 그럼 총 74명 정도가 되겠죠.
이 74명을 민족의 대표로 산으로 올라오게 하셨는데 그 나머지 73명은 어느 정도 까지는 올라와서 거기 머물러 있고 모세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예 백성들은 아예 산에 올라오지 못하게 그렇게 했는데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그 말씀을 받아가지고 이걸 다 기록을 했어요. 그 기록한 이 내용이 아마도 레위기에 있는 내용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겠죠.
거기 24장 7절 보면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주었다’ 할 때, 이 언약서가 레위와 맺은 나의 언약 레위기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여러분 이게 얼른 듣기는 참 잘 응답한 것 같고 뭐 좀 잘되어 가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모세가 전하는 그 읽어 들려주는 말씀을 다 듣고는 응답을 하기를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 하리이다. 이렇게 하니까 얼른 이렇게 그 성경을 읽어서 나갈 때 보면 뭐 좀 잘 돼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볼 수 있을 수 있는지 모르는데 문제는 말이죠. 그게 우리가 말씀을 준행하리이다.
그 첫째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돼요. 우리가 어떤 존재 인지? 우리가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존재인지 말이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너무 잘 모르는 거예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 그리스도인들도 우리 자신을 너무 모른다는 거야. 어떤 분들은 뭐 교회를 다니면서도 무엇을 모르는지를 몰라요! 그러니까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무엇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이걸 오늘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바르게 인식을 못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다 ‘준행하리이다.’ 하는데 우리가 ‘그 말씀을 준행 하리이다.’ 할 때 첫째는 우리를 좀 알아야 되겠고 그 다음에 말씀을 또 알아야 돼요.
얼른 그렇게 한 번 읽어 준 것을 가지고 다 알았다고 그렇게 볼 수는 없죠. 오늘 우리도 그 세례 받고 할 때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고 정확 무오한 신앙과 행위에 대한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이렇게 교리적으로 몇 가지 문답을 해 가지고는 말씀 읽어 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다 믿느뇨? 믿습니다. 이게 다 위험하다는 거죠.
아니 이걸 한 절도 빼지 말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읽어 본 다음에 믿겠다 말겠다. 해야 하는데 읽어 보지도 않고 그 거를 다 믿겠다 하니까 그 미신처럼 믿는 것처럼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나 그때 그 사람들이나 꼭 먼저 알아야 할께 우리가 얼마나 타락한 존재 인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심하면 우리가 얼마나 악한지, 얼마나 게으른지.. 이런 건 우리가 잘 모르거든요.
그래 하나님 말씀을 나중에 이 준행 하려고 하다 보니까. 자기 들이 악하고, 게으르고, 무지하고 선인줄 알면서도 해 보니까 잘 안 되는 것이 있고 말이야. 여러분 교회 와서 옳은 말, 바른말, 선한 말 배우기만 하면 막 그게 그대로 실천되어집니까? 아 그러면 얼마나 쉽겠어요. 사도 바울 같은 분도 율법은 보니까 분명히 선하고 의롭고 옳은데 그런데 이걸 하겠다고 해놓고 이걸 보니까 안하는 자기를 본거야. 율법은 확실히 선하다는 거야. 아무리 봐도 율법은 문제가 없는데 사도 바울이 자기 속에 그 율법에 반발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하고 반발하는 어떤 세력이 그런 힘이 자기 속에 있다는 거야.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서 일류역사 마지막에 최후의 심판에서 그 판결문 보면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되어 있어요. 악하고 또 게을러 여러분 악한데다가 또 게을러 그렇게 하니까 또 결국은 그 선하지도 못하고 말이야. 거기에다 또 게으르기 까지 하니까 그래가지고는 뭐 하늘나라 갈 수 없는 거죠.
우리가 얼마나 악한지 우리가 얼마나 게으른지 또 우리가 악한 것도 있지만은 우리가 약합니다. 우리 찬송가도 보면 내 마음이 약하여 늘 넘어 지오니 그런 말도 있죠. 약하다는 거예요. 강하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라든지 이런 거 잘 못 지키는 것 보세요. 여러분 남에게 우리가 더러 속기도 하지만요 사실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많이 속은 거야. 여러분 안 하겠다 해놓고 한 것이 얼마나 많아요. 하겠다 해 놓고 안 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잘 안 속는 편인데요. 그 약아 빠져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하면 잘 안 속는데 그래도 제가 저도 보니까 가끔 속더라고 보니까요 제법 몇 번 크게 속았어. 그런데 남에게 속은 것은 뭐 제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야. 거의 잘 안 속는 편이니까. 그런데 내 자신이 나를 속인 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하겠다! 해 놓고 못 한 게 많고 안 하겠다 해놓고도 또 한 게 많아. 몇 번 다짐해 놓고도 또 그래 이 약하다는 거야. 여러분 이 어째서 사람이 약하게 됐느냐 하면 사람이 죄를 범하면 약해집니다. 죄를 범하면 마음도 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면 몸도 약해져요.
