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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득싸득 걸음시로 귀겡하기 존 쉼터 모도(茅島) 탐방기
※싸득싸득, 싸묵싸묵은 쉬엄쉬엄, 느릿느릿, 시나브로의 귀겡은 구경의 진도 사투리입니다.
지날 달 3월 23일부터 24일까지 진도 길은푸르미체험관에서 진도중학교 제24회 전국 모임 행사가 있어가꼬(있어서) 이틀째인 24일에 접도(接島)를 둘러볼 계획이 있었다.
그란데 안내를 해주기로 하셨던 분이 필자가 나온 진도초등학교 제53회로 6년 선배님이신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협회 장재호 회장님이신데 ‘접도는 둘러볼 기회가 많으므로 좀체 가보지 못 하는 모도를 이 기회에 한번 가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와서 그러기로 하고 10시에 초평 선착장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모도(茅島)라는 섬은 진도 출신이믄 모도덜 잘 아시다시피 영등살(영등사리)에 갯뿌닥(바다) 물이 깔라져가꼬 건너편 회동하고 질(길)이 생겨서 잇어지넌 그 회동 건너편 띠섬 모도인데 물갈라지는 때가 아니라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다.
하제만 모도를 왕복하는 배는 크기가 작아서 40여명의 인원이 함께 움직일 수가 없는데 마침 금다리호(금호도를 다니는 배)가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금호도 배가 있는 회동항으로 버스를 돌려 금다리호와 모세호(모도 다니는배)에 나눠 타고 10여 분만에 맨당(만날) 회동에서 건너만 보든 그 모도에 드디어 발을 디뎌봤다.
어짜믄 쫴깐한(조그만) 배로 이케 10분여의 짧은 도선 거리라서 배멀매(뱃멀미) 부담도 없이 즐거운 뱃놀이 체험이 장점이겄다는 생각도 들었다.
날도 좋고 바람도 자서 그라기도 했겄제만 배에서 막 내림시로 본 모도의 첫인상은 긴 세월을 이겨낸 솔나무들에다 상록 활엽수덜도 잔 있고 야참막한(야트막한) 뒷까끔(뒷산)에다가 비탈밭덜이 머실(마을)을 감싸 안은 듯해 아주 조용하고 아늑한 갯머실(갯마을)에 펜안(便安)한 풍경이로 내게 다가왔다.
-칭고덜하고 들뜬 맘에 경황이 없어 인자봉께 포구에서 본 마을 사진도 한나 없구만이라.-
인자 해발 0m에서 부텀 시작하는 이른바 소망의 길(모세의 기적에 빗댄 이름인 듯)로 들어서는데 이전 같으므는 이맘 때 보리덜이 무성할 뙤겡이 밭덜이(비탈진 곳의 작은 밭들이) 모도 빈 밭이로덜 기양(그냥) 묵힌 밭덜인데 뜨문뜨문 유채꽃들이 피어있고 질깥(길가)에나 발밑은 푸릇푸릇한 쑥이랑 제비꽃 풋노물(별금다지?) 등 각종 야생화에 온갖 지심(잡초)덜이 한창 생명에 기지개를 키는 중이라 함부로 발 내딛기가 먄(미안)한 생각이 들게 했다.
발바닥에 와닿는 흙길의 편안함을 느낌시로 밭두럭질(밭둑 길) 지나는 사이에도 내두록(내내) 지척에 바다를 내다봄시로 탁 트인 시야에 점점이 흩어져 떠 있는 작은 고깃배들의 평화로운 모습들과 또한 중간중간 나무들 새다구(사이)로 내다뵈는 바다 모습은 오늘따라 더 잔잔하고 고요해서 복잡한 도시 생활에 찌들며 늘 보든 시멘트벽들에 비해 그야말로 마음에 치유(Healing)이고 눈 호강 그것이었다.
잠시 오르자 장재호 선배님께서 길을 멈추고 모도(모두) 모테(모여)보라 하시드니 개략적인 설명과 함께 이 숲길에는 환경부 멸종위기 2급 야생동물 보호종인 황구렁이들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설명해 주시면서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황구렁이를 보러 따뜻할 때 꼭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보라고 일러 주셨다.
