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75]
정설과 진실 사이
우리가 정설로 믿고 있는 것 중엔 사실과 다른 것들이 꽤 많습니다. 특히 SNS 상에 나도는 수많은 얘기들은 다 그럴 듯하게 포장돼 있지만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것도 참 많죠.
불순한 의도로 사람을 음해하려고 지어낸 것도 있고,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사실과 다른 쪽으로 눈덩이를 굴려 진실을 왜곡하기도 해요. 사실과 상관없이 정설이 되는 모양새입니다.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은 일도 ‘TV에 나왔다’라고 하면 바로 안색을 고쳐 그래? 하며 꼬리를 내립니다. ‘내 말이 아니라 신문에 났다니까’ 라는 한 마디에 입을 다물고 순간 정설로 굳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SNS가 판치고 언론이 팩트에 약해지는 세상이 됐지요. 이러한 형국이 아팠는지 신문, 방송이 앞 다퉈 우리는 ‘팩트’ 만을 좇는다고 경쟁하듯 강변합니다.
딴에는 젊었다고 생각하던 때, 전국 선남선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노래 한 곡이 있었죠. 가수 이종환이 부른 ‘사랑을 위하여.’ 한 때 가요 시장의 팬심을 사로잡은 노래였습니다.
어딜 가도 이 노래가 흐르던 때,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죠. 때마침 이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데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스피커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어요.
“저 노래 들으면 생각나는 거 없어?” ”왜 또, 무슨 말하려고?“ 워낙 상상력이 풍부해 엉뚱한 발상을 잘하는 친구라서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누굴 어쩐다고? 척 보면 이건 불륜이야.“
말인즉 세상에 아침부터 이런 실없는 소리 하는 남자는 없다는 거죠. 이어지는 가사에 그의 추리력은 더 발동합니다. “물안개 피는 강가?” 순간 무릎을 치며 “정답, 일산 호수가 보이는 모텔!” 아닐까?
웃자고 한 얘기이니 같이 웃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방송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죠. 출연자가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함으로.
이종환이 무명가수 시절, 처가 마당에 봉고차를 세워두고 잠을 자는 날이 많았답니다. 그에게 바람이라면 사랑하는 아내랑 잠자리에 들고일어나는, 소박하고 간절한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절절한 기원이었다면, 가사가 그렇게 나올 수 밖에요. 비로소 친구의 가설에 가린 숨은 진실을 알게 됩니다.
영화 ‘국제시장’도 그렇습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알려졌던 그 일화… 현지 광부, 간호사들과 만나 함께 눈물짓는 가슴 아픈 이야기 말입니다.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 여러분이 여기까지 와 고생합니다.“
눈물샘은 이렇게 자극되었죠. 이어서 “비록 우리 생전엔 못 이룰 지라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을 만들자“라고 다짐할 때, 이 대목에서 울음이 북받칩니다. ”후손만큼은 결코 타국에 팔려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말할 때 장내는 울음바다로 출렁였었죠.
국민소득 66달러이던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아는 정설로는, 광부들은 수천 미터 지하에서 탄을 캐고 간호사 대부분은 매일 거구의 시체를 닦는 고된 일을 했다는 거죠.
하지만 현장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과는 간극이 생깁니다.
당시 파독 광부 10%가 독일인 하위 광부 10%와 같았다고 합니다. 채탄 광부로는 생각보다 적게 투입됐고 대부분은 캐낸 탄을 분류 하거나 다른 공정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일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긴 해도, 기념관에 있는 채굴 장비를 보면 대충 이해가 되는 것이, 워낙 장비들이 크고 육중해서 왜소한 한국인들이 쓰기엔 부적합한 장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간호사 증언도 엇갈립니다. 시체나 닦으며 눈물 젖은 세월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나, 이 또한 일부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국제시장’을 본 간호사들의 불편한 심기가 나왔던 이유입니다.
파독 간호사들은 인텔리 근로자로 간 것이지 시골처녀 상경기처럼 몸으로 때우는 막일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또한 불편한 정설이었던 셈이지요.
오늘은 상식으로 알아온 대동여지도의 통설이 깨졌습니다. 지도 제작을 위해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고, 백두산을 일곱 번 올랐다는 김정호의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상태 한국 고지도 연구학회장이 펴낸 ‘김정호 연구’는 교과서에 실린 상식을 뒤집어놓았습니다.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거죠. 하긴 백두산에 오른다고 지도 제작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긴 해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진실에 기초한 것일까?
뭐든 과신하면 부딪치게 되고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관조의 대상일 뿐, 목숨 걸고 우겨 득 될 곳은 아니니까요.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첫댓글 가수 김종환이 맞습니다.
사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