그래서 약하고 악하고 게으르고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죄 성이 있어 가지고 우리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다 준행 하리이다. 내가 옆에서 볼 때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구만. 여호와의 말씀도 잘 모르고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악한지 게으른지를 얼마나 타락 한지를 잘 모르면서 지금 하는 소리야.
그리고 이렇게 언약을 했는데 그럼 언약했으면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 지킬 만한 힘이 자기 들이 없다는 사실을 잘 몰라요. 그리고 그 지키기 위해서는 전심전력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 그 하나님 언약을 지키려고 전심전력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 온전치 못했다. 하나님이 얼마든지 용서 합니다. 그 정도면요 아니 전심전력을 다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미흡한 것은 하나님이 용서 하셔요. 그런데 전심전력 하느냐? 이 이후에 보면 아니거든요.
또 그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떤 결단도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전심전력으로 알려고 해야 해요. 참 그 가치를 느끼고 알아서 알려고 그래야 되는데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어. 또 이 지도자들은 이 말씀을 앉았을 때에든지 일어났을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길에 있을 때에든지 항상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또 인식을 못한 거야.
그러니까 지도자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린아이들까지 전 국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고 그 모른 다는 거야.
그래서 이런 장면을 저는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뭐 백 수십 차례 읽어 보면서 첫째는 내가 내 자신을 알아야 되겠다. 그리고는 내가 하나님말씀을 알아야 되겠다. 제대로 알아야 되겠다. 제대로 알아도 가르치기가 쉽지 않고 가르치려고 해도 사람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또 어렵고요. 배워도 실천은 또 남아 있는 문제라.
이 장면 하나님과 정말 전격적으로 언약을 체결하는 이 장면을 볼 때, 너무 경솔하게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하는 말이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전체 이 이후에 역사를 읽어 보면 매우 경솔하게 한 그런 응답 이예요.
4절,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 이 지파대로 열 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거기 ‘언약서’에 줄을 그으세요. 아까 언약서를 기록했다고 했죠?
그 기록했으니까 ,
그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하니까, 일단 구두로 인격적으로 준행 하겠다고 하니까,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피로 세운 언약이라는 겁니다. 이 피로 세운 언약..
여러분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약속이 있습니까. 끝도 한도 없는 그 뭐 계약서를 쓰고 그 어떤 약관이라고 하는 것이 체결되어지고 그 정관을 만들고 막 끝없이 약속하고, 약속하고 전화로 약속하고 뭐 문자로 약속하고 뭐 그야말로 인생은 약속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많은 약속을 하고 하는데 그 모든 약속의 뿌리 모든 약속 위에 있는 약속. 모든 약속의 근원이 되는 약속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약속이라는 겁니다. 그 전능하신 이 우주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그 분하고 이 전격적인 언약이 체결되는 굉장히 그 참 중요한 장면이죠. 신구약을 통틀어서 이 지금 장면도 굉장한 대목 이죠.
그래서 9절 보면,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는데 옥중에서도 황옥이 있고, 홍옥이 있고, 담황옥이 있고, 청옥이 있는데,
저는 이 보석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은 제가 아는 대로는 이 옥중에서도 이 청옥이 가치가 있는 거야.
저기 그 우크라이나 지방에 가면 그 수박석이라고 하면서 아주 청옥으로 되어 있는 그런 돌이 나오는데 성 베드로 성당에서 어떤 그 돌을 귀히 여기는 것을 가지고 가장 그 소중한 자리에 그 청옥을 가지고 조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러시아 저쪽에 가면 옛날에 그 레닌그라드 지금은 빼제르부르크라고 그러죠. 쌍드빼제르부르크. 페트로스 부르크라고 부르는 그 성에 가면 그 세계 아주 유명한 성당 중에 이삭 성당이라는 성당이 있어. 이삭 성당이 그 엄청나게 큽니다. 이삭 성당에 가면 그 대성전 그 회당 안에 강대상 옆에 그 청옥 기둥이 이런 아름드리 나무를 가지고 그 세우는 거야. 이거는 뭐 세계에서 청옥으로 만든 기둥 중에 그 제일 큰 게 아닌가? 제 짐작으로 그래요.
그 최고로 가치 있는 게 그 옥중에서 청옥 같은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올라가서 하나님 보좌 주변을 보니까 녹보석 같더라. 그런 말이 있어요. 녹보석 또는 청옥. 그러니까 푸른색이 도는 그런 돌들이 이게 아주 좋은 거야. 뭐 황옥 같은 것은 뭐 중국에만 가도 그 굴러다니는 것이 그 황옥 이야.