인자 우덜은 금세 해발 40여 미터의 능선질(능선길)에 올라섰다.
모도는 남서에서 동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면적 0.23㎢의 작은 섬인데 우리가 올라선 능선길은 남서쪽 끝부분으로 바로 앞 남쪽으로 두룩섬이 보이는데 여그 두 섬 역시 물이 빠지므는 건너댕길 수 있을 것 같어 뵘시로 솔나무 우거지고 낮은 갯바위들이 언제가 한번 들려서 두 섬 사이를 걸어보고 싶어지는 그 풍광이 아주 좋았다. (바로 앞에 뵈넌 섬이 두룩도)
모도는 섬의 생김새가 길쭉한 모양인데 여기서부터 북동으로 이어지는 이 능선길이 모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길로 좌우가 좁은 지형이라서 모도(모두) 바다가 지척에 내레다뵈는 전망 좋은 길인데 날 좋은 때는 멀리 한라산도 건너다보인다는 얘기도 있다.
이 섬은 진도 본섬의 남동쪽에 바짝 붙어있어서 울돌목과 맹골, 장죽수로 등의 거센 물살과는 다른 비교적 평온한 바다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런 연유로 더 편안한 느낌을 준다고 하겠다.
완만하고 너름직한 섬의 제일 등성이 부분인 이 길을 걷다 보면 낮은 하늘에다 가까운 바다로 지척 좌우의 바다는 올망졸망 섬들, 점점이 고깃배들, 가지런히 떠 있는 양식장의 부표…. 땅에는 자연 속에서 비바람과 세월을 먹고 담아서 멋있게 자란 소나무에다 동백을 비롯한 사철 상록수림…. 발길과 밭둑으로는 각종 풀과 야생화들이 나름에 부단한 삶을 열심히들 꾸려가는 모습들…….
*이 위에 사진은 그날 우리 동창 칭고로 동양화가인 죽전 김원술 화백이 찍은 사진임.*
이 좋은 자연 가운데 묻혀 싸묵싸묵 걸음시로(걸으면서)…. 머뭄시로(머물면서)…. 심지무야(心地 無㝵/無礙 無我)로 모든 시상사(世上事) 온갖 시름 모도 다 잠시 벗어 놓고 편안한 맘이로 나도 항꾼에(함께) 자연이 되고 초목이 되어 잔 더 오래 머물러 있고 잡었제만…….
‘자 빨리 빨리~!’ 서둘러 재촉하시는 해설사 선배님을 따를 수배끼(수밖에) 없어서 찰로 아쉈다(참으로 아쉬웠다).
드디어 우리는 그토록 어려운(?)-머물고 싶고, 더 보고 싶고, 묻히고 싶은 유혹에- 길을 인내(忍耐)의 아픔이로 재내와가꼬(지나와서) 인자 모도에서 질로(제일) 높운 꼬닥지(꼭대기) 해발 50m(군지 상 2002년 통계로 모도(茅島)는 면적:0.23㎢ 가구수:38 표고:48.4m 회동 모나리나루터까지 거리:1.8km)의 최정상부인 돌무데기 쌓아놓은 자리에 올랐다.
사실 이 곳에 대한 장재호 선배님에 해설은 따로 없었제만
예전에 전화 보급이 없었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정기 운항하는 배가 없고 본섬이 건너다보이는 정도의 대부분 섬들에서는 각기 섬과 정해진 육지(본섬)에 불자리라는 곳이 있어서 여기에서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내거나 깃발을 흔들어서 사연을 알리고 배를 부르는 통신수단이 있었다. 이곳 모도와 금호도에도 불자리가 있고 본섬(진도)에도 정해진 불자리가 있었던바, 모도 최정상부의 이 돌무더기도 내나 그 불자리였던 듯싶었다.
