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는 일단 멋져야 해요. 섹시한 여배우처럼 남자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어야 하죠. 제가 알고 있는 ‘멋지다는
것들’을 모두 이 차 안에 집어 넣었어요”
스피라 같은 류의 차들을 ‘미드십 스포츠카’라고 한다. 엔진이 차체의 중간에 있어 미드십(Midship)이라고 하는 거고, 이렇게
해야 각 바퀴에 전해지는 하중이 균일하고, 뒷바퀴에 동력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든
스포츠카들이 대부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엔진이 뒤에 있기 때문에 엔진을 식히기 위한 공기도 옆구리 부근에서 빨려
들어가고, 그래서 차체의 전면은 면도날처럼 얇고 매끈해졌고, 엔진이 들어 있는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쫑긋 올려졌던 거다.
또한 엔진이 등 뒤에서 바로 시작되기 때문에 좌석이 전진배치될 수밖에 없다. 좌석이 앞으로 갔으니 앞 유리도 전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생겨 먹은 미드십 스포츠카는 앞으로 잔뜩 웅크리고 총성을 기다리는 육상선수처럼 긴장돼 있었다.
한편 이런 비례, 그러니까 유리창 전체가 앞으로 나가면 스포티해 보인다는 것에 착안하여, 한 때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캡 포워드 스타일’을 주창하기도 했다. 엔진이 앞에 있어 유리창 전체를 앞으로 당겨내기 힘든 데도, 미드십 스포츠카처럼
스포티해 보이기 위해 유리창을 전진배치하고 낮게 눕히는 것이다. 푸조 407이나 현대 YF쏘나타, 닷지 스트라투스 등에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미드십 스포츠카의 앞모습이 석쇠같은 라디에이터 그릴 없이 매끈한 것에 착안하여 ‘노 그릴 스타일’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엔진이 앞에 있음에도 그릴을 없애고 매끈한 얼굴을 만들면 더욱 스포티해 보일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대한민국 모터리제이션을 풍미했던 대우 에스페로(1992년)나 현대 아반떼(1995년)의 얼굴이 이에 해당한다. 얘기가 잠시
갓길로 빠졌는데, 아무튼 미드십 스포츠카가 아주아주 멋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차, 저 차 무리해서 따라 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