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지상)주의와 사회(국가)주의의 결정적 분기점은?
<맑시즘의 영원성과 내구성, 잠복성>
- 돈을 직접 만지는 장사치를 빼고는 모조리 칼 맑스의 잠재적 친구이다. -
토지에 대한 태도에서 갈라진다. 자유주의는 토지를 사유재산권으로 보지만 사회주의는 국유재산로 본다. 특히 농지의 경우엔 근대에서 20세기 현대로 넘어오면서 자유주의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경작이 직접 가능한 자에게만 매매나 상속 등 이전이 가능하다. 또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의 넓이도 나라별로 상한선이 분명하다. 비소유자의 불만이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공산(사회)주의는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는 통에 토지부동산법 자체가 없다. 겨우 협동조합이나 대규모 농업단지 등에 경영권만 기간을 정해 임대해주고 있다.
대규모 지주제도를 지양하여 토지를 유상으로 개혁한 서구 및 일본과 한국 등은 모두 OECD 선진국 반열에 올라가 있다. 모든 지주의 토지를 무상으로 뺏어 농민들에게 무상분배 후 1년후 즉시 국가소유로 개혁한 나라는 모조리 공산(사회)주의로 후진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지주들은 순응하거나 해외로 도피하거나 공개총살로 처형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미군정의 요청에 따라 토지유상개혁을 실시하여 농촌에서 지주계급이 사라지게 하였다. 그 결과로 지주계급들은 토지보상자금으로 산업화로 넘어와 나라의 안내와 도움을 받아 국가기간산업 등에서 성공한 경우엔 중추경제인그룹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물론 백면서생으로 적응못한 집도 몇이 있기는 있지만 그래도 종가토지는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종가댁은 기본 농토가 여전히 잘 보존이 되어 있다.
중공, 쿠바 등 북한의 공산진영에서 지주의 토지를 무조건 100% 약탈하여 빈농이나 소작농들에게 1차 무상으로 나누어 줄때 억울한 땅주인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빈농이나 소작농들은 도적떼처럼 환호하였다. 하지만 이네들도 곧 모든 토지를 공산정권이 빼앗아 가는 통에 국영농장의 일꾼인 농노로 전락하였다. 농촌에 사는 농민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 군인이나 공무원 등이 되어 농촌을 떠나면 그냥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 자제들도 공장에 배치보다는 농장에 우선 배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를 청산하고 20세기가 시작될 때 이런 세계적 기류를 싹 무시하고 중세적인 대지주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많은 나라가 있다.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필리핀이나 동남, 남, 서남아시아 등의 모든 나라가 이에 해당된다. 또 멕시코 이남의 남미 諸國이 이에 해당된다. 이네들은 공산진영보다 더 악질이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며 그 정신적 수준이 중세적 마인드이다. 이들 나라에 희망을 거는 것은 위험하고 비이성적이다. 농부들은 말이 소작농이지 시골에만 살아야하는 준노예급이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아직도 부족사회로 단위가 소규모이고 이런 중세적 개념조차도 없다. 국가는 자기들 나름 엘리트 중심으로 사회주의집단독재국가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남미보다도 국가체제가 나은 것이 없다.
세금의 형태를 보더라도 자유진영은 토지재산세이지만, 공산진영은 수확현물제이다. 또 중세적 대지주제도의 나라는 소작농으로부터 받은 지주들의 수확물 가운데 상당수를 재물로 환산하여 체제보호용 세금으로 납부하게 하고 있다. 또 중세적 이들 나라들의 특색은 제정(祭政)일치의 나라로 국민들이 종교에 무조건 세뇌되어 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諸國은 일반인들은 부족형 사회로 살지만 국가단위에서는 엘리트들이 작당하여 국제사회의 지원을 교묘히 빼돌리고, 자국의 지하자원을 서구의 기업에 헐게 넘겨 그 수익의 전부를 스위스나 미국 등의 선진국 부동산이나 금융에 재물용으로 보관하는 등 자국의 경제개발에는 개념적 발상자체가 아예 없다. 국가라기보다는 문맹적 수준의 상거지집단이다.
그러면 토지말고는 자유(지상)주의와 사회(국가)주의의 결정적 분기점은 없는가?
당연히 있다. 전자는 민간중심의 자유시장제도이고 후자는 국가지시의 계획경제제도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고전경제학을 보면 분업과 협업, 그리고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있다. 분업과 협업, 자유무역으로 이들은 모든 문제를 풀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특히 그에 영향을 받은 리카도의 비교우의론은 국제무역의 당사자 상호이득을 잘 설파해 주고 있다. 대영제국의 경제이론을 살펴보면 세가지 맥이 있다. 그 바탕은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주의 정신이지만 그 방법은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것으로 상당히 개방적이고 거의 무한대로 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키고자 제도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세가지 맥의 힌트를 내리면 관용과 협업, 신용을 3자(三者)로 매개하여 세계제국을 건설한 무리들과 같은 방법을 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원나라, 스페인, 네덜란드, 대영제국, 미국 등이다. 이네들은 자유주의의 3가지 정신으로 세계를 차례로 제패한 자들이다. 참고로 현재 미국은 좌파는 liberal 신자유주의이고 우파는 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이다. 좌파나 우파나 크게 차이가 없다. 미국은 대도시 중심의 첨단 자본주의사회로 농촌과 도시에서 동시에 글로벌 경제승리를 이룬 대표적인 세계 최강국이다. 이는 일명 '도시의 (엄청난) 승리'라고도 한다. 이에 비하여 사회주의는 소농촌 중심의 국가간섭사회로 농촌의 침체와 도시의 집단 비효율로 국가경제침체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일명 '집단농장의 (예정된) 실패'로 본다.