해발 50m의 정상 정복을 기념하는 사진도 찍고 정상에 오른 기쁨도 만끽한 대미(다음) 인자 평평한 구릉지 능선질을 지나 개깟(바닷가, 해변)이로 향해 맨들어진 나무난간(deck)을 걸어서 섬 동남부 개깟을 둘러보았다.
그 뒤 다시 그 높우디 높운(?) 능선길로 또 올라
철탑 인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오 씨 할머니 사당을 둘러보고 철탑 아래 세워진 정자에서 장 선배님의 선창(先唱)이로 진도아리랑 한 가락을 뽑아덜 보고 고향 진도에 참맛과 참멋을 만끽해 보기도 하고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쨋밤나무(구실잣밤나무) 등 사철 상록수들이 터널을 이룬 숲질(숲길)을 지내가꼬 다시 머실(마을)로 향한다.
마을 오는 길에서 우리 진도중학교 은사이셨던 김진완 선상님에 아드님이로 읍내서 지끔 김명수 한의원을 운영하는 김명수 후배(진도초등 64회)럴 만나서 반가웠는데 김 원장도 이 모도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대전에서 온 한의사들 일행을 데꼬(데리고) 안내차 왔다고 함시로 참 존 곳이라고 평했다.
모도 가족공원을 들려가꼬 다시 모도리 선착장으로 와서 1시간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아쉬운 맘 가득 안고 맛보기로 본 모도 탐방을 모도덜 꼭 다시 찾아가꼬 진정한 참맛을 제대로 느껴보리라는 다짐덜얼 함시로 회동항이로 돌아가는 배에다 몸을 실었다.
그래서 배 안에서도 멀어져가넌 모도섬을 또 보고 또 돌아봄시로 존 귀겡 시케주신 장재호 진도군 문화관광해설사협회 회장님께 모도덜 한 맘이로 고마운 맘을 전한다고 꼭 전해돌라고덜 했다.
-진도초 제59회 송현리 출신 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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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느낀 모도(茅島) 관광의 장단점*
**‘후배가 느낀 솔직한 심정으로 꼭 몇 마디 적어주길 바란다’는 장재호 선배님의 간곡한 청으로 필자가 무슨 관광 전문가도 아니라서 머뭇거리다가 이번 모도 관광으로 느낀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전혀 보탬도 뺌도 없이 솔직한 마음을 그냥 그대로 담아봅니다. **
⁂ 섬 자체가 기암괴석의 절경도 아니고 빼어난 풍광은 아니지만, 자연이 소소하게 만들어 낸 소나무나 동백나무 등이 능선의 낮은 하늘과 지척의 바다 풍경과 어우러지는 모습들은 풀숲에 바람 소리와 함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야말로 휴식과 치유의 섬이고 기대어 한숨 자다 가고 싶어지는 진정한 느림의 미학이 느껴지는 섬이라 하겠다.
⁂ 조그마한 배로 10분여의 짧은 도선 거리로 말미암아 뱃멀미 부담도 없이 잠깐 동안 즐거운 뱃놀이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 해발 0m에서 시작해서 어느 쪽에서나 길을 조금만 걸으면 섬의 가장 높은 해발 40m 정도의 능선길로 올라서게 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가족 동반으로도 손쉽게 다녀갈 수 있는 곳이란 점도 장점이라 하겠다.
⁂ 섬 자체가 좁고 긴 형태이기에 좌우로 함께 바다를 조망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능선길은 널찍하고 좋았으며, 맑은 날은 멀리 제주도까지도 보인다는 얘기가 솔깃했다.
⁂ 올망졸망 섬들, 점점이 흩뿌려진 고깃배들, 정연한 양식장에 부표들…. 푸르른 잎에 붉은 꽃의 동백나무, 세찬 해풍을 이겨내며 세월을 가지에 담아 이겨낸 검푸른 소나무, 후박나무에 구실잣밤나무와 동백나무 등이 울창한 상록수 터널…. 각종 야생화…….