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하나님을 보면서 먹고 마셨더라. 제가 이걸 보면서 야! 그래도 그 하나님 앞에도 그 먹는 게 있구나! 우리는 오나가나 먹는 거죠. 먹고 마시고 그래.. 우리는 그저 천국가면 입은 아무 그저 쓸 일 없고 안 먹어도 그저 배가 부르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한다는 거죠.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그러니까 앞을 보세요.
율법을 레위기에 다 쓰고 그 안에 것을 요약을 해가지고 만든 게 십계명이야.
우리는 보통 십계명 같은 거를 가지고 다시 뻥튀기를 해서 막 다시 부풀려서 막 해설서를 만드는데,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그걸 요약해 가지고 돌 판에 새겼다는 말입니다. 제가 하는 설교나 강의는 이 방법을 택합니다. 성경 보다 자꾸 부풀리는 쪽이 아니라, 성경을 읽어가지고 요약을 하고 딱 핵심을 끄집어 내 가지고 이야기 하는 거죠.
예수님은 아주 거기에 명수죠. 구약 성경을 딱 두 줄로 줄일 수 있으니까..
구약 성경 전체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한 줄과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면서 딱 두 줄로 요약을 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잘 잡아내야 돼요.
지금까지 유럽 신학이나 이런 신학들이 핵심을 이 끄집어내는 것을 잘 못하고 요약하는 것은 잘 못하고 자꾸 부풀리는 것 누룩을 자꾸 넣어 가지고 끝없이 그저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 그러니까 잘 몰라요.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이 책을 한번 읽어본 다음에는 꼭 한번 요약을 해 보시도록 이 책에는 어떤, 어떤 내용들 들어 있는가? 핵심을 말하자면은 한 몇 가지 주제가 다뤄지고 있는가? 하는 것 이걸 부지런히 끄집어내서 정리해요. 여러분 제가 그 에스라 성경강좌 하는 것도 거의 그걸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성경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기록한 돌 판을 주신다는 거죠.
13 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그러니까 당분간의 어떤 임무 이런 것을 아론과 훌에게 위탁을 합니다. 그 아론이라는 사람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그 성경에는 그런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데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미리암의 남편이라는 거예요. 그럼 누구예요. 모세에게는 자기 자형 이죠. 맞아요. 자기 누나의 남편이니까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집안 끼리 다 해먹는 거야.
모세와 아론이 뭐 처남 남매 지간에 다 해먹고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여러분 그 성경은 뭐 그런 것 잘못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가족이지 뭐 사실은 뭐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이런 것 때문에 또 사람들이 불평, 불만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이렇게 반항하는 것 보면 모세와 아론 보고 그렇게 저항 하는 거죠. 아론과 훌이 나를 대신 해서 일을 볼 것이다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 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자 이리 보세요.
여러분 어디 가서 누굴 만나러 갔는데 당장 안 기다리고 한 30분 기다리게 해봐. 좀 그 마음이 좀 부담이 되죠. 한 시간 기다려봐 아니고 하루 종일 해가 질 때 까지 기다려봐. 아니고 일주일간 안 만나 주고 불러 놓고 말이야. 그래 봐 그 시험 되겠죠. 아 이 시험 안 되는 가봐 이분들이 모세를 지금 산에 불러 올려놓고 하나님이 지금 일주일간 안 만나 주고 그 일주일 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건 다 뭘 교훈을 하는 겁니까.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을 그렇게 쉽게 그 속히 헤프게 그렇게 만나려고 하지 말라고 정말 하나님을 기다릴 때 그 모세 같은 그 굉장한 인물도 일주일을 기다려가지고 이렇게 만났다는 것이고 또 이 십계명이라는 돌 판을 만드는데 40주 40야로 금식. 금식이 아니고 사실은 단식이야 단식. 물도 먹지 않고 빵도 먹지 않는 오늘 우리는 금식하면 다 물은 마시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예사로 이게 접하는 진리가 아니라는 거야. 모세가 레위기 한 권을 얻기 위해서 거의 거기 또 몇 날 몇 일을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린 것이고 십계명 돌 판을 갔다 얻기 위해서 1주일 동안 기다리고 금식을 하면서 이렇게 받은 계명이 십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66권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4박 5일은 그 너무 가벼운 거야.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그 모세 뭐 이 설명도 안 해주고 기록해 준 것만 했는데 그래서 이 가치가 있는 것을 사모하면요 대가를 지불해야 돼. 힘든 과정을 감내하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어야 돼.
여기 지금 1주일을 기다려 가지고 만나가지고 40일 만에 그 십계명을 받아 오는 거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 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그 십계명과 함께 성막 설계도 뭐 이런 것도 받고 백성을 가르칠 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쭉 그저 지시를 받게 됩니다.
25장입니다.
[출애굽기 25장]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 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이걸 이때 그 예물을 가져오라 한 것 가지고 뭐를 하냐면 그 성막과 그 성막 주변에 모든 그 기구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 할 때 쓰는 모는 기구를 만드는데 소용되는 그런 물품들인데, 이걸 요즘 말로 하면 그 건축 헌금하고 뭐 비슷할 거야.