★자유지상주의의 빛나는 청사초롱의 별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해양포리스인 아테네는 물론 농업도시국가인 스파르타마저도 자유주의 정신으로 시민들이 무장해 있었다. 기원전 486년에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500만 대군을 맞아 청사에 길이 남는 전투를 치렀다. 테르모필레 협곡 300인 전투에서 이네들은 자유시민군으로 자기돈을 들여 완전무장을 하여 임전하였으나, 500만 대군의 페르시아군들은 대부분 노예로서 맨살에 주인이 주는 창하나 들고 화살받이로 전투에 동원이 되었다. 자유와 독립의 임전무퇴의 프로정신의 자유와 굴종과 예속의 강제동원의 천한하급 노예와의 전투이었다. 전투의 결과는 스파르타의 승이었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탈을 막은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절대자유의 정신으로 자랑스런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더불어 회자되고 있다. 특히 이로 인한 서구의 자유주의 정신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초석을 확실히 심어 놓았다. 자유의 유전자만큼은 우리 아시아가 서구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이에 해당하는 기사가 있어 탑재한다. 2019.5.2.(목) 조선일보 A38의 내용이다. 다 알만한 내용이지만 참조하여 주면 감사하겠다.
~~~ '9900원 청바지'의 위험 ~~~
12년쯤 전 일이다. 지금은 사라진 당시 세계 1위 휴대폰 업체 노키아는 글로벌 시장을 충격으로 몰고 있었다. 바로 '초저가(超低價)폰'이었다. 지금의 대당 80만원대가 넘는 스마트폰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3만~5만원짜리 휴대폰으로 노키아는 시장을 석권했다. 특히 매달 600만명씩 가입자가 늘고 있던 인도 시장에서 노키아는 맹공을 퍼부었다. LG전자도 2300루피(약 4만8000원)짜리 KG110 휴대폰을 내놨다. 필자는 당시 인도에 주재하면서 LG전자 KG110의 제원을 뜯어본 적이 있었다. 핵심 부품인 플래시메모리는 미·일 합작사인 스팬션에서, LCD(액정 화면)는 대만(臺灣) 업체 톱폴리에서, 금형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사출은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받는 등 수많은 국적(國籍)의 부품과 공급망이 망라돼 있었다.
원래 제조업은 제품을 만든 뒤 적당한 이윤을 남겨 파는 것이다. 그런데 초저가 경쟁이 벌어지니 가격부터 정해서 그 값에 맞추려고 가장 싼 부품을 만드는 업체를 전 세계에서 뒤져서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걸 '공급자망 혁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제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도 '메이드 인 인디아'도 아닌 '메이드 인 글로벌'이었다.
요즘 유통가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 그때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달 초 이마트가 9900원짜리 청바지를 내놨다. 가격을 맞추려는 이마트의 노력은 실로 가상했다. 원단 구매 등에 에이전트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작년 2월 면화 생산지인 인도와 파키스탄에 직원을 파견했다. 여기에 원단 시세가 10%쯤 싼 3월에 주문하고, 가죽 장식 등도 모두 생략했다. 그래서 9900원을 맞춘 것이다. 이마트뿐만 아니다. 요즘 국내 유통가의 최대 키워드는 '초저가'이다. 쿠팡 등의 출현에다 기존 오프라인 대형 할인점도 가세하면서 확전 일로의 양상이다.
12년 전 벌어진 일이 제조업발(發) 초저가 혁명이라면 지금은 유통발 초저가 혁명이다. 유통업체도 원래는 제품을 떼다가 적당히 이문을 남기는 방식으로 영업했다. 그런데 이제는 가격부터 정해놓고 여기에 맞는 물건을 공급할 제조 업체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유통 업체들은 '초저가'에 맞춰 구매처를 해외로 돌릴 것이고, 이들을 붙잡기 위해 더 많은 중소기업이 싼 인건비 등을 찾아 덩달아 해외로 나갈 것이다. 앞으로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한국 제조 업체, 더 엄밀히 말해 한국 중소기업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글로벌 초저가 경쟁 속에 뛰어들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고 골목 상권을 보호하는 규제에 기대서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통에 대한 '착한 규제'가 제조업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규제 당국은 알고 있을까.
https://news.v.daum.net/v/20190502031429113