여기에 더해 본시 띠섬이므로 지정된 한곳에다 띠풀만 잘 자라게 만들어서 봄에는 삐비(삘기)도 뽑고 하이얀 꽃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더해 본다.
⁂ 기존에 널리 알려진 뽕할머니 전설, 건너편 회동 해변에 말이 물먹는 소리가 나는 바위에 띠섬 전설들과 불자리(봉화 봉수) 이야기 등을 이용하여 들은 이야기가 많고, 다녀가서도 두고두고 할 이야기가 많은 섬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또한 바라본다.
*◈ 아쉬워 보이는 점은 ◈*
◈ 오래된 소나무와 동백나무 등을 감고 올라가는 풀 넝쿨들을 제때제때 제거해 주지 않으면 이 섬의 백미라 할 그 나무들이 고사되고 머지않아 보지도 못하게 되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 경작하지 않는 밭이 많아 밭과 밭둑 등에 잡풀이 무성하여 풀이 우거지면 경관 조망에 방해가 되므로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경작자들의 협조로 사계절 고르게 색다른 풍광을 느낄 수 있도록 유채꽃 메밀꽃 등 손쉽고 보기 좋은 경작 작물 선택과 주변 정리에 적극 협조를 끌어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너무 작위적이지 않게 경작지 이외에는 최소한의 정리만으로 소나무나 동백 등에 자연스러운 경관은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했으면 좋겠다)
◈ 시간이 짧아 마을 구경은 못 했으나 마을은 되도록 예스런 모습들을 오래 간직했으면 싶고, 무엇보다도 진도를 찾았던 향우나 외지인들이 늘 첫째 불만으로 손꼽는 불친절에 대해서 많은 교육과 협의로 이제 다시는 약병아리를 잡아먹느라고 어미 닭도 달걀도 못 얻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모도에 관련된 정보와 이야기들 ***
사랑하면 알고 싶어지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간사인데 고향은 떠나있는 사람이 더 그리워하고 어쩌면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필자 역시 피치 못해 떠나온 고향이기에 더 그립고 더 사랑하게 되는 마음으로 고향 것이라면 뭐든지 정이 가서 모으고 담아두고 깊이 생각하다 보니 부족하나마 진도 자료들이 조금은 있기에 함께 공부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올려본다.
**진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필자의 자료가 바르지 못한 부분도 있을 수 있기에 사실과 다르거나 생각이 다른 경우는 언제든 반론과 이견을 말씀해 주셔서 함께 올바른 고향 공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 모도에 최초로 살았던 사람이 손동지가 맞는가? ◉
진도군의 공식 기록지인 군지(2007)에는 2002년 통계로 모도(茅島) 면적:0.23㎢ 가구수:38 표고:48.4m 회동모나리나루터까지 거리:1.8km라고 했으며,
‘모도의 입향조는 1500년경 들어 온 김해 김씨이다’로 적혀있다.
하지만 오늘날 ‘신비의 바닷길’을 다루는 신문이나 기록들을 보자면 열이면 아홉은 ‘이 마을의 입도조는 손동지인데, 조선 초기에 제주도로 유배 가는 도중 거센 풍랑을 만나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유배자 명단을 다 뒤져 봤는데 손동지(孫洞知?)라는 이름은 없었고 조선 초기인 세종실록까지는 기록된 이름을 찾아 봤으나 손동지란 이름 자체를 찾지 못 했다.
또 진도군지(2007)도 진도 밀양 손(孫)씨는 당시 기록에 ‘진도에 총 85가구밖에 안 되는 성씨이며 진도군 입향시조는 손영(孫英, 1582~?)으로, 임진왜란 이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마산리의 염수촌으로 들어왔다.’ 적었고
기타 기록상의 손(孫)씨 기록은 1459(乙卯)년 손윤생(孫潤生) 군수를 시작으로 1705(乙酉)년 손명대(孫命大), 1745(乙丑)년 손진민(孫鎭民) 군수가 부임했다가 떠난 기록뿐으로 손동지(孫洞知?)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물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한데 군지 하권의 신비의 바닷길 축제(舊영등제) 설명에서 손동지 이야기의 근거로는 <1987년 간행된 『珍島郡의 文化遺蹟』木浦大學校博物館,210~213쪽에 ‘이 마을의 입도조는 손동지인데, 제주도로 유배 도중 풍랑을 만나 정착했다고 한다.’>라고 적혀있음을 근거로 내세웠으니 이 역시 근자의 떠도는 설화를 기록한 것일 뿐이었다.