그런 것 할 때, 대 원칙이 있는데 맨 먼저 하나님 말씀이 뭐냐?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너는 받으라는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꽤 여러 차례 예배당을 건축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됐는데 처음 믿었던 개척교회에서도 예배당을 건축했고 또 처음으로 개척 같은 것이 없이 또 예배당을 건축하고 거기 개척하면서 거기 또 지으면서 저 지리산에 또 선배 전도사님이 개척하는데 가서 또 거기도 동참을 하고 원지에 또 개척하는데 가서 거 또 예배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예배당 없는데 가니까 그리고 그 원지에서 그 짓고 나면 는 그 건축 끝난 줄 알았는데 그 무안 그 갈 때는 요 예배당을 불을 질러 놓고 또 나를 오라고 그래요.
그 또 예배당 없는데 갔으니까 또 지어야지 뭐 여기는 또 뭐 예배당도 뭐 아무것도 없는데 또 오라고 해서 말이야.. 또 아마 예배당 언젠가는 지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뭐 목수인지? 목사인지 가끔 이게 수자가 넘어가면 목사가 됐다가 일어서면 목수가 됐다가 뭐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여러 차례 건축을 하면서 그 항상 지키는 첫째 원칙이 있는데 이 말입니다.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받으라. 우리 교회는 보니까 거의 다 부부. 부부가 다 나오시는 것 같아요. 이 참 복된 교회예요. 어떤 교회는 뭐 거의 부인들만 나오고 남편들은 이 다음에 나온다고 그래 항상.
그런데 우리 교회는 뭐 남편들이 다 나오시니까 뭐 좀 해당이 덜 됩니다만 혹시 그저 지금도 남편이 나오지 않고 부인만 나오는 그런 경우가 있다면 앞으로 우리가 건축 헌금을 할 때 남편 모르게는 10원도 못하게 제가 그걸 근 30년 동안 꾸준히 그걸 지켜 왔어요. 예배당 지을 때 마다 부인이 남편 모르게 헌금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어. 이런 건 앞으로도 아마 지켜 질 겁니다. 금액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떳떳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이 이 원칙이라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원칙이야.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인데 좀 깨름직 한 걸 가지고 하면 안 된다는 거야. 여러분 그만큼 하나님이 참 까다롭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그 원칙 중에 하나가요. 아무리 그 건축 제정이 어려워도 어려우면 그 농협에 대출을 내더라도 인건 비 만큼은 매월 한 번도 체불하지 않고 반드시 지불하도록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지불하도록 그리고 절대로 또 조급하게 이렇게 굴지 않고요 어 무안도 그렇고 뭐 다 마찬가지로 건축 헌금이라는 말은 또 한 번 밖에 한 적이 없어요. 그 건축 헌금 합시다. 한 번 우리 합시다. 딱 한번 하고 그걸로 끝이야. 다시는 또 건축헌금 한번 해 본적 없고 그렇지만 그 못 지은 것 없거든요 다 지었어요.
그리고 아무도 건축하다가 무슨 시험 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아마도 언젠가는 땅을 장만하고 터전을 마련하고 뭐 건축을 하거나 그런 일이 벌어 질 텐데 분명히 우리가 앞에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야 될 것이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헌금을 받아야 돼요.
제가 유럽을 돌아보면서 굉장한 그런 성당들 대체로 가톨릭 성당들 이런 거 건물을 보게 되는데 뭐 한 120년 걸린 건물도 있고 뭐 200년 걸린 건물도 있습니다. 260년. 심지어 380년. 제일 오래 걸린 건 450년 걸린 것도 있어요. 그 그런걸 보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 더라니까! 뭐 그렇게 조급 하게 할 것이 없구나. 뭐 한꺼번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속전속결 너무 이렇게 하다 보니까 막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든지 그런 수가 있는데 그렇지 않도록..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받으라 했는데 이 받아 들인 내용이 3절부터 9절 까지 인데,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5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여기 지금 40일 동안에 십계명 그 돌 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성막 설계도 이걸 하나님은 보여주고 모세는 그걸 전부 또 그걸 보여준 걸 적어 나는 그 참 안타까운 게 그림을 좀 그리지 그래 아 도면을 좀 그리던지 그러지 그래 도면은 하나도 안 나오고 그래 전부 글로 써 놨어. 여러분 성경이 왜 어려워 졌느냐? 여기 건축 설계도가 나왔으면 아예 쉬웠을 텐데 설계도는 하나도 안 나오고 전부다 본 걸 글로 쓰니까 이게 답답하고 어려운 거예요. 그 여러분 그런 거 어려운 거 뭐 여러분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저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것을 뭐 우리가 예배당 지을 때 어려운 거 있을 테니까 여기서 뭐 여러분 어렵게 할 마음이 없어요.
