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靑春禮讚) 민태원 (閔泰瑗) (1894~1934)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靑春)!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心臟)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靑春)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歷史)를 꾸며 내려온 동력(動力)은 꼭 이것이다.
이성(理性)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知慧)는 날카로우나 갑(匣)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生命)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사랑의 풀이 없으면 인간은 사막이다.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
보이는 끝끝까지 찾아다녀도,
목숨이 있는 때까지 방황(彷徨)하여도,
보이는 것은 모래뿐인 것이다.
이상의 꽃이 없으면 쓸쓸한 인간에 남는 것은
영락(零落)과 부패(腐敗)뿐이다.
낙원을 장식하는 천자만홍(千紫萬紅)이 어디 있으며,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온갖 과실이 어디 있으랴?
이상(理想)!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이상이 있으므로
용감하고 굳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석가(釋迦)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雪山)에서 고행(苦行)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孔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轍環)하였는가?
밥을 위하여서,
옷을 위하여서,
미인을 구하기 위하여서
그리하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커다란 이상,
곧 만천하(滿天下)의 대중(大衆)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주며,
그들을 행복(幸福)스럽고 평화(平和)스러운 곳으로 인도(引導)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길지 아니한 목숨을
사는가 싶이 살았으며,
그들의 그림자는
천고(千古)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현저하여 일월(日月)과 같은 예가 되려니와
그와 같지 못하다 할지라도
창공(蒼空)에 반짝이는 뭇별과 같이,
산야(山野)에 피어나는 군영(群英)과 같이
이상(理想)은
실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라 할지니,
인생에 가치를 주는 원질(原質)이 되는 것이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感動)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自信)과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의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豊富)하게 하는 것이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讚美)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雄大)한 관현악(管絃樂)이며,
미묘(微妙)한 교향악(交響樂)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悅樂)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幼少年)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老年)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黃金時代)다.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發揮)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躍動)하자!
〈별건곤(別乾坤)〉 21호 1929.6
이 작품은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에 대해 화려하고도 강한 어조로 예찬한 수필이다. 청춘은 힘차고 활력이 강하며, 인생 전체로는 이상과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이러한 청춘은 마땅히 찬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청춘이 이상을 지녔다는 사실이며, 그 소중한 가치를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거운 주제를 딱딱하고 건조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고 그 표현에 어울리는 수많은 수사와 비유를 동원하고 있다. 특히 '청춘의 끓는 피',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 '희망의 놀' 등 가장 일반적인 비유의 방법인 은유와 직유를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으며, 문장 역시 전반적으로 넘쳐 흐르는 작가의 열정과 흡사하게 대조와 열거를 통해 사고를 구체화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1930년대에 쓰여진 이 수필은, 작가가 그 당시에 이미 현대적 문체에 대해 수준 이상의 역량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