설화냐 신화냐 실화냐로 논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고 진도가 고향인 사람이라면 그 뿌렁구에 대해서는 진실을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필자가 찾아보고 알아본 바가 그러하다는 얘기이다.
◉ 모도 초등학교 연혁과 현황(2019년 4월 현재) ◉
*전 진도교육지원청 근무 황평수 진도 진중24회 회장 자료 제공*
* 의동국민학교 모도분교장
-설립인가: 1956.6.19.
-개교일: 1956.3.1.
* 본교로 승격 -교명: 모도초등학교. 일시: 1969.3.1.
* 분교장으로 격하 -교명: 의동국민학교 모도분교장. 일시: 1982.3.1
* 교명 변경 -교명: 의신초등학교 모도분교장. 일시: 2014.3.1.
-사유: 학생수 감소로 의동초등학교가 의신초등학교에 통•폐합됨에 따라
* 2019년 4월 1일 기준 모도분교 현황
-학급수: 3학급
-학생수: 5명
-교원수: 3명
◉ 모도라는 이름의 섬들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리(茅島里, 회동 건너편의 섬)를 비롯해서 모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진도 안에도 6개나 있으며 그중 하나는 한문까지 같고 그 외 완도군과 멀리 옹진군에도 모도란 이름의 섬이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모도리(茅島里, 유인도인 모도가 있고 무인도인 소모도가 있음).
진도의 고군면에도 상모도(上牟島), 중모도(中牟島), 하모도(下牟島)라는 이름의 작은 무인도 섬이 존재한다.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茅島里, 섬으로 대모도가 있고 소모도가 있음).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모도리(慕島里, 시도와 연결되어 신도와도 다리로 연결된 섬).
◉ 바닷물이 갈라지는 현상은 우리나라 어디 어디에 어느 만큼 있나? ◉
바다 갈라짐 현상(해할, 海割, Sea Parting 또는 Crossing the Sea)은 조석의 저조시에 주위보다 높은 해저 지형이 해상으로 노출되어, 바다가 갈라진 것 같아 보이는 현상이다.
유럽 국가들과 북미 캐나다 일본 등 리아스식해안이 발달하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나 우리나라의 서해와 남해 해안은 특히 세계적으로 드물게 그 차이가 심해서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 제부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명동 동섬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소매물도 - 등대섬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소야리 소야도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실미도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 우도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사도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회동리) 앞바다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리(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하도(하섬. 변산반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 서건도(써근섬)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무창포 해수욕장 - 석대도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웅도
이상이 대표적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고
그 외에도 하루에 두 번씩 갈라지는 곳, 한 달에 서너 번씩 갈라지는 곳도 많아서 전국에 2~30곳이 넘으나 1년에 한 번(사실은 경우에 따라 몇 번 더 있음)이라는 점과 일찍이 외국에까지 크게 소문난 점이 진도신비의바닷길에 장점이라고 하겠다.
◉ 영등살과 백중살 ◉
2월 초 하룻날을 진도에서는 본래 칡 캐먹고 개매솥(가마솥)에다가 콩을 볶아 먹음시로 손끄시럼(손거스러미) 지지는 날인 하루달, 하구달이라 불렀고, 머심 생얼날(생일날)이기도 함시로 영등날이기도 했다.