자, 뭘 만드는가 봅시다. 제목만 설명 드릴께요.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제일 먼저 그들은 조각목이라는 나무를 가지고 그 궤를 짓습니다. 궤. 그 궤를 혹은 법궤라고도 하고 언약궤라고도 해요. 그 궤는 역시 거기다가 증거판. 십계명 돌판을 넣을 그걸 제일 먼저 만드는 거야.
집 먼저 짓는 것이 아니고 맨 먼저 법궤 먼저 앞세운다는 거야.
조금 이야기를 비약하자면 여러분 예배당 먼저 우리가 짓는 것이 아니라, 법궤가 중요한 겁니다. 옛날에 법궤는 조각목으로 가지고 짜가지고 나무 판으로 만든 그런 궤에 집어넣는데 궤에 집어넣어 놓으니까 안 봐! 사람들이 그래서 오늘날 저는 이 어디다 지금 새기려고 하냐? 이 돌 판에 지금 새겨 놓으면 안 되고 이 예배당 짓기 전에 저와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 말씀을 십계명만 아니고 66권을 다 새겨 넣으려고 해요.
하나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66권의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다 새겨 넣어야 돼. 이거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예요.
지금 그러니까 그 나무로 궤를 만들고 거기 실질적이 돌판을 만들고 하는 것은 뭐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 굉장한 걸로 생각 했지만 오늘 우리가 볼 때는 굉장히 유치한 수준이라 너무 낮은 수준이야.
그래서 우리는 그 정도가 아니고 66권의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새기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 두 번째 만들라는 게 속죄소라는 걸 만들라고 하는데 17절 나오죠.
제가 그 앞으로 여러 가지 만들 텐데 그 번호를 붙이기 바랍니다.
10절에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거기 줄을 긋고 1입니다. 첫째가 궤예요.
둘째가 17절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고’ 이것이 두 번째고, 줄 긋고 2.
23절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이게 세 번째야. 줄 긋고 3.
그 상은 하나님께 올릴 떡을 진설하는 그런 상이죠.
네 번째 31절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등대’라니까 또 무슨 바닷가에 등대라고 하는데, 아니고 등잔을 올려놓는 대예요.
우리 학생들은 또 등잔도 어렵죠. 차라리 등대가 쉽지. 등대라는 말은 등경 대. 등불, 혹은 등잔을 놓는 대죠.
그 다음 26장에,
[출애굽기 26장]
1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너는 성막을 만들라.’ 이게 다섯 번째죠.
15절,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성막 바깥에 널판을 세우는 거야. 이게 여섯 번째고요.
그 다음에는 넘어가서,
[출애굽기 27장]
1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여기 ‘단’이 말이죠, 여러분 다섯 규빗 이면 큰 거죠. 다섯 규빗 이면 2미터 50. 우리 보통 일반적으로 하면 한 여덟 자야. 여덟 자.
그런 큰 단을 만들고 이게 일곱 번째예요.
9절,
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지니
‘성막의 뜰’ 이것이 여덟 번째고요,
20절,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그 기름을 갔다가 착유기 가지고 이렇게 짜 면은 걸쭉한 기름이 되는데 이 순결한 기름은 올리브가 약간 덜 익었을 때. 으겨 가지고 기름을 짠다고 그래요. 그건 우리는 잘 모르는 건데 어떻든 그게 불하면 끄으름이 안 나고 굉장히 밝은 그런 순결한 기름을 짤 때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감람유 기름이 아홉 번째고요,
[출애굽기 28장]
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아론의 옷, 이게 열 번째고,
6절,
6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에봇. 일반 옷 말고 제사장 겉옷이 에봇이예요.. 이것이 열 한 번째고,
열두 번째는 15절에,
15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만들되
그 흉패라는 것은 그 가슴에 대는 패인데, 크기가 어느만하냐 하면 조그만 합니다. 이렇게 해가지고 여기다가 보석 열두 개를 그 붙여 놨어요. 이게 흉패야 이 흉패 안에는 우림과 둠밈 이라는 무슨 판결 구슬 같은 것을 집어넣어요.
이게 제사장이 그렇게 하는데 저도 한번 해 볼까요. 밋밋하게 하지 말고 보석을 갔다가 그래서 제사장이 하나님께 기도 할 때는 열두 지파를 가슴에 안고 그렇게 아마 기도 하는 것 같죠.
그 다음에 거기 30절,
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여기 ‘우림과 둠밈’ 이라는 것은 사실 아직은 우리 어떻게 생겼는지 제가 직접 못 봤고요. 그 재료가 뭔지도 잘 몰라요. 다만 그걸 가지고 판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그걸 사용하는 거야.
그러니까 뭐 주사위처럼 됐는지 모르죠. 그렇게 물어가지고 그 하나님께 해 가지고 뭐 하나님 뜻이 뭐 예스 아니면 노죠. 이렇게 그렇게 물을 때 쓰는 거야.