1975년에 주한 프랑스 대사인 피에르 랑디(Pierre Landy)가 진도개(표준말은 아직 진돗개, 진도견)의 상태를 보러 왔다가 이를 보고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뒤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던 계기로 요새는 ‘신비의 바닷길’,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하지만 이런 행사가 생기기 이전에는 ‘영등살(영등사리) 때 물이 젤로 많이 깔라진다’고 하는 말이 있었고, 용왕님과 영등할마니한테다가 영등제를 올리기도 했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백중살(백중사리) 때도 물이 질로 많이 둘옹께 백중살 에넌 바닷물이 뭍이로 올로기도 한다’고 했었다.
우리나라 예전 기록들을 보자면 음력 2월 1일에는 ‘영등 환영제’를 지내고 14일, 15일에는 ‘영등 송별제’를 치르는데, 송별제를 더 성대하게 했다고들 한다.
이 영등날은 음력 2월 초하룻날로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는 날인데 이날 비가 오면 풍년,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영등할머니는 영등신(靈登神)ㆍ이월바람ㆍ이월할머니ㆍ바래ㆍ영동신(靈東神)ㆍ바람제석ㆍ구름제석ㆍ풍신할매 등으로도 불리며 2월 초하룻날에 하늘에서 내려와 집집마다 다니면서 농촌의 실정을 조사하고 2월 조금날(23일)에 하늘로 올라가는데, 바람을 다스린다고 전한다. 전국 어디나 내려오는 날은 정확히 초하룻날이나 초사흗날 올라가는 경우와 2월 보름에 올라가는 경우, 2월 20일에 올라가는 경우, 조금날(23일)에 하늘로 올라가는 경우 등으로 나뉜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변천을 잠시 살펴보자면
갯가 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바람과 파도 그라고 물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살기에 예로부터 영등살에 거의가 용왕님과 영등할머니께 어업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영등제(靈登祭)를 지내왔었다.
그러한데 특히 회동(回洞)과 모도(茅島)에서는 바닷길이 가장 크게 열리는 곳이다 보니 뽕(봉씨?)할머니 오씨할머니, 호환(虎患)에서 돌아온 동네라는 전설과 함께 풍어와 소원성취를 비는 기원제를 지내고 회동과 모도 사람들이 모처럼 길로 이어진 바다 위에서 서로 만나 바지락, 낙지 등을 나누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오던 풍습이 전해져 왔었다.
그러던 차에 1975년에 주한 프랑스 대사인 피에르 랑디(Pierre Landy)의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을 계기로 NHK-TV가 세계 10대 기적으로 소개하면서 외국에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자
1978년 4월 15일 모도초등학교 개교 21주년 운동회를 시작으로 뽕할머니 기원제, 용왕제를 올렸으며, ‘영등살 놀이’로 개최「진도 만가」,「남도 들노래」,「소포걸군농악」, 강강술래를 공연함으로써 제1회로 치게 되었다.
1983년 제6회 때는「영등살이」라는 영화가 촬영되어 많은 인파가 몰렸다.
1984년 제7회 때 ‘진도 영등제’로 명칭을 바꾸어 개최.
1985년 제8회 때는 외국 6개국 대사 및 26개국 외교 사절이 방문하기도 하였다.
1991년 제14회 때 ‘진도 영등축제’로 명칭을 바꿈.
1996년 제19회 때부터는 봄과 여름 두 번에 걸쳐 축제가 개최되었다.
2000년 3월 14일에 전라남도 명승 제9호로 지정되어 진도군에서 관리하게 됨.
2003년 제26회 이때부터 진도군청의 주도로 축제가 4일로 확대 실시됨.
2005년 제28회 때 ‘진도 영등축제’를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로 바뀌었다.
이때 5월24일~5월25(2일간)과 7월22일~24일(3일간) 두 번에 걸쳐 개최.
2006년에는 여름에 8월10~12일(3일간, 9일 전야제까지 4일) 제29회 진도 신비의 바닷길축제 개최.
2010년 제33회 축제가 3월30일~4월1일(3일간) 열림.
2011년 34회로 3월19~21일 개최 예정 포스터까지 내보냈으나 구제역으로 공식행사는 취소하고 찾아오시는 관광객을 위해 소규모 공연과 자율안내 실시.
2012년에 다시 34회로 4월7일~9일(3일간) 거행.