그 ‘우림’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오르’라는 그 빛이라는 말이고요. ‘우림’ 하는 말은 빛들. 복수야. 빛은 빛인데 복수형이야. 빛들.
‘둠밈’ 하는 것은 ‘온전하다.’ 톰. 히브리어로 이게 ‘톰’이라고 하는데 둠밈 하는 것은 온전한 이런 뜻이고 빛들 하니까 온전한 빛들이다.
우림과 둠밈 이라는 말이 온전한 빛들이다. 이렇게 번역할 가 있어요.
그 다음에 36절,
36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거기 줄을 그으세요.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쓰라.
그 다음에 40절,
40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열다섯 번째 이렇게 합니다.
그 다음 30장 1절에,
[출애굽기 30장]
1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분향 단은 조그만 합니다. 번제단하고 분향단 하고는 달라요.
번제단은 가로 여덟 자. 세로 여덟 자 이렇게 굉장히 크고, 분향단은 그저 한 규빗.
향로 하나 얹어놓을 그러니까 화분대 정도만 하다고 보면 좋아요.
분향단을 만드는데 이것이 열여섯 번째고,
그 다음에 또 지시한 게 30장 11절에,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 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 세 이상 된 자’는 전쟁에 나가서 칼을 뺄 만한 사람들이죠. 인구조사 할 때 그 수에 드는 사람들 남자만 칩니다.
15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여러분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는데 예수님께는 말 안하고 베드로 보고 또 시비를 걸었죠?
‘야 너희 선생은 왜 반 세겔 안 내냐?’ 베드로는 또 안 봐도 ‘낸다!’
예수님께 물어 보지도 않고 뭐 즉흥적으로 안 낸다 하면 또 기분 나쁘니까! ‘낸다.’ 예수님께서 그 베드로 보고 묻죠. ‘사람들이 세금을 걷을 때 자기 아들에게 받느냐? 타인에게 받느냐?’ 타인에게 받죠? 그럼 아들은 안내면 안 되겠나? 예수님이 그러죠. 나는 안 내려나 했어요. 나는 안 내려나 했는데 그 예수님께서 그러나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해서 내자. 네가 말로 그렇게 얽혔으니까 가서 물에 가서 낚시를 던지면 물고기 한 마리가 올 텐데 그 입에 한 세겔 나올 꺼다. 그럼 너를 위해서 반 세겔 나를 위해서 반 세겔. 갔다 내라. 그게 반 세겔이야.
그 반 세겔 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되냐면 반 세겔이라는 양이 금액으로 하면 보통 노동자의 4일분 임금이예요. 4일분. 그 4일분 임금이 반 세겔 인데 지금 같으면 얼마쯤 되는 거예요. 한 20만원 됩니까? 하루 5만원 씩 보고 한 20만 원정도 되는데 이걸 1년에 세 번 내거든요. 매년 3차 성전에 예배하러 올 때마다 그럼 요즘 돈으로 하면 한 60만원 되는 거야.
일 년에 성전 세 내는 게 그래서 이 성전세가 여기에서는 생명을 속하기 위해서 낸다 이렇게 한 것인데 우리가 반 세겔 부자라고 더 내지도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고 똑같이 내는 겁니다. 생명 값은 똑같이 내는 거야.
여러분 부자 생명은 비싸고 뭐 이건희 생명은 비싸고 그 뭐 그 집에 나무패고 물 깃는 사람은 생명 값이 싸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 볼 때는 똑같아. 생명의 속전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반 세겔.
자 그렇게 빈부가 똑같이 공평을 하는 것인데 이 성전 출입할 때마다 반 세겔 내던 것. 이것을 우리가 기독교적으로 재해석을 해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걸 이른바 주일 헌금이라고 해서 냅니다. 이게 뿌리가 여기야. 우리는 주일 헌금해서 그저 매주 그저 얼마씩 내는 데 그 주일 헌금의 용도는 오늘 교회에서 바르게 대자면 대개 교회 영성비, 유지 관리비 이런데 쓰는 게 맞아요. 딴 데 쓰면 안 되고 원래가 그런 걸 뭐 어떤 물품 구입비 이런 거 소모품 비, 수리비, 유지비 뭐 이런 거 원래 주일 헌금 가지고 해야 돼요.
그리고 감사 헌금 같은 게 있죠. 그 낙헌제 혹은 수은제 즐거워서 감사해서 드리는 제물인데 이런 것은 대개 그 구제 헌금으로 나가야 돼요. 우리가 감사하면 딴 사람이 덕을 받아야죠. 그렇죠. 우리가 감사하고 우리가 다 먹어 버리면 그 아무것도 없잖아. 우리가 은혜 받고 감사 할 때 그 감사가 넘쳐서 이웃으로 가야 돼요. 그래서 사회부 쪽으로 갈 돈 들이야 이게 다.
그리고 십일조 같은 것은 인건비로 가는 건데 그 일반 생업을 같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전심전력을 다 하는 사람. 전업 사역자. 전업 주부가 아니고 전업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뭐 선교사, 전도사, 목사, 뭐 신학대학교수 뭐 이런 사람들 뭐 석좌 교수 제 뭐 이런 것들 하죠. 인건비로 원래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은 뭐 십일조 가지고 뭐 시설하고 막 이렇게 하는 것 아닙니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그 원래 우리가 교회 재정이라는 것도 구약성경의 그 빛에서 해석을 하자면 대체로 그렇게 볼 수 가 있습니다. 그 특별한 일에는 그 특별한 것을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선교사를 파송해서 선교비 이런 것도 십일조에서 나가야 돼. 그렇게 하면 원만하게 될 텐데 아직도 우리 한국교회는 이런 해석이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하라면 해 따지지 말고 그냥 이렇게 해서 그저 거의 이해도 안 된 체 그냥 뭐 형편대로 그냥 해 버리는데 사실은 그 의미를 알고 해야 돼. 저도 뭐 교회 가서 그걸 한 번도 그 주장하거나 강조하거나 그대로 하자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뜻은 그렇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는 거죠. 그래서 이 성전세 반 세겔 내던 거 어떤 사람들은 뭐 1년에 세 번만 오니까 이렇게 하는데 우리는 매주 오니까 좀 다르죠.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법이 좀 다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것도 법도 상식도 역사도 배경도 간증도 없기 때문에 전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해서 하는 거예요. 하라고 한 계명과 율례 법도를 좇아서 하는 것이고, 신약시대 와서는 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그 말이 별로 없어요. 뭐 예수님 와서 뭐 예수님 이후에 바울 이후에 우리가 뭐 반 세겔을 다 내라 뭐 이런 말도 없잖아요. 명절도 우리가 그 구약시대 그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은 신약시대는 우리가 우선 뭐 율법에 매여가지고 거기서 시키니까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약성경을 잘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걸 원하시고 이런 걸 기뻐하시는 가 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서 교회 어른들이 모여가지고 우리가 적어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섬기는 도리로서 이런, 이런 일은 우리가 가추는 것이 좋겠다. 해서 교회가 자원해서 정합니다. 정할 때 그냥 그대로 무대포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 한 것을 그대로 그 참고해 가지고 우리가 그 구약 시대 유대인들 보다 더 잘해야 되지 않겠나? 더 아름답게 더 높은 수준으로 해야 되지 않겠나 하고 교회가 정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주일날 예배하라고 한 것 구약 신약에 없어요. 제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뭐 열 번 백번 읽어 봤어도 뭐 주일날 11시에 교회 가서 예배해라 그런 말 없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예배하자 하고 정한 거예요.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율법이 유대인들에게 요구 한 것 보다는 우리가 다만 얼마라도 더 감사하면서 더 잘해야 되지 않느냐? 이것이 오늘 우리 신약 시대에 사는 성도들의 자세입니다. 이런 걸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모르니까 어떤 사람들은 아니 그 그래 가지고 구약에 뭐 그러 한 것 같으면 뭐 우리가 뭐라 하느냐 말이야. 이렇게 그 묻는 사람이 많아요. 그 에스라 하우스 홈페이지에도 꽤 큰 교회 집사님인데도 그렇게 물어 보고 또 어떤 분들은 신학을 하고 있으면서도 신학교수도 대답을 못한다 하면서 또 에스라하우스에 물어 보고 그래요. 그래서 구약시대하고는 우리가 차원이 다른 그런 신앙을 하는 겁니다.
그 다음 22절입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일러 가라사대
23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24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25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모르긴 해도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었던 그런 회막이라는 게 그 해달의 가죽이라든지 가죽 제품이 상당히 많아요. 털 제품 가죽 제품 이런 게 많은데 여러분 냄새가 나죠. 아무래도 그 냄새가 나니까 그 냄새를 이길 수 있도록 여러 향품을 쓰게 되는 거죠.
대체로 이런 내용들이 한 열일곱, 열여덟 가지를 쭉 만들고 있는 데 이걸 만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칠 때 무엇을 드리든지 글쎄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받으라는 거예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나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받으라는 거예요.