이후 별다른 사항 없이 한 회가 빠진 채로
2019년 제41회까지 이어져 왔다.
* 백중날은 음력 7월 15일(보름날)로 백중 때는 백중사리라 하며 보름날을 전후한 사리 때 1년 중 밀물의 수위가 가장 높다고 해서 이때는 바닷물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제방이 유실되거나 바닷물이 제방위로 넘쳐 어촌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날은 달과 태양과 지구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있으면서 달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되는 때라고 한다.
진도에 ‘백중마 드넌 해넌 암껏도 먹으 껏이 없다’ 하는 말도 있는데 백중마란 백중에 장마가 드는 것으로 ‘장마철’을 진도에서는 ‘마통’이라고 했다.
영등날 백중날에는 여러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기도 한다,
이렇듯 영등살에 영등제를 하던 것을 진도군에서는 관광 수익 증대를 위해 영등날(주로 양력 3월 초 이전)에는 아무래도 날이 더 춥기 때문에 좀 더 따뜻한 때로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라고 해서 영등할마니 대신 뽕할머니하고 용왕님께 어업과 농사의 풍년을 비는 것으로 개최되는 행사로 변형되었고 한때는 봄과 여름에 두 번씩 개최하기도 했었다.
※진도의 바닷길은 2000년 3월 14일에 명승 제9호로 지정되었고, 지정구역은 3,826,374㎡이며 보호구역은 28,318㎡이다. 진도의 바닷길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수심이 낮아질 때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에 길이 2.8㎞, 폭 10∼40m의 바닷길이 드러나는 현상이다.**
-진도 송현 출신 진도사투리사전 저자 조병현.-
*바르지 못한 자료 인용이나 사실과 다른 점이나 이견에 대해서 많은 지적 주시길 바라면서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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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님 안녕하세요 모도에서 뜬금없이 만나 반갑디다. 울 아버님 성함도 나오고. 그란데. 울 아버님 함자가 김진완(金鎭完)입니다. 성님 만날때는 아버님이 살아계셨는데 4월7일날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여기 읽다보니 눈물이 핑하네요. 감사합니다.
으따! 시상에..
삼가 선생님에 명복을 빕니다
펜히 존 데로 가셰가꼬 영면하시옵소서!
우덜 학교 때는 매점에 계셨었지라
존함이 진자 완자시구만이라?
발음덜이 강하다봉께 환자로 알었었는데
그날 버스서 야기함시로
근자에 뵈었다는 친구가
‘기품있으신 노신사로 보이셔서 참 부러워 보이드라’고 하등마는...
그래도 자제분덜께서 한의사로 의사로 성공들 하셔서
선생님 어깨 펴시게 해드렸고 기품있으시게 지내시도록 해드렸응께
효도덜 잘 하신 것이고 선생님도 존 곳이로 가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선생님은 가셨어도 육은 자손덜한테 남었고
영 역시 그 자손덜에다 지인들과
선생님을 기억하는 모든 이덜한테도 또 남었겄지라?
예전에는 물이 갈라지면 회동쪽이 먼저 갈라지고 모도쪽이 늦게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회동옆 용호리끝부분에 방파제 선착장을 길게 만들어 물흐림을 바뀌어 놓아. 회동쪽 물 갈라지기 시작한 부근 자갈이 다른곳으로 흘러가기만 하고 모아지지 않아 수심이 깊어지고 있고/ 금호도 선착장를 만들어 물 흐름을 빠르게하여 모도쪽으로 자갈이 모이게되어 모도쪽 물 갈라지는 수심이 높아져 현재는 모도가 더 먼저 갈라지고 있습니다.
금메
개발과 보존에 대해 잔 더 짚이 생각하고
또 많안 고민과 지혜가 필요하겄지라?
드러난 갯등을 조개 캔다고 호무랑 삽이로
파제끼는 것도 잔 그라겄습디다만
공사가 암만 급하다고
석탄재 폐기물 매립은 안 되겄지라?
그것도 일제람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