신약에 와서 하나님께서 그 바울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 보면 할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을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려라. 하나님께서는 드릴 수 없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기쁨으로 드리는 것 이것이 기본 자세야.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언젠가 또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하나님이 인도 하시면 건축을 한다든지 할 때 이런 것은 지켜 질 겁니다. 또 그런 건축 위원들이 무슨 결정할 때 하나님 말씀을 미리 들었으니까 그런 걸 듣고 결정을 해야 돼. 그저 막 부담되어서 그러면 안 돼. 우리가 나무나 돌로 혹은 쇠로 물질로 가지고 이렇게 집을 짓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 마음의 성전이 더 중요한 겁니다. 돌로 된 성전을 지으려고 마음의 성전이 부서지게 그래서는 안 되요. 그거는 지혜롭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그래서 제가 그 무안 교회에 가서 건축을 할 때도 꼭 그렇게 했습니다. 한 번도 뭐 성도들에게 건축 때문에 부담이 가지 않게 그 저는 가능하면 작게 질려고 이렇게 조금 시골이니까 교회가 뭐 시골 교회가 부흥 되지도 않을 테니까 우리 성도 수를 맞춰서 분수에 넘치지 않게 그렇게 지읍시다. 하면 그 장로님들이 도저히 용납을 안 하는 거야. 그 맞은편에 교회가 하나 있는데 그게 우리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교회거든 원래. 그런데 그게 동네 입구에다 근사하게 지어놨는데 계속 그걸 쳐다보면서 저거보다는 낫게 지어야 한다고 저거 보다. 그래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그러니까 목사님은 여기저기서 교회를 여러 번 예배당을 지어 봤는데 우리는 다시는 못 지을 텐데 지어 놓고 볼 때 마다 기분 좋아야지. 볼 때 마다 기분 나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건축 위원장 장로님이 자꾸 우겨 가지고 또 이왕 하는 김에 그 여섯 글자 때문에 그 돈이 많이 들어가요. 그 이왕 하는 김에 그 여섯 글자인데 한글 자에 돈이 뭐^^ 그 조금 내가 볼 때는 부담이 되는 건데 단 그러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다시는 크게 지으려면 성도들에게 일절 건축 헌금이야기 담지 말고 그저 할 수 있는 분들이 묵묵히 하면 그저 자기 신앙 양심을 따라서 하게 일절 그런 이야기 담지도 말자.
그래서 건축을 하고 났을 때 약간의 부채가 있었어도 부채가 있다는 말도 일절 교회 앞에 하지 말도록 그래 제가 9년 4개월 만에 나올 때 그 다 갚았냐고 물으니까 목사님 2백만 원 남았습니다. 그래요 그 갚지 그래. 그 갚으라 마라 2백만원.. 전혀 시험에 들지 않고 그렇게 지었거든요.
그리고 그 말씀 드린대로 인건비 한 번도 체불하지 않고 아름답게 그렇게 일을 그래서 그 성도님들이 도대체 우리들 손에 무슨 힘이 있어서 그 시골교회 예배당을 지어 냈느냐? 지금도 늘 그저 그 기적이라는 거예요. 할아버지 장로님 94세 되는 할아버지가 있거든요 그 은퇴한 장로님 인데 이 94세 되는 분이 지금도 운전해 가지고 에스라하우스 까지 바람 쐬러 온다니까 아 이 할아버지가 꼭 나만 만나면 아이고 건축헌금 한 번 더 하지 그래요. 늘 그래 끝까지 내가 안 했습니다. 안 하고 안 해도 그 다 갚아내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고 많이 하는 것도 좋은 되 힘차게 하는 것도 좋은 되요. 아름답게 해야 돼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아름답게 하도록..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아름답게 하도록 즐겁게 하고 아름답게 이런 건 배워야 돼요. 그런 걸 우리가 잘 못 배우면 힘차게 하고 많이 하는 것은 좋은 돼 막 상처가 나가지고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면요 힘차게 할 수 있어요. 또 소망을 가지고 하면요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역시 사랑을 가지고 아름답게 해야 돼. 따라합시다. 믿음으로 힘차게 소망으로 즐겁게 사랑으로 아름답게 하자. 앞으로 우리가 샤론교회가 걸어가면서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속으로 믿음으로 하면서 힘차게 하고 소망으로 가지고 즐거움을 가지고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아름답게 하도록 꼭 그런 그 원칙을 우리 행동 강령처럼 샤론의 식구들이 항상 그저 마음에 새겨서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아름답게 되겠는가? 결론적으로 아름답게 되겠는가? 이렇게 하면 즐겁게 되겠는가? 꼭 마음속으로 다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기 18가지를 만드는 것 까지를 살펴보았고 언약서를 그렇게 굉장한 언약을 체결하고 그 언약을 하신 하나님의 그 이름 두는 곳. 그 하나님의 이름 두는 그 성막을 짓되, 하나님께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을 가지고 아름답게 짓는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 이런 것도 우리가 앞으로 잘 배워서 이 대원칙은 샤론교회가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가서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또 칠십인 장로와 그리고 그 맺은 언약들과 언약이 체결된 그 이후에 거기 있는 내용을 요약하여 십계명 돌판에 새겨주시고, 또 그 돌판을 모시고 보관하게 될 그 성소 곧 성소와 지성소를 만들 때에 회 막을 만들고 여러 가지 만들 때에 성도들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받으라 하는 음성을 오늘 우리가 들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 귀한 말씀을 새기고 우리가 샤론교회를 섬겨 갈 때 이 말씀이 늘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서